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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노벨상] 생리의학상 │ 미지의 간염 바이러스, 정체가 뭘까?

 

2020년 노벨생리의학상은 간암을 일으키는 C형 간염 바이러스를 발견하고 효과적인 치료제를 개발하기까지 중추적인 역할을 한 의과학자 세 명에게 돌아갔다. 하비 올터(85) 미국 국립보건원(NIH) 부소장은 C형 간염이라는 질병의 존재를 처음 발견한 공로, 마이클 호턴(70) 캐나다 앨버타대 교수는 C형 간염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최초로 밝힌 공로, 찰스 라이스(68) 미국 록펠러대 교수는 C형 간염 바이러스가 간염을 일으킬 수 있음을 입증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들의 위대한 연구 뒤에는 하나의 공통된 질문, 새로운 간염 바이러스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다.

 

C형 간염 바이러스는 대부분 오염된 혈액에 의해 사람 대 사람으로 전파되는 바이러스다. 드물게 감염된 사람과의 성관계를 통해서 혹은 감염된 임산부로부터 태아로 전파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감염된 지 6개월 이하인 급성 간염의 경우 무증상 또는 가벼운 증상을 보이지만 바이러스의 주요 목적지인 간이 손상되면 심각한 간염과 황달을 유발한다. 특히 급성 간염이 6개월 이상 지속돼 만성 간염으로 이어질 경우, 간세포에 이상이 생겨 간경화 및 간암으로 발전할 수 있다. 최근 자료를 보면, C형 간염 환자 4명 중 3명에서 바이러스 감염이 6개월 이상 지속되며, 만성 간염, 간경화 및 간암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A형도, B형도 아니라면 새로운 병원체일까?

 

1970년대 초반까지 급성 간염은 A형 간염 바이러스나 B형 간염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간염 바이러스는 명칭은 유사하지만 바이러스학적으로는 매우 다르다. A형 간염 바이러스는 오염된 물 또는 음식을 통해 입으로 전파돼 급성 간염을 일으키지만 만성 간염이나 간경화로 발전하지는 않는다. 반면 B형 간염 바이러스는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해 인체 안으로 들어와 급성 간염, 더 나아가 만성 간염과 간경화를 일으킨다. 훨씬 더 증상이 심각한 셈이다.


당대 과학자들은 B형 간염 바이러스가 만성 간염과 간경화를 일으키는 유일한 바이러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B형 간염 바이러스 입자의 표피 단백질을 검출하는 진단법으로 B형 간염 감염 유무를 판단해 수혈을 통한 바이러스 전파를 막고자 했다.


그러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간염이 25~50% 정도 밖에 감소하지 않았다. 연구자들은 그동안 진단법이 없던 A형 간염 바이러스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추측했다. 하지만 진단법을 개발해보니 A형 간염 바이러스는 수혈을 통한 감염과 무관했다. 연구자들은 기존의 간염 바이러스가 아닌 새로운 병원체의 존재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중반 미국 국립보건원의 하비 올터 박사는 수혈 환자 집단 안에서 간염 발생률을 조사하고 있었다. 그의 연구팀은 A형 간염 바이러스도 B형 간염 바이러스도 아닌 또 다른 병원체가 수혈 환자에게 만성 간염을 유발하고 환자 혈액에 그 병원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연구팀은 환자 혈액 속 병원체가 침팬지를 감염시킬 수 있음을 실험으로 증명했다. 올터 박사팀은 이 병원체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간염 바이러스임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새로운 C형 간염 치료제 개발에 주춧돌을 제공한 사건이었다.

 

 

C형 간염 바이러스가 간염의 직접적인 원인일까?

 

새로운 간염 바이러스의 존재가 알려진 뒤 약 15년간 많은 연구자들이 바이러스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다양한 연구를 진행했다. A형과 B형 간염 바이러스 검출에 사용한 방법뿐만 아니라 다양한 면역학적 연구기법, 현미경을 활용한 실험을 진행했지만 모두 의미있는 성과를 얻지 못했다.


1980년대 마이클 호턴 박사는 설립된 지 10년이 채 되지 않은 미국 신생 제약회사 ‘카이론(Chiron)’에서 새로운 간염 바이러스의 유전체를 분리하는 연구를 시작했다. 그의 연구팀은 같은 시대 바이러스 학자들이 쓰지 않던, 최첨단 분자생물학 기법을 적용해 미지의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는 만성 간염 환자의 혈청에서 바이러스의 유전체 RNA를 분리해 염기서열을 분석했다. 이 내용은 1989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됐다. doi: 10.1126/science.2523562


또 추가 연구를 통해 이 바이러스에 특이적으로 반응하는 항체가 만성 간염 환자들에게 일관되게 발견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염기서열을 분석해낸 새로운 바이러스가 그동안 찾고 있던 바이러스임을 알게 된 것이다. 미지의 바이러스는 이때부터 C형 간염 바이러스라 불리기 시작했다.  


C형 간염 바이러스가 간염의 직접적인 원인일까. C형 간염 바이러스 발견은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으로 이어졌다. 이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엔 많은 실패가 있었지만 1990년대 후반 찰스 라이스 당시 미국 워싱턴대 의대 교수팀은 C형 간염 바이러스 유전체의 말단 부위에 기존 연구에서 밝혀지지 않은 부위가 존재하고, 이 부위가 바이러스 증식에 중요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의 연구팀은 유전공학 기술을 활용해 말단 부위가 완벽한 C형 간염 바이러스의 유전체 RNA를 시험관에서 인위적으로 합성했다. 그리고 이를 직접 침팬지의 간에 주입했다. 그 결과 침팬지에게서 사람에게 나타나는 바이러스의 증식과 임상 증상이 그대로 나타났다. C형 간염 바이러스의 감염이 간염을 유발하는 직접적인 원인임을 증명한 실험이었다.

 

C형 간염 극복 경험에서 코로나19 해법 얻을까

 

C형 간염 바이러스를 발견하고 유전체 염기서열을 밝힌 올해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들의 연구는 관련 진단법을 개발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들의 연구 덕분에 C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된 혈액을 수혈해서 항체를 만들어 치명적인 질병을 예방하는 게 가능해졌다.


또 C형 간염 바이러스 연구는 바이러스의 증식을 직접 억제할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치료제 개발로 이어졌다. 바이러스의 정체를 명확하게 밝힌 덕분에 치료제 후보물질을 발굴하고, 검증하고, 최적화된 치료제를 완성하는 모든 단계에서 항바이러스 효과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게 됐다. C형 간염 바이러스 감염으로부터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더 나아가 기초과학 발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치료제를 개발하기 전에 꼭 필요한 바이러스 증식 기술, 바이러스를 조작해 원하는 재조합 바이러스를 합성할 수 있는 바이러스 유전공학 기술, 바이러스를 시험관에서 배양할 수 있는 세포배양 기술, 치료제 후보물질의 항바이러스 효과를 생체 내에서 테스트할 수 있는 동물모델 실험이 덕분에 발전했다.


이런 위대한 성과가 현재 전 세계적으로 유행 중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해결하고 혹시 모를 또 다른 바이러스 유행을 대비하는 데도 해답을 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필자소개

이영민.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바이러스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워싱턴대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했고, 2000년부터 약 10년간 충북대에서 바이러스학 연구실을 운영했다. 현재 미국 유타주립대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인체신경계를 감염시키는 일본뇌염 바이러스 및 지카 바이러스의 감염 기작을 연구하고 있다. youngmin.lee@us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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