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발처럼 응용분야가 많은 계면공학의 원리도 알고보면 간단하다. 비누방울로 시작되는 계면의 정의를 이해하고, 물질이 경계면에서 오묘한 변화를 일으키는 계면활성제의 원리를 살펴보자.
물방울이 부서지는 이유
비누방울이라는 동요에는 "방울 방울 비누방울 동그란 꿈방울. 알록달록 무지개 빛 아이들의 꿈동산"이라는 대목이 있다. 가는 대롱에 비눗물을 묻혀 대기 중으로 불면 비누방울이 만들어진다. 이런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는 어린 시절의 추억일 것이다. 이 비누 방울이 우리의 의식주를 지배하는 제품들의 표면현상을 가장 간결하게 설명한다.
비누방울은 얇은 막으로 둘러싸인 동그란 공모양의 공기방울이다. 이는 물과 비누로 이루어진 얇은 막이다. 이 막은 내부와 바깥 공기가 갖는 압력 차이에 견딜 만큼의 힘을 갖는다. 이를 표면장력(surface tension)이라 한다. 1805년 영과 라플라스는 이 압력 차이와 표면장력 사이에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영-라플라스의 식이 바로 그것이다.
물이 얇은 관을 타고 오르는 모세관 현상, 물 속에서 동그랗게 만들어지는 공기 방울, 그리고 나뭇잎에 이슬이 맺히거나 분수의 물줄기가 물방울로 부서지는 현상은 모두 영-라플라스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모든 물질은 고체 액체 그리고 기체의 세가지 상태가 있는데, 서로 다른 상태가 접촉해 만나는 면을 계면(interface, 기체와 접촉하는 면은 표면)이라고 한다.
깁스는 두 상 사이에서 양쪽의 밀도가 중간 점이 되는 지점을 계면으로 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계면은 물질 내부와는 달리 높은 에너지 상태에 있는데, 이 에너지를 계면 에너지 혹은 계면 장력이라고 부른다.
순수한 물질의 표면장력은 일정한 온도에서 일정한 값을 갖는다. 그러나 대개는 소량의 불순, 특히 계면활성제와 같은 물질이 조금이라도 섞여있다면 그 값은 크게 달라진다. 이러한 성질을 이용해 물질의 기본적 성질에는 큰 변화를 주지 않으면서 표면장력의 값을 바꿀 수 있다.
한 예로 작은 이슬방울이 나뭇잎에서 맺혀있다고 하자. 이때 나뭇잎과 물방울, 그리고 공기가 만나는 접촉면을 잘 관찰하면 장력의 균형에 따라 접촉점에서 물방울이 표면에 일정한 각도를 형성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표면에 멈춰 있는 물방울이 표면과 이루는 각을 접촉각이라 한다. 이 접촉각이 0이면 물방울은 표면에 젖게 되고 반대로 접촉각이 증가하면 물방울은 굴러 내린다. 계면활성제는 바로 이 접촉각에 영향을 주게 되며 물이 표면에 젖을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 계면활성제는 의약품이나 농약, 그리고 첨단산업 소재나, 복합재료의 미세구조 조절에도 응용되고 있다.
소수기와 친수기의 묘기
계면활성 물질은 물과 친화력이 강한 분자단과 상대적으로 친화력이 떨어지는 분자단으로 돼 있다. 물과 친화력이 강한 분자단을 친수기(親水基), 탄화수소와 같이 물과 친화력이 약한 분자단을 소수기(塑水基)라고 한다. 이렇게 소수기와 친수기를 모두 갖고 있는 분자들은 계면활성제, 지질(脂質), 그리고 고분자 공중합체(diblock copolymer) 등이 있다.
이들이 물에 녹으면 분자들 사이에 작용하는 힘과 배열상태에 따라서 미셀, 리포솜 혹은 액정과 같은 초분자 결집체를 만들거나 수면 위에 띠를 형성한다.
미셀은 계면활성제가 용매에 녹아 만들어지는 나노미터(nm, ${10}^{-9}$m) 크기의 작은 구형 또는 그 비슷한 형태의 입자이다. 용액 중에 계면활성제의 농도가 일정량(임계농도, CMC) 이상이 되면 이 분자들 간에 끄는 힘이 작용해 분자들의 집합체인 미셀이 만들어진다. 미셀은 물에 녹지 않는 여러가지 용질을 녹일 수 있기 때문에 제약 및 화장품, 잉크나 페인트, 섬유 가공과 같은 정밀화학 산업에 이용된다.
