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켈레톤과 봅슬레이 대표팀 선수들이 달리기 훈련을 하는 모습. 연구팀은 선수들이 부상 위험 없이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허벅지 앞뒤 부위의 근육량을 분석해 100대 70 비율을 유지하도록 조언했다.
2. 연구팀은 유전자형에 따른 맞춤형 훈련을 할 수 있도록 선수들의 구강상피세포와 타액에서 유전자를 추출해 분석했다.
썰매와 스키는 2010년 캐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이후에도 세계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혜성처럼 등장한 선수가 있으니, 엎드려서 타는 썰매 종목인 스켈레톤의 윤성빈 선수다.
윤성빈 선수는 2012년 18세의 나이로 스켈레톤을 시작해 1년 만에 세계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2014년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는 16위를 기록하며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썰매 종목 사상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점점 기량이 상승한 그는 2016년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으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했고, 2017년에는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한국 썰매 종목 사상 최초의 메달 획득이 유력하게 점쳐지고 있다.
DNA 분석해 맞춤형 훈련법 제안
윤성빈 선수의 기량이 급상승한 데에는 과학적인 훈련법의 도움도 있다. 민석기 한국스포츠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이 이끄는 연구팀은 2015년부터 스켈레톤과 봅슬레이 대표팀을 대상으로 유전자 특성을 분석한 뒤 선수별로 맞춤형 체력 훈련 프로그램을 짰다.
연구팀이 유전자에 주목한 이유는 엘리트 선수들의 운동 능력과 관련된 유전자 연구가 그간 신뢰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많이 축적됐기 때문이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유전자 맞춤형 훈련이 도입돼 실제로 효과를 내고 있다.
연구팀은 운동 능력과 관련된 수십 가지 유전자 중에서 특히 ‘ACTN3’이라는 유전자에 주목했다. 사람의 근육 섬유는 수축 속도가 빨라 순발력 운동에 필요한 속근과, 수축 속도는 느리지만 지구력이 좋은 지근으로 이뤄진다. ACTN3 유전자는 속근과 지근 구성 비율에 영향을 미친다.
이 유전자의 단일염기다형성(SNP)이 어떤 유형인지에 따라서 속근이 잘 발달하는 유형(속근형)과 지근이 잘 발달하는 유형(지근형), 그리고 중간 성격을 띠는 유형(중간형)으로 나뉜다.
※ 단일염기다형성(SNP·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
인간의 유전체를 구성하는 염기서열은 약 99.9% 일치하지만 0.1% 정도가 개인마다 다른데, 이를 유전변이형이라고 한다. 유전변이형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변이를 SNP라고 부른다. SNP에 의해 외모와 체질, 질병 발생 위험, 약효 등에 차이가 생긴다.
폭발적인 출발 속도가 중요한 스켈레톤과 봅슬레이에서는 속근을 기르는 훈련이 중요하다. 하지만 같은 훈련을 했을 때 지근형 선수는 속근형 선수에 비해 큰 피로를 느끼면서 근육 생성도 잘 되지 않는다. 연구팀은 대표팀 선수들의 유전자형을 파악해서 유전자형에 적합한 훈련법을 제안했다. 타고난 신체 특성에 맞춰 훈련하면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분석 결과 봅슬레이 2인승 대표선수인 서영우, 원윤종 선수는 속근형 이었고, 윤성빈 선수는 중간형이었다. 연구팀은 속근형인 두 선수에게는 근력 운동을 할 때 자신이 들어올릴 수 있는 최대 무게의 70~90%로 무게를 점차 늘려가며 횟수 제한 없이 반복하게 했다.
반면 윤성빈 선수에게는 기존의 훈련법을 유지하라고 제안했다. 속근형 선수들에게 권한 운동 방식을 지근형이나 중간형 선수에게 적용하면 오히려 몸에 무리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민 선임연구위원은 “중간형은 훈련하기에 따라서 속근과 지근을 특화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는 체질”이라고 말했다.
근육량 균형 맞추고 최적의 피로회복 방법 개발
연구팀은 유전자 검사 외에도 선수별로 근육 발달 상태를 분석해 맞춤형 훈련법을 제시했다. 윤성빈 선수의 경우 양쪽 다리 근육에 균형을 잡아 줄 필요가 있었다. 근육량을 측정해보니 왼쪽 다리의 근육이 오른쪽보다 20%가량 더 발달해 있었기 때문이다.
또 허벅지 앞쪽의 넙다리네갈래근(대퇴사두근)이 100일 때 뒤쪽 햄스트링의 근육량이 70 정도면 가장 높은 경기력을 발휘하면서 동시에 부상의 위험도 줄일 수 있다. 윤성빈 선수의 경우 햄스트링의 근육량이 70에 못 미쳤다. 스켈레톤 선수들은 100m를 11초 초반에 끊고 200kg이 넘는 역기를 들고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만큼 근육량의 비율을 맞출 필요가 있다.
연구팀은 훈련을 마친 뒤 몸에 쌓인 피로를 최소로 줄이는 회복 방법도 찾아냈다. 선수들의 혈액과 침에서 젖산과 아밀레이스 성분을 분석하고, 고강도 훈련을 마친 뒤 각각 다른 방식으로 회복하게 한 뒤 다시 젖산과 아밀레이스의 농도를 측정했다. 두 물질의 농도가 낮을수록 피로 회복이 잘 됐다는 뜻이다.
훈련 뒤 조깅과 스트레칭을 하고, 차가운 물에 들어가고, 근육을 풀어주는 전신 진동 장치를 이용하는 등 세 가지 방식에 대해 조사한 결과 조깅과 스트레칭을 한 뒤 찬물에 들어갔을 때 가장 피로 회복이 빨랐다.
민 선임연구위원은 “처음에는 피로 회복에 큰 신경을 쓰지 않던 선수들이 데이터를 보고 난 뒤부터는 매일 훈련을 마치고 차가운 물이 담긴 검은색 고무 대야에 옹기종기 들어가 앉을 정도로 피로 회복에 공을 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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