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잉’ 에어샤워를 마치고 방 안으로 들어서자 거대한 ‘골드바’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높이 4.6m, 부품 10만 개에 사용한 전선만 72kg이라는 정지궤도위성 ‘천리안 2A호’였다. 방진복과 방진모를 착용한 연구자들은 12월 5일 발사를 앞둔 천리안 2A호를 남미 프랑스령 기아나 쿠루기지까지 이송하는 준비로 분주했다. 천리안 2A호를 개발한 주역들을 만나 위성에 적용된 첨단 기술과 개발 히스토리를 들었다.
국내 기술로 설계, 조립, 시험 성공
10월 2일 대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만난 최재동 정지궤도복합위성사업단장은 “천리안 2A호를 활용하면 앞으로 일기예보의 정확도가 크게 향상될 것”이라며 “화산폭발이나 태풍 같은 재난에 대비해 한반도의 기상 상태를 더 자세히 감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천리안 2A호는 2010년 발사해 운용 중인 통신해양기상위성 ‘천리안 1호’를 대체할 쌍둥이 위성 2기(2A, 2B) 중 하나다. 적도 상공 3만6000km, 동경 128.2도에 정지한 채 한반도의 기상을 24시간 관측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이를 위해서는 일단 위성을 상공 3만6000km까지 올려야 하고(일반 저궤도 위성은 200~2000km 상공에 떠 있다), 위성이 지구의 자전 속도와 같은 속도를 계속 유지하며 날도록 해야 한다. 연료 무게만 2t(톤)에 달한다.
8년 전 발사한 천리안 1호는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 아스트리움(현재의 에어버스)과 공동으로 개발했다. 말이 공동개발이지, 서러움이 많았다. 단적인 예로 국내 연구진이 2년 동안 프랑스 아스트리움에 파견을 가 있는 동안, 아스트리움은 회사 밖에 컨테이너를 두고 국내 연구진들에게 임시 사무실로 쓰게 했다. 기술 노출을 꺼려서다.
당시 프랑스에 가 있었던, 천리안 2A호의 조립과 시험을 총괄한 김형완 정지궤도복합위성사업단 선임연구원은 “눈으로만 배웠던 하드웨어를 실제로 만드는 것이 어려웠다”며 “위성을 조립하는 데 필요한 치구(거치도구)들이나 위성을 운송하는 컨테이너 등을 만드는 과정에도 시행착오가 많았다”고 회상했다.
그럼에도 한국 연구팀은 2011년 7월부터 천리안 2A호 개발 사업에 착수, 7년 뒤 마침내 정지궤도위성을 국내 기술로 설계, 조립, 시험하는 데 성공했다. 기상관측탑재체는 미국의 위성기업 해리스의 것을 사용했지만, 그 외 위성의 핵심인 본체와 데이터 처리 소프트웨어(SW), 관측제어기술, 지상관제시스템 등은 모두 국내 연구진이 개발했다. 이처럼 정지궤도위성 기술을 가진 나라는 미국, 유럽, 일본, 인도, 중국, 러시아, 이스라엘 그리고 한국 등 전 세계 8개 나라뿐이다.
천리안 2A호는 예비조립부터 총조립을 완료하는 데만 장장 3년이 걸렸다. 조립 후에도 각종 시험이 뒤따랐다. 인공위성이 우주에 올라갔을 때 극심한 온도 변화나 진공 상태를 잘 견딜지 테스트하는 열진공 시험, 발사체에 실려 날아가는 동안 발생하는 진동을 견딜 수 있는지 확인하는 진동 시험, 발사체에서 분리될 때 충격에 대비하는 충격분리 시험, 전자파에도 고장이 없는지 확인하는 전자파환경 시험 등이 진행됐다.
최 단장은 “열진공 시험은 연구원 50명이 33일 동안 3교대를 서가며 24시간 진행하는 시험인데, 중간에 문제가 생겨서 시험을 멈추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 적도 있다”며 “진동 시험 때는 연료가 폭발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특수 소방차가 매번 출동하는 등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들이 많다”고 말했다.
4배 더 밝아진 눈, 6분이면 전지구 관측·촬영
지난한 시험을 수행한 가장 큰 이유는 천리안 2A호에 복잡한 고난도 장비를 적용하기 때문이다. 천리안 2A호의 사양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현존하는 기상위성 중 성능이 가장 뛰어난 미국해양대기청(NOAA)의 ‘GOES-17’과 일본의 ‘히마와리-9’와 동일한 기상관측탑재체를 쓰고 있다.
천리안 2A호는 천리안 1호보다 해상도가 4배 높다. 지표면 위에 500m 간격으로 놓인 두 물체를 구분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관측할 수 있는 채널수도 16개로 천리안 1호(5개)에 비해 3배 이상 늘었다. 16개 채널에서 관측된 정보들을 조합하면 태풍, 집중호우, 폭설, 해빙, 안개, 황사, 화산재 등 52가지나 되는 기상 정보를 산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1.2마이크로미터(μm·1μm는 100만분의 1m) 채널과 12.3μm 채널의 데이터를 조합해 황사 여부를 파악하는 식이다.
최 단장은 “천리안 1호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채널이 한 개라 흑백으로 촬영했지만, 2A호는 ‘RGB(적, 녹, 청)’ 가시채널을 모두 갖고 있어 컬러로 촬영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컬러 영상은 흑백 영상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가령 구름과 화재 연기, 황사, 화산재 등을 색으로 구분할 수 있고, 지표상의 식생 정보를 더 정확하게 보여준다.
