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아악!”
마르스 문제를 해결하고 받은 보상금이 드라이아이스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래서 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아침 내내 추적했다. 그저께 스승이 인형을 만들겠다며 구해온 재료와 부품이 범인이었다. 차라리 보상금 전액을 썼으면 어이가 없어 화도 안 날 텐데, 월세와 세금은 남겨놓고 돈을 쓴 모호한 경제 관념 때문에 더 미칠 지경이었다. 어쨌거나 다음 의뢰가 들어올 때까지는 섹터 3에서 배급하는 영양 젤리만 먹고 살아야 한다. 케이는 가계부에 생긴 구멍보다 영양 젤리가 훨씬 끔찍했다.
“스승님, 돈 계산 좀 하고 살아. 스승님은 내 보호자잖아.”
“아, 미안하다.” 제이는 전혀 미안하지 않은 말투로 사과했다. “오늘부터 영양 젤리 먹게 생겼다고!”
영양 젤리는 섹터 3에서 무료로 배급하는 음식이다. 케이는 여기 막 도착했을 때, 한 끼에 하나씩, 세 번만 먹어도 하루치 영양분이 충족된다는 설명을 듣고 감탄했다. 끼니 걱정 없이 영양분을 채울 수 있는데, 공짜라니! 하지만 영양분이 맛을 보장하지는 않았다. 섹터 3처럼 돈벌이에 환장한 동네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이유가 있었다. 그 젤리는 돈을 받고 팔 음식이 아니었다. 이제 그 젤리를 이제 2주일이나 먹어야 한다.
“영양 젤리 맛있지 않냐?” 아마도 스승은 미감을 얻는 대가로 미각을 영영 잃은 모양이다.
“스승님은 다음 의뢰 올 때까지 굶어!” 케이는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스승의 충동구매는 막을 수 없다. 그러니까 굶지 않으려면 자기만의 주머니를 만들어야 했다.
“아르바이트 구한다고 붙어 있어서 왔는데요!” 케이는 시내까지 걸어가, 가장 먼저 보이는 카페에 들어갔다. 전쟁 전 세계에서 만든 오래된 도자기 그릇에 차와 디저트를 파는 카페였다. 주인은 케이의 팔을 보자마자 손을 저었다.
“아르바이트해 본 적은 있어?” “없습니다!”
“가라.” “팔은 잘 움직입니다!” 주인장 앞에서 케이는 자신의 기계화 의수가 얼마나 잘 가동하는지 보여주었다. 사장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케이의 손을 보았다.
“튜닝은?” “네? 튜닝이요?” 케이는 섹터 3에 오는 몇 달 동안 팔을 두 개나 부숴 먹었다. 스승은 한 번만 더 부수면 다 클 때까지 뼈대도 없을 줄 알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튜닝도 모르는 놈이 무슨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제 팔도 팔이라니까요?”
“일하려면 흡착 지문 튜닝하고 와. 네 비오-아우토 업그레이드 하고 오라고.” “돈이 없어서 일하려는 건데, 일을 하려면 돈을 써야 한다고요?”
“인마, 그 앙상한 뼈대로 섹터 3에서 일하려는 네가 더 이상한 놈이다.” 당장 내일 아침 사 먹을 돈도 없는데 튜닝까지 해야 한다니. 인형사가 만든 의체에 쾨르퍼사 튜닝 제품이 호환될까? 아니, 그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언젠가 제이의 기계화 의수를 작품으로 소장하겠다며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스승은 창고에서 전기톱을 꺼내왔다. 이 팔을 소장하고 싶으면 팔이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 팔은 뼈대 뿐이라도 스승의 작품이었다. 제이는 자기 작품에 흡착 지문인지 나발인지를 붙여갔다가는 있던 팔도 떼어갈 인간이었다.
다음에 찾아간 곳은 젊은 디자이너들이 만든 패션 소품을 판매하는 편집숍이었다. 실장이라는 사람은 케이의 생김새를 마음에 들어 했다. “비오-아우토도 야성 넘치네. 그런데 너무 부품이 튀어나와 있다.”
“아직 뼈대라서요.” “흡착 지문은 없고……. 튜닝샵에서 U-소프트 스킨 튜닝해오면 일하게 해줄게.”
