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는 하나의 유기체와 같다. 모든 요소가 절묘하게 잘 맞고 또 잘 어우러져야 힘을 낸다. 기본 골격을 유지하고 중요한 장기의 기능은 그대로 두지만 전체적인 조화를 흩뜨리지 않는 범위 안에서 과학기술은 자동차를 한 단계 진보시킨다.
지난 3월 5일 스위스에서 열린 ‘2008 제네바모터쇼’에는 950개 브랜드가 참석해 세계 최초 공개차량을 50종 이상 선보이며 이런 과학기술의 발전상을 보여줬다.
하이브리드차도 빠르다 H for Hybrid
BMW는 기존의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한 단계 개선한 콘셉트카 ‘이피션트다이내믹스’(Efficient Dynamics)를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하얀색 외양은 전혀 화려하지 않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구석구석이 놀랍기만 하다.
일단 자동차의 심장인 엔진을 보자. 기존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전기모터 1개와 가솔린엔진 1개를 가동시키는 구조였다면 이피션트다이내믹스는 소형 고성능 모터 2개와 고정 기어식 트랜스미션을 활용하는 ‘액티브 하이브리드’ 구조를 채택했다. 실제로 전시장에서 같은 힘으로 1개의 모터와 2개의 소형 모터를 돌려봤더니 2개의 소형 모터를 돌리는 쪽이 힘이 훨씬 덜 들었다. 모터를 2개로 나눠 효율을 높인 것이다.
이 방식을 이용하면 대형차도 얼마든지 하이브리드로 만들 수 있다. 기존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엔진에서 생성되는 파워 대부분이 전기에너지를 만드는 데 사용됐다. 이 때문에 전력부하가 높은 큰 힘이 필요한 대형차의 경우 하이브리드로 만들기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이피션트다이내믹스처럼 큰 모터를 작은 모터 2개로 나누고 여기에 고정 기어식 트랜스미션을 얹는 것만으로도 출력을 키우고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를 막을 수 있다.
태양열 패널(솔라 루프)을 차의 지붕에 얹은 것도 재밌다. 10m2 크기의 작은 패널이 태양열을 받아 차를 예열시킬 때 필요한 전력을 최대 1kW까지 공급한다. 이런 방식으로 이피션트다이내믹스는 디젤차로는 최초로 리터당 100마력 이상의 성능을 발휘한다.
페라리와 각종 자동차업체의 디자인을 전담한 이탈디자인의 ‘콰란타’(Quaranta)는 40년 전의 아이디어를 현실로 옮겼다.
콰란타의 외양은 분명 슈퍼카다. 낮은 차체에 엄청난 스피드를 낼 듯 공격적인 디자인이다. 하지만 엔진은 하이브리드 시스템이다. 최소 400마력 이상의 출력이 필요한 슈퍼카를 하이브리드로 구현하기 위해 콰란타는 태양열을 최대한 이용하고 공기저항을 최소화했다. 양산차로 이어질지는 의문이지만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
오픈카 타고 물속 달린다 U for Uniqueness
모터쇼 전부터 화제가 된 린스피드의 ‘스쿠바’(sQuba)는 물속 10m에서 달릴 수 있는 ‘잠수함 승용차’다. 지상에서 3개의 전기모터로 움직이다가 일단 물속에 들어가면 2개의 프로펠러로 움직인다. 스쿠바는 잠수함과 자동차를 결합시키면서도 굳이 ‘닫힌’ 구조를 고집하지 않았다는 점이 참신하다. 달리 말해 이 차는 뚜껑을 열고 달리는 오픈카다. 린스피드는 급작스러운 위험상황이 발생하면 곧바로 탑승자가 산소통만 갖고 튀어나갈 수 있도록 이런 오픈카 방식을 택했다. 이 때문에 수중에서는 운전자가 산소마스크를 쓴 채 운전을 해야 한다.
스쿠바는 어떻게 물속에서도 달릴 수 있을까. 물속에서는 물의 압력 때문에 차를 조종하기 어렵다. 사고로 차가 물에 빠지면 차의 기계장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큰 위험을 겪는다. 하지만 스쿠바는 가벼우면서도 압력에 강한 탄소나노튜브로 만든 회전식 방출구를 통해 차를 ‘숨쉬게’ 하면서 차안에 내장된 압축 산소통으로 탑승자에게 산소를 공급한다.