천리안 2A호는 관측 횟수도 6배가량 늘었다. 전지구를 관측하고 촬영하는 데 드는 시간이 천리안 1호 의 27분에서 6분으로 대폭 단축됐고, 관측정보를 전송하는 속도가 초당 6.2Mb(메가비트)에서 115Mb로 18배 빨라졌다.
최 단장은 “사실상 실시간 관측이 가능한 셈”이라고 말했다. 만약 한반도 주변을 관측한다고 하면 위성이 우주에서 촬영한 데이터를 지상으로 전송하고, 지상에서 이것을 보기 쉬운 영상으로 가공한 뒤 다시 위성으로 올려보내고, 위성이 기상청 등 사용자에게 배포하기까지 총 2~3분밖에 안 걸린다. 천리안 1호는 같은 작업에 15분이 걸렸다. 이는 변칙적인 태풍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관측해서 어떤 지역에 호우 피해가 집중되는지 정확한 경보를 내릴 수 있다는 뜻이다.
관측한 영상을 보정하는 기술 등을 업그레이드 한 효과이기도 했다. 기존 천리안 1호는 관측한 영상을 기하학적으로 보정할 때 호주와 같은 큰 대륙의 경계를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다 보니 구름이 많이 끼는 날에는 대륙의 경계가 가려져 보정하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천리안 2A호는 보정 기준을 지구 날씨와는 무관한 지구 주변의 별로 바꿨다.
천리안 2A호는 통신 장애를 유발하는 고에너지 태양 폭풍, 지구 자기장 변화 등 우주기상을 24시간 관측할 수 있는 탑재체도 갖췄다. 이중 우주 공간에서 날아오는 전기에너지를 띤 입자가 어떤 방향으로 얼마나 오는지 알아내는 입자 검출기는 경희대와 공동으로 개발했다. 기상관측탑재체가 지구쪽으로 향하고 있다면, 우주기상관측탑재체는 반대편 우주쪽을 향하게 된다.
쌍둥이 동생 천리안 2B호도 출전 준비 중
이날 천리안 2A호를 만난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위성시험동 테스트룸 10호 한 켠에서는 2A호의 쌍둥이 동생 2B호의 조립도 한창이었다. 2019년 말 발사 예정인 천리안 2B호 역시 만만치 않은 ‘스펙’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천리안 2B호에는 바다를 관측하는 해양탑재체와 이산화탄소, 오존, 이산화황, 포름알데히드, 질소산화물 등 유해물질과 미세먼지를 실시간으로 관측할 수 있는 환경탑재체(GEMS)가 실린다.
두 탑재체는 기상관측탑재체와 작동 원리, 검출 대상, 대역폭 등이 완전히 다르다. 해양탑재체는 13가지 가시광선, 적외선 채널을 이용해 노출 시간을 길게 두고 바다를 촬영한다. 그리고 이 데이터를 합성해 바다의 색, 온도 등을 관측한다. 해상도가 천리안 1호보다 4배가량 높아 적조, 냉수대, 어장 환경 등을 세밀하게 관측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환경탑재체는 관측 지역에서 나오는 빛을 1000개 채널로 잘게 쪼개, 각각이 대기와 어떤 물질이 상호작용한 결과인지 분석한다. 대기 오염물질을 7km 간격으로 관측할 수 있다.
양군호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정지궤도복합위성사업단 책임연구원은 “환경 관측은 기존 천리안 1호에서는 없던 새로운 기능”이라며 “바다 또는 대기를 통해 넘어오는 오염물질을 추적하기 용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는 지상에서만 오염물질을 수집하고 분석해 오염물질의 기원을 가리는 데 한계가 있다.
12월 발사···2019년부터 일기예보에 활용
천리안 2A호는 10월 19일 인천국제공항을 출발, 캐나다를 경유해 남미 프랑스령 기아나 쿠루기지에 무사히 도착했다. 무진동 차량과 전용 수송기 안토노프(AN-124)로 이송하는 데 꼬박 3박4일이 걸렸다. 총조립을 완료한 상태이기 때문에 외부 충격을 최소화하고, 먼지를 차단하며,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데 만전을 기했다.
천리안 2A호는 이곳에서 인도의 통신위성인 ‘GSAT-11’과 함께 프랑스 ‘아리안 5ECA’ 로켓에 실려 발사된다. 현지 상황에 따라 미뤄질 수도 있지만, 현재까지는 12월 5일 발사될 가능성이 높다.
김 선임연구원은 “천리안 2A호가 14m 높이의 아리안 5ECA 로켓 꼭대기에 장착되는 모습을 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며 “위성이 발사체와 기계적, 전기적으로 잘 결합됐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발사장에서 추가 시험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아리안 5ECA가 천리안 2A호를 지구 저궤도에 무사히 올려놓으면 천리안 2A호는 약 20일에 걸쳐 날아가 상공 3만6000km 정지궤도에 안착하게 된다. 그리고 6개월 간 시험운영을 거쳐 정상 서비스를 시작한다.
양 책임연구원은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일기예보를 위해 위성 데이터를 쓸 수밖에 없다”며 “천리안 2A호의 방대한 데이터를 수치예보 모델에 입력하면 더 정확한 일기예보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 단장은 “정지궤도위성을 조립하고 시험하는 과정에서 독자적인 기술을 축적하게 됐다”며 “천리안 2A호, 2B호가 한국의 위성 산업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