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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아르키메데스가 지수 표기법을 알았더라면?

고대 그리스 수학자 아르키메데스는 어느 날 풀고 있는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서 먼저 매우 큰 수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정해야 했다. 당시 큰 수를 만 단위로 끊어 ‘미리아드’라고 읽었다. 예를 들어 1억을 읽으려면 ‘미리아드 미리아드’라고 읽어야 했다. 

 

아르키메데스는 1억에 해당하는 미리아드 미리아드(108)를 첫 번째 수로 하고, 첫 번째 수를 두 번 곱한 수를 두 번째 수(108×108= 1016), 그리고 첫 번째 수와 두 번째 수를 곱한 수를 세 번째 수(108 ×1016 = 1024)라고 정의했다. 같은 방식으로 계속 큰 수를 계산하면 여덟 번째 수(108 ×1056 = 1064)를 나타낼 수 있다. 

 

아르키메데스는 이 과정에서 당시 고대 그리스 천문학자 아리스타르코스가 주장한 *태양중심설을 기준으로 우주의 크기를 구하기 위해 ‘양귀비 씨앗 한 개의 크기에 해당하는 모래알의 수는?’, ‘손가락 크기에 해당하는 양귀비 씨앗 개수는?’, ‘육상 경기장을 가득 채우는 데 필요한 손가락의 개수는?’과 같은 어림 계산 과정을 차례로 반복했다. 

 

그 결과 우주를 모래알로 채우면 그 개수  (8 × 1063)가 여덟 번째 수 1064를 넘지 않을 거로 추정했다. 사실 이 수는 오늘날의 계산으로 따지면 우주를 채우기에 턱없이 모자라다. 하지만 지수 표기법도 없던 당시의 수학 수준으로 이 정도 계산을 한 데서 아르키메데스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다.

 

 

같은 수의 곱을 편리하게

 

 

거듭제곱은 똑같은 숫자를 여러 번 반복해서 곱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 곱하는 숫자를 ‘밑’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3, n, 2와 같이 어떤 수나 문자의 오른쪽 어깨 위에 붙어서 거듭제곱을 나타내는 숫자나 문자를 ‘지수’라고 한다. 

 

 

거듭제곱을 표기하는 방법을 본격적으로 구체화한 사람은 네덜란드의 수학자 시몬 스테빈이다. 그는 1586년 1제곱은 ‘①’, 2제곱은 ‘②’로 표시했다. 예를 들어은 ‘2③ + 3②’로 나타냈다. 그러다가 프랑스의 수학자 피에르 에리곤이 1634년 출간한 저서 <수학 강좌>에서 지수를 a, a2, a3 등으로 썼다. 이때까지도 지수가 어떤 수나 문자의 어깨 위로 올라가지는 못한 상황! 그렇다면 지수는 언제 오늘날 우리가 쓰는 형태와 비슷해진 것일까? 

 

1636년 스코틀랜드의 수학자 제임스 흄은 현대의 방식과 매우 비슷한 형태의 지수 표기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는 아라비아 숫자 대신 로마 숫자로 지수를 나타냈다. 즉, A3Aiii이라고 표기한 것이다. 그러다가 프랑스의 수학자 르네 데카르트가 1637년 쓴 <기하학>에서 처음으로 현대의 지수 표기법을 사용한다. 하지만 종종 a2aa를 섞어서 사용하기도 하고, 지수로 음의 정수나 분수는 사용하지 않았다. 

 

음의 정수와 분수를 지수로 사용한 주인공은 뉴턴이다. 뉴턴은 1676년 런던 왕립협회의 서기였던 헨리 올덴부르크에게 자신이 12년 전 발견한 ‘일반화된 이항정리’에 대해 설명하는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aa, aaa, aaaa 대신에 a2, a3, a4라고 쓰고,  √a, √(a 3) 대신에 a1/2, a3/2이라고 쓰며, 1/a, 1/aa,  1/aaa  대신에 a-1, a-2, a-3이라고 쓴다.’

 

데카르트와 뉴턴을 거치며 지수 표기법은 오늘날과 같은 편리한 형태로 자리잡았다. 만약 아르키메데스가 지수 표기법을 알았더라면 큰 수의 지수 표기법을 이용해 한결 편리하게 우주를 가득 채울 모래알의 개수를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뉴턴이 헨리 올덴부르크에게 쓴 편지. 빨간색 부분을 보면 음의 정수와 분수도 지수로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각도를 나타내는 기호는 누가 만들었을까?

 

 

이등변삼각형의 형태로 아름답게 빛나는 다리의 주인공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루스키 대교다. 이 다리는 전체 길이 3100m, 두 탑 간의 거리가 1104m로 밤에는 러시아 국기 색깔로 아름답게 빛나는 *사장교로도 잘 알려졌다. 

