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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을 향해 4년을 달려온 선수들을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기술은, 금지 약물을 철저히 가려내는
도핑 테스트 기술이다. 특히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도핑 스캔들’을 일으킨 러시아 선수들이
최근 대거 출전 금지를 당하면서, 평창 동계올림픽은 역대 가장 엄격한 도핑 검사를 예고하고 있다.
첨단 장비로 강화된 평창 올림픽의 도핑 테스트 방법을 살펴봤다.

 

 

2017년 12월 6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국가적으로 광범위한 도핑을 조작한 러시아의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을 금지시켰다. 러시아는 ‘공작부인(Duchess)’이라는 스테로이드 칵테일을 출전 선수들에게 먹였다. 칵테일에는 과거 동독 선수들이 복용한 것으로 알려진 강력한 도핑 물질인 경구 튜리나볼, 동화작용제인 옥산드롤론과 메타스테론 등 세 가지 아나볼릭스테로이드 물질이 포함됐다.

 

대부분 체내에서 빠르게 분해되는 약물이다. 러시아는 이것으로도 모자라 약물을 복용한 선수의 소변 샘플을 바꿔치기하기도 했다. 이 같은 사태가 평창에서 반복되지는 않을까.

 

1.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도핑컨트롤센터(DCC) 연구진이 선수들에게 채취한 소변 시료를 분석하고 있다. DCC는 연간 6000개의 시료를 처리하고 있다.
2. 금지약물을 복용했을 경우 채취한 소변 시료에는 미량의 대사체가 길게는 2~3개월까지 남는다. 이것을 정밀한 크로마토그래피-질량분석기로 검출해낸다.
3. 분석 시료의 약 15%는 혈액이다. 각 선수의 적혈구, 헤모글로빈 수 변화를 지속적으로 관찰하면 도핑 여부를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메달리스트 전원 도핑 테스트


“평창 동계올림픽은 보안을 한층 강화했습니다. 선수들에게서 채취한 시료가 어떤 사람에게 언제 어디서 전달됐는지까지 모두 기록됩니다.”

 

권오승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도핑컨트롤센터(DCC) 센터장은 지난해 12월 DCC 내부를 언론에 공개한 세미나에서 이 같은 우려에 자신 있게 답했다. 권 센터장은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육상 남자 100m에서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한 벤 존슨의 스테로이드 복용을 잡아냈던 인물이다. 그는 “최신 장비를 활용해 시료에서 목표 물질을 추출하는 감도를 50~1000배 늘렸다”며 “2월 1일부터 올림픽 선수를 대상으로 검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세계반도핑기구(WADA)가 선수들에게 금지하는 약물은 400가지에 이른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같은 전통적인(?) 약물뿐만 아니라, 최근 도핑 디자이너들이 즐겨 쓰는 성장호르몬, 적혈구생성촉진인자(EPO) 등 단백질(바이오시밀러) 약물, 약물 복용 사실을 숨기기 위한 이뇨제와 은폐제도 모두 포함된다.

 

DCC는 선수들의 금지 약물 복용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소변과 혈액 샘플을 채취한다. ‘샤프롱’이라고 하는 자원봉사자 700명이 경기 직후 개별 선수에게 검사용 시료(A시료)와 검증용 시료(B시료) 등 두 개의 시료를 받는다. 메달리스트는 전원이, 일반 선수들은 10% 가량이 무작위로 대상이 된다. 분석 시료는 4000여 개쯤 될 것으로 예상된다.

 

채취한 시료는 서울 홍릉에 있는 DCC로 옮겨져 분석에 들어간다. A시료를 스크리닝한 뒤 양성이 나오면 선수와 관계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B시료를 다시 한 번 검사한다. B시료는 영하 20도 상태에서 10년 동안 보관하기 때문에 평창 동계올림픽 때 운 좋게 도핑 기준을 피했더라도 추후에 재검사를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선수들의 도핑 여부를 검사할 수 있는 공인된 연구실은 전 세계에 28곳뿐이다. 이 자격을 유지하려면 매년 세계반도핑기구로부터 공인을 받아야 하는데,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도핑 사태 이후 공인 기준이 매우 까다로워졌다. 미국, 프랑스 같은 선진국도 자격박탈 처분을 받았다가 회복됐을 정도다. 1984년 설립된 DCC는 평창 동계올림픽의 공식 도핑랩으로 활동하기 위해 1월 말 또 한 번의 공인을 받는다.

