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이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가구인 의자. 어딜 가나 놓여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심코 지나치지만 디자이너에게는 예사롭지가 않은 대상이다. 가구이면서도 인체와 밀착돼 있는 의자는 디자이너가 창의성을 발현하는 대상이 됐다. 자신만의 의자를 남긴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많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의 큐레이터 장인기 씨는 “성형합판, 금속파이프, 플라스틱 사출 등 신소재와 신기술이 개발되면 의자 디자인의 혁신도 뒤따랐다”며 “의자 디자인에 당시 사회의 통념 뿐 아니라 디자이너의 철학이 공존함은 물론이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린 ‘갖고 싶은 의자’전에 출품된 작품들 가운데 일부를 소개한다.
No.14
1859년, 너도밤나무
오스트리아 태생의 미하엘 토넷은 오랜 연구 끝에 나무에 증기를 쐬어 구부리는 공법(bent wood)을 개발해 가구 공장 생산의 시대를 열였다. No. 14는 토넷의 모델 가운데 가장 간결하고 널리 보급된 의자다.
체스카
1928년, 철제봉·인조가죽
헝가리 출신의 세계적인 디자이너이자 건축가인 마르셀 브로이어는 자전거를 보고 강철 파이프를 구부려 만든 의자를 착안했다. 현존하는 수많은 의자들의 원형이 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파이미오
1930~1931년, 자작나무
쿠션없이 딱딱한 의자가 오히려 편안하다는 컨셉으로 핀란드의 건축학자이자 가구 디자이너인 알바 알토가 디자인했다. 유연하고 저렴한 합판을 사용했다.
랑디
1938년, 알루미늄
스위스의 디자이너 한스 코레이의 작품으로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을 뚫어 아름다움 뿐 아니라 가벼움과 빗물이 고이지 않는 효과까지 갖고 있다. 유럽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은 작품이다.
LCW
1945년, 성형합판
건축을 전공한 찰스 임스가 만든 성형합판 나무 의자로 현대 가구 디자인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작품이다. 얇은 나무판을 여러 겹 붙이고 눌러서 입체적인 형태를 만들었다.
버드 체어
1950~1952년, 비닐코팅철사
이탈리아 출신의 조각가 해리 베르토이아가 제작한 혁신적인 철사의자로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시각적으로 참신할 뿐 아니라 좌판과 등받이의 곡면이 인체에 맞게 설계돼 있다.
앤트
1952년, 성형합판·철제봉
의자다리는 네 개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린 ‘앤트’는 덴마크의 건축가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얀 야콥슨의 작품이다. 좌판과 등판이 일체형으로 개미(ant)허리처럼 잘록한 허리가 시각적 포인트다. 오늘날 널리 쓰이는 의자의 원형이다.
SE18
1952년, 너도밤나무·자작나무
접이식 의자로 기능성이 돋보이는 이 의자는 에곤 아이어만의 작품이다. 효율적인 공간활용성 때문에 접이식 의자는 이후 큰 인기를 끌었다.
에그
1957~1958년, 폴리우레탄·알루미늄·천
의자에 앉은 사람에게 마치 커다란 달걀속에 들어온 듯한 포근함을 선사하는 이 안락의자는 얀 야콥슨이 디자인했다. 기능과 형태의 완벽한 조화를 추구하는 덴마크 디자인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갖고 싶은 의자’전에서 관람객들의 선택을 가장 많이 받았다.
판톤 체어
1959년, FRP
금형 한 벌에 사출성형으로 뽑아낸 최초의 의자로 건축을 공부한 디자이너인 덴마크의 베르너 판톤의 작품이다. 단일 사출물임에도 적당한 쿠션과 강도를 갖는 완벽한 디자인으로 현재의 기술력으로도 만들기 쉽지 않다.
에어론
1992년, 재생 알루미늄·폴리에스테르·천
의자에 앉아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위해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사무용 의자로 미국의 저명한 의자디자이너 도널드 채드윅의 작품이다. 높낮이 등을 조절할 수 있으며 신소재 그물망을 사용, 단열성과 통기성이 뛰어나다.
루이 20
1992년
파리 출신의 세계적인 디자이너 필립 스탁의 작품으로 우아한 곡선이 인상적이다. 좌판에 굴곡이 들어가 있어 앉았을 때도 굉장히 편안한 이 의자는 심미성과 기능성을 모두 만족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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