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학술지, 경제, 중국··· 글로벌 파워를 뿜어내다
_이상엽 (KAIST 생명화학공학과 특훈교수)
환경 분야 노벨상인 ‘에니상’, 화학공학 분야 권위상인 ‘댄쿼츠 기념강연상’, 산업생명공학 분야에서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조지 워싱턴 카버상’. 이것들은 이상엽 KAIST 생명화학공학과 특훈교수가 지난해 한 해 동안에만 받은 국제상(賞)들이다. 전 세계 시상식을 휩쓰는 파워의 비결은 뭘까.
3월 11일, 대전 KAIST 이상엽 생명화학공학과 특훈교수의 연구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테이블 위, 흑인 남성의 청동 흉상이었다. 땅콩 농사를 장려해 목화 재배를 멈추고, 노예 해방의 기틀을 마련한 미국의 농학자 조지 워싱턴 카버를 조각한 상패였다. 테이블 뒤로 보이는 선반에도 상패들이 빼곡했다.
“어서 오세요. 테이블이 조금 복잡하죠?”
자신감 있는 목소리와 눈빛,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는 이 교수의 모습에서 에너지가 느껴졌다.
국제학술지 편집장 맡은 이유
“미국 출판사 와일리에서 펴낸 책들입니다. 3권부터 9권까지 제가 편집했죠. 합성생물학을 다룬 8권은 크리스티나 스몰케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에게 세부 편집을 맡겼습니다.”
양귀비 성분을 이용하지 않고 효모를 이용해 마약성 진통제 성분을 생산해낸 합성생물학 분야의 ‘셀럽’이자, ‘네이처’가 선정한 2015년 올해의 과학자 중 한 명인 스몰케 박사의 이름을 자연스럽게 언급하는 그는 역시 글로벌 ‘핵인싸’다웠다. 이 교수는 현재 국제학술지 ‘메타볼릭 엔지니어링(Metabolic Engineering)’과 ‘바이오테크놀로지 저널(Biotechnology Journal)’의 편집장도 맡고 있다. 부편집장을 맡아 실무 역할을 하고 있는 국제학술지는 7개도 넘는다.
“국제학술지 편집진을 맡은 가장 큰 이유는 한국 과학자의 불이익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상대적으로 영어가 완벽하지 않다보니 동료평가(피어리뷰) 점수가 애매한 경우 게재를 거절당하는 일이 많았거든요.”
편집진이 된 뒤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이 2시간밖에 되지 않는 날도 있지만, 적어도 그가 편집에 관여하고 있는 국제학술지에서는 한국 과학자들을 위한 목소리를 낼 수 있기에 그는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과학자 400명으로부터 ‘파워피플’로 지지를 받은 이유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논문은 기본, 커뮤니케이션 능력 키워야
이 교수는 미생물을 활용해 인간에게 유용한 화학물질을 생산하는 ‘시스템 대사공학’ 연구를 창안한 석학이다.
지난해 9월에는 유전자를 개량한 대장균으로 혈액에서 산소를 운반하거나 세포 호흡에 사용되는 헴철(heme iron)을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했고, 올해 1월에는 미생물로부터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경로를 총정리한 바이오 기반 화학물질 합성지도를 완성해 발표하며 연구를 선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으로 그의 글로벌한 영향력을 모두 설명하긴 어렵다. 2016년부터 2년간 전세계 오피니언 리더들이 참석하는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글로벌미래위원회 중 생명공학위원회의 초대 공동의장을 맡았고, 지난해 제2대 공동의장으로 재선임됐다. ‘미국국립과학원(NAS)’과 ‘미국공학한림원(NAE)’의 외국회원이기도 하다. 그와 같은 자격을 가진 과학자는 전 세계에서 단 13명뿐이다(2018년 2월 기준).
이 교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비결로 꼽았다. 좋은 문제를 찾아서 좋은 논문을 쓰는 것은 기본이고, 그것을 국제 학회 등에서 잘 알리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발표를 통해 좋은 인상을 남겨야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오며, 그를 통해 국제적인 신뢰를 쌓아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커뮤니케이션 영역을 중국으로까지 넓혔다. 중국의 과학 정책을 결정하는 중국과학원과 우한대 등 7개 기관 및 대학에서 명예교수로 재직하며 중국 연구진들과도 협업하고 있다. 이 교수는 “좋은 연구를 통해 과학기술이 인류와 지구 환경 보호에 도움이 된다는 걸 더 많이 보여주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