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비싼 물질은 뭘까. 보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이아몬드라고 말할 테지만 다이아몬드가 비싼 이유는 원석 자체의 값보다는 세공비가 비싸기 때문이다.
현재 세상에서 가장 비싼 물질은 ‘반물질’(anti-matter)이다. 1995년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수소의 반물질인 ‘반수소’를 처음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을 때 들어간 비용을 계산해보니 반수소 10억분의 1g을 만드는 데 수조 원이 넘었다고 한다. 도대체 반물질이 뭐길래 그렇게 큰돈을 들여 만들고 연구하는 것일까? 여기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주의 구조를 살펴봐야 한다.
우리가 아는 것은 4.6%뿐
현재 우주는 정체를 전혀 알 수 없는 암흑에너지가 72%를, 암흑물질이 23%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원자, 분자 등으로 구성된 보통 물질로 이뤄진 부분은 전체 우주의 4.6%에 불과하다. 암흑에너지의 정체에 관해서는 알려진 사실이 거의 없으며 이에 관한 실험도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나마 암흑물질은 상황이 조금 나아 새로운 입자 몇 개가 암흑물질 후보로 거론되고 있고(초대칭입자도 그 중 하나다) 이를 찾는 실험도 세계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우주의 4.6%마저도 제대로 모른다는 점이다. 초기 우주의 형성과정을 설명하는 빅뱅 이론에 따르면 우주 초기, 물질이 나타나던 시기에는 물질과 반물질의 양이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관측 결과를 보면 우주의 4.6% 대부분이 반물질이 아닌 물질로 이뤄져 있다. 주위를 둘러봐도 모든 물체는 양성자, 중성자, 전자가 결합한 원자로, 원자들이 다시 결합한 분자로 구성된다. 이들의 반입자인 반양성자, 반중성자, 양전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물리학자들은 현재 우주에서 반물질의 양은 물질의 100억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고 추정한다. 우주 초기에 만들어진 반물질들은 전부 어디로 갔을까?
이에 대해 옛 소련의 핵물리학자인 안드레이 사하로프는 1967년 중요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핵무기 개발 연구에서 손을 뗀 뒤 옛 소련의 핵무기 개발과 인권 탄압에 저항하는 반체제 인권운동가로 활동하며 1975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인물로 유명하다.
하지만 물리학자들은 그의 1967년 논문 한 편을 노벨 평화상 못지않은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한다. 그는 이 논문에서 우주 생성 당시 물질과 반물질이 같은 양으로 만들어 졌더라도 몇 가지 조건만 맞으면 점차 반물질이 없어지고 물질만 남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 조건 중 하나가 ‘*CP 대칭성 깨짐’(Charge-Parity violation)이다. 결국 CP 대칭성 깨짐이라는 현상을 이해하는 일은 우리 우주의 4.6%라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CP 대칭성 깨짐은 1964년 실험에서 처음 관측됐으며 곧 가동될 거대강입자가속기(LHC) 실험의 주요 임무 중 하나도 바로 CP 대칭성 깨짐을 증명할 유력한 단서를 찾는 일이다.
LHC 실험에서는 막대한 양의 입자가 생성되고 붕괴된다. 이 과정에서 CP 대칭성 깨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반응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특히 LHCb라는 실험은 CP 대칭성 깨짐 문제를 연구하는 데 가장 유력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예상되는 b쿼크를 집중적으로 찾기 위해 설계된 실험이다. LHC 뒤에 b가 붙은 이유도 ‘바닥’(bottom)을 뜻하는 b쿼크를 연구하기 때문이다.
입자는 무슨 ‘맛’?
한편 CP 대칭성 깨짐과 함께 LHCb 실험의 중요한 주제가 하나 더 있다. 입자의 ‘맛’(flavor)을 찾는 일이다. 사실 ‘맛’이란 단어는 쿼크 이론을 처음 제안한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머레이 겔만 교수와 그의 제자가 더운 어느 날 학교 인근의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가게 앞을 지나다가 아이디어를 얻어 쓰기 시작했다.
현재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에서는 우주의 모든 물질이 6종류(flavor)의 쿼크와 6종류의 경입자로 구성된다고 설명한다. 신기한 사실은 쿼크와 렙톤이 왜 하필 똑같이 6가지 ‘맛’으로 이뤄졌느냐는 점이다. 이 ‘맛’이 일정한 구조를 갖는다는 사실은 알아냈지만 왜 그런지 원인은 전혀 모른다.
물리학자들은 LHCb 실험으로 그 원인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길 기대한다. 마치 멘델레예프가 주기율표에서 원소의 주기성을 발견했지만 주기성이 생기는 이유는 수십 년이 지나 양자역학이 완성되고 원자 구조를 이해한 뒤 설명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LHCb 실험에서 양자역학의 발견 같은 물리학의 혁명적인 발전을 이루는 계기가 마련될지도 모른다.
현재 일본 고에너지가속기연구소(KEK)의 ‘벨’(Belle) 실험에서도 CP 대칭성과 입자의 ‘맛’ 연구가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LHC 실험에서 얻어질 새로운 물리 결과들이 CP 대칭성과 ‘맛’ 문제 해결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가능성에 대비해 성능을 100배가량 개선한 ‘슈퍼벨’(Super-Belle) 실험을 준비 중이다. 이탈리아도 ‘슈퍼 B-팩토리’라는 이름으로 이와 비슷한 실험을 계획 중이다.
우주의 반물질들이 모두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 미스터리가 풀릴 시간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CP 대칭성 깨짐*
CP 대칭성은 주어진 물리계의 입자들을 전부 그들의 반입자로 바꾸고(C) 동시에 그 물리계를 거울 속에 비춰 관측하는 경우(P) 그 물리계의 성질이 전혀 바뀌지 않음을 뜻한다. CP 대칭성 깨짐은 이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뜻. 1964년 미국 브룩헤이븐연구소의 과학자 4명이 처음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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