일하는 사람 구하는 가게는 굉장히 많은데, 케이를 원하는 곳은 없었다. 섹터 3은 비오-아우토의 성지니까 의수를 끼고 있다고 마음고생할 일 없을 거라던 스승의 말이 떠올랐다. 그 말도 사실이었다. 섹터 3에서는 기계화 의체를 끼고 다녀도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았고 갑자기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없었다. 심지어 가게 주인들도 튜닝만 해오면 고용하겠다는 의사를 보이지 않았나.
“할아버지, 아르바이트생 구해요?” “뭐라고?”
“아! 르! 바! 이! 트!” 종이책이 잔뜩 쌓인 책방 앞에 ‘직원 구함’이라고 적혀 있었다.
“비오-아우토 낀 사람은 안 돼!” “왜요!”
“책이 생각보다 무거워서 몇 주만 일해도 균형이 깨져서 조율 다시 해야 해!” 노인의 말은 튜닝을 하라는 말보다 무서웠다. 튜닝이 무엇인지 케이는 잘 모르지만, 기계화 의체를 조율하는 일이 얼마나 귀찮은지는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면허 있어?” “조율사 면허요?”
“운! 전! 면! 허!” “없! 어! 요!”
“가!” 나가서 보니 ‘직원 구함’ 밑에 작은 글씨로 ‘운전면허 필수’라고 적혀 있었다.
케이는 튜닝 거리로 가는 길목마다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가게는 다 들어가 보았지만, 결국 어느 아르바이트도 얻지 못한 채 튜닝 거리에 도착했다.
비오-아우토에 이렇게 많은 추가 부품을 붙일 수 있다니. 케이는 자동차나 오토바이에 생체 인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튜닝 부품을 한참 바라보았다. 유리 너머로 수습 조율사를 모집한다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수습 조율사…….”
인형사가 제자를 키우듯, 조율사도 제자를 키운다. 조율사가 되는 과정은 잘 안다. 스승은 나름 이유가 있어 취득 자격이 있어도 면허를 받지 않았다지만, 케이의 시대는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조율사 일도 가르쳤다. 인형사가 공부하는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저 쾨르퍼사의 비오-아우토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배울 뿐이었으니까. 스승은 쾨르퍼사의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기 싫다며 면허를 거부했다고 한다. 그 정도로 쾨르퍼사를 싫어하면서 왜 굳이 쾨르퍼사가 지배하는 섹터 3까지 이주했을까.
인형사는 좋든 싫든 평생 붙어 다녀야 한다. 제이가 나쁜 어른은 아니지만 케이는 둘뿐인 관계가 가끔 지겹다. 인형사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인형사가 되어야 했던 케이는, 인형사의 길을 걷는 자신이 아직도 실감나지 않았다.
[매점 관리 직원 구합니다.] 케이가 찾은 곳은 튜닝 거리 골목 안쪽에 있는 ‘메이May’라는 튜닝숍이었다.
“아르바이트 구하세요?” 기름때 묻은 옷을 입은 채 컵라면을 먹던 남자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든다.
“……예.” “비오-아우토 튜닝 안 해도 되는 일인가요?”
“예, 매장 치우고, 카운터만 보면 됩니다. 기계 안 만져도 돼요. 점심은 드립니다.”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일해요? 월급은 얼마죠?”
“아침 열 시부터 오후 네 시까지 일하면 되고, 여기는 딱히 정해진 시급이 없으니까…….” “예?”
“일단 수습 조율사가 받는 만큼 드리겠습니다. 3500탈리.” 3500탈리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본다. 방세에 보탤 만큼 큰돈은 아니지만 스승이 또 가계부를 파탄 냈을 때 영양 젤리를 먹지 않아도 되는 돈이다.
“좋아요.” “월급은 현금으로 받습니까? 아니면 계좌로 이체해드릴까요?”
“무조건 현금이요!” 생활비 통장으로 받았다가는 제이가 공돈 생겼다며 이상한 부품을 사댈 것이 뻔했다.
“아, 이름 물어보는 걸 깜박했네. 저는 유리입니다.” “케이에요. 편하게 불러주세요.”
케이는 튜닝숍 사장과 악수했다. 기계를 오래 만진 사람의 손이었다. 케이는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케이, 나 아무래도 일을 너무 받은 것 같은데.” 돌아오자마자 스승님이 일정표 앞에서 끙끙대고 있었다.
