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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환|'발사체 독립'의 꿈, 대한민국에 희망을 주다

2019 과학계 파워피플

 

'발사체 독립'의 꿈, 대한민국에 희망을 주다

_고정환(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

 

2018년 11월 28일은 대한민국 발사체 개발사에 한 획을 그은 날이었다. 한국이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첫 우주발사체인 ‘누리호’의 시험발사체가 성공적으로 날아오르면서, 우리 발사체로 우리 위성을 발사하는 ‘우주 독립’의 희망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전 국민의 가슴을 뜨겁게 달군 발사 성공의 주역, 고정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을 만났다.

 

“많은 분들이 전남 고흥까지 일부러 찾아와주시고, 많은 관심을 가져 주셔서 영광스럽습니다. 시험발사가 사업의 끝은 아니니까,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뿐입니다.”
꽃샘추위가 매섭던 3월 11일, 대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만난 고정환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의 목소리는 들뜬 기색 없이 침착했다. 시험발사체 발사 성공 직후에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웃음기 쏙 뺀 얼굴로 차분하게 결과를 설명하던 그다웠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리더십


지난해 11월 28일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팀은 누리호의 1단과 2단에 들어가는 75t(톤) 액체엔진의 성능을 검증하는 시험발사체를 성공적으로 발사했다. 누리호는 600~800㎞ 지구 저궤도에 1.5t급 실용위성을 쏘아 올릴 수 있는 3단형 발사체로, 75t 액체엔진은 발사체의 심장에 해당한다. 
이날 75t 액체엔진을 단 시험발사체는 151초간 엔진을 연소해 당초 목표인 140초를 가뿐히 넘겼다. 2013년 쏘아올린 나로호의 1단 엔진을 러시아 기술자들에게 의존했다는 한계를 극복한 것이다. 
“올해부터는 더 많은 일들이 남아 있습니다. 시험발사체에 들어간 엔진은 누리호의 2단 엔진에 해당되는데요. 1단과 3단을 유사하게 개발해서 연소시험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당장 다음주부터 3단 엔진에 추진제를 충전하고 배출하는 시험이 예정돼 있습니다. 내년에는 1단 엔진, 내후년에는 새로 만든 발사대의 성능을 검증해야 합니다.”
고 본부장은 2021년 누리호 최종 발사까지 남은 일정들을 숨 가쁘게 꼽았다. 언뜻 듣기에도 쉽지 않은 일들이었다. 흔히 발사체 엔진을 제작하고 조립하는 것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시험 규모가 커질수록 일의 난이도는 높아진다. 문제가 생길 경우 원인 파악이 어렵고, 시험이 잘못되면 일정이 1년 이상 지연된다. 
“시험을 고(Go) 할지 취소할지, 발사 당일까지도 계속해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발사체를 개발하는 우리 기술진 250명을 대표해 결정을 잘 내리는 것이 저의 가장 중요한 임무죠. 제 비결은 기술진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겁니다.” 
실제로 2017년 12월로 앞당겨졌던 시험발사체 발사예정일을 2018년으로 10개월 연기한 것은 엔진과 연료·산화제 탱크를 개발하는 기술진들의 의견을 존중해 내린 판단이었다. 실제 발사는 연료를 엔진에 넣는 가압장치 문제로 한 달이 더 지난 11월에 이뤄졌다. 일정을 미루는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좋은 판단은 성공으로 이어졌다. 

 

“이공계 위기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발사체 개발은 항공우주 분야 연구 중에서도 3D(difficult(어려운), dangerous(위험한), dirty(더러운)) 연구로 손꼽힌다. 무거운 부품들을 나르고 조립해야 하고, 연소 시험 현장에는 항상 시커먼 검댕이 날아다닌다. 엔진이 연소하는 굉음에 끊임없이 노출되는 것은 덤이다. 
“그래도 한 번 해보면 멈출 수 없는 매력이 있습니다. 발사 장면을 직접 본 적이 있으신가요? 먼저 진동이 옵니다. 그 다음에 ‘꽝’하는 엔진 소음이 들리고, 그 순간 이미 발사체가 솟아 올라가고 있어요. 보면 엄청난 희열이 느껴집니다. 힘든 것은 싹 잊고 다음에 또 해봐야하지 하는 생각이 든다니까요.”
고 본부장은 만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인터뷰가 시작된 지 40분 만에 그가 처음으로 보인 즐거운 표정이었다. 그는 “누리호를 개발하는 데 일조했다는 즐거움을 평생 안고 살아갈 것”이라며 “오랜 기간 하나씩 배우고 알아내 여기까지 온 우리 스스로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이공계 연구가 힘들다며 기피하는 분위기도 있지만 그럼에도 관심과 끈기를 갖고 꾸준히 연구에 임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며 “소소하지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일이 과학이고 공학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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