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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목6] 아이스하키, 선수 위치 실시간 분석 ‘ 언더독의 반란’ 꿈꾼다

“금메달이 목표입니다.”


백지선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감독은 1월 10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열린 미디어데이에서 당당히 포부를 밝혔다. 한국 남자 대표팀은 현재 세계랭킹 21위로 객관적인 전력에서 약체로 꼽히는 이른 바 ‘언더독’이지만, 지난 4년간 지옥훈련을 견디며 실력이 급상승했다.

 

최근에는 세계랭킹 1위인 캐나다 대표팀과의 대결에서 앞서다가 아쉽게 역전패를 할 만큼 분위기는 좋다. 여자 대표팀도 2017년 4월 세계선수권 4부리그에서 4연승을 거두며 우승을 차지해 3부리그로 승격되는 등 실력을 다져왔다.

 

올해 1월에는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세계 어느 나라 대표팀도 보유하지 않은 첨단 장비가 도입됐다. 바로 선수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는 ‘정밀측위시스템’이다.

 

세계 최초 선수 위치 실시간 분석


아이스하키는 60분 동안 상대방 골문에 퍽을 넣어 점수를 더 많이 얻는 팀이 이기는 경기다. 경기장에 들어갈 수 있는 선수는 팀당 6명이지만, 교체 선수까지 총 22명이 경기에 나갈 수 있다. 축구와 다르게 교체돼 나온 선수도 다시 들어갈 수 있다.

 

보통 한 명씩 교체하기보다는 골리(골키퍼)를 제외한 5명으로 짜인 라인(조)을 바꾼다. 몸싸움에 강한 라인을 넣어 상대팀 공격수들을 지치게 만들다가도, 어느 순간 날쌔고 슛에 능한 라인을 투입해 골을 노리는 등 전술이 중요하다. 그만큼 벤치에서 이뤄지는 감독과 코치들의 두뇌 싸움이 치열한 종목이다.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그간 경기 장면을 촬영해 선수들의 움직임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훈련에 반영해 왔지만, 수작업으로 일일이 영상을 편집하는 방식이어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 분석할 수 있는 요소도 제한적이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대표팀 코치진이 선수들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최적의 전술을 개발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실시간 정밀측위시스템을 2017년 개발했다. 선수들이 움직이는 궤적과 속도, 가속도, 포메이션 변화 등을 한눈에 보면서 실시간으로 분석할 수 있는 세계최초의 시스템이다. 대표팀은 이 시스템이 설치된 진천 선수촌에서 훈련하면서 최적의 전략을 수립했을 것으로 기대된다.

 

헬멧에 UWB 송신기 붙여


우리에게 익숙한 위치 확인 기술은 인공위성을 이용한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이다. 하지만 GPS는 10m에 이르는 큰 오차가 생길 우려가 있고, 결정적으로 실내에서 이용할 수 없다. 따라서 최근에는 와이파이(WiFi)나 블루투스, 무선주파수인식(RFID·전자태그) 기술 등을 이용해 실내 위치파악 기술이 개발돼왔다.

 

박상준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이 이끄는 연구팀이 개발한 정밀 위치 파악 시스템은 영상 촬영과 초광대역(UWB·Ultra Wide Band) 전파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UWB는 10m 안팎의 짧은 거리 내에서 무선랜이나 블루투스보다 대용량의 정보를 빠르게 전송할 수 있는 무선통신기술로, 차세대 홈네트워크 기술로 각광받고 있다.

 

 

연구팀은 아이스링크 위에 설치한 카메라 8대의 좌표를 통일한 뒤, 빙판 위에서 움직이는 선수들을 하나의 평면좌표 위에서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점으로 나타내는 알고리즘을 만들었다. 카메라에 잡힌 선수복의 색깔과 모양 정보로 배경과 선수를 구분한 뒤 움직임을 추적한다. 하지만 영상만으로는 각 선수의 위치를 정밀하게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선수들이 몸싸움을 하면서 부딪칠 때 추적하는 선수가 뒤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데이터가 뒤죽박죽이 되고 전혀 쓸모가 없어진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연구팀은 추가로 UWB 전파 송수신 시스템을 더했다. 각 선수의 헬멧에 UWB 전파 송신기를 붙이고, 여기서 나오는 신호를 6개의 수신기에서 받는다. 이 신호를 영상 분석 알고리즘에 더해서 선수별 위치를 검증하는 방식이다. 영상에서 등번호 1로 표시된 선수가 실제 1번 선수가 맞는지 전파로 수신된 정보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다.

