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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노벨상] 얼마나 걸릴까, 궁극의 질문에서 노벨상 수상까지

트렌드

노벨 재단은 1901년부터 의학자와 과학자들에게 노벨과학상을 수여해왔다. 2019년까지 수상자는 분야별로 노벨생리의학상 219명, 노벨물리학상 213명, 노벨화학상 184명이다. 올해는 여기에 8명이 추가돼 총 624명이 됐다. 2020년 노벨과학상의 3가지 트렌드를 짚어봤다.

(※편집자 주 : 노벨위원회는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발표할 때 수상 배경과 수상자의 연구업적을 함께설명합니다. 연구업적의 출발점에는 수상자들이 젊은 연구자 시절 작성한 핵심 논문이 있습니다. 과학동아는 노벨과학상으로 이어진 이 핵심 논문의 주제를 ‘궁극의 질문’으로 가정하고, 궁극의 질문이 노벨상으로 이어지기까지의 기간을 계산했습니다. 공동 수상의 경우 기여도가 가장 큰 수상자의 핵심 논문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트렌드 1. 핵심 논문에서 노벨화학상까지 단 8년!

 

한국연구재단이 2019년 10월 발간한 노벨과학상(과학, 의학 분야 노벨상) 종합분석 보고서와 과학동아가 자체 조사한 결과를 종합하면 2008~2020년까지 13년간 노벨생리의학상(33명)과 노벨물리학상(35명), 노벨화학상(35명) 등 총 103명의 수상자가 나왔다.


노벨위원회가 수상의 이유로 밝힌 수상자들의 핵심 논문이 기록한 피인용률(다른 과학자의 논문에 언급되는 빈도)은 평균 1000회 이상이었고, 핵심 논문을 생산한 후 노벨과학상을 받기까지 평균 17.37년이 소요된 것으로 조사됐다. ‘궁극의 질문’에 대한 답을 1차로 제시하고 평균 17년 이상 그 분야를 발전시키는 데 공헌한 사람이 노벨과학상을 받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2020년의 경우, 수상자들의 핵심 논문이 노벨과학상으로 이어지기까지 걸린 기간의 차이가 분야별로 매우 크게 나타났다. 노벨화학상 수상자의 경우 핵심 논문을 발표한 지 8년 만에 상을 받았다. 수상자 중 한 명인 에마뉘엘 샤르팡티에(52)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교수가 2011년 유전자를 자르고 붙일 수 있는 개념을 고안했고, 다른 한 명인 제니퍼 다우드나(56)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교수와 이를 만드는 데 성공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크리스퍼-캐스(CRISPR-Cas)9’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한 시점이 2012년이다.  

 


반면 노벨생리의학상은 핵심 논문이 수상으로 이어지기까지 31년이 소요됐다. 하비 올터(85) 미국 국립보건원(NIH) 부소장은 1972년 기존에 알려졌던 A형이나 B형 간염 바이러스와 달리 수혈 과정에서 간염을 일으키는 미지의 바이러스를 예견했다. 공동 수상자인 마이클 호턴(70) 캐나다 앨버타대 교수가 바로 이 미지의 바이러스를 찾아낸 연구결과를 1989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고, 이번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의 핵심 업적으로 인정받았다.


노벨물리학상은 어떨까. 블랙홀의 존재를 수학적으로 증명해 노벨물리학상 상금의 절반을 받은 로저 펜로즈(89)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의 핵심 논문인 ‘중력적 수축과 시공간의 특이점들(Gravitational collapse and space-time singularities)’은 무려 1965년에 국제학술지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실렸다. 논문이 나온 지 55년이 지나서야 노벨물리학상이 수여된 것이다.


통계적으로 노벨물리학상은 다른 분야보다 핵심 논문이 수상으로 이어지까지의 시간이 좀 더 길다. 노벨화학상과 노벨생리의학상은 실험결과와 같은 과학적 입증이 핵심 논문에 포함된 반면, 노벨물리학상은 이론이 실험과 관측을 통해 입증될 때까지 비교적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크리스퍼가 유독 빨리 받은 이유는 노벨위원회의 수상자 발표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노벨위원회는 “이 기술(크리스퍼-캐스9)은 생명과학에 혁명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암이나 유전병 등 질병을 고칠 수 있는 새로운 치료법 개발의 꿈을 현실화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트렌드 2. 래스커상이 예견한 노벨생리의학상

 

노벨과학상 외에도 의학계와 과학계에는 몇몇 권위 있는 상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래스커상과 울프상 등 두 가지이며, 이들은 노벨과학상의 전초전이라 불린다. 이 두 가지 상을 받으면 노벨과학상을 거머쥘 확률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래스커상은 미국 자선사업가인 앨버트 래스커와 메리 래스커가 설립한 앨버트 앤드 메리 래스커 재단이 의학연구 장려를 위해 1945년 만들었다. 기초의학과 임상의학, 특별상 등 3개 부문으로 나눠 수상한다. 또 울프상은 이스라엘에 있는 울프 재단이 수학, 농업, 화학, 물리학, 의학, 예술 등 6가지 분야에서 수상자를 선정한다.


