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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네개의 팔로 온갖 조화 부린다

도로를 지나가는 수많은 자동차를 본 적이 있다. 오늘날처럼 휘발유로 가는 자동차가 개발된지도 1백여 년이 지나 빠르기나 편리함은 물론이고 디자인에서도 많은 변화를 거듭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유독 변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동차의 타이어색. 색상과 디자인이 다양한 자동차에 보다 잘 어울릴 수 있는 타이어 색이 검은 색으로 일관돼 있다.

하지만 타이어가 검은색일 수밖에 없는 사정은 의외로 당연한 것. 지면을 쉼없이 굴러가야 하는 타이어의 강도와 내마모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고무에 '카본블랙'이라는 검은색의 탄소분말을 20-30% 첨가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등장한 컬러타이어도 일부분만 컬러한 것에 불과하다.
 

타이어가 검은 이유는 고무의 강도와 내마모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카본블랙이라는 검은색의 탄소 분말을 첨가하기 때문이다.


 

화합물의 감초

탄소(carbon)는 석탄을 뜻하는 라틴어인 카르보(carbo)에서 유래한다. 그러니 탄소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석탄을 떠올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석탄은 탄소덩어리의 가장 초보적인 모습에 불과하다. 석탄은 단지 연료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석탄에서는 비닐론과 같은 합성섬유의 원료도 나오고 또 비료나 온갖 귀중한 의약품을 만드는데 유용하게 쓰인다.

공업에서 중요한 또하나의 원료는 원유다. 사람들은 생활의 에너지원인 원유를 떠올리면서도 이 원유가 탄화수소의 혼합물이라는 사실은 잊고있는 듯하다. 원유에는 탄소가 83-87%, 수소가 11-17% 들어있고 나머지는 산소, 질소, 황 등으로 돼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원유들이 많은 탄소를 함유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아주 먼 옛날 동식물과 같은 유기체가 지각 변동이나 자연조건의 변화로 땅속에 묻혀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원유로 변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꽃이나 나무, 동물들, 사람들의 기본 골격을 구성하고 있는 것도 탄소이고, 우리가 입고 다니는 옷도 탄소로 이뤄진 화합물이다. 즉 1371년 문익점이 목화를 심기 시작한 때부터 입었던 무명천, 1935년 나일론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입고 있는 수십 종의 합성섬유가 모두 탄소화합물이다.

또 우리가 사용하는 플라스틱 그릇, 가구, 음식들에도 모두 탄소가 포함돼 있다. 뿐만 아니다. 담배의 필터 부분을 보자. 흡착성이 뛰어난 차콜이라는 까만 알갱이는 담배가 연소될 때 발생하는 유해 기체들을 흡착한다. 또 우리가 먹는 까만 설탕도 탄소를 통과하면 흰 설탕으로 바뀐다. 강이 오염됐다는 소식이 있으면 제일 먼저 출동하는 것이 탄소로 이뤄진 활성탄들이다. 또 배탈이 났을 때 지사제로 쓰이는 약의 주성분은 탄소다.

이밖에도 가볍고 강도 높은 재료를 필요로 하는 스포츠용품에는 거의 탄소가 약방의 감초처럼 끼어있다. 근래에는 우주선의 전지에서부터 각종 부속품을 포함한 몸체까지 탄소가 포함되지 않은 곳이 없다.

사람들은 산소가 없으면 곧 죽을 것처럼 떠든다. 하지만 정작 탄소가 없으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도대체 탄소는 어떤 원소이기에 보이지 않게 이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

 


연필심이 검은 이유

탄소는 지구상에서 13번째로 많은 원소로 원자번호는 6이고 질량수가 10, 11, 12, 13, 14인 5종류가 있다. 모두 전자 6개, 양성자 6개이지만 질량수에 따라 중성자 개수가 다르다. 질량수 12인 것이 보통 존재하는 안정한 동위원소이지만 13인 것도 전체 탄소 원소 중 1.108%의 비율로 존재한다. 그 밖의 것은 불안정하며 극히 미량으로 존재한다.