그런데 다리의 모습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삼각형, 수직, 각도 등 다양한 기하학 개념을 만날 수 있다. 이처럼 다리나 건축물 등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기하학적 대상을 표기하는 방법은 누가 만든 것일까?

 

백과사전식 수학 교과서를 펴낸 에리곤

 

 

우리는 각도를 표기할 때 ∠를 사용한다. 이 기호는 도형의 각을 의미하는 동시에 ∠AOB = 60처럼 각의 크기를 나타낼 때도 쓰인다.

 

각의 기호 ∠는 한눈에 봐도 각의 모양을 형상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에리곤은 1644년 저서 <수학 강좌> 개정판에서 ‘∠’라는 기호를 처음 사용했다. 그는 이미 10년 전인 1634년에 <수학 강좌> 초판에서 각을 표현하기 위해 ‘<’라는 기호를 사용한 바 있다. 

 

사실 에리곤은 우리에게 좀 생소한 수학자다. 하지만 그는 〈수학 강좌〉라고 하는 6권의 수학 교과서를 펴내 수학 기호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수학 강좌〉는 대수나 기하학과 같은 순수수학은 물론 군사, 기계, 지리, 항해술 등에 쓰이는 수학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수학 강좌>는 수학자들 사이에서 널리 읽혔다. 여러 수학자의 논문이나 수학자들끼리 주고받은 편지에도 이 책에 관한 이야기가 언급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삼각형, 수직, 각도의 표기법은 누가 만들었을까?

 

 

그런데 에리곤은 기호 ∠를 고안하기 전에 각의 기호로 ‘<’를 사용하고 있었다. 왜 기호의 모양을 바꾼 걸까? 

 

17, 18세기에 ‘<’는 각을 표현하는 기호로 종종 사용됐다. 하지만 해리엇의 저서 〈대수방정식 풀이에 응용되는 해석학적 기술>이 그가 세상을 떠난 1631년 출간되면서 문제가 생긴다. 이 책에서 부등호 <, >기호를 사용했는데, 각의 기호 <와 모양이 비슷하다 보니 혼동을 일으킨 것이다. 이런 이유로 각을 표현하는 기호 <가 점차 사라지게 되자, 1644년 에리곤이 각을 표현하기 위해 ∠를 처음 사용한 것이다. 

 

 
프랑스 수학자 피에르 에리곤이 집필한 수학 교과서 <수학 강좌>. 각도 기호 ∠와, 삼각형 기호 △를 쓴 것을 볼 수 있다.

 

∠가 각을 표현하는 기호로 정착되기 전에는 ∠를 두 개 겹친 기호(∠∠)나 ∠를회전시킨 , 또 ∧, ∠)가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1657년 오트레드가 기호 ∠를 사용하면서 표기가 통일됐다.

 

에리곤이 고안해 현재까지 쓰고 있는 다른 기호에는 또 뭐가 있을까? 바로 삼각형 기호 △와 두 직선이 수직임을 나타내는 수직 기호 ⊥다. 둘 다 <수학 강좌>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우리는 삼각형의 세 꼭짓점이 A, B, C일 때 이를 표현하기 위해 간단히 △ABC라고 쓴다. 그는 1644년 삼각형을 표기하기 위해 △abc를 사용했다. 현재 표기와 차이점이 있다면, 영어 알파벳 대문자가 아니라 소문자를 사용한 것이다. 현재는 각도나 삼각형을 표현하기 위해 ∠ABC나 △ABC라고 쓰지만, 에르곤은 ∠abc, △abc와 같이 썼다. 

 

에리곤은 ∠, △, ⊥ 외에도 〈수학 강좌〉를 통해 여러 새로운 수학 기호들을 선보이며, 수학 기호를 쓰는 것이 얼마나 유용하고 중요한지 강조했다. 그 결과 그는 누구보다 수학 기호의 중요성을 일찍 깨닫고 이를 알리기 위해 노력한 수학자로 오늘날까지 손꼽히고 있다.

 

 

 

 

용어 설명
*태양중심설 : 16세기의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으로, 지구를 포함한 다른 행성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그 주위를 돈다는 내용이다. 17세기 초의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도 직접 만든 망원경으로 우주를 관찰하고 태양중심설이 옳다는 것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고 있어서 태양중심설을 받아들이게 될 때까지는 아주 긴 시간이 필요했다.

*사장교 : 다리 위에 설치된 주탑에서 케이블을 대각선으로 설치해 이 케이블이 주탑과 다리의 상판을 지지하는 형식의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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