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여름 날씨가 변하고 있다. 6월 하순이면 어김없이 장마가 찾아와 7월 하순까지 전국에 많은 비를 뿌린 뒤 8월부터 한여름이 시작되는 전형적인 ‘여름 공식’은 이미 옛이야기가 됐다. 최근 몇 년 동안 8월에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게다가 그 양은 7월 장맛비보다도 더 많아 휴가를 떠나는 많은 사람들이 낭패를 봤다.
올해 여름 날씨는 지난해와 또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7월 한 달 동안 전국 곳곳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많은 비가 쏟아졌다. 장마전선이 남북으로 움직이며 좁은 지역에 한꺼번에 많은 비를 토해내 ‘물폭탄’이란 이름까지 붙었다. 이른바 ‘게릴라성 집중호우’다. 이처럼 한반도 여름 날씨가 매년 들쭉날쭉 변하는 이유는 뭘까.
한반도로 귀환한 ‘변종 장마’
“장마가 돌아왔다.”
기상청 관계자들은 지난 7월 한 달간 전국에 쏟아진 많은 비는 동서방향으로 길게 형성된 전형적인 장마전선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한반도에서 6월 하순부터 7월 하순까지 많은 비를 뿌렸던 장마는 최근 몇 년 동안 그 위력을 잃었다. 오히려 장마전선이 사라진 8월에 집중호우가 내리는 일이 잦아지며 ‘마른 장마’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처럼 한반도 여름 날씨가 변하자 지난 6월 기상청은 장마예보를 안 하겠다고 발표했다. 장마기간을 설정하는 일이 오히려 국민에게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기상청은 3~4일 간격으로 더 정확한 강수예보를 하겠다고 밝혔다. 국민들은 여름에 며칠간 연이어 내리는 비는 모두 장마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기상학적으로 장맛비는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내리는 비를 말한다. 장마전선 상에서 내리는 비가 아니라면 장맛비가 아니란 뜻이다.
지난 7월에 내린 비는 오랜만에 찾아온 장맛비였다. 하지만 게릴라성 집중호우로 변한 ‘변종 장마’였다. 한 달 동안 전국 곳곳에는 2~3일에 한 번씩 ‘물폭탄’이라고 불릴 정도의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일반적으로 장마전선은 한 번에 많은 비를 내리면 수분량이 줄어 빗줄기가 약해진다. 또 다시 많은 비를 뿌리려면 남해상으로 물러나 수증기를 머금은 뒤 북상해야 하기 때문에 다소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올해는 짧은 시간에 많은 비를 뿌린 뒤 하루나 이틀 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많은 비를 폭탄처럼 ‘투하하는’ 일을 반복했다.
지난 7월 15일 자정(16일 오전 0시)을 넘어서면서 부산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해 16일 오전 6시부터 오전 11시 사이까지 폭우가 쏟아졌고 기상청은 호우 경보를 발령했다. 특히 오전 8시경에는 부산에서 시간당 강수량으로는 역대 두 번째로 많은 90mm의 비가 쏟아졌다. 지난 7월 7일에도 부산에는 남구 대연동에 368.5mm, 해운대에 343.5mm가 내리며 평균 310mm의 강수량을 기록했다.
부산지역에서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 하루 강수량으로는 1991년 8월 23일에 내린 439mm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양이었다. 전국 대부분의 지역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 6월 20일 장마가 시작된 이후 서울에는 7월 16일 현재까지 630mm가 넘는 비가 내렸고 경기 수원, 양평, 이천에도 600mm가 넘는 강수량을 기록했다.
게다가 불과 20~30km 떨어진 인접 지역 사이의 강수량 차이도 컸다. 지난 7월 2일 서울에는 평균 96.5mm의 비가 내렸는데 강서구는 120mm, 강북구는 7.5mm가 내려 강수량이 16배나 차이 났다. 마치 열대지방의 스콜처럼 비를 뿌리는 국지성 호우를 두고 일부 학자와 언론은 한반도가 아열대기후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과연 한반도에 내리는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아열대기후 때문일까.
게릴라성 호우=아열대 기후?
현재 고등학교에서 쓰는 지리 교과서는 ‘북반구 중위도에 위치한 우리나라는 … 온대기후에 속한다’ 혹은 ‘우리나라는 북반구 중위도 지역에 위치하므로 … 냉·온대기후지역에 속한다’고 설명한다. 그 이전에 출판된 교과서도 우리나라 기후에 대해 비슷한 설명을 한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이 ‘한반도가 아열대화된다’는 뉴스를 접하면 야자수가 무성하게 자라는 이국적 풍경을 떠올려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기후를 구분할 때는 기온이나 강수량 같은 기상요소와 식생분포가 기준이 되는데, 학자마다 구분법이 조금씩 달라 아열대를 정의하는 기준도 차이가 있다. 크루츠버그(N.Creutzburg)는 1년 내내 월평균기온이 6℃를 넘고 월평균기온이 20℃ 이상인 달이 2달 이상일 경우 아열대기후로 본다. 크루츠버그법에 따르면 제주도 서귀포시가 연중 월 평균기온이 6℃를 넘어 아열대기후에 해당한다.
