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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노벨상] 화학상│ 박테리아는 어떻게 침입자의 DNA를 자를까

 

 

2020년 노벨화학상은 박테리아(세균)의 면역시스템인 ‘크리스퍼’로 유전자 편집 기술을 고안한 제니퍼 다우드나(56)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분자세포생물학 및 화학과 교수와 에마뉘엘 샤르팡티에(52)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병원체연구소 교수에게 돌아갔다. 3세대 유전자 가위라고도 불리는 ‘크리스퍼-캐스(CRISPR-Cas)9’ 유전자 편집 기술은 이전보다 훨씬 더 손쉽고 정교한 유전자 편집을 가능케 했다. 박테리아 면역시스템에 대한 작은 질문이 어떻게 위대한 연구로 이어질 수 있었는지 살펴보자.

 

 

사람의 경우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같은 항원이 침입하면 이를 기억하는 면역시스템이 작동한다. 나중에 같은 항원이 침투하면 이를 기억해 항원을 제거할 항체를 만들어낸다.


박테리아도 사람과 유사한듯 조금 다른 면역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박테리아는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았을 때 그 핵산 단편을 자기의 유전체에 끼워 넣어 그 바이러스를 기억한다. 그리고 이후 같은 서열의 핵산 단편을 가진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이를 인식해 바이러스의 DNA를 잘라 자신을 보호한다. 박테리아가 침입한 바이러스의 정보를 저장한 부분이 바로 크리스퍼(CRISPR)다.


박테리아의 후천적 면역시스템은 1987년 아츠오 나카타 일본 오사카대 교수에 의해 학계에 처음으로 보고됐다. 나카타 교수는 대장균의 DNA 염기서열을 분석하던 중 특정 염기서열이 반복되는 회문구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doi: 10.1128/jb.169.12.5429-5433.1987
이후 여러 연구자들은 이 구조가 바이러스에서 유래했음을 밝혔다. 2002년 루드 얀센 당시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 교수팀은 이 구조에 처음으로 크리스퍼라는 이름을 붙였다. 크리스퍼는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짧은 회문구조(Clustered of Regularly Interspaced Short Palindromic Repeats)’를 의미한다. 당시 덴마크 유제품 가공 회사였던 다니스코 소속 로돌프 바랑고우 박사와 필리프 호바스 박사는 박테리아가 바이러스에 대해 저항성을 갖는 것이 크리스퍼 덕분임을 실험으로 입증했다. 이들은 바이러스에 면역을 가진 유산균을 발견하고 여기에 바이러스의 DNA 일부가 저장됐음을 밝혔다. 바이러스 유래 DNA는 유산균 유전체의 크리스퍼 부위에 저장돼 있었다.


그럼에도 풀리지 않는 질문이 있었다. 크리스퍼는 대체 어떤 방식으로 바이러스의 DNA를 절단할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다우드나 교수와 샤르팡티에 교수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들은 바이러스 유래 DNA가 끼어있는 크리스퍼에서 표적 DNA에 결합하는 가이드 RNA를 발현하고, 이것이 캐스(Cas)9이라는 핵산분해효소와 결합해서 외부에서 침입한 표적 DNA를 절단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크리스퍼-캐스9  단백질 복합체(흔히 크리스퍼로 부른다)가 어떤 식으로 박테체리아를 지켜내는지 그 원리를 밝힌 것이다.

 

크리스퍼로 원하는 DNA를 자를 수 있을까?

 


 
만약 박테리아의 면역시스템이 특정 DNA를 절단할 수 있다면, 이를 원하는 DNA를 절단하는 데 활용할 수 있을까. 두 사람이 품은 다음 질문이었다.


두 사람은 곧바로 실험을 시작했다. 특정 위치에 존재하는 염기서열에 결합할 수 있는 가이드 RNA와 DNA를 절단할 수 있는 핵산분해효소 캐스9 단백질을 결합시킨 뒤, 절단하고자 하는 인간 DNA에 결합하도록 만든 것이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자르고자 하는 DNA 위치를 정확히 인식해 절단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탄생을 알린 핵심 논문은 2012년 8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렸다. doi: 10.1126/science.1225829


사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이전에도 유전자를 교정할 수 있는 유전자 가위는 존재했다. 1세대 유전자 가위 ‘징크 핑거 뉴클레이스(ZFN·Zinc Finger Nuclease)’와 2세대 유전자 가위 ‘탈렌(TALEN·Transcription Activator-Like Effector Nuclease)’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3세대 유전자 가위인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개발된 후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연구의 주류가 됐다. 일반 연구자들이 만들어 활용하기가 매우 간편했기 때문이다. 기술의 확장성도 컸다. 단순히 원하는 유전자를 절단할 뿐만 아니라 원하는 유전자를 교정하고 삽입하는 등 다양한 기술로 발전될 수 있었다. 또 박테리아마다 다양한 크리스퍼 시스템을 갖고 있어서 획일화되지 않은 다양한 유전자 가위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올해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두 사람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에 적용할 가이드 RNA를 여러 형태로 변형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향상 가능성도 처음으로 보여줬다.

 

유전자가위로 인간 배아를 교정한다면?

 

 

2018년 허젠쿠이 당시 중국 난팡과기대 교수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AIDS·에이즈) 바이러스에 저항성이 생기도록 유전자를 교정한 아기를 실제 여성 자궁에 착상시켜 쌍둥이 아기를 탄생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과학계는 유전자 편집의 안전성과 생명윤리에 대한 논의가 충분치 않았다며 비난했다.


이처럼 유전자 가위 기술 뒤에는 항상 윤리적인 질문이 따른다. 노벨위원회 역시 10월 7일 수상자 발표에서 유전자 가위는 인류에 많은 혜택을 줄 수 있지만 ‘유전자 조작 아기’를 만드는 것처럼 오용 가능성도 존재한다며 유전자 가위에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유전자 가위 기술의 중요성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잘못된 유전자 변이를 정확히 찾아 없애거나 교정함으로써 유전질환을 치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에서는 유전자 변이 때문에 시각장애를 겪는 사람들에게 유전자 치료 임상시험을 시작했다. 그밖에도 근육질환, 혈우병, 겸상적혈구 빈혈증 등 다양한 유전질환에 대한 치료제 개발이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유전자 가위는 동식물과 인간의 건강한 공존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유전자 가위로 식물의 유전자를 교정함으로써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에 저항성을 갖는 우수한 품종으로 발전시킬 수 있고, 생산량을 확대하거나 다양한 환경 스트레스에 견딜 수 있는 식물을 개발하는 것도 가능하다. 폐쇄적인 교배로 유전질환에 취약한 반려동물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도 있다.


유전자 가위 기술은 앞으로 더 발전할 것이다. 실제로 ‘프라임 에디팅(Prime editing)’ ‘염기교정 유전자가위’ 등 차세대 유전자 가위 기술이 속속 등장하며 유전자 가위가 널리 쓰일 날이 머지않았음을 예고하고 있다. 당장 지금부터 유전자 가위가 우리 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해 논의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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