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프리카 남서부에 위치한 나미비아는, 작년 이맘때 ‘꽃청춘’들이 방문하면서 주목받은 관광지입니다. 해질녘 붉게 물드는 나미브 사막은 ‘붉은 사막’이라 불릴 정도로 장관을 연출하죠. 하지만 꽃청춘들이 놓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나미브 사막의 미스터리 서클, ‘요정의 원’입니다.
요정의 원은 나미브 사막의 인적 드문 곳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특이한 식생 패턴입니다. 나미비아 북쪽에 국경을 맞댄 앙골라에서 남쪽의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 이어지는 넓은 영역에서 나타나죠. 둥근 원 모양의 땅에는 모래가 훤히 드러나 있고, 주변에만 식물이 자라는 특이한 모양입니다. 원의 지름이 2~15m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한눈에 잘 들어옵니다.
이런 모양의 지형이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돼 있어서 마치 누군가 일부러 만든 거대한 예술 작품처럼 보이죠. 지역 주민들은 요정의 원을 ‘신의 발자취’라고 부르기도 했다네요.
나미브 사막의 미스터리를 만든 주인공은?
누가, 어떻게, 왜 이런 패턴을 만들었을까요. 요정의 원이 발견된 공식적인 기록은 1920년대였지만 과학자들이 본격적으로 연구한 것은 20세기 후반부터였습니다. 사막에 사는 흰개미가 만들었다거나, 토양에서 나오는 방사선이 식물을 살지 못하게 한다거나, 식물에서 나오는 독성 물질이 원인이라는 등 다양한 추정이 나왔죠.
하지만 곧바로 흰개미설을 일축하며 ‘식물 경쟁설’을 지지하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대 생명과학과 마이클 크레이머 교수팀은 부족한 자원을 두고 여러 식물이 경쟁하다 보니 일정한 간격을 두고 원형 패턴이 생겼다는 연구 결과를 ‘플로스원’ 2013년 8월 15일자에 발표했습니다(doi:10.1371/journal.pone.0070876).

●원 중심부에 생기는 어린 식물의 뿌리를 흰개미가 갉아먹어서 빈 공간이 생기면 비가 내릴 때 땅 속에 스며든 물이 증발하지 않고 보존된다.
●원 주위에 사는 식물은 그 수분을 이용해서 자란다. 흰개미가 원의 경계에 있는 식물 뿌리를 갉아먹으면 원이 넓어진다. 흰개미 덕분에 요정의 원 주위에는 건기에도 식물이 자랄 수 있다.
흰개미와 식물 경쟁이 만든 절묘한 조화
워낙 흥미로운 현상이다 보니, 이후 최근 몇 년간 두 가설을 지지하는 연구가 나올 때마다 마치 ‘양치기 소년’처럼 언론에 ‘요정의 원 미스터리가 풀렸다’는 제목의 기사가 나왔습니다. 올해 초에도 국내외 언론에서 비슷한 제목의 기사가 나왔는데, 이번에는 전과 사뭇 다른 내용이었어요. 어느 한 쪽을 지지하는 연구 결과가 아니라, 흰개미와 식물 경쟁 두 요소가 함께 작용해서 요정의 원을 만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미국 프린스턴대 생태학및진화생물학부 코리나 타르니타 교수팀은 흰개미와 식물 경쟁을 동시에 적용한 컴퓨터 모델을 만들어 시뮬레이션을 했습니다. 그 결과 흰개미는 큰 규모의 패턴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식물 사이의 경쟁은 작은 규모의 패턴을 만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항해하는 돌이 움직이는 모습을 처음으로 포착한 미국 스크립스해양연구소의 리처드 노리스 교수.
항해하는 돌 중에서 무거운 것은 수십 kg이 넘고, 길게는 200m 이상 넘게 자취가 이어져 있다.
스스로 움직이는 미스터리한 돌덩이
자, 이번엔 아프리카에서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떠나볼까요? 미국 네바다 주와 캘리포니아 주 건조지대에도 미스터리한 볼거리가 있는데, 일명 ‘항해하는 돌’입니다.
사람이 끌어다 놓은 것도 아닌데, 사막처럼 메마른 모래바닥 한 가운데에 여러 개의 돌이 덩그러니 놓여 있고 그 뒤로 기다란 자취가 남아 있습니다. 돌이 얼마나 먼 거리를 이동해 왔는지 알려주는 자취입니다. 어떤 자취는 일직선으로, 어떤 자취는 마치 돌이 움직이다가 마음을 바꾼 듯 지그재그 모양으로 나 있습니다. 자취가 긴 것은 200m가 넘는다는군요.
