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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기후체제] 기후 재앙 앞둔 인류세 해수면 상승을 막아라

 

숨 막히는 미세먼지, 생명을 위협하는 폭염, 하염없이 찾아오는 폭우와 태풍. 워낙 다양한 기상이변을 겪다 보니 이제는 일상이 돼버렸고, 기후변화라는 말에도 오히려 무덤덤해진 듯하다. 사실 급격한 기후변화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현상이다.


티모시 렌턴 영국 엑시터대 기후시스템연구소 교수 등 7명의 학자는 2019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서 기후변화의 주요 현상(티핑포인트)을 9가지로 추렸다. 북방침엽수림 파괴, 북대서양 순환해류 약화, 북극권의 영구동토 해빙, 그린란드 빙상 붕괴, 아마존 열대우림 파괴, 서남극 빙상 붕괴, 서아프리카 몬순 변화, 인도 몬순 변화, 산호초 파괴였다. doi: 10.1038/d41586-019-03595-0
이 현상들은 천천히 조금씩 변화하다가 어느 임계점에 도달하는 순간 급속도로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그 변화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는, 소위 ‘임계폭풍’이 일어나면 그 여파는 사실상 예측이 불가능하다.

 

기후변화는 화산 폭발을 부를 수도 있다


9가지 기후변화 현상 가운데 3가지는 해수면 상승과 연관돼 있다. 영향 범위까지 고려하면 해수면 상승은 가장 대표적인 기후변화 현상이다. 해수면이 상승하는 이유는 바다가 뜨거워지면서 팽창하거나(42%) 고산지대에서 발달한 곡빙하(계곡빙하)와 빙모(산 정상의 빙설)가 녹아서(35%), 또는 남극 대륙빙하가 녹거나(16%) 그린란드 대륙빙하가 녹기(7%) 때문이다. 모두 기후변화와 직접 관련이 있다.


관측자료와 관련 연구를 종합해 보면 전세계 해수면은 1970년대 이후 매년 약 3mm씩 상승하고 있다. 앞으로 상승 속도가 더 빨라지면 2100년까지 해수면이 약 1~2m 높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이 경우 6억~20억 명의 기후난민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2100년 이후에도 해수면 상승은 계속될 것이 확실하다.


이 같은 추세는 한반도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2016년 국립해양조사원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연간 해수면 상승률은 부산 2.7mm, 제주 5.6mm, 포항 5.9mm 등으로 지역별로 매우 다양하며 전 지구 평균인 3mm를 초과하는 곳도 많다.


해수면이 상승하게 되면 연안 지형이 바뀌고 해안 침식이 심해지며, 해양 면적이 넓어지면서 내륙 쪽으로 수증기 공급량과 운반거리가 증가한다. 연쇄적으로 물순환 양상을 바꿔 도시침수, 홍수, 가뭄, 하천 수질악화 등의 결과를 가져온다.


넓게 보면 아열대 지역이나 중위도 지역에서는 가뭄 발생이 늘어 사막화가 더 진행되고, 열대 태평양 지역이나 고위도 지역에서는 강수가 늘어나 홍수 발생이 증가할 수 있다. 또 연안지역의 지하 대수층에 바닷물이 침투해 지하 수위가 변하거나 지하수가 오염될 수도 있다.


해수면 상승은 그저 연안지역에 바닷물이 넘치는 것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화산과 지진을 유발할 가능성도 있다. 약 1만 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뒤에는 현세 간빙기로 접어들면서 해수면이 급격하게 상승했다. 그런데 이 때 현세 화산의 93%에 해당하는 약 1400개가 활동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수면 상승으로 늘어난 바닷물의 무게가 마그마방에 압력을 가하거나 단층대에 힘을 가해 화산활동을 유도한 것이다. 화산 활동은 큰 규모의 지진을 수반하기도 한다. 해수면 상승을 우습게 볼 수 없는 이유다.

 

 

400km 제방, 굴 양식… 해수면 상승을 막아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1990년 연안지역 관리 연구그룹(CZMS)을 만들어 해수면 상승의 대비책을 크게 세 종류로 구분했다. 먼저 방파제나 방조제 같은 해안 제방을 세우는 ‘방어’ 전략이 있다. 수상도시를 건설하고 농지를 양어장으로 바꾸는 식의 ‘수용’ 전략, 바닷물이 넘어올 수 있는 범위에 후퇴선을 설정해 사람들이 물러서서 이주하는 ‘후퇴’ 전략도 있다. 어떤 대책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안전을 최대한 보장하는 일이다. 동시에 사람들이 믿고 안심할 수 있으며 비용이 적게 들어야 한다.


