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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노벨물리학상 ‘펜로즈 특이점 정리’ 이해하기

(※편집자 주 : 2020년 노벨물리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한 로저 펜로즈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독창적인 수학적 방법을 사용해 블랙홀이 일반 상대성 이론의 직접적인 결과임을 증명했습니다. 1965년 1월 국제학술지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중력수축과 시공간의 특이점들(Gravitational collapse and space-time singularities)’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그의 핵심 논문을 자세히 해설해드립니다.)

 

블랙홀의 존재에 대한 1960년대 물리학자들의 논쟁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원통 모양의 통나무를 평평한 표면 위에 던졌을 때 평형 상태를 구하는 정역학 문제를 예로 들어 보자. 이 문제에는 통나무가 누워 있는 경우처럼 많은 해가 있을 수 있지만, 계산을 단순화하기 위해 수직 축에 대해 회전 대칭성이 있는 경우만을 고려한다고 가정한다. 이 경우 오직 원통의 중심축이 수직 축과 일치하도록 통나무가 꼿꼿이 서 있는 경우만 남게 된다.


만약 통나무가 충분히 짧고 굵다면 이 해는 매우 안정적이며, 실제로 우리가 통나무를 지면에 던졌을 때 이런 모습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통나무가 매우 가늘고 길다면, 이 회전 대칭성을 가진 해는 매우 불안정할 것이고, 실제로 통나무를 던졌을 때 이렇게 서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슈바르츠실트 시공간의 블랙홀과 특이점에 대한 당대 물리학자들의 비판은 마치 가늘고 긴 통나무 문제처럼 이런 해가 매우 불안정해 물리적으로 실재하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였다.



이런 상황을 종결지은 것이 로저 펜로즈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가 1965년 1월 국제학술지에 발표한 ‘중력수축과 시공간의 특이점들’이라는 논문이다. 여기서 그는 일반 상대성 이론의 해(수학적 답안)로 제시됐던 슈바르츠실트 시공간에서 예측할 수 있는 특이점이 단지 수학적 허상이 아니며, 실제 천체 붕괴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수학적 논증을 통해 증명했다.


논증의 결론은 ‘일반적인 물질’과 함께 아인슈타인 방정식을 만족하며 고립된 천체를 기술하는 시공간에 ‘갇힌 표면(closed trapped surface)’이 존재하면, 시공간의 특이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갇힌 표면의 존재성 가정은 마치 짧고 굵은 통나무의 예처럼 약간의 변화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안정성을 만족한다는 점이다. 슈바르츠실트 시공간 속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의 안쪽 구면은 모두 갇힌 표면에 해당하며, 펜로즈 교수의 증명을 적용하면 여기서 비롯되는 특이점이 충분히 안정적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펜로즈 교수의 증명으로 나아가기 위해 먼저 갇힌 표면의 개념을 정의하자. 지구 위의 어두운 실험실 안, 양면에서 빛을 내는 구 모양의 전등을 생각하자. 구형 전등을 잠깐 반짝이면 (그리고 빛의 운동을 볼 수 있다면) 전등을 이루는 구면의 안쪽과 바깥쪽으로 뻗어나가는 두 종류의 구형 빛 파면이 생길 것이다. 이때 안쪽의 파면은 순간 그 넓이가 줄어들지만, 바깥쪽의 파면은 넓이가 늘어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갇힌 표면이란 이와는 달리 그 표면에서 비롯된 빛의 두 파면 모두에서 순간적으로 그 넓이가 줄어드는 표면을 말한다. 즉, 갇힌 표면이 있는 영역은 빛이 비상식적으로 휠 정도로 중력장이 매우 강한 영역인 것이다.

 


이런 개념을 정의한 펜로즈 교수는 증명을 위해 귀류법을 사용했다. 만약 시공간에 특이점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필연적으로 모순이 발생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 모순은 갇힌 표면의 존재성과 일반적인 물질 조건에서 비롯된 국소(local)적 성질, 시공간이 고립된 천체를 기술한다는 대역(global)적 성질 간 대치에서 비롯된다. 이는 미분기하학에서 흔히 쓰이는 논증 방법이다.


갇힌 표면이 반짝였을 때 생기는 모든 빛의 궤적을 관찰하는 것으로 시작해 보자. 갇힌 표면 위에 있는 일반적인 물질에서 중력은 서로 당기는 힘이므로 빛의 궤적은 서로 점점 모이게 된다. 특이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정에 의해 빛은 언제나 진행할 수 있으며, 갇힌 표면에서 비롯된 각 빛의 궤적을 따라 결국 주변 빛이 집중되며 초점이 형성될 것이다(국소적 결론). 여기에 시공간이 고립된 천체를 기술한다는 대역적인 가정(엄밀히는 밀집되지 않은 초기 공간이 있다는 가정)을 더하면, 시공간 내의 모든 관찰자(시간꼴 궤적)와 갇힌 표면 사이에 초점이 형성되지 않는 빛의 궤적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대역적 결론). 논증을 더 이어가면 국소적 결론과 대역적 결론으로부터 모순을 도출해낼 수 있고, 그러므로 가정은 참일 수 없다.


이 결론들은 물리학적 내용을 담고 있지만, 수학적으로 매우 아름다운 기하학 정리라 볼 수 있다. 일반적인 물질, 갇힌 표면 등이 모두 엄밀한 미분기하학적 개념으로 정의할 수 있으며, 그 증명 또한 기하학적 논증이기 때문이다.


펜로즈 교수가 발표한 1965년 논문의 영향력은 당대를 넘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의 논문이 발표된 뒤, 당시 영국 케임브리지대 대학원생이었던 스티븐 호킹은 펜로즈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해 시간을 거꾸로 돌려서 우주의 시작을 설명하는 빅뱅 이론의 특이점도 일반 상대성 이론의 자연스러운 결과임을 증명했다(참고로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2014)’을 보면 펜로즈와 호킹의 만남이 잘 그려져 있다).


특이점과 블랙홀 간의 이론적 관계에 대해 펜로즈 교수는 ‘우주 검열 가설’이라 불리는 여러 추측을 발표했고, 이에 대한 연구는 물리학계와 수학계에서 지금까지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끝으로 블랙홀 실재 관측 증거를 발견해 펜로즈 교수와 함께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과학자들의 업적이나, 2019년 사건지평선망원경(EHT) 연구팀에서 처음으로 블랙홀의 사진을 얻어낸 업적 등 많은 진전이 있었다. 이 모든 발전은 55년 전 펜로즈 교수가 증명한 아름다운 정리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필자소개

오성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수학과 교수(겸 고등과학원 수학부 비전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일반 상대성 이론, 유체 역학 등 물리학에서 비롯되는 비선형 편미분 방정식의 엄밀한 수학적 이해를 연구하고 있다. sjoh@math.berkeley.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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