수십 kg에 달하는 무거운 돌이 어떻게 그 먼 거리를 미끄러져 갈 수 있었던 걸까요.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과학자들은 100년 전부터 다양한 상상력을 동원해 원리를 설명하려 했습니다.
1900년대 초에는 이 자취를 강한 바람에 의해 바위가 밀려가면서 바닥을 긁은 흔적이라고 생각했어요. 한국이라면 이런 상상을 하기는 어려웠겠지만, 집까지 날려버리는 강력한 토네이도가 발생하는 미국에서는 충분히 생각해 볼 만하죠. 1900년대 중반에는 땅이 축축하게 젖어 있는 상태에서 강한 바람이 불면 돌이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 나왔습니다. 지질학자 조지 스탠리는 돌 주변에 생긴 얼음이 움직이는 데 도움을 줬을 거라고도 주장했어요.
"겨울에 잠시 동안 얕은 물웅덩이가 생기는데, 이 웅덩이 표면이 밤사이 얼었다가 따뜻한 낮 시간에 녹으면 수 mm 두께의 얼음 조각들이 웅덩이 표면을 떠다니게 된다.
마치 극지방의 바다에 떠다니는 유빙들처럼 말이다. 그러면 얼음에 끼어 있던 돌이 얼음과 함께 살짝 떠오를 수 있게 되고, 바람이 불면 움직이기 시작한다."
1970년대 과학자들은 본격적으로 실험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칼텍) 지질학및행성과학과 로버트 샤프 교수와 미국 UCLA 지질학과 드와이트 캐리 교수팀은 이 지역의 돌 30개에 표시를 해 놓고 7년 동안 어떻게 움직이는지 자취를 기록했어요. 확인 결과, 7년 동안 두 개의 돌을 제외하고 모든 돌이 움직였습니다. 여름에는 아무 돌도 움직이지 않았고, 겨울에는 몇몇 돌이 움직였죠. 움직인 돌 중에서 가장 무거운 돌은 36kg이었습니다.
1990년대 과학자들은 돌이 얼음의 도움을 받아서 이동한 증거를 하나 둘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햄프셔대와 매사추세츠대 연구팀은 돌이 움직인 자취에서 얇은 얼음판 같은 물체가 만들 수 있는 선을 발견했죠.

-➊번은 물과 모래, 돌을 넣은 것이고 ➋, ➌번은 완전히 얼리는 과정이다.
-검은 선은 얼음의 높이를 나타낸다.
-➍번부터는 얼음 위에 물을 부은 뒤 나타나는 현상이다.
-얼음보다 밀도가 큰 물이 얼음 밑으로 들어가면서 얼음이 떠오르고 얼음에 낀 돌도 함께 떠오른다.
-이후 ➓번까지는 얼음이 서서히 녹으면서 돌이 바닥으로 떨어진 모습이다.


항해하는 돌의 비밀이 풀린 것은 2014년입니다. 2006년부터 이어진 일련의 실험 결과 얼음과 물, 바람, 그리고 모래가 특정한 조건을 이룰 때 돌이 움직인다는 사실이 밝혀졌어요.
2006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과학자 랄프 로렌츠는 항해하는 돌이 얼음을 뗏목 삼아 물 위에 떠서 바람을 타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실험으로 보였습니다.
그는 플라스틱 통에 모래를 채우고 그 위에 돌을 얹어놓은 뒤 물을 부어 돌의 윗부분만 겨우 물 밖으로 나올 정도로 만들었습니다. 이 수조를 냉동실에 넣어 완전히 얼린 뒤 다시 꺼내서 그 위에 물을 붓자 물이 얼음 밑으로 들어가 모래, 물, 얼음이 순서대로 층을 이뤘습니다. 얼음과 모래 사이에 물이 끼어 들어가면서 돌은 얼음과 함께 모래 위로 떠올랐고, 살짝 바람을 불자 움직일 수 있었죠.
이후 존스홉킨스대 응용물리연구소로 자리를 옮긴 로렌츠 박사는, 60개가 넘는 돌에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부착한 뒤 이들의 움직임을 카메라로 촬영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2013년 12월부터 2014년 1월까지 GPS 신호를 토대로 움직이는 돌들을 촬영한 로렌츠 박사팀은 어떤 조건에서 돌이 움직이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낼 수 있었어요(doi:10.1371/journal.pone.0105948).
