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성미자도 미사(mass)를 엽니까? 중성미자들이 가톨릭 신자인지는 미처 몰랐는데요!” 소설 ‘다빈치 코드’(2003년)의 전작(前作)인 ‘천사와 악마’(2000년)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mass’가 질량과 가톨릭 미사라는 뜻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데서 작가가 말장난을 쳤다. 과학적으로 고쳐 쓰면 “중성미자도 질량이 있습니까?”란 말이다.
중성미자에 질량이 있다는 사실은 소설이 나오기 2년 전인 1998년에야 처음으로 밝혀졌다. 대략 10-36kg이다. 다른 기본 입자들 역시 질량이 매우 작다. 전자는 대략 10-32kg 이다. 아직 이들 입자의 질량에서 어떤 규칙성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 누군가 이런 질문을 한다고 하자. “중성미자의 질량은 왜 10-36kg이고, 전자의 질량은 왜 10-32kg이죠?”
힉스 입자 질량은 얼마?
물리학자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힉스’(Higgs)라는 입자가 쥐고 있다고 생각한다. 힉스는 영국의 물리학자 피터 힉스가 1964년 제안해 세상에 소개된 입자로 물질에 질량이 생겨나게 해준다. 이 때문에 힉스는 ‘신의 입자’(God Particle)로 불리기도 한다. 현재 *표준모형(Standard Model)에 따르면 물질은 쿼크 6개와 경입자 6개, 그리고 이들의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입자 4개와 힉스로 구성된다. 이들 중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입자가 힉스다.
힉스 입자는 어떻게 찾아야 할까? 힉스 입자를 찾기 위해서는 우선 힉스 입자를 만들어야 한다. 힉스 입자는 질량이 크기 때문에 질량-에너지 등가원리에 따라 많은 에너지를 작은 공간에 집중시켜야 한다. 마치 열차의 속도가 빠르면 충돌했을 때 크게 찌그러지는 것처럼 입자의 충돌에너지가 클수록 더 무거운 입자가 생겨난다(에너지 보존법칙). 거대강입자가속기(LHC)에서 양성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LHC 이전에도 많은 실험에서 힉스 입자를 찾으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실패를 거듭했다. 하지만 힉스 입자의 질량을 예측하는 성과는 있었다. 예를 들어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2000년 11월까지 가동한 거대 전자-양전자 가속기(LEP2)의 실험 결과에 따르면 힉스 입자의 질량은 114.4GeV/c2보다 크다. 현재 물리학자들은 힉스 입자의 질량이 114.4~190GeV/c2일 것으로 예상한다.
b쿼크냐 Z입자냐
입자의 질량은 힉스 입자가 만들어내는 힉스장과 반응하는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 힉스 입자 역시 질량이 큰 입자와 반응을 잘한다. 때문에 표준모형에 따르면 에너지 보존법칙이 위배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힉스 입자는 가장 무거운 입자와 함께 생성되고 또 무거운 입자로 붕괴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가정을 토대로 LHC에서는 힉스 입자의 질량이 140GeV/c2일 이하일 경우 b쿼크와 그 반입자인 반b쿼크로 붕괴할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이들의 운동량을 계산하면 힉스 입자의 질량을 구할 수 있다.
하지만 b쿼크를 검출기에서 완벽하게 재구성하는 일은 매우 까다롭고 어렵다. 이 때문에 물리학자들은 확률은 적지만 비교적 검출하기 쉽고 에너지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감마선 2개의 붕괴 현상으로 힉스 입자의 질량을 계산할 계획이다.
힉스 입자의 질량이 140GeV/c2 보다 클 때는 주로 2개의 W 또는 Z입자로 붕괴한다. W와 Z입자는 검출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필자 역시 이와 관련해 어떻게 하면 Z입자를 검출하는 최적의 조건을 만들지, 어떻게 검출 효율을 최소한의 오차로 측정할지 연구하고 있다. 길이 45m, 높이 25m인 ATLAS와 길이 22m, 지름 16m인 CMS는 이렇게 붕괴돼 나오는 입자를 잡을 거대한 규모의 검출기다.
힉스 입자가 발견되면 물리학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표준모형에서 단 하나 발견되지 않던 ‘골칫거리’가 해결되는 셈이니 우선은 표준모형이 완성될 것이다. 물론 여기서 끝이 아니다. 힉스 입자가 발견된 그 순간부터 힉스 입자의 성질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된다. 힉스 입자의 질량부터 다른 입자와의 상호작용까지 다양한 연구가 이뤄질 것이다. 표준모형의 힉스 현상에 관한 예측이 잘 들어맞는지는 실험해보기 전까지 아무도 모른다.
최악의 경우 힉스가 발견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예측과는 다른 이상한 형태의 힉스가 발견될 수도 있다. 그때부터는 ‘초끈이론’ 같은 새로운 물리 이론이 시작될 수 있다.
지금 CERN에서는 2000여 명의 과학자들이 1000만 개의 전자신호가 초당 4000만 번 나오는 검출기에서 힉스 입자를 찾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다. 설렘 반 걱정 반으로 하루하루를 보낼 그들에게 힉스 입자를 찾는 ‘기적’이 일어날지 기다려보자.
표준모형*
소립자 세계의 질서를 나타낸 기본 모형.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인 쿼크와 렙톤(경입자) 그리고 이들 사이의 힘을 매개하는 입자로 나타낸다. 힉스 입자는 이 입자들에 질량을 부여한다. 쿼크는 위(u)와 아래(d), 매혹(c)과 야릇한(s), 꼭대기(t)와 바닥(b)의 6개가, 렙톤은 전자(e)와 전자중성미자(νe), 뮤온(μ)과 뮤온중성미자(νμ), 그리고 타우(τ)와 타우중성미자(ντ)의 6개가 있다. 힘을 매개하는 입자는 Z와 W, 광자(γ) 글루온(g) 4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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