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100개 기업이 지난 30년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71%를 차지했다.”
영국 비영리기구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는 2017년 ‘주요 탄소 배출원 데이터베이스’ 보고서를 발표하며 온실가스 배출의 주요한 원인으로 전 세계 기업을 꼽았다. 기후변화를 막으려면 산업계가 먼저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하는 이유다. 이에 구글, 아마존 등 탄소중립을 선언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저탄소 전략을 실천해 지구의 온도 상승을 억제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쿨한’ 기업 사례를 직접 찾아봤다.
“지금 타고 있는 승강기에도 전력회생형 인버터 기술이 적용돼 있습니다. 움직일 때마다 전력을 만들어내고 있어요.”
지난해 12월 9일 오전 충북 청주 풀무원기술원. 박경호 풀무원 벤처파일럿 담당자는 건물에 들어선 기자를 데리고 건물 지하실부터 찾았다. 기자는 2019년 12월 개소한 이 연구소가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도입한 다양한 기술을 취재하기 위해 방문했다.
지하 1층에서 내리자 드럼통만한 거대한 파이프 여러 개가 눈에 들어왔다. 고온 지하수에서 얻은 지열 에너지를 건물의 난방에 활용하기 위한 시설이었다. 지하수는 계절과 상관없이 온도가 15~20℃로 일정하다. 풀무원기술원은 지하 470m에서 지하수를 끌어올린 뒤 지열 히트 펌프 5개를 가동해 겨울철 난방에 활용하고 있다. 현재 건물 전체 난방에 사용되는 전력의 45%를 지열 에너지로 대체하고 있다.
‘에너지 자린고비’ 연구소를 찾다
여름 냉방은 빙축열을 이용한다. 심야전력을 사용해 냉동기에서 얼음을 얼린 뒤, 이를 낮에 다시 냉방에 이용하는 방식이다. 빙축열을 이용한 방법은 일반 냉방과 전력량에서는 큰 차이가 없지만, 전력 사용량이 적은 심야시간대에 전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여름 피크시간대의 전력 부하를 낮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박 담당자는 “올해 냉난방에 사용되는 액화천연가스(LNG) 사용량 중 6만 5784m3를 줄였다”며 “이는 연구소 전체 냉난방 사용 에너지의 20% 수준”이라고 말했다.
건물 옥상을 올라갔다. 태양광 발전을 위한 405W 모듈 256개가 빼곡히 설치돼 있었다. 여기에서 얻는 전기는 1년에 13만 1400kW 정도로 건물 내 총 사용전력의 7.5%에 해당한다. 여기에 업무 차량은 모두 전기차를 이용하는 등 화석연료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기울인다고 했다. 박 담당자는 “건물의 주차장을 다른 곳의 절반 수준으로 작게 만들었다”며 “내연기관차의 운행을 줄이고 대중교통이나 자전거를 이용하자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았다”고 말했다.
건물의 모든 시설은 마치 ‘에너지 자린고비’가 설계한 듯했다. 이렇게까지 에너지 절약을 위해 애쓰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구자협 풀무원기술원 연구기획팀장은 “에너지 절감을 위해 건물에 설치한 설비의 투자 금액을 회수하려면 20~30년은 걸릴 것”이라며 “기후정책에 맞는 친환경 건물을 짓자는 회사의 철학과 의지가 있어 가능했다”라고 말했다.
국내 식품연구소 최초 친환경 인증받다
건물의 전체적인 지열, 빙축열, 태양광 에너지 생산량과 사용량은 층별 실내환경과 미세먼지 농도 등과 함께 건물에너지관리시스템(BEMS)을 통해 통합 관리되고 있었다. BEMS는 건물 내 조명, 냉난방설비, 환기설비 등에 센서를 부착하고 통신망으로 연결해 에너지원별 사용량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기술이다. 에너지 관리에 효율적이기 때문에 전국의 연면적 1만m2 이상 공공기관과 서울의 연면적 10만m2 또는 21층 이상 대형 건축물에 필수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풀무원기술원처럼 연구실이 포함된 시설의 경우 오염을 막기 위해 공간 내부의 압력을 양압으로 설정해 공기의 흐름을 내부에서 외부로 흐르도록 BEMS로 조절할 수 있다. BEMS를 총괄하는 박 담당자는 “실시간으로 에너지 사용량을 확인하고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며 “이후 빅데이터 분석으로 새로운 에너지 감축 목표를 세울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풀무원기술원은 작년 3월 미국 친환경 건축물 인증제도인 ‘리드(LEED)’에서 60점 이상 획득해야 받을 수 있는 골드 등급을 획득했다. LEED는 미국 그린빌딩위원회가 제정한 세계 3대 친환경 건축물 인증제도로, 에너지 절약과 물 사용 절감 등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항목 8가지를 평가해 등급을 매기고 있다.