 

극미량 대사체로 정확도 높였다


공인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한 제1 조건은 검사의 정확성이다. 보통은 스포츠 선수들의 생체 시료(소변 약 85%, 혈액 15%)를 24시간 내 분석할 수 있지만, 최근에는 48시간, 72시간씩 걸리는 복잡한 검사가 늘고 있다. 극미량의 약물을 지속적으로 투여하거나, 단백질 약물 같은 생물학적 약제를 쓰는 식으로 도핑 기술이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DCC는 이를 잡아내기 위해 미량으로 몸에 남는 대사체에 주목하고 있다. 손정현 DCC 선임연구원은 “감기약을 먹으면 소변이 노랗게 보이는데, 이는 약물의 대사체 때문”이라며 “과거에는 도핑 약물을 직접 검출하는 데 주력했지만, 최근에는 소변에 섞여 나온 약물의 대사체를 통해 신체 변화를 간접적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량의 대사체는 도핑 약물이 사라진 뒤에도 길게는 2~3개월 동안 몸속에 남는다. 권 센터장은 “인삼과 같은 건강기능식품 역시 생리적인 대사체를 변화시킬 수 있다”며 선수들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대사체는 금지약물 400가지 각각에서 2~3가지씩 나온다. 수백 종의 미량 물질을 동시에 분석할 수 있는 첨단 분석 장비가 필요한 셈이다. 이를 위해 DCC는 ‘액체크로마토그래피-질량분석기(LC-MS)’ 17대, ‘가스크로마토그래피-질량분석기(GC-MS)’ 14대 등 최신식 분석 장비를 갖췄다.

 

한편 대사체로 잡아낼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마린보이’ 박태환 선수도 유혹에 빠졌던 테스토스테론이 대표적이다. 테스토스테론은 체내에서도 분비되기 때문에 그 양만으로 외인성과 내인성을 구분하기 어렵다. DCC 연구팀은 방사성 동위원소 분석기기를 이용해 탄소의 방사성 동위원소 비율을 분석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식물에서 대량으로 추출한 테스토스테론과 체내에서 생성된 테스토스테론에서 C-12(분자량이 12인 탄소), C-13, C-14의 비율이 서로 다르다는 원리를 이용했다.

 

 

그밖에 DCC 연구팀은 인간 융모성 생식선 자극 호르몬(HCG), 황체형성 호르몬(LH) 등의 금지약물을 항원-항체 반응을 이용해 찾아내는 방법도 개발했다. 도핑 약물을 항원으로 인식하는 항체에 자성 물질을 달아, 복잡한 시료 전처리 과정 없이 간단히 약물을 분리해내는 방법이다. 이 기술로 DCC는 소변 1mL에 50pg(피코그램·1pg는 1조분의 1g)보다 적게 들어있는 인슐린 및 유사물질을 검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 같은 도핑 테스트에 성공한 것은 전 세계 28개 도핑랩 중 다섯 곳에 불과하다.

 

쫓고 쫓기는 대결…적혈구, DNA까지 등장


최근에는 혈액을 이용하는 도핑도 다양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타인의 혈액을 수혈해서 체력을 높이는 도핑 방법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이는 자동 혈구분석기로 적혈구 종류를 분석하면 금세 적발할 수 있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적혈구는 총 100여 가지인데, 사람마다 이 중 2~3가지의 적혈구만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권 센터장은 “선수들의 적혈구, 망상적혈구세포, 헤모글로빈 등 10가지 혈액지표를 모니터링해서 연속적으로 변화량을 감지하는 선수생체여권(ABP) 제도를 도입해 도핑 약물 여부를 판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신종 도핑과 도핑 추적 기술의 경쟁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번 평창 올림픽 기간에만 약 500~600개 가량의 적혈구생성촉진인자(EPO) 시료가 분석될 예정이다. EPO는 혈액 속 산소 운반 능력을 키워 운동 능력을 향상시키는 도핑이다. 지구력을 요하는 종목에 분야를 가리지 않고 쓰인다. EPO 분석은 여러 개의 항체를 이용하는데, 시료 하나를 분석하는 데 3일씩 걸린다.

 

DCC는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을 위해 ‘유전자 도핑’을 테스트하는 기술도 준비해왔다. 유전자 도핑은 유전자 교정 기술인 ‘크리스퍼’를 이용해 근육량이나 순발력, 지구력 등을 결정하는 유전자를 편집하는 기술이다. 기존의 금지 약물이 세포 수용체에 작용해 약효를 나타냈던 것에 반해 유전자 도핑은 유전자에 직접 작용해 약물의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권 센터장은 “EPO와 관련된 유전자 도핑을 적발하는 기술을 준비했지만 유전자 도핑이 실현될 가능성이 낮아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적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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