 

이렇게 분석된 정보들은 서버로 전송되고, 코치진은 노트북이나 태블릿PC 등으로 서버에 접속해서 실시간으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연구팀의 이창은 책임연구원은 “초당 약 33회 선수의 위치 정보가 전송되도록 해 선수가 움직이는 동시에 기기에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테스트 결과 선수 혼동은 없었다. 위치 오차도 50cm 이하로 정확도도 매우 높았다. 이 책임연구원은 “선수의 속도, 가속도, 궤적 등에 대한 분석이 실시간 자동으로 이뤄지는 최초의 시스템”이라며 “기간별로 데이터를 누적해서 선수들의 체력과 경기력 변화를 분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밀측위시스템은 대표팀의 경기력 향상에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예컨대 전술 훈련을 할 때는 선수들이 정해진 위치에서 계획된 패턴대로 임무를 수행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 또 라인별 전술 수행 정도를 분석해 최적의 선수 조합을 짤 수도 있다. 선수 개인의 경기력 변화도 모니터링할 수 있다. 경기당 움직인 거리와 동선, 순간 최고 속도, 평균 속도 등을 누적해서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책임연구원은 “대표팀의 기존 영상 분석은 편집된 영상을 다시 보는 수준이었다”며 “대표팀 코치진도 정밀측위시스템 도입 당시 굉장히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에도 대표팀 코치진과 협의해 더 많은 분석이 가능하도록 정밀측위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다.

 

중계 서비스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연구팀은 아이스하키 외에도 크로스컨트리와 바이애슬론, 노르딕복합 등 다양한 동계올림픽 종목에 정밀측위시스템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크로스컨트리는 하계올림픽의 마라톤에 비유할 수 있는 종목으로, 설상에서 스키를 타고 달리면서 기록을 측정한다. 바이애슬론은 크로스컨트리와 사격을 결합한 종목이고, 노르딕복합은 크로스컨트리와 스키점프를 함께 치른다. 선수들이 10km 이상의 장거리를 달리기 때문에 중계방송에서 모든 선수들을 동시에 모니터링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정밀측위시스템을 도입하면 시청자들에게 선수들의 위치와 속도, 선수 사이의 거리 등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해 현장감을 높일 수 있다.

 

축구에도 일종의 정밀 측위 기술이 도입돼 선수별로 뛴 거리와 활동 영역 등을 정량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선수와 팀의 경기력 지표로 활용하고 있지만, 사람이 영상을 보면서 기록하는 방식이어서 효율성과 정확성이 떨어진다. 실시간 정밀 측위 기술이 도입되면 경기력 향상과 중계 서비스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다.

 

미국 미식축구리그(NFL)에서는 이미 2015년부터 선수가 착용하는 어깨 패드에 RFID를 넣어서 경기 중 선수의 위치와 속도, 궤적 등의 정보를 기록해 효과를 보고 있다. 감독과 코치들이 전술을 짜는 데에도 도움이 될 뿐 아니라, TV 화면에 공격하는 팀의 선수와 수비수 사이의 거리, 이동 속도, 패스 궤적 등이 표시돼 시청자에게 볼거리도 제공한다.

 

2016년부터는 훈련에 한해 선수의 심장박동 수와 탈수 여부를 측정할 수 있는 패치도 장착할 수 있게 했다. 선수의 운동량과 건강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어 코치진이 선수들의 체력과 컨디션을 정량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됐다.

 

현재 정밀측위 기술이 가장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는 분야는 경마다. 2006년 캐나다 우드바인 경마장에서 열린 경기 방송에서 실시간 위치를 보여주는 서비스가 처음 도입된 뒤 현재까지 미국, 프랑스, 터키, 한국 등에 도입됐다. 위치 오차는 30cm 이내로 정밀하며, 기록된 정보를 토대로 경주마별 전체 기록과 구간 기록, 속도 등 다양한 정보를 관중에게 서비스한다. 이 책임연구원은 “정밀측위시스템을 발전시켜 조정 종목에 적용할 수 있도록 대한체육회와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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