미국 캘리포니아 주 데스밸리 국립공원에는 겨울에 잠시 동안 얕은(불과 수 cm 깊이의) 물웅덩이가 생기는데, 이 웅덩이 표면이 밤사이 얼었다가 따뜻한 낮 시간에 녹으면 수 mm 두께의 얼음 조각들이 웅덩이 표면을 떠다니게 됩니다. 마치 극지방의 바다에 떠다니는 유빙들처럼 말이죠. 그러면 얼음에 끼어 있던 돌이 얼음과 함께 살짝 떠오를 수 있게 되고, 바람이 불면 조금씩 움직입니다. 로렌츠 박사팀은 이 현상을 사진으로 포착할 수 있었어요. GPS 신호를 분석한 결과, 얼음에 낀 돌은 1분에 최고 5m까지 빠르게 이동했고, 가장 오래 움직인 것은 16분 동안 신호가 유지됐습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약 두 달 동안 최고 224m까지 이동한 돌도 있었습니다. 로렌츠 박사는 e메일 인터뷰에서 “우리가 발견한 것은 돌을 움직이는 한 가지 사례”라며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프리카, 미국까지 가 봤으니 집으로 오는 길엔 이웃나라 일본을 들러 볼까요. 일본 최남단의 유명한 관광지 오키나와 섬 인근에는 아마미오라는 작은 섬이 있습니다. 1995년 이곳에서 다이빙을 즐기던 한 다이버가 모래바닥 위에 그려진 이상한 형상을 발견했는데, 도저히 우연히 생긴 것이라고 볼 수 없는 기하학적인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크기도 무려 2m에 달할 정도로 컸죠. 다이버가 장난을 친 것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이 기하학적인 패턴을 바닷속에 만든 걸까요. 이 사진이 공개되자 많은 사람들이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바닷속 자연현상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지 바다생물이 만든 것인지조차 오랫동안 알 수 없었어요.
이 바닷속 미스터리 서클의 정체가 밝혀진 것은 2011년이었습니다. 일본 지바현 자연사박물관연구소 해안분소의 가와세 히로시 연구원팀은 12cm 길이의 수컷 복어가 이 패턴을 만들고 있는 모습을 포착했습니다(doi:10.1038/srep02106).

복어가 이 형상을 만드는 데에는 7~9일이 소요됐습니다. 첫날과 둘째 날은 원형의 전체 틀을 그리는데, 가슴과 항문, 꼬리지느러미를 이용해 모래바닥을 계곡 모양으로 파나갔습니다. 그런 뒤에는 원의 중심을 기준으로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 헤엄치며 방사형 무늬를 만들어 나갔죠.
이후에는 방사형 무늬를 크게 세 구역으로 나눠 바깥 원과 중간 원을 더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가장 안쪽 원에는 고운 모래들을 모아서 편평하게 만들었습니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원의 중심을 자유롭게 헤엄치면서 항문지느러미만을 이용해서 비교적 얕고 자유로운 형태의 줄무늬를 만들었습니다.
이때 암컷 복어가 나타났습니다. 암컷이 원에 접근하자 수컷은 모래를 휘저으며 격하게 반응했죠. 그리고 원에서 멀어진 뒤 빠르게 원 중심으로 헤엄치기를 반복했습니다. 짝짓기를 하는 것이었죠. 그리고 암컷과 수컷 복어는 원의 중심에 알을 낳았습니다. 7~9일 동안 공들여 만든 원은 암컷을 유혹하는 동시에 알을 낳고 부화시키는 둥지였어요.
암컷이 떠난 뒤에도 수컷 복어는 6일 동안 그 자리에 남아 있었습니다. 별다른 행동을 하지는 않으면서요. 원 무늬는 물살에 씻겨나갔고, 새끼들이 부화하자 수컷도 그제야 자리를 떠났습니다. 수컷은 다시 짝짓기를 할 때가 되자 둥지가 있던 지역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전에 둥지가 있던 자리가 아닌 다른 자리에서 새로운 둥지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미국을 거쳐 일본까지 지구를 한 바퀴 돌았네요. 모른 채 지나쳤다면 그저 감탄하고 돌아섰을 자연의 신비를 최신 연구로 섭렵했습니다. 이제 누구보다 알차게 여행할 준비를 갖췄으니 떠날 일만 남았네요. 학업과 업무 등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훌훌 털고 떠날 수 있길 바랍니다. 참, 생각나시면 과학동아 카톡에 인증샷 한 장 남겨주시는 센스를!
A theoretical foundation for multi-scale regular vegetation patterns
Sliding Rocks on Racetrack Playa, Death Valley National Park: First Observation of Rocks in Motion
Role of Huge Geometric Circular Structures in the Reproduction of a Marine Pufferfish
나미브 사막의 미스테리 ‘요정의 원’, 왜 생기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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