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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노벨상] 물리학상│보이지 않는 블랙홀이 생길 수 있을까?

 

2020년 노벨물리학상은 블랙홀을 연구한 세 명의 과학자가 받았다. 로저 펜로즈(89)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블랙홀에 대한 이론 연구를, 그리고 라인하르트 겐첼(68) 독일 막스플랑크 외계물리학연구소장과 앤드리아 게즈(55)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는 블랙홀을 확인한 관측 연구를 인정받았다. 이들의 위대한 연구는 블랙홀의 존재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됐다.

 

비대칭 별도 블랙홀이 될 수 있을까?

별이 점점 수축해서 부피가 0이 되면 별을 구성하던 물질이 무한히 작은 공간에 밀집된다. 밀도가 무한대가 되면 물리적으로 다룰 수 없으며 이런 경우를 ‘특이점(singularity)’이라고 한다. 특이점이 바로 지금의 블랙홀이다.


20세기 중반까지도 과학자들은 과연 특이점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의심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였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최고의 천문학자였던 영국의 아서 에딩턴이다. 이들은 중력수축을 통해 블랙홀이 생성된다는 수학적 결론을 믿지 않았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독일 물리학자 칼 슈바르츠실트나 미국의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와 그의 제자인 하트랜드 스나이더 등의 연구자들이 일반 상대성 이론을 풀어서 얻어낸 해(수학적 답안)가 구형 대칭(spherical symmetry)을 가정했기 때문이다.


슈바르츠실트는 1916년 초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 논문을 읽고 구형 대칭의 해를 구했다. 슈바르츠실트 시공간이라고 부르는 이 해는 특별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블랙홀에 다가가는 입자가 ‘특정 반지름(이후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으로 불림)’에 이르면 빛의 속도로도 빠져나올 수 없다. 그 안쪽은 빛이 나올 수 없는 갇힌 공간이 되고 외부 관측자에게 블랙홀의 시간은 정지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블랙홀은 보이지 않게 되고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을 사건 지평선(event horizon)이라고 부른다. 땅 위에서 지평선 너머가 보이지 않듯이 외부 관측자에게 블랙홀의 사건 지평선 너머에 있는 공간은 관측 불가능한 영역이다.


하지만 실제 우주에서는 별의 구형 대칭을 가정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펜로즈 교수는 ‘구형 대칭을 가정하지 않아도 과연 블랙홀이 생성될까?’라는 의문을 품었다.


블랙홀의 존재에 대한 회의적인 분위기는 1960년대에 반전된다. 1963년 퀘이사(활동은하핵을 갖는 매우 멀고 밝은 은하)는 엄청난 빛을 방출하기 때문에 블랙홀을 엔진으로 갖는다는 시나리오가 제시됐다. 블랙홀 연구에 중요한 공헌을 한 미국 물리학자 존 휠러도 중력수축 과정에서 중력에너지 방출이 있어서 블랙홀이 생성될 수 없다고 예상했지만, 퀘이사 발견 이후에 블랙홀에 대해 재고하게 된다.

 


휠러와 함께 블랙홀을 의논하던 펜로즈 교수는 별이 구형 대칭이 아니라도 블랙홀이 생성될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위상수학을 도입해 ‘갇힌 표면(closed trapped surface)’을 개념화했다.
갇힌 표면은 물리적인 2차원 표면과 비슷한, 슈바르츠실트 반지름 내부의 공간을 표현하는 개념이다. 펜로즈 교수는 중력으로 인해 수축하는 대상이 약간의 비대칭성을 갖더라도 일단 갇힌 표면이 생성되면 결국 블랙홀로 귀결될 수 있음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즉, 중력수축하는 별이 슈바르츠실트 반지름까지 작아지면 별을 구성하던 물질이 무한히 작은 공간에 밀집되며 밀도가 무한대가 돼 물리적으로 다룰 수 없는 블랙홀이 된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 따라 블랙홀 생성이 피할 수 없는 귀결임을 보여준 이 연구는 펜로즈의 특이점 정리라 불린다(펜로즈의 특이점 정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58쪽 참조 ☞ 펜로즈의 특이점 정리 ).


