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녹차밭의 곡선미와 부산항의 역동성 공존

‘하늘에서 바라본’ 금수강산의 파노라마

170분의 1.


세계에서 영토가 가장 넓은 나라인 러시아(1707만km2)에 비하면 면적이 10만km2가 채 안 되는 우리나라(남한)는 ‘자투리 땅’이라고 부를 만하다. 김포공항에서 제주공항까지 비행기로 고작 40분 거리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좁은 한국을 떠나 탁 트인 풍경과 다양한 볼거리를 찾아 외국으로 떠나는 여행짐을 꾸린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우리강산을 손바닥 눈금 보듯 속속들이 알고 있을까. 이제 더 새로울 것도 없는 그렇고 그런 대상일까. 혹시 우리는 손안에 쥐고 있는 보석을 알아보지 못한 채 저 멀리 타국의 다이아몬드 광산만을 동경하는 게 아닐까.

지구가 자신의 조국이라며 1995년부터 하늘에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을 기록한 프랑스 사진작가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은 1999년 기념비적인 책 ‘하늘에서 본 지구’를 출간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그런 그가 관심을 우리나라로 돌려 한반도의 모습을 찍겠다고 나섰다. 아쉽게도 북한은 불가능했지만 베르트랑은 지난 5년 동안 10여 차례나 한국을 방문해 헬기를 타고 우리강산 구석구석을 누비며 렌즈에 영상을 담았다.

마침내 지난해 11월 그가 찍은 사진 수만 장 가운데 엄선한 160점을 담은 책 ‘하늘에서 본 한국’이 출간됐다. ‘아, 이게 우리강산이었구나!’ 떨리는 손으로 책장을 넘기며 수만 년 전 이 땅에 정착한 우리조상들이 수렵을 하고 농사를 지으며 이제 7000만 명까지 불어나게 한 젖줄인 우리강산의 진면목에 숙연해질 따름이다. 지구본을 3분의 1바퀴나 돌려야 나오는 프랑스의 파리지앵 얀은 “각자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골라서 사진이 전하는 사연에 가만히 귀기울여보라”고 제안한다.


2009년 새해를 맞아 ‘하늘에서 본 한국’에 담긴 사진 가운데 12장을 선정해 소개한다. 우리강산을 우리보다도 더 깊은 애정으로 바라본 외국인이 찍은 사진을 보면서 겸연쩍지만 이를 계기로 우리 삶의 터전을 새롭게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2004년 ‘하늘에서 본 지구’ 한국 사진전이 계기가 돼 착수한 ‘하늘에서 본 한국’ 프로젝트의 결실로 지난 11월 출간됐다. 1년에 절반을 하늘에서 지내야 하는 살인적인 스케줄 속에서도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은 10여 차례나 한국을 찾아 헬기를 타고 한반도 구석구석을 사진 수만 장에 담았다. 여기서 선정된 사진 160여장 하나하나마다 상세한 설명이 한글과 영어로 써있고 책 앞부분에 실린 이어령 교수의 글이 품격을 더하고 있다.



한국의 하늘을 비행하면서 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밀려왔습니다. 어떤 때는 안타까움이, 다른 때는 경이로움이, 또 다른 때는 애잔함이 카메라 속으로 자연스럽게 흘러왔습니다. 그러면서 아름다운 자연과 열정적인 사람들 그리고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가진 이 작지만 아름다운 나라에 점점 더 매료돼가는 저를 발견하게 됐습니다.


-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 ‘하늘에서 본 한국’ 작가 서문 중에서

 


1.누비이불처럼 겹겹이 이어진 전형적인 농촌 들녘, 전라북도 고창군
미국의 끝없이 펼쳐진 네모반듯한 경작지와 비교해보면 거대한 누비이불처럼 보이는 우리의 논밭은 경쟁력을 논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찾는 한 이 땅에서 재배되는 우리 농산물은 끝까지 살아남을 것이다.


2. 한국의 ‘나폴리’ 앞바다에 펼쳐진 해조류 양식장, 경상남도 통영시
한려해상국립공원 동쪽에 있는 청정 항구 도시 통영은 충무공 이순신이 시조를 읊던 한산도와 그를 기리는 충렬사가 있다. 통영은 수산업이 발달해 전국 굴 생산량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3. DMZ의 얼굴 “이렇게 긴 인공적인 경계선은 보지 못했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휴전선을 기준으로 남북 양측이 2km씩 뒤로 물러나 생긴 폭 4km, 길이 248km의 완충지대 DMZ(비무장 지대)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지역으로 50년 넘게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아 생태의 보고가 됐다.