“무슨 소리죠? 아까 일정 다 정리했는데.” “내가 기계화 의체는 가끔 공짜로 만들어도 인형은 돈 받고 팔잖아?”
“스승님은 인형사니까요.” “마르스 일을 해결했더니 인형사란 소문이 나서, 인형을 팔라는 사람이 확 늘었어.”
“가격 올려요.” “돈은 수집가나 호사가한테 뜯으면 되는 거야! 같은 도안으로 만든 헝겊 인형도 여기서는 20탈리에 팔지만 전시하고 싶은 놈들한테는 200만 탈리를 받아야 하는 거라고!”
“그래서 우리가 영양 젤리로 연명하는 게 아닐까요…….” “나, 충동구매를 반성하려고 일단 들어오는 의뢰는 모두 받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케이는 이번 달 일정을 보았다. 자기 능력을 과신한 스승이 어린이 11명에게 헝겊 인형을 3탈리에 주겠다고 약속했고, 태엽을 감으면 움직이는 장난감을 원하는 남자와 미팅도 잡아놨다. 가마도 없는데 도자기 인형은 어떻게 만들려고 예약을 잡았을까?
“스승님, 왜 이렇게 대책 없이 받았어요?” “헝겊 인형 만드는 것만 도와줘……. 태엽 인형하고 도자기 인형은 어차피 오래 걸리는 거니까 괜찮은데 헝겊 인형은 사흘 후에 한꺼번에 준다고 했어…….”
“하루 종일 헝겊 인형만 만들어도 다음 달이 될 것 같은데요.” “다 할 수 있을 줄 알았어……. 그런데 부자재도 없고, 이사하면서 천도 다 두고 왔잖아, 그걸 깜박했어.” 아침에 잠깐 자리를 비웠다고 시스템이 이렇게 순식간에 망가지다니. 이런 사람을 거둬서 인형사로 키운 아이(I)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부자재고 천이고 살 돈도 없는데 인형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고요?” “내가 너무 생각 없이 돈 써서 네가 고생하니까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저는 먹고살고 싶어서 오늘 아르바이트 구해 오는 길인데.” “내 옷을 찢어서라도 인형 만들어줘야겠지?”
“제 옷은 찢지 마세요.” “도와줄 거야?”
“스승님이 일을 많이 해야지 유명해져서 비싼 의뢰가 들어올 거 아니에요.” 두 사람은 식탁에 앉아, 경건한 마음으로 영양 젤리 두 봉지를 뜯었다. 큼직한 젤리는 이제 보기만 해도 토할 것 같다.
“아르바이트는 어떻게 구했어? 섹터 3은 마음에 들어?” “비오-아우토 달고 있다고 쫓아내는 사람은 없었네요.”
케이는 스승의 오른팔을 본다. 제이는 자기 팔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디자인이 지나치게 투박하다나. 하지만 케이는 저 팔이 믿음직스러웠다. 손가락마다 희귀한 미세 정비 도구가 탑재되었고, 소재는 가볍고 튼튼한 합금이었다. 특히 새끼 손가락에 달린 전기 충격기는 어디에든 쓸 수 있는 최고의 도구였다. 저 멋진 팔을 그저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가리고 다니다니, 영양 젤리는 두 개씩 먹는 인간이 미감은 뭐 그렇게 민감한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기계화 의체!” “……기계화 의체를 쓴다고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없었어요. 그런데 다들 튜닝을 요구했어요.”
“튜닝? 그거 엄청 비싸지 않나? 심지어 우리 작품은 독자 규격이라 튜닝도 맞춤으로 해야 해. 그럼 더 비싸지지.”
“스승님이 좋아할 만한 엔티크 찻집에서는 흡착 지문을 튜닝하라 했고요, 옷가게에서는 흡착 지문은 필요 없고 부드러운 스킨을 입히라고 했어요. 아, 책방에서는 비오-아우토 낀 사람은 안 받았어요. 무거운 걸 너무 많이 옮기니까 조율을 받게 된다면서…….” “내 작품에 흡착 지문이니 스킨을 씌워도 돼. 네 돈으로 씌울 수 있다면 말이야.”
스승은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케이는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았다.
