재밌는 과학, 따뜻한 과학으로 대중의 마음을 열다
_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이순신 장군의 숨결이 대기권 어딘가에 흩어져 있다가 그 공기 분자가 나에게 들어올 확률은….”
한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 ‘이순신 장군에 대해 아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는 ‘아보가드로의 법칙’을 이용해 이순신 장군의 숨결을 계산했다. 이 일화는 방송의 ‘킬링파트’로 두고두고 회자됐다. ‘과학인데 재미있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대중에게 열린 과학으로 다가가는 그의 놀라운 소통 능력이 또 한 번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미술관이야? 연구실이야?’
3월 16일 대전 KAIST에 있는 정재승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의 방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커다란 그림들이었다. 한쪽 벽에는 원색이 많은 추상미술 작품이, 다른 쪽에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리처드 파인만, 올리버 색스, 스티브 잡스 네 사람의 얼굴이 함께 그려진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저에게 영감을 주는 작품들입니다.”
정 교수는 웃으며 말했다. 공간이 사람의 인지사고와 행동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연구하는 뇌과학자다운 얘기였다.
뇌과학자가 만드는 스마트시티
정 교수는 지난해부터 정부가 국가 핵심 사업으로 추진하는 세종 스마트시티 시범도시 총괄책임자(Master Planner)를 맡아 바쁘게 일하고 있다. 스마트시티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데이터로 만들고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서 시민들에게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도시다.
그는 긴급 구조 상황을 예로 들었다. 일반 도시에서는 112에 전화를 걸면 관할경찰서로 연락이 가지만, 스마트시티에서는 교통의 흐름을 고려해 경찰차가 가장 빠르게 출동할 수 있는 경찰서와 연결할 수 있다. 또 도시 전체의 응급실을 모니터링해 응급상황 발생 시 가장 효율적으로 구급차와 응급실 침대를 사용할 수도 있다.
“연구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실제 도시를 기획한다는 것은 놀라운 경험입니다.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일을 한다는 데 큰 보람을 느껴요.”
그가 스마트시티 총괄책임자를 맡게 된 데는 지난 8년 동안 신경건축학 분야의 학회를 만들고 이끈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그럼에도 뇌과학자가 도시 기획을 총괄하는 사례는 과학자가 최고기술경영자(CTO)로 도시 계획에 자주 참여하는 미국과 유럽에서도 드문 일이다.
대중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는 과학자
정 교수는 스마트시티 총괄책임자이기 전부터 한국을 대표하는 ‘과학 전도사’로 더 유명했다. KAIST 대학원생 시절 ‘과학동아’에 영화를 주제로 한 ‘시네테크: 스크린과 함께 하는 과학여행’이라는 코너를 연재하며 과학 글쓰기를 시작한 것이 계기가 돼 ‘과학콘서트’ ‘눈먼시계공’ ‘뇌과학자는 영화에서 인간을 본다’ ‘열두발자국’ 등 수많은 교양 과학책을 펴냈다.
특히 ‘과학콘서트’는 2001년 출간된 이래 85만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2년 전 ‘알쓸신잡’이라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그의 인기는 한 번 더 치솟았다. 곳곳에서 광고 섭외가 밀려들었다. 하지만 그는 모두 고사했다.
“‘알쓸신잡’에 출연한 이후로 달라진 점이요?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방송을 출연하는 과학자가 저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보다는 오랫동안 과학을 주제로 대중 강연 등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그것이 누적돼서 제 활동을 좋게 봐주시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덕분에 이번에 과학계 파워피플로도 뽑혔고요.”
실제로 정 교수는 2010년부터 ‘10월의 하늘’이라는 과학강연 기부 행사를 기획해 매년 이어왔다. 10월의 하늘은 과학강연을 상대적으로 접하기 힘든 지방의 소도시에서 강연을 진행하는 행사다. 지난해에는 전국 25개 도서관에서 50개 강연을 열었다. 그는 강연 기부에 동참하는 과학자가 매년 늘고 있다며 뿌듯해 했다.
그는 미래사회로 갈수록 과학자들과 대중의 소통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과학기술이 직업과 삶의 양식을 빠르게 바꿔나가는 과정에서 과학기술로부터 소외되는 사람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기술 소외계층이 겪는 어려움과 소외감을 더는 일에 과학자들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