지질을 물에 녹이면 친수기는 물을, 그리고 소수기는 소수기끼리 서로 끄는 힘이 작용해 세포막의 특성을 갖는 분자 이중층을 구성한다. 이러한 이중층에 적당한 단백질을 삽입해 활성점이 만들어진다. 이를 이용하면 특성있는 인조생체막을 만들 수 있다. 지질의 대표적인 예는 리포솜이다. 리포솜은 병원균을 스스로 찾아가 약물을 투입하는 '미사일' 약이나 화장품을 만드는데 이용된다.
식품제조 등에 널리 활용
우리의 생활 공간은 입자가 분산된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화(乳化, emulsion)는 기름과 물이 혼합될 때 계면활성제를 사용해 안정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유화는 수용액 중에 작은 기름방울이 분산된 준안정 상태로서 시간에 따라 분산 상태가 변화한다. 마요네즈와 같은 식품, 크림 등의 화장품, 윤활유 등의 공업용품은 상당한 기간 동안 유화 상태를 유지하도록 만들어진 제품이다.
거품이나 에어로졸(aerosol)은 기체에 액체나 고체입자가 분산된 상태다. 이는 작은 입자를 만드는 공정이나 함유물이 낮은 원광으로부터 광물을 회수하는데 이용된다. 그밖에 기름으로 인한 화재의 진화에 사용되거나 화장품과 세탁용에도 이용된다. 비스켓, 빵과 같은 식품이나 스티로폼 등은 고체에 기포가 분산돼 있는 경우다.
균일하게 분산된 작은 입자들은 공업적으로 대단히 유용하다. 입자의 표면에 계면활성제 혹은 고분자를 흡착시키면 계면의 성질을 바꿀 수 있고 균일한 분산 상태, 즉 콜로이드를 얻을 수 있다. 공업적으로는 정밀 요업 재료를 가공하거나 테이프나 사진 필름과 같은 박막을 제조하는 원료로 사용된다. 석유 위기가 왔을 때 석탄을 물에 분산시켜 연료로 사용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됐고, 안료가 분산된 페인트 잉크 폴리머 라텍스 입자 등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우유나 프림커피같은 식품도 이러한 분산 제품의 일종이다.
계면현상은 식품이나 일상 생활 공간에서 가장 자주 만나게 되는 자연현상이다. 계면공학은 이러한 계면의 성질을 유용하게 작용하도록 조절하는 기술이다. 생활용품은 물론 첨단산업의 표면가공에도 중요하게 이용되고 있다. 세제나 화장품으로부터 가공식품이나 의약품, 나아가 초미세 전자회로의 설계와 가공에 이르기까지 계면현상이 응용되는 곳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웃사촌 콜로이드와 계면
계면공학의 정식 명칭은 콜로이드 및 계면과학(Colloid and Interface Science)이다. 1850년 경그레이엄(Thomas Graham)이 아교를 대상으로 연구한 것이 시초. 콜로이드는 물질의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크기를 나타내는 개념으로서 수 나노미터(nm)에서 수십마이크론(㎛)의 크기를 말한다.
콜로이드계는 콜로이드 크기의 입자가 다른 상(phase)에 분산돼 있는 비균질계를 말한다. 즉 혈구가 혈장 속에 분산돼 있는 혈액이나 우유는 모두 콜로이드계다,
우리의 생활에 필수적인 요소인 음식 의약품 화장품 종이 페인트 합금 등도 콜로이드계이므로 우리는 콜로이드계와 더불어 태어나고 살아간다고 볼 수 있다. 공기를 오염시키는 스모그, 오염된 수질, 토양도 전형적인 콜로이드계이다.
콜로이드계에서는 상과 상의 경계면, 즉 계면의 역할이 중요하다. 비균질계에서는 입자의 크기가 작아지면 표면적(계면적)이 급격히 증가한다. 반지름이 같은 부피를 가진 입자의 반지름이 0.5cm일 때에는 표면적이 0.126㎠이지만, 입자의 반지름이 5㎛일 때는 126000㎠로 대폭 증가하게 된다.
이와같이 입자가 콜로이드 크기가 되면 표면적이 매우 커진다. 따라서 계면이 현상을 결정하게 된다. 이처럼 계면현상은 콜로이드계에서는 아주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