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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과학으로 노벨상에 도전한다

분석과학기술대학원

언제쯤 우리나라에서도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탄생할까.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이하 기초연)의 김해진 박사는 “우리나라에서 아직까지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없는 이유는 분석과학 교육의 부재에 있다”며 “노벨상을 기대하려면 분석과학기술, 즉 실험으로 얻어낸 데이터를 자세히 해석하는 장비를 스스로 개발할 수 있는 능력과 그렇게 도출한 실험 데이터를 창의적으로 분석하는 역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본 문부과학성의 조사에 따르면 1914년 이후 노벨과학상의 85%가 분석과학과 관련 있으며, 그 가운데 23개가 새로운 분석 장비를 개발한 결과로 나타났다. 노벨상을 받은 분석 장비 중에는 빛 대신 전자를 이용해 세포까지 훤히 들여다보는 전자현미경, 단백질 분자에 전기를 걸어 크기대로 분리하는 전기영동장치 등이 있다.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분석 장비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분석 장비는 대부분 고가이므로 외화 유출도 심각한 상황이다. 그래서 일반 대학원에서는 분석 장비를 이용해 연구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한 번 보는 일도 어렵다.

이런 현실 때문에 연구원들은 장비를 다루는 일이 서툴다. 각 장비를 담당하는 기사는 장비를 다룰 줄 알지만 도출한 데이터를 해석하지 못하고, 연구원은 장비를 직접 다루지 못해 받아온 데이터를 분석만 하는 실정이다.

첨단 분석 장비와 교육의 만남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 3월 기초연은 충남대와 공동으로 분석과학기술대학원(GRAST, GRaduate school of Analytical Science and Technology, 이하 그라스트)을 설립했다.
그라스트는 첨단 분석 장비를 써본 경험이 많은 기초연의 연구원들과 충남대의 교수들이 학생들을 분석과학전문인으로 탄생시키기 위해 설립됐다. 그라스트에 입학한 학생들은 분석 장비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며 장비를 직접 이용해 연구도 할 수 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분석 장비를 개발하는 능력도 기를 수 있다.

김 박사는 “그라스트는 석·박사 과정이 일반대학원처럼 각각 2년 과정이지만 그 기간에 체계적인 교육을 진행해 현장에 투입될 때 재교육이 필요 없고 새로운 장비를 개발하는 능력을 가진 인재들을 배출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라스트의 정광화 원장은 “기존에 있던 장비로 연구해 새로운 이론을 확립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기존 장비를 업그레이드 해 새로운 장비를 개발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인 사례로 ‘핵자기공명’(NMR)과 ‘자기공명영상’(MRI) 장치를 들었다.

1946년 미국의 펠릭스 블로흐와 에드워드 퍼셀이 개발한 NMR은 분자의 구조를 관찰하는 방법 중 하나다. 그전에 사용했던 ‘X선 회절법’이 물질을 결정으로 만든 뒤 X선을 쏴야만 구조를 볼 수 있었던 것과 달리 NMR은 시료를 결정으로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어 단백질 같은 물질의 구조를 관찰하는 데 유용하다.

NMR은 물질을 이루고 있는 원자가 마이크로파를 흡수하는 성질을 이용해 물질의 구조를 분석하는 장비다. 원자마다 고유한 자기모멘트가 있어 자기장 안에 넣으면 각자 일정한 방향으로 정렬한다. 마이크로파를 쏘면 원자마다 흡수하는 에너지도 다르기 때문에 흡수스펙트럼을 그려 원자들이 어떻게 결합해 분자를 이루는지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1차원적인 분석으로는 복잡한 단백질의 구조를 예상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스위스의 리하르트 에른스트는 이를 보완해 마이크로파를 여러 방면에서 쏴 입체 구조를 예상할 수 있는 3차원 NMR를 개발했고 1991년에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그 덕분에 단백질 분자의 3차원 분석이 가능해져 세포 안에 있는 여러 단백질의 구조와 기능을 밝혀냈다.

미국 폴 로터버와 피터 맨스필드는 NMR 원리를 응용해 물질의 구조를 영상화해서 분석하는 MRI를 개발했다. MRI는 절개 없이 종양의 모양이나 크기, 다른 조직에 미치는 영향까지 파악할 수 있어 전 세계에서 널리 사용된다.
정 원장은 “NMR이 탄생하지 않았다면 MRI도 탄생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새로운 분석 장비를 탄생시키는 능력은 기존의 장비를 얼마나 잘 다루고 응용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누군가가 바이러스처럼 MRI로는 볼 수 없는 작은 부분까지 관찰하는 새로운 장비를 개발한다면 그가 다음 노벨상 수상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원장은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겠다는 도전정신을 가진 학생들이 많이 오길 바란다”며 분석과학 전문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요소로 ‘도전정신, 집중력, 창의성’을 꼽았다. 기존 장비와 지식을 응용해 새로운 장비를 탄생시키는 일 자체가 새로운 도전이고 창의적인 일이며, 무한한 끈기와 집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라스트는 석, 박사를 합해 30명을 뽑을 예정이었지만 올해 신입생은 모두 19명이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학생일지라도 분석과학에 대한 열정이 보이지 않는다면 굳이 정원을 채우기 위해 선발할 필요는 없다는 교수진의 확고한 신념 때문이다.
앞으로 그라스트에서 우수한 분석과학 인재들을 배출해 우리나라에서도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탄생하기를 기대해본다.

분석과학기술대학원의 학생들은 기초연의 첨단 분석 장비를 직접 이용하면서 실험데이터를 체계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분석과학 전문인으로 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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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대전=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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