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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아마추어 천문가 중 천체사진을 가장 많이, 그리고 제일 잘 찍는다고 알려진 사람이 있다. 이렇게 말하면 어느 정도 연륜이 있는 4,50대 장년층을 연상하기 쉽지만 주인공은 20대 청년이다. 럭키금성 안양연구단지내의 금성전선연구소 광시스템실 연구원인 이혁기씨(26)는 천체사진에 관한 한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기 시작한 이씨는 8년여 동안 현재 1만컷이 넘는 천체사진을 갖고 있다. 그동안 소진한 필름 통수는 자그마치 1천여통.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 영하 10℃가 넘는 야외에서 혹한의 겨울밤을 꼬박 새워야 하는 아마추어 천문가들에게 1만컷은 천문학적인 숫자다.


별사진 가장 많이 찍은 이혁기
 

핼리혜성으로 지구촌이 들썩거릴 때(85~86년초), 이씨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핼리의 모습을 찍기 위해 28박29일의 대장정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 결과 국립천문대(현재 천문우주과학 연구소)의 공인을 받아 최초 사진의 기록을 남겼고, 그 이후 핼리의 현란한 자태를 1백60여장의 사진에 기록하는 정열을 과시했다.

"오리온성운 사진만 1천여장을 찍었지만 아직도 맘에 들지 않습니다. 천문잡지에 게재되는 일본 사람들의 사진을 보면 우리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1가구 1TV'나 '1가구 1전화'를 떠들때 일본에서는 '1가구 1망원경'을 얘기할 정도였으니 비교 자체가 무리이긴 하지만, 이씨는 강력한 도전욕구를 가지고 있는 듯했다. 최근에도 일본의 천문잡지인 '월간천문'과 '천문가이드'에 자신이 찍은 천체사진을 보냈다.

아마추어 천문을 그저 '별보고 즐기는' 취미활동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씨의 주장. "우주개발이 활발한 나라일수록 아마추어천문수준은 높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아마추어 천문가들의 기본장비라 할 수 있는 망원경은 제가 직장에서 연구하고 있는 레이저와 비교해 결코 뒤지지 않는 첨단제품입니다. 렌즈의 정밀도는 물론 망원경을 지원하는 모든 시스템도 메카트로닉스기술의 결정체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망원경을 애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 정도로 생각합니다. 이런 과학기술 마인드로는 우주개발은 불가능합니다."


이혁기씨가 찍은 안드로메다은해(M31). 1990년 12월 16일 용인에서 촬영. 오른쪽 사진은 핼리혜성의 모습.
 

이혁기씨는 국민학교 4학년때부터 잡지에 난 망원경사진을 보고 이를 직접 만들어 보려고 문구점이나 안경점을 누비기 시작했고, 친구집에 가서도 망원경 재료가 될만한 것이면 무엇이든지 압수(?)했다. 중학교 2학년 때 몇달 동안 부모님을 졸라 망원경 한대를 구입했지만 중3때 입시(경기도 평택은 고교입시지역)때문에 압수당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망원경을 자작하기 시작했으며, 그결과 고2때는 전국과학전람회에서 '대기층이 천체관측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주제를 갖고 과학기술처장관상을 받았다. 이 상은 이혁기씨가 부모로부터 '별보는 일'이 '별볼일 없는 일'이 아님을 인정받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중3때 집 주변의 미군부대에서 중고카메라(캐논 TX) 한대를 구입해 지금까지도 이 카메라를 갖고 천체사진을 찍고 있는 이혁기씨는 "이 카메라가 국내에서는 별사진을 가장 많이 찍었을 것"이라고 자랑한다. 집이 시골(경기도 송탄)이라 별보는 일이 도시 아이들보다 조금은 유리했지만 아마추어천문가들과 활발히 교류하는데는 오히려 장애가 됐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천체관측 내지 사진촬영을 혼자 나가는 습성이 배어 있다고 한다. 어렸을때 아마추어천문가회에 가입한 인연으로 현재 새로운 통합단체인 아마추어천문학회(KAAS)의 연구간사직을 맡고 있다.

사실 이씨가 직장을 얻게 된 직접적인 계기도 자신의 전공(단국대 화학공학과 졸업)보다는 취미(망원경)가 인연이 됐다. 대학 4학년 때 레이저광학을 연구하는 전자과 교수와 망원경제작과 관련, 인연을 맺었다가 이교수의 추천으로 현재의 직장에서 레이저를 연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직장에서 천문잡지나 망원경 관련 자료를 뒤적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실제로도 상당부분 직업과 취미가 관련이 있다는 설명이다. '취미가 직업인 사람'이라는 주위의 부러움도 산다.

직장일이 눈코뜰새 없이 바쁘긴 하지만 이혁기씨는 한단계 도약을 위해 짬짬이 시간을 내 12.5인치 반사망원경 렌즈도 연마하고 있고, 사진촬영용 망원경도 새로 구입할 예정이다. 일본에서는 아마추어들이 전국에서 동시에 표준쌍안경을 갖고 별관측을 시행해 그 결과에 따라 대기오염 정도를 측정한다는 소리를 들을 때 정말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이혁기씨는 "우리도 하루빨리 그런 수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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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김두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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