 올해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들은 전원 과거에 래스커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올터 부소장과 호턴 교수는 2000년 래스커상을 공동 수상했고, C형 간염 바이러스가 실제로 간염을 일으킨다는 것을 입증한 찰스 라이스(68) 미국 록펠러대 교수도 항바이러스제를 개발한 마이클 소피아 박사 등과 함께 2016년 래스커상을 받았다.

 

트렌드 3. 1960년대생 여성 과학자가 온다

 

앤드리아 게즈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노벨물리학상), 제니퍼 다우드나(노벨화학상), 에마뉘엘 샤르팡티에(노벨화학상). 올해 노벨과학상 수상자 8명 중에서 자그마치 3명이 여성이다. 비율로 계산하면 37.5%나 된다. 이는 역대 노벨과학상 수상자(총 624명) 중 여성 수상자 비율(약 3.6%·23명)과 비교하면 크게 차이가 나는 수치다. 게다가 이번 여성 수상자들은 모두 50대로 최근 13년간(2008~2020년) 노벨과학상 수상자의 평균 연령(68.5세)에 비해 매우 젊다.


게즈 교수는 스승인 라인하르트 겐첼(68) 독일 막스플랑크 외계물리학연구소장과 함께 우리은하 중심에서 블랙홀의 증거를 찾아낸 공로로 올해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노벨물리학상을 여성 과학자가 수상한 건 마리 퀴리(1903년·방사선 연구), 마리아 괴퍼트 메이어(1963년·핵 껍질 구조 연구), 도나 스트리클런드(2018년·고감도 레이저 기술 개발) 캐나다 워털루대 교수에 이어 네 번째다.

 


이병호 서울대 전기정보학부 교수는 “2018년 노벨물리학상 이후 2년 만에 또 여성 노벨물리학상 수상자가 나온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2018년 노벨물리학상은 55년 만에 여성 수상자가 나와 엄청난 화제가 됐었다.


노벨화학상은 그동안 7명의 여성 수상자가 나왔다. 이 중 단독 수상자는 1911년 라듐과 폴로늄을 발견한 공로로 수상한 마리 퀴리와, 1964년 X선 기술로 생화학물질의 구조를 찾은 도로시 크로풋 호지킨 2명뿐이다.


노벨생리의학상의 역대 여성 수상자는 12명이다. 다른 분야에 비해서는 많은 편이지만 전체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222명 중 약 5.4%로 여전히 남성 수상자가 절대다수를 이루고 있다.  

 

 

 통계를 보면 래스커상을 받고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사람은 올해까지 총 91명이나 된다. 대표적인 예로 유도만능줄기세포(iPS)를 개발한 공로로 201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야마나카 신야 일본 교토대 iPS 세포연구소장은 2009년에 기초의학 부문 래스커상을 받았다. 2019년에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세 명도 모두 래스커상을 받은 바 있다.


 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에 따르면 울프상 수상자가 나오기 시작한 1978년 이후 울프상 수상자의 약 30%는 노벨과학상까지 획득했다. 올해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샤르팡티에 교수와 다우드나 교수도 2020년 1월 의학 부문 울프상을 받았다.


한편 과학자들의 피인용률을 통해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예측하려는 시도도 있다. 글로벌 학술 정보 기업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는 매년 전 세계 과학자들의 핵심 논문 피인용률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노벨상 수상자를 예측한다. 2002년부터 과학자 총 336명을 후보로 예측했는데 이 중 54명(16%)이 실제로 상을 받았다.


데이비드 펜들버리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 수석분석연구원은 10월 2일 미국 CNN과의 인터뷰에서 “피인용률은 연구자의 업적을 판단할 때 중요한 한 가지 지표”라며 “이를 바탕으로 과거 노벨상에 선정됐던 분야인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올해는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단 한 명도 맞추지 못했다. 9월 23일 2020년 피인용률 우수 연구자 24명을 발표했고, 여기에는 균일한 나노입자 대량 합성법을 개발한 현택환 서울대 석좌교수가 포함돼 화제를 모았으나, 24명 모두 올해 수상자에 들지 못했다. 펜들버리 수석부석연구원은 “우리가 뽑은 후보자는 꼭 올해가 아니라도 어느 시점엔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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