 


우리강산을 젖줄이라 불러야 하는 이유
오늘날 먹을거리의 태반이 외국에서 수입된다지만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도 차창으로 논과 밭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런 땅과 농민들이 있기에 우리 주식인 밥과 김치의 주재료인 쌀과 배추, 무 그리고 감자, 고구마, 양파 같은 식재료와 사과, 배, 귤, 수박, 참외 같은 과일은 여전히 우리 농산물이 다수다. 이렇게 다양한 농산물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질까. 얀의 렌즈는 논과 밭이 펼쳐진 광대한 평야를 담는가 하면 때로는 시골집 앞마당에 옹기종기 꾸며져 있는 텃밭의 정겨움을 포착하기도 한다.

이뿐이랴. 사시사철 싱싱한 해산물이 우리 식탁에 오를 수 있게 하는 데 힘을 보태고 있는 연안양식장의 풍경 또한 가슴을 시리게 한다. 남해안 아름다운 한려해상국립공원에 끝없이 펼쳐진 하얀 부표의 도열(堵列)은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언제까지나 충실하겠다는 우리 바다의 의지를 보는 듯하다. 자연을 이용할 대상으로만 바라봤던 우리의 차가운 마음에 이제는 온기를 불어넣어야 하지 않을까.

 


정신적 지주는 무너졌는가
지난해 2월 10일 밤 불붙기 시작해 다음날 새벽 회색 연기를 내뿜으며 주저앉은 숭례문의 처참한 광경이 지금도 눈앞에 생생하다. ‘아니 지금이 21세긴데 저런 불 하나 제대로 못 끄나?’하는 분노도 잠시, 날이 새며 드러난 꺼멓게 탄 채 뒹굴고 있는 목재를 바라보자 ‘다시는 볼 수 없다’는 허탈감이 밀려왔다. 지난 12월 10일 강원도 삼척시 준경묘에 있는 금강소나무를 벌채하면서 본격적인 복원에 들어갔지만 그날의 광경을 지켜본 사람들이 받은 외상(trauma)은 좀처럼 아물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화재가 나기 3개월 전에 얀이 찍었다는 숭례문을 중심에 둔 서울시내 풍경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한다. 거대한 성냥갑들이 서로 자리를 다투며 몸을 세워 빽빽이 들어차 있지만 조그마한 숭례문 주위에는 감히 들어가지 못한 채 머뭇거리고 있는 모습이란. 600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작은 거인은 그러나 개미보다 작은(사진으로는) 한 사람의 객기로 만신창이가 됐다.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로 손꼽히는 우리나라는 한술 더 떠 인구 대부분이 대도시에 몰려 움직일 때마다 글자그대로 서로 ‘어깨를 맞부딪치며’ 살아가고 있다. 도시의 풍경을 담은 얀의 사진은 이런 초고밀도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 짜증을 내기보다는 훈훈한 미소를 나누기를 바란다고 속삭이고 있다.

1. ‘밀착’과 ‘하늘 높이’로 상징되는 서울시의 두 주거 형태, 서울특별시 성북구
인구 1000만 명의 서울은 인구밀도도 세계적인 수준이다. 따라서 집들은 널찍한 마당을 기대하기 어렵고 서로 다닥다닥 붙어 있다. 재개발된 곳은 대부분 20층이 넘는 아파트들이 들어서 수평으로는 여유가 생긴 대신 사람들 대다수가 땅에서 떨어진 공간에 거주하고 있다.

2. 도심 한가운데 남아 있는 전통 한옥 마을, 서울특별시 종로구
최첨단 고층빌딩이 즐비한 서울이지만 경복궁과 창덕궁을 연결하는 산줄기 남쪽에는 한옥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서울의 큰 길인 종로의 윗동네라서 ‘북촌’(北村)이라고 불린 이곳은 한국을 찾는 많은 외국인에게도 서울 최고의 관광 명소로 꼽힌다.

3. 수도권과 경기도의 쓰레기를 매립하는 세계 최대의 김포 쓰레기 매립장, 경기도 김포시
2100만 명이 거주하는 수도권 지역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31년 이상 매립할 목적으로 1992년 해안 간척지를 이용해 조성했다. 이곳의 총면적은 2100만㎡로 여의도 면적의 7배이며, 매일 2만 3000t의 쓰레기가 매립되고 있다.

숭례문이 거기 남아 있었다. 얀이 찍은 숭례문을 보면 눈물이 난다. 그것이 불타 없어졌기 때문이 아니다. 그 600년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겨줬기 때문이 아니다. 자동차 물결 사이에 외로운 섬처럼 남아 있던 숭례문도 고공의 카메라 시점에 잡히면 갑자기 어깨를 펴고 거인처럼 일어선다. 거드름을 피우던 문명의 모든 것들이 납작하게 엎드리게 되는 까닭이다.
- 이어령,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인간의 눈은 아름답다’ 중에서

천의 얼굴을 한 서울, 서울특별시 중구
600년 고도(古都) 서울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조선 건국 당시 인구 10만 명의 계획도시로 설계된 서울(한양)은 4대문과 4소문이 나 있는 17km의 도성으로 둘러싸인 지역이었다. 한양의 남쪽 관문 숭례문은 팽창한 서울 한가운데 우뚝 서 있었지만
지난해 초 화마로 복원을 기다리고 있다. 화재 3개월 전 모습.