연구개발(R&D)을 담당하는 연구소가 LEED에서 인증을 받은 것은 이례적인 일로 평가 받는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국내에서 LEED 인증을 받은 건물은 170여 개로, 이 가운데 연구소는 한국타이어, 코오롱 등의 연구소 5곳뿐이다. 연구소는 고온살균기 등 많은 실험장비를 상시 가동해야 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어렵고,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힘들다. 온도나 습도 조건을 섬세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점도 지열 에너지와 같은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데 한계로 작용한다.
풀무원기술원은 이런 문제를 물 사용 절감 등 나머지 항목을 통해 극복했다. 매년 옥상에서 얻는 빗물과 땅에서 나오는 지하수를 모아 800t가량의 물을 화장실 용수와 조경 등에 재활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LEED 인증 기준 전체 물 사용량의 73%를 절약했다.
박 담당자는 “풀무원은 2013년 연수원이 독일에서 친환경 인증을 받은 데 이어 이번에 미국에서 인증을 받았다”라며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한 건물임을 확인받았다는 점에서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탄소 절감, 기업이 먼저 나서야
기업이 건물을 아무리 친환경적으로 만들어도 제품에서 탄소를 많이 발생시키면 소용이 없다. 풀무원은 판매하는 제품에도 저탄소 철학을 실천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국산콩두부 10종으로 영국 친환경 인증기관 ‘카본 트러스트’의 탄소발자국 측정부문 인증을 획득했다. 카본트러스트는 영국 정부가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해 설립한 비영리 기관이다.
카본 트러스트의 인증제도는 측정부문과 감축부문으로 나뉘는데, 이번에 풀무원에서는 측정부문 인증을 받았다. 이는 두부 1개 제품을 만들 때 전 과정에서 탄소배출량을 정확히 산정했다는 뜻이다.
탄소배출량은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투입·배출되는 원료 및 보조물질, 에너지, 운송방법 등을 제품 1kg 기준으로 계산해 여기에 탄소배출계수를 곱하고 물소모계수를 나눠 구할 수 있다. 이번에 인증을 받은 두부 제품의 경우 평균 탄소 배출량이 100g당 82.5gCO2e(배출되는 온실가스를 이산화탄소로 환산한 값) 정도였다.
풀무원은 2022년까지 감축부문 인증을 받기 위해 올해부터 제품 당 탄소발자국 수치를 줄여갈 예정이다. 두부가 생산되는 과정은 콩을 가공하고 포장재를 준비하는 제조 전 단계, 제조 단계, 유통 단계, 사용 단계, 폐기 단계 등 5단계로 나뉜다. 이 가운데 전체 탄소 배출량의 47%가 제품 제조 단계에서 발생한다. 풀무원은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제조공장에 태양광 발전설비, 태양열 집열 시스템 등 신재생에너지를 도입하고, 버려지는 열을 회수해 공정라인 청소에 사용하는 등 에너지를 재활용해 효율을 높일 예정이다.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에서부터 탄소발자국을 줄이려는 움직임은 국제적으로는 이미 시작된 지 오래다. 2007년 글로벌 기업 중 가장 빨리 탄소중립을 선언한 구글은 2030년까지 모든 데이터센터와 사무실을 온실가스를 만들지 않는 에너지로 대체할 예정이다. 아마존은 2040년까지 탄소중립을 선언하며 배달차량을 전부 전기차로 바꾸겠다고 밝혔고, 애플도 생산하는 제품의 탄소배출량을 75% 줄이겠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도 SK그룹 계열사 8곳이 지난해 11월 한국 최초로 재생에너지 사용 글로벌 캠페인 ‘RE100’에 가입하며 2050년까지 사용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할 것을 약속했다.
조하나 풀무원 환경안전팀 담당자는 “두부를 시작으로 다른 식물성 단백질 제품군으로탄소발자국 인증 제품을 늘려갈 예정”이라며 “기업은 먼저 솔선수범해 탄소배출을 줄이고, 소비자에게 저탄소 제품을 제공해야 할 사회적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