기본 동력은 리튬이온전지로 제공하는데, 부식을 최대한 막는 외부소재를 사용해 폭발 위험을 줄인 한편 물속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으면서 최고의 출력을 낸다. 차체 외부는 진주와 다이아몬드 플레이트로 만들어 부식을 방지하는 동시에 외부 압력을 견딜 수 있도록 했다. 지멘스의 최첨단 계기판과 컨트롤 장치를 달아 물속에서 탑승자가 계기판을 잘 인식해 차를 제어하기 쉽다.
린스피드의 또 다른 차 ‘엑사시스’(eXasis)는 어떤가. 엑사시스는 세계 최고의 플라스틱 메이커 중 하나인 바이엘 머티리얼 사이언스와 린스피드의 합작품이다. 일반 플라스틱 대신 가볍고 부드러운 특수 플라스틱만으로 골격을 만들고 내부가 들여다보이도록 했다. 차체의 무게를 최대한 줄여 엔진이 낼 수 있는 최고 성능을 발휘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 때문에 바이오에탄올을 연료로 사용하지만 불과 750cc 배기량으로 최대 150마력까지 출력을 낼 수 있다.
와이퍼 없어도 깨끗하다 M for Minimalism
거추장스러운 요소들을 빼버린 미니멀리즘은 이번 모터쇼에서 또 하나의 트렌드였다. 하지만 빼버림으로써 기능이 없어진다면 의미가 없다. 겉으로는 최소로 줄이고 깔끔하게 정리한 듯 보이지만 실제 기능적인 측면에서는 오히려 한단계 진보했다.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산업디자이너 레오나르도 피오라반티는 자동차의 와이퍼를 없앤 콘셉트카 ‘히드라’를 선보였다. 그러나 와이퍼 본연의 기능인 빗물과 먼지 제거는 충실히 수행해낸다. 비밀은 바로 나노기술. 특수센서가 탑재된 강화유리는 물이나 먼지를 인식하는 순간 이들을 양쪽 구석으로 밀어낸다. 와이퍼가 없어지면 차체는 가벼워지고 공기의 저항을 줄일 수 있는데다가 시야 확보에도 도움이 되니 ‘일석삼조’다.
닛산의 ‘피보(Pivo)2’는 크기를 확 줄였고 엔진룸을 따로 만들지 않았다. 엔진룸이 없지만 엔진이 기능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전기차인 피보2는 바퀴에 3D 디스크 모터와 리튬이온전지가 붙어있다. 즉 바퀴로부터 전기 동력을 얻는 새로운 개념이다. 귀여운 장난감 같은 이 차의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모양새의 비밀은 바퀴에 숨어있는 셈이다. 커다랗고 복잡한 스티어링휠(핸들) 대신 패널에 로봇시스템을 붙여 내부 디자인을 깔끔하게 만들었다. 피보2는 2015년쯤 상용화될 전망이다.
한국차, 친환경 콘셉트카 시장에 출사표 던져
제네바모터쇼에서 국산차들은 환경차를 대거 출품하며 달라진 한국차의 자세를 보여줬다. 사실 그간 국산차들은 외국 업체를 따라가는 ‘반쪽짜리’ 친환경 전략 이상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모터쇼에서는 전체 부스의 콘셉트를 친환경으로 잡고 신규 모델을 대거 선보여 그 어느 때보다 외국인들의 관심을 받았다. 친환경 과학기술로 브랜드의 가치를 높인 셈이다.
현대자동차가 가장 자랑스럽게 내놓은 ‘아이모드’(i-Mode)는 윈드실드 글라스와 사이드 및 루프글라스를 바이엘의 친환경 신소재인 폴리카보네이트로 만들었다. 폴리카보네이트는 기존 강화유리에 비해 150배 이상의 충격에도 견딜 수 있고, 단열효과가 뛰어나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유독가스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현대차는 친환경 기술을 ‘i10’과 ‘i30’에 적용한 친환경 콘셉트카 ‘아이블루’(i-Blue) 시리즈도 선보였다. 아이블루 시리즈는 새로운 엔진을 적용하고 연소 능력을 개선하는 등 친환경 기술을 적용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감소시킨 점이 특징이다. i10 블루의 경우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km당 95g으로 기존 양산형 모델(114g/km)과 비교해 17%가 줄었다.
기아자동차는 지난해 유럽에 출시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씨드’(cee'd)의 하이브리드 모델인 ‘에코 씨드’(eco_cee'd)를 선보였다. 에코 씨드는 기아차 최초로 ‘스톱 앤 고’(Stop & Go) 시스템을 적용해 기존 모델보다 연비는 17% 높이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8.4% 낮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