“튜닝해보는 것도 경험이려나. 그런데 조율할 일은 만들지 말자. 그거 하느니 팔을 새로 만드는 게 나아. 그렇다고 또 부숴오면 팔 대신 몽키 스패너 달아버릴 거다.” 당장 저녁 사먹을 돈도 없어서 영양 젤리를 먹는데 무슨 튜닝이람. 케이는 꾸역꾸역 젤리를 다 먹었다. 배가 불러도 불행한 기분이 들다니, 영양 젤리는 섹터 3 최고의 발명품이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는 어디서 하기로 했어?” “튜닝숍이요. 이름이 메이였어요. 월급은 밥 먹을 정도는 받아요.”
“너, 나 몰래 수습 조율사 신청하고 온 거 아니지?” “제가 스승님을 그렇게까지 미워하진 않아요.”
케이는 제이가 밉지 않다. 스승 제이가 가계부를 펑크내는 만큼 케이는 그가 정성 들여 만들어준 의수를 부숴서 스승의 속을 긁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인생을 통째로 제이에게 넘겨버린 어머니를 원망하는 것보다 제이와 돌아가며 사고 치고, 치고 받으며 사는 게 나았다. 선택할 수 없던 삶일지언정 그 삶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외적인 추가 기능은 튜닝해도 아마 별 문제 없을거야. 하지만 의체의 움직임이나 네가 느끼는 감각에 간섭하는 튜닝은 하지마. 생체칩이 호환되지 않아서 엄청 위험해.” 스승은 자기 목뒤에 박아둔 생체칩을 가리켰다. 케이도 오른손으로 목뒤를 만졌다. 오돌토돌한 칩이 만져졌다.
“인형사 칩은 쾨르퍼사 생체칩하고 달라요?” “당연히 다르지!”
“쾨르퍼사 생체칩은 쾨르퍼사에서 개발했을 텐데……. 우리 생체칩은 누가 개발한 거예요?” “내 스승님이 인형사로 활동할 적엔 인형사들끼리 네트워크가 잘 형성돼 있었대. 인형사들도 각자 전문 분야가 있으니까, 서로 협동해서 개발하기도 했다나.” 인형사 네트워크라니. 아는 인형사라고는 제이뿐인 케이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내 스승님은 전쟁 때문에 중상 입은 사람들이 많아지니까 기계화 의체의 필요성을 느끼셨어. 그래서 인형사들끼리 모여 뇌와 의체를 연결하는 생체칩을 개발하는 데 참여하셨지.”
“요즘 인형사들은 네트워크가 없나요?” “있어. 아직 너한테 안 알려준 건데.”
“없어지진 않았다니 다행이네요!” 케이는 부루퉁하게 받아쳤다.
“내가 쓰는 건 프로토타입, 네가 쓰는 건 우리 세대 인형사들이 개선한 거야.” “저도 그 네트워크 알려주세요.”
“넌 아직 꼬맹이라 안 돼.” “충동구매로 가계부 작살낸 스승님도 꼬맹이 같은데.”
“이 녀석이, 오늘은 바느질 연습할 거니까 반짇고리 챙겨 나와!” “설거지하고요!”
재봉틀이 있는데 왜 손바느질로 해야 한담. 가정에서 재봉틀로 만드는 거랑 손바느질로 만드는 거랑 똑같이 핸드메이드 아닌가. 케이는 바느질 때문에 딱딱해진 목과 어깨를 풀며 새로운 아침을 맞았다.
“케이! 오늘 퇴근하는 길에 인형 만들 원단 좀 사올래?” “점심 사 먹을 돈도 없는데 원단 살 돈이 어딨어요? 동네 사람들한테 헌 옷 기부 받아요.”
“케이는 너무 냉정해!” “저 일하러 가요.”
튜닝숍 메이에 도착하니 먼저 온 사장이 청소 중이었다. 반짝반짝한 바닥에 부품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아, 왔어요.”
“저, 뭐하면 될까요?” 사장은 대답 대신 카운터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두툼한 카탈로그가 놓여 있었다.
“쾨르퍼사 비오-아우토 종합 카탈로그입니다. 카운터 컴퓨터로 모델명을 검색하면 상세한 설명을 볼 수 있습니다. 표시해둔 부분만 익히시면 됩니다.” 사장이 표시해둔 부분은 비오-아우토 종류와 튜닝 부품 파트였다. 두 파트뿐이었지만 책의 3분의 1은 되는 양이었다. 시급을 더 받아야 했었다는 뒤늦은 후회가 몰려왔다.