현재 가장 널리 쓰이는 방법인 쾨펜(Koppen) 구분법에 따르면 월평균기온이 20℃ 이상인 달이 4∼11개월일 경우 아열대기후가 된다. 쾨펜의 구분법에 따르면 강릉, 인천, 추풍령, 울릉도를 제외하고 서울과 전주, 제주, 대구, 목포 등은 아열대기후에 속한다.
그러나 이런 구분법에 따르면 지구온난화가 문제되지 않았던 1951~1980년 사이에도 이미 서울과 전주, 제주, 대구 등은 월평균기온이 20℃ 이상인 달이 4개월 이상이 돼 아열대기후에 속했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는 이 지역들이 아열대기후 지역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게다가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내리는가 아닌가’는 아열대기후를 구분하는 기준에 포함되지 않는다. 더욱이 스콜은 아열대지방의 기상현상이 아니라 열대지방에서 일어나는 기상현상의 하나다. 한반도의 아열대화를 정의하는 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뜻이다.
한반도의 날씨는 여러 기단의 영향을 받는다. 그중에는 아열대기단인 북태평양기단도 있지만 영향을 미치는 시기는 그리 길지 않다. 아열대기후지역은 1년 내내 그 지역의 날씨가 아열대기단의 영향을 지배적으로 받는 곳이다. 하지만 한반도는 겨울철에 시베리아고기압의 영향을 받아 기온이 영하 10℃까지 내려갈 뿐 아니라 아열대기후에서 볼 수 없는 눈이 내려 한대기후의 특징도 나타난다.
기상청은 한반도 아열대화에 대해 어떤 입장일까. 기상청 기후예측과 윤원태 과장은 “현재 상황에서 한반도 기후가 아열대기후가 되고 있다고 단정짓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반도의 기온이 오르고 있어 과도기 단계임은 분명하지만 ‘게릴라성 호우=한반도 아열대화’라는 식의 생각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근본 원인은 지구온난화”
최근 한반도에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늘어난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온상승에서 찾을 수 있다. 기단 이동이나 장마, 태풍을 포함한 모든 기상현상은 모두 지구상의 에너지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에너지가 순환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태양빛을 많이 받는 적도지방은 상대적으로 에너지가 넘치고 극지방은 태양빛을 적게 받아 에너지가 부족하다. 그런데 이산화탄소(CO2)같은 온실가스가 증가하며 지구복사에너지 가운데 방출되지 못하고 지구로 반사돼 들어오는 에너지가 증가했고 결국 기상현상이 더 활발해졌다. 그만큼 적도 인근에 자리하는 북태평양고기압이 한반도의 기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지구온난화로 우리나라에서 기온은 얼마나 상승했을까. 국립기상연구소에서 올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 인천, 강릉, 대구, 목포, 부산 등 주요 도시에서 지난 100년 동안 평균기온이 약 1.7℃ 상승했다. 이는 지구 전체 평균 기온상승 값인 0.74±0.03℃와 비교할 때 2배가 넘는다.
윤원태 과장은 “지구온난화가 특정 지역에 어느 정도 영향을 직접 미치는지는 단언하기 어렵지만 한반도의 강수량이 많아지거나 집중호우가 내리며 여름 날씨가 변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지구온난화에 있다”고 말했다.
지난 7월 장마의 경우 북태평양고기압이 남해상에서 발달한 뒤 세력을 확장해 한반도의 동서방향으로 장마전선을 형성했다. 그 뒤 몽골 남쪽에서 연해주 방향으로 상층 저기압이 형성되면서 북서풍을 타고 주기적으로 찬 공기가 남하해 서해 상공에 유입됐다. 이렇게 한반도 상공에 건조한 찬 공기가 자리 잡은 상태에서 따뜻한 북태평양고기압과 만나 한반도의 대기는 불안정한 상태가 됐다.
기상청은 “이런 상황에서 많은 양의 수분을 포함한 남서류가 북태평양고기압 가장자리를 따라 유입되면서 장마전선에 지속적으로 수분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장마전선 사이로 유입된 남서류는 상승하면서 비구름을 만드는데, 이때 생성되는 구름의 규모는 10~20km 정도로 작다. 이미 많은 비를 뿌려 수분량이 부족한 장마전선 곳곳에 소규모의 비구름이 생성되면서 국지성 호우가 쏟아진 것. 게다가 중국 쪽에서 형성된 저기압도 확장하면서 장마전선에 수분을 공급했다.
윤원태 과장은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의 여름철 강수량은 열대 서태평양 해상의 대류활동과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다”며 “최근 엘니뇨가 발달하면서 서태평양 해상에서의 대류 활동이 약화됐고 상대적으로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대류활동이 강화되면서 중국 쪽에서 저기압이 자주 발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상청은 일단 7월 말 북태평양고기압이 북상하면서 장마전선이 소멸한 뒤 8월에는 무더운 날씨가 찾아올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예년과 같이 7월 이후에 또 다른 집중호우가 찾아올지 모른다. 분명한 점은 최근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상승하며 8월의 강수량이 7월보다 많아지는 추세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승호 교수는 건국대 지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기후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6년에서 1989년까지 공군기상대 예보장교를 지냈으며 2006년부터 현재까지 건국대 기후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기후학’ ‘한국의 기후와 문화 산책’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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