 


수출 4000억 달러의 힘!
지난해 하반기 미국발 금융위기로 출발한 세계 경제침체는 우리나라에도 직격탄을 날렸다. 이런 와중에도 2008년 우리나라는 수출 4000억 달러를 돌파하며 세계 11위의 무역대국으로 우뚝 섰다. 한국 경제를 이끌고 있는 수출의 효자품목으로는 반도체, 휴대전화 같은 전자·IT 제품과 함께 자동차, 조선을 꼽을 수 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철강 분야도 빼놓을 수 없다. 도대체 이런 생산물들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질까.

단일 제철소로는 세계 최대 규모라는 광양제철소 야적장에는 세계 곳곳에서 들여온 철광석과 코크스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러나 하늘을 가르는 카메라 렌즈에는 팔레트에 짜놓은 유화물감처럼 보인다. 붓으로 물감을 섞어가며 새로운 색을 만들어내듯이 대형 포크레인이 배합해 만들어낸 철강 제품은 우리나라가 조선 수출 세계 1위, 자동차 수출 세계 5위로 올라서는데 밑거름이 됐다. 수출 한국의 1번지라는 부산항에서 선적을 기다리는 수많은 컨테이너들과 대형 컨테이너선에 이들을 옮겨 싣는 초대형 크레인의 위용은 수출 4000억 달러가 그냥 이뤄진 것이 아님을 실감케 한다. 컨테이너항의 역동성을 완벽하게 포착한 한 장의 사진이 경기 침체로 움츠러든 사람들에게 힘내라는 격려의 목소리를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이 장관을 한 번 보세요. 멋지지 않습니까?”
강석기 기자 sukki@donga.com

1. 수출 한국의 1번지 부산항, 부산광역시 남구
산과 섬으로 둘러싸여 물결이 잔잔하고 조수간만의 차가 적은 천혜의 항구 부산항은 1906년 처음으로 부두를 만들기 시작했다. 사진 속의 감만 컨테이너 터미널은 1997년 완공됐다. 현재 부산항은 169척의 선박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 26.8km의 부두 시설로 연간 9100만t을 처리할 수 있는 하역 능력을 갖추고 있다.

2. 전 세계의 원료를 화가처럼 섞고 있는 크레인들, 전라남도 광양시
단일 제철소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포스코 광양제철소는 매년 1500만t의 철강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이곳에서 쓰는 철광석과 코크스는 호주와 브라질에서 전량 수입한다. 원료를 섞고 있는 거대한 포크레인들이 팔레트 위의 작은 붓처럼 보인다.

3. 세계 최대의 조선소, 울산광역시 동구
세계 최첨단 선박의 15%를 생산하는 최대 규모의 조선소다. 1973년 창립돼 1985년 건조량 기준 세계 1위가 된 이래 줄곧 선두를 고수하고 있다. 창업자 고(故) 정주영 회장이 500원짜리 지폐의 거북선을 보여주며 영국에서 차관을 얻어 선박을 수주했다는 전설적인 일화는 유명하다.

4. 부산항 인근의 한 야적장에 적치된 윤활유통들, 부산광역시 남구
세계 메이저 석유사로 윤활유 부문 세계 1위인 로얄더치쉘그룹의 한국 내 합작법인 한국쉘의 윤활유 저장소다. 연간 260만t의 윤활유를 한국에서 제조해 100여 나라에 수출하고 있다.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은 1946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한 때 영화배우를 하기도 했다. 아프리카 케냐에서 사자를 연구하며 사진을 찍다가 사진에 매료됐고 1983년 사진집 ‘사자’를 펴내 주목받았다. 생계를 위해 열기구 관광 업체를 운영하다 ‘하늘에서 본 지구’의 아름다움에 눈떴다. 1995년 시작한 대장정은 1999년 ‘하늘에서 본 지구’라는 책으로 결실을 맺었다. 30개 언어로 번역돼 350만 부가 판매되는 기록을 세우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2004년 시작한 ‘하늘에서 본 한국’ 프로젝트로 우리나라에 남다른 애정을 느낀다고.

2009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 ‘하늘에서 본 한국’ 기자

🎓️ 진로 추천

  • 미술·디자인
  • 국어국문·한국학
  • 문화인류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