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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목5] 컬링, ‘ 빙판 위의 체스’ 돕는 얼음 물리학

“얼음의 마찰계수가 온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참고할 만한 물리학적 모델이 없었습니다.”

 

1월 3일 한국스포츠개발원에서 만난 이상철 책임연구위원은 “얼음의 온도와 마찰력 사이의 관계가 지금껏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가 컬링 대표팀을 돕기 위해 나섰을 때 처음 마주한 장애물이었다.

 

얼음, 브러시, 패드 삼박자 맞아야


‘빙판 위의 체스’로도 불리는 컬링은 둥글고 납작한 돌덩어리인 스톤을 얼음 위에서 미끄러지게 만들어 원형 표적(하우스) 안에 집어넣는 방식이다. 스톤을 표적 중앙에 더 가까이 붙인 팀이 점수를 얻는다. 스톤을 원하는 방향으로 보내기 위해서 빗자루 모양의 브러시로 얼음바닥(컬링 시트)을 빠르게 닦아주는 게 중요하다.

 

컬링 선수들은 한국스포츠개발원 연구팀에 얼음을 다루는 법과 관련해 두 가지 어려움을 호소했다. 첫 번째는 매번 달라지는 얼음의 상태에 효과적으로 적응하는 방법을 찾는 일이다. 경기장의 얼음 상태에 따라서 같은 힘과 속도로 스톤을 밀어도 미끄러져나가는 거리와 회전하기 시작하는 지점(브레이킹 포인트) 등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소 연습할 때 얼음 상태에 따라 스톤을 던지는 힘과 속도를 어떻게 조절할지 익히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기존에는 그저 선수들의 감에 의존해 훈련하는 식이었다. 특히 장애인 컬링 경기에서는 스톤을 밀기만 할 뿐 컬링시트를 닦아주지 않기 때문에 미는 힘과 속도가 더 중요하다.

 

또 다른 문제는 스톤이 움직일 길을 닦는 최적의 ‘패드’를 선택하는 것이다. 스톤을 던진 뒤에는 브러시로 얼음을 닦으며 이동 경로를 만드는데, 이 때 브러시에서 얼음을 직접 닦아내는 부위를 패드라고 한다. 패드는 국제컬링연맹에서 공인한 제품이 다양하다. 그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해야 하는데, 신뢰할 만한 실험 결과가 없었다.

 

과학으로 ‘브레이킹 포인트’ 찾는다


연구팀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지원을 받아 레이저로 거리와 속도를 측정할 수 있는 휴대형 장비를 개발했다. 레이저를 쏜 뒤 컬링 스톤에 부딪혀 되돌아온 신호를 받아서 거리를 측정하고, 스톤이 지나가는 동안 속도를 계산한다. 여기에 선수가 스톤의 속도와 거리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스마트 글라스도 더했다.

 

 

스톤을 던지는 선수는 한쪽 손으로 스톤을 잡고, 다른 손은 브러시를 잡아야 하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자신이 던진 스톤의 속도와 거리 변화를 파악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상용화된 스마트 글라스 제품에 레이저 측정기가 측정한 정보를 보여 주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탑재했다. 측정된 정보는 무선으로 선수의 스마트 글라스에 전송되고, 동시에 감독도 태블릿 PC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장치는 얼음 위에서 스톤이 휘어지기 시작하는 브레이킹 포인트를 파악하는 데 특히 유용하다. 레이저 측정기 세 개를 스톤이 지나가는 길목에 나란히 놓고 스톤을 밀면 레이저 측정기로부터 스톤까지의 거리와 스톤이 움직이는 속도가 실시간으로 측정된다. 만약 스톤이 일직선으로 미끄러진다면 레이저 측정기와 스톤 사이의 간격이 일정하겠지만, 스톤이 회전해서 경로가 휘어지면 측정 거리가 달라진다.

 

이 원리를 이용해 레이저 측정기 사이의 간격을 좁히면서 측정하면 특정한 힘과 속도로 스톤을 던졌을 때 최적의 브레이킹 포인트를 찾아낼 수 있다. 이 책임연구위원은 “대표팀 선수들이 브레이킹 포인트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좋아했다”고 말했다.

 

세계 최강 캐나다 대표팀의 패드

 

컬링, 썰매, 스케이트처럼 빙상 종목에서는 얼음의 마찰력이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 책임연구위원은 “봅슬레이에서는 한때 썰매에 장착할 스케이트 날을 뜨겁게 달군 팀이 국제대회에서 우승한 적이 있다”며 “이후 썰매 날의 온도 규정이 새로 만들어질 만큼 얼음의 온도와 마찰계수는 경기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얼음의 온도가 상승하면 마찰계수가 작아지고 그에 따라 마찰력도 줄어든다는 경향성이 학계에서 공통적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온도에 따라 얼음의 마찰계수가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달랐다. 또 얼음의 온도 변화가 직접적으로 마찰계수를 변화시키는 요인인지, 아니면 얼음의 온도 변화가 얼음 표면 공기의 습도에 영향을 미쳐서 마찰계수가 변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컬링을 비롯해 스케이트, 썰매 종목에서 활용할 수 있는 얼음 연구 시설을 경기도 용인에 있는 스포츠용품시험소 내에 구축했다. 이 시설은 공기의 움직임을 억제하고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아이스 챔버’다. 얼음을 제외한 변수들을 고정시킨 상태에서 실험할 수 있기 때문에 얼음의 온도와 마찰력의 상관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연구팀은 2017년 아이스 챔버를 설치한 뒤 컬링 패드를 시험했다. 이를 위해 얼음 표면에서부터 5mm, 15mm, 25mm, 35mm, 그리고 45mm 깊이마다 3개씩 총 15개의 온도계를 넣었다. 그런 뒤 국제 공인된 다섯 종류의 패드에 대해서 각각 동일한 압력과 속도로 문지르는 실험을 반복했다.

 

실험 결과 연구팀은 동일한 조건에서 얼음 표면의 온도를 가장 많이 변화시키는 패드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 패드는 얼음 표면의 온도가 영하 6도일 때 약 5초 동안 문지르자 얼음 표면 온도를 영하 1도가량 상승시켰다. 공교롭게도 이 패드는 컬링 세계랭킹 1, 2위를 다투는 캐나다 대표팀이 사용하는 패드였다. 다행히 한국 대표팀도 캐나다 대표팀이 사용하는 패드를 눈여겨보고 동일한 제품을 사용하고 있었다.

 

연구팀은 앞으로 계속 출시되는 컬링 패드에 대한 실험 결과를 축적할 계획이다. 또 얼음의 온도와 마찰계수 사이의 관계를 연구해 컬링을 비롯해 다양한 동계 스포츠 종목의 경기력 향상을 도울 계획이다. 이 책임연구위원은 “루지 썰매에 장착하는 스케이트 날 각도를 조절해서 직선구간을 달릴 때 마찰계수가 어떻게 변하는지도 연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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