“계산은 요즘 다들 생체칩으로 하니까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틈날 때마다 창고 자재 정리, 예약 체크, 청소를 해주면 되겠습니다.” “청소할 때, 이 부품 상자들, 같이 치워도 돼요?”
“처음 며칠은 고생하겠지만 일단 창고 정리만 끝내면 느긋한 근무가 될 거예요. 가게를 연 지 얼마 안 돼서 아주 어지럽지만 잘해봅시다.”
메이에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덕분에 매장 청소를 빠르게 마쳤다. 재고 확인은 점심 먹고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중에 첫 손님이 왔다.
“튜닝숍 메이입니다, 어서 오세요!” “오늘 이 시간에 예약했는데요. 이현입니다.”
케이는 컴퓨터에 그 이름을 쳐본다. 오늘 예약했고, 비오-아우토 의족에 튜닝한 보조기구를 떼려고 왔다.
“사장님! 손님 오셨어요!” 안쪽에서 식사를 준비하던 사장이 뛰어나온다. “아!”
이 사장과 스승님이 겹쳐보인다. 예약이 있는데 식사를 차리고 있었다니. 케이는 부엌에 들어가 사장의 스파게티 면을 마저 삶았다.
“생체칩을 잠시 비활성화해야 합니다.” “제가 이거 한두 번 해보는 줄 아세요?”
스파게티 소스는 여러 섹터에서 보았지만 단 한 번도 들어가본 적 없는 유기농 마켓에서 사온 물건이었다.
“……이 튜닝은 신경계에 직접 간섭해 고통을 덜 느끼게 한 거라, 몸에도 비오-아우토에도 무리가 컸을 겁니다.”
케이는 토마토 소스에 잘 삶은 면을 볶았다. 손님은 한 마디 물러서는 법 없이 받아쳤다.
“열 시간씩 서서 물건 나르는 게 어디 쉬운 줄 알아요? 먹고 살려고 튜닝했는데 이제 다른 일 찾았으니까 빼러 온 거 잖아요.” “비오-아우토를 수면 모드로 바꿔주세요.” 비오-아우토 특유의 전자음이 유쾌하게 울린다. 케이는 오래간만에 본 따뜻한 스파게티를 그릇에 담았다.
“생체칩을 비활성화하겠습니다.” 케이는 부엌에서 얼굴만 내밀어 사장이 일하는 모습을 보았다. 목뒤의 생체칩은 사장의 컴퓨터에 연결된 상태였고, 사장은 무릎 뒤쪽에 튜닝된 부품을 떼어서 바구니에 두었다. 그리고 기계 다리의 움직임을 확인하고 다시 키보드를 두드렸다.
“사장님, 스파게티 다 됐는데요.” “이 일 끝나고.”
케이는 생체칩을 비활성화하던 감각을 떠올려본다. 팔을 부숴먹으면 새 팔을 받을 때까지 생체칩을 꺼놨었다. 기계화 의체가 없으면 생체칩은 굳이 켜놓을 필요가 없었다. 인형사의 생체칩은 어디까지나 뇌와 기계화 의체를 연결하는 통로에 불과했다.
생체칩에 수면 모드가 있고, 이 모드에서 비활성화하면 정신을 잃는다니. 쾨르퍼사의 생체칩은 뇌와 더 긴밀히 연결된 모양이다. 그러면 뇌에 무리가 갈 텐데, 비오-아우토 사용자는 어떻게 괜찮은 거지?
“어우. CCTV 좀 확인할게요.” 여자는 일어나자마자 CCTV가 있는지 확인했다. 사장은 드라이버로 카메라는 저기 있다고 알려주었다.
“부품은 성공적으로 제거했습니다. 동기화가 될 때까지만 누워계시면 됩니다. 작업 영상 보시고 싶으시면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아으……. 물 좀 주세요.” 케이가 잽싸게 컵에 물을 담아갔다. 물 한 잔을 다 마시고 컵을 내려놓을 즈음, 다리에서 동기화 완료를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부품은 가져가시겠습니까? 여기 두고 가시면 10퍼센트 할인해드립니다. 멤버십도 가입하시면 다섯 번째 예약마다 20퍼센트 깎아드려요.” “부품은 가지시고 결제는 생체인증으로 할게요.”