질량수 14(14C)인 탄소는 강력한 에너지를 가진 우주선( cosmic ray)에 의한 핵반응으로 1년에 약 7.5kg 정도씩 만들어진다. 14C는 약 5천7백년의 반감기를 가지고 있는 방사성 동위원소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1012(1조)개 중의 하나 정도가 14C로 돼 있다. 지구상의 식물은 이런 이산화탄소를 이용한 광합성 작용으로 유기물을 만들기 때문에 유기질 유물에 남아있는 14C의 양을 측정하면 유물이 제작된 연대를 알아낼 수 있다.

탄소는 6개의 전자를 가지고 있는데 2개의 전자는 원자핵에 매어 있고 나머지 4개의 전자가 외각전자로 있다. 이들 외각전자가 어떤 배치를 하느냐에 따라 흑연이 될 수도 있고 다이아몬드가 될 수도 있다. 4개의 전자가 공유결합을 위한 팔을 뻗어 정사면체의 꼭지점에서 다른 탄소와 결합을 하면 전기전도성이 없는 다이아몬드가 된다. 물론 결합력은 강해 경도가 높다.

반면 흑연은 4개의 전자 중 3개는 평면에서 1백20도로 결합할 수 있는 팔을 만들고 나머지 한 개의 전자는 평면에 수직으로 팔을 뻗어 다른 탄소와 결합돼 있다. 동일 평면상에서 결합돼 있는 힘은 매우 강하나 아래위에 겹쳐져 있는 면들간의 결합은 약하다. 따라서 흑연층간의 결합은 파괴되기 쉽고 윤활성이 좋다. 이러한 성질을 이용한 것이 연필심과 같은 것이다.

흑연의 평면에 수직된 방향으로 결합을 이루고 있는 전자는 평면을 따라 쉽게 움직일 수 있어서 흑연은 전기를 잘 통하는 물질이 된다. 이런 전자들은 가시광선 영역의 빛을 모두 흡수하기 때문에 흑연을 비롯한 탄소재료의 대부분이 검은색을 띤다. 반면 다이아몬드는 탄소의 외각전자들이 모두 탄소와 탄소 사이에 묶여있어서 가시광선을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에 투명하게 보이는 것과 비교가 된다.

결합하는 방법에 따라 흑연과 다이아몬드로 그 운명을 달리한 탄소가 근래 들어서는 또다른 모습으로 현대의 과학자들을 흥분시키고 있다. 그들은 다름 아닌 풀러렌과 탄소나노튜브. 이들은 나노테크놀러지의 선두 주자로 초전도체나 집적도가 어마어마한 반도체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그림)탄소골격에 의한 탄소화합물 분류


헤아릴 수 없는 탄소화합물

외각전자가 4개라는 사실은 탄소가 다른 어떤 원소보다 다양한 화합물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나타낸다. 지금까지 알려진 1천만종에 가까운 화합물 가운데 탄소가 다른 원소와 결합해 이뤄진 화합물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 그 다양성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탄소와 결합한 화합물을 탄소화합물 또는 유기화합물이라고 한다.

1807년 스웨덴의 화학자 베르젤리우스는 물질을 유기물과 무기물로 구별했다. 유기물은 무기물과 달리 생물체 중에 있는 생명력과 관계가 있다고 믿었다. 이를 생기론(Vitalism)이라고 한다. 베르젤리우스는 유기화합물은 생물체의 생명력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으로 동식물의 체내에만 존재하고 인공적으로 합성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20여년 뒤인 1828년 그의 제자인 뵐러가 무기물인 시안산암모늄 용액을 가열해서 유기물인 요소를 합성해냈다. 그 후 많은 유기화합물이 생명력과 관계없이 인공적으로 합성됐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세계의 화학 실험실에서는 수십만종의 새로운 유기물(의약품, 합성수지, 합성섬유 등 )이 합성돼 인류 복지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이렇듯 엄청난 수의 탄소화합물이 만들어질 수 있는 중요한 이유는 탄소가 수소, 질소, 산소, 황 등의 비금속 원소와 안정한 공유결합 화합물을 만들기 때문이다. 또 탄소가 다른 원자와 결합할 수 있는 최외각 전자가 4개라는 사실과 적절한 크기(0.077nm)를 갖고 있는 것도 다양한 화합물을 만들 수 있는 중요한 이유다.