펜로즈의 특이점 정리는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발전시켜 블랙홀 연구에 새로운 문을 열었지만, 블랙홀에 대해선 여전히 풀리지 않는 질문이 많이 남아있다. 시공간의 곡률이 극도로 크고 크기가 무한대로 작은 블랙홀은 양자론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일반 상대성 이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 상대론과 양자론은 여전히 통합이 되지 못했으니 블랙홀을 푸는 일은 현대 물리학의 한계로 남아있는 셈이다.

 

블랙홀은 어디에 있을까?
 
노벨물리학상의 나머지 반은 ‘블랙홀이 어디에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을 찾은 천문학자들에게 주어졌다. 1990년대 중반부터 겐첼 소장과 게즈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우리은하 중심에 있는 별들의 운동을 면밀히 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우리은하 중심에 초대질량 블랙홀이 있다는 관측 증거를 찾아냈다.


우리은하 중심은 지구로부터 대략 2만6000광년 떨어져 있다. 겐첼 소장이 이끄는 독일 연구팀과 게즈 교수가 이끄는 미국 연구팀은 각각 독립적으로 우리은하 중심에 있는 별들을 추적했다. 이 별들은 매우 빠르게 운동하는데 가령, S0-2(혹은 S2)라는 이름을 가진 타원형 궤도를 도는 별은 약 16년 만에 한 바퀴 공전한다.


다른 별들의 운동도 흥미롭다. 케플러 법칙에 따라 혜성처럼 느린 속도로 다가오다가 공전궤도의 중심인 궁수자리(Sgr) A* 주변에 가까워지면 속도가 매우 빨라지고, 멀어지면 다시 속도가 느려진다. 지구나 목성이 공전하는 이유가 중심에 태양이 있어서인 것처럼, 공전궤도의 중심에 강력한 중력을 내는 무언가가 있다는 증거다.


1997년 겐첼 교수팀은 제한된 관측결과를 이용해 우리은하 중심에 질량이 태양 질량의 245만 배인 블랙홀이 있을 것으로 계산했다. 그 이후 10년 이상 연구 자료가 쌓이면서 블랙홀 질량은 조금씩 수정됐다. 2008년 게즈 교수팀은 2차원 평면상의 위치와 별들의 시선속도 측정값을 함께 사용해 별들의 3차원 운동을 측정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블랙홀 질량을 태양 질량의 410만 배로 수정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 보이지 않는 천체가 블랙홀이 아닐 가능성도 있을까. 가령 410만 개의 별이 밀집해 있다고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능성이 높지 않다. 밀도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Sgr A*에 다가가는 S0-2의 위치를 보면 블랙홀과의 거리가 태양계 크기의 몇 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만일 블랙홀이 아니라면, 태양계 크기 정도의 작은 공간 안에 빛을 내지 않는 별 410만 개가 존재해야 한다. Sgr A*에서 S0-2까지 태양 410만 개를 다닥다닥 한 줄로 세워야 할 정도로 작은 공간이다. 더불어 이 별들은 빛을 방출하지 않아야 한다.


만약 그런 별들이 존재한다고 해도 수백만 개의 별이 좁은 공간에 모여 있으면 역학적으로 매우 불안정해 흩어질 수밖에 없다. 서로의 중력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밀집한 상태가 유지되지 않는다. 결국 우리은하 중심에 존재하는, 태양 질량의 410만 배로 밀집된 천체는 블랙홀이라는 설명이 가장 타당하다.


겐첼 소장과 게즈 교수팀은 20년이 훌쩍 넘는 긴 세월 동안 대형망원경과 레이저적응광학과 같은 첨단 관측기기를 사용해 우리은하 중심의 별들을 추적했다. 이를 통해 블랙홀의 존재를 입증하고 블랙홀의 질량을 면밀히 측정하는 성과를 이룩했다.


이번 노벨물리학상 수상은 블랙홀 연구의 마무리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블랙홀 특이점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상대론과 양자론의 협력이 필요하고 비밀스런 블랙홀의 물리현상에 대해 과학자들이 이제 막 그 실체를 보기 시작했다.

 

 

※필자소개

우종학. 미국 예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산타바바라 캘리포니아대(UC산타바바라)와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등에서 연구원을 지냈다. 현재는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거대질량 블랙홀과 은하 진화를 연구하고 있다. 2008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촉망받는 과학자에게 주는 ‘허블 펠로우십(Hubble Fellowship)’을 받았으며 2017년 한국천문학회 학술상을 받았다. ‘우종학 교수의 블랙홀 강의(2019)’ 등 책과 강연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woo@astro.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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