보통 해수면 상승에 대비하기 위해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이 해안 제방을 이용한 방어 전략이다. 그런데 2004년 인도양 지진해일, 2005년 미국 카트리나 허리케인,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지진해일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이미 제방의 한계를 실감했다. 예측치를 뛰어넘는 지진해일은 막을 수 없고, 오히려 제방이 무너지면 더 큰 피해가 생겼다.


하지만 대안이 없어 여전히 많은 국가들이 해안 제방을 짓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시는 2014년 약 44조 원을 들여 32km에 달하는 거대 해안 제방을 지었다. 일본 이와테현과 미야기현은 2015년 7조 5000억 원을 들여 400km 길이의 제방을 만들었다. 한국도 2012년부터 2030년을 목표로 1조 2000억 원을 투입해 해수면 상승과 태풍, 지진해일 피해를 막기 위한 ‘아라미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기존 방파제를 보강하고 방호벽, 방재 언덕, 수문과 같은 방재 시설을 설치하는 게 골자다.


튼튼한 해안과 제방은 당연히 필요하겠지만 과연 안전, 안심, 저비용이라는 조건에 부합하는지는 의문이다. 해수면 상승에 맞춰 계속 해안 제방을 쌓고 보강, 보수 작업을 해야 한다면 우리 자손들이 그 비용을 대기 위해 세금을 얼마나 많이 내야 할 지 모르는 일이다.


미국 뉴욕시에서는 2014년 시민과학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빌리언 오이스터 프로젝트(Billion Oyster Project)’가 시작됐다. 2035년까지 허드슨강 하구에 10억 마리의 굴이 암초를 이뤄 살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오폐수 정화 효과, 생태계 복원 효과와 함께 천연 방파제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이렇게 자연과 어우러지는 아이디어는 비용이 적게 드는 데다, 중·고등학생이 직접 참여할 수 있어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선 정밀 조사가 우선


2016년 발효된 파리협정에는 탄소 배출을 줄여 기후변화를 막는 것과 더불어, 이미 변화가 시작된 기후에 적응하려는 움직임도 포함된다는 점이 이전의 교토의정서와 다르다. 기후변화 적응은 지역별 영향을 모니터링하고 예측한 뒤 민감도와 취약성을 평가하고, 이후 적응력을 평가해 대책을 수립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 가운데 모니터링과 예측 과정에 자연과학 분야가 기여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다양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국립해양조사원이 해수면 수위를 정밀하게 측정하고 있고, 한국해양과학기술원에서는 폭풍해일과 지진해일의 높이와 피해에 대한 예측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극지연구소 해수면 변동 예측 사업단은 극지방 빙하가 녹는 현상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과거 수백~수천 년간 해수면이 어떻게 변했는지 분석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이런 연구를 바탕으로 정량화된 자료를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을 세울 수 있다. 지질학의 관점에서는 해수면 상승에 맞춰 연안지역 일대에서 자연적인 지형을 이용한 방어 제방을 구축하는 방안을 제안할 수 있다. 기존 방법대로 콘크리트와 돌을 쌓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결정질 암석으로 된 연속적인 암맥이나 기반암 자체의 지형을 최대한 이용해 방어 제방으로 삼는 방법이다.


이를 통해 건설 비용은 덜 들이면서도 바닷물 범람과 지하수 오염을 방지하고, 생태계에 미치는 악영향을 줄일 수 있다. 다만 현재의 해안선을 포기하고 어느 정도 후퇴해야 하는 경우, 얼마나 포기해야 할지는 사회 구성원 사이의 합의가 필요하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은 전 지구적 현상이지만, 이에 대비하는 방안은 지역적이다. 지역에 따라 영향 요인이 다양하고 영향이 미치는 정도가 달라, 실제로 체감하는 해수면 상승 폭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국가에 따라서 느끼는 심각성도 다르고, 국가별로 해수면 상승에 대비하기 위해 투입할 수 있는 예산 규모도 차이가 난다.


한국 연안 지역은 해수면 상승률이 높고 아직도 취약한 부분이 많다. 이제는 서둘러 국가적인 적응과 대비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정책을 수립해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해수면 상승에 대한 체계적이고 정밀한 과학 조사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최근 새로운 지질시대 ‘인류세’를 설정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다양한 기후변화 현상이 임계점에 다다르지 않도록 사람들이 지금 당장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요구하는 목소리다. 파리협정은 그 출발점 중 하나일 뿐이다. 

 

 

남욱현.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국토지질연구본부 지질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이다. 과거 2000년 동안의 기후변화와 인위적 연안환경변화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nahmwh@kigam.re.kr

 

2021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남욱현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 민경진 KAIST 인류세연구센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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