탄소와 같이 4개의 외각전자를 가지고 있지만 크기가 0.118nm으로 너무 커서 탄소처럼 온갖 조화를 부리기 어려운 원소가 바로 규소다. 또 탄소화합물은 탄소의 수가 증가할수록 사슬 모양, 가지모양, 고리 모양 등의 다양한 구조를 만들 수도 있다. 만약 과학자들이 조물주가 돼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킨다면 무엇보다도 탄소를 이용할 것이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생명의 자격

젖산의 광학이성질체{/IMG_TXT}탄소원자들이 구조적 특성과 크기의 적절함 때문에 새로운 화합물을 만드는 것이 용이하고, 탄소의 수가 증가할수록 다양한 구조를 가지는 것은 바로 탄소가 생명의 원소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준다. 생명체 내에서 대사과정을 거칠 때 생체분자를 합성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탄소화합물들의 구조적 변환을 용이하게 해준 것이 탄소이기 때문이다.

탄소가 생명의 원소로 자리 매김을 할 수 있는 또다른 구조적 특성이 있다. 한 개의 탄소원자가 네 개의 서로 다른 원자와 결합해 분자를 이룰 때 서로 겹쳐지 않는 두 가지 입체구조를 가질 수 있다는 것. 이들은 거울상과 관련돼 있다. 화학적 성질은 같으나 광학적 성질에 차이가 있어 이들을 광학이성질체라고 한다. 또 사면체 구조를 하고 있는 탄소원자가 이중결합을 가진 화합물이 될 때도 적용될 수 있다. 여기서는 두 개의 이성질체가 존재하는데 이들이 화학적 성질이 다른 기하이성질체다.

이러한 이성질체의 존재는 생체 분자의 구조적 다양성을 제공한다. 그리고 생체의 대사과정중 필요한 신호를 전달하는데 이용된다. 또 생명의 반도체 역할도 한다. 아직까지도 미지의 세계로 알려진 두뇌의 정보 전달이나 생체내 전기화학적인 현상이, 분자스위치 역할을 하는 이성질체의 구조 변화를 통해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구생존 위협하는 또다른 얼굴

이렇게 탄소는 생명의 원소로 자리 매김을 하고 지구를 살아있는 행성으로 만드는데 일조를 했다. 하지만 탄소는 또다른 얼굴로 지구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이산화탄소. 탄소 순환 물질의 하나인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에 지나치게 많아짐으로써 지구는 날로 더워지고 있다. 과거 지구의 생명체를 포근히 감싸던 대기의 온실효과가 이제는 온갖 기상이변을 속출시키는 심술꾸러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원인제공은 편리만을 추구해 탄소 순환의 고리를 끊어버린 인간의 몫. 따라서 전세계의 과학자들은 온실효과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에서 줄이는 방안을 다각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그 방안 중의 하나가 이산화탄소를 바다에 녹이거나 석회석과 같은 바위 덩어리에 가두어두는 방법이다.

실제로 사이다나 콜라 같은 탄산음료에서 보듯이 이산화탄소는 물에 매우 잘 녹아 들어간다. 또 산호초는 바닷물에 녹아있는 이산화탄소를 이용해서 만들어진다. 물론 이 방법도 정확한 환경영향평가가 수반돼야 또다른 재앙을 막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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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이덕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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