“오늘 아르바이트생이 와서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아르바이트생이 도와드려도 될까요?” “상관없어요.”
스캐너가 여자의 정맥을 읽었고 결제가 끝났다. 여자가 가게를 나갔다. 두 사람은 식은 스파게티를 먹었다.
“스파게티를 잘하는군요.” “스파게티는 못하는 게 더 어려운 음식인걸요.”
아까 카운터에서 찍히는 가격을 보고 케이는 기절할 뻔했다. 역시 이런 세계에서 유기농 채소를 사 먹는 사람은 그만한 돈을 벌어서였다.
“왼팔이 뼈대만 있어서 보급형인가 싶었는데, 쾨르퍼사 제품이 아니군요?” “예? 그게 보여요?” 보통 사람들은 케이의 왼팔을 보면 쾨르퍼사의 비오-아우토 중에서도 보급형인데, 하도 험하게 써서 외장이 다 벗겨졌다고 짐작했다.
“개인 제작품인가요?” “네.” 사장은 더 묻지 않았다.
“우리, 앞으로 점심은 스파게티 먹으면 안 돼요?” “그러죠.”
케이가 스파게티를 먹기 위해 출근한 지도 벌써 열흘이 지났다. 점심을 제대로 챙겨 먹으니 그새 키가 또 자라 바지 밑단이 짧아졌다.
“알리오 올리오라고 알아?” 사장은 어느새 편하게 말을 걸어왔다. 케이는 아저씨한테 존대를 듣고 싶지도 않았고, 그의 반말은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알리오 올리오?” 사장은 여러 가지 스파게티 조리법을 알았다. 그동안 마트의 토마토향 소스, 크림 소스로만 스파게티를 만든 케이는 잘 모르는 것들이었다.
“마늘하고 올리브유로 만드는 스파게티야.” “먹어볼래요.” 케이는 한창 배고플 나이였다. 섹터 3에 온 후로 영양 젤리로는 채워지지 않는 허기에 시달렸는데, 여기서 일할 때는 그 허기를 잊을 수 있었다.
“재료가 없네. 마트 좀 다녀올게. 오전 예약 없으니까 편히 있어.” 사장은 차 열쇠를 들고 나갔다. 케이는 카탈로그를 읽었다.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손님이 들어왔다. “여기가 부품 떼어준다는 곳이야?”
“네. 그런데 지금 사장님 안 계셔요. 저는 할 줄 모르고요. 여기 앉아서 기다리실래요?” 손님의 다리는 심상치 않았다. 여러 튜닝 부품을 붙였는데 호환이 안되는지, 이 비오-아우토를 ‘다리’라고 부르는 건 어폐가 있었다.
“내가 항구에서 일을 하거든. 어제부터 몸이 잘 안 움직여. 항구 조율사가 당장 튜닝 전부 떼고 조율부터 다시 하라며 여기 알려줬어.” “사장님이 지금 안 계세요.”
“학생은 수습 조율사 아니야? 그럼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케이는 인형사지 조율사가 아니었다. 어떻게 떼는지는 안다. 사장을 흉내내면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이 다리는 흉내내는 정도로는 못 떼어낸다.
“저 조율사 아니라니까요.” “튜닝 거리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건 수습 조율사라는 뜻이야!”
“저는 진짜 아르바이트라니까요? 사장님 곧 오실 거예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돈은 부두에서 지불하니까 일단 해달라고! 이 빌어먹을 다리 좀 어떻게 해봐!” 계속 버티면 매장도 엉망진창이 되고 자신도 다칠 것 같았다.
“저 진짜로 할 줄 모른다니까요! 저 여기서 청소하는 애라구요!” “그건 수습이면 다 하는 일이잖아!” 차라리 시늉이라도 하며 시간을 끄는 게 안전할 것 같았다. 케이는 카운터에서 나와 사장이 튜닝할 때 앉는 의자에 앉았다.
“저 진짜 못한다고 말씀드렸어요. 사고 나면 아저씨가 잘못한 거예요. 일단 비오-아우토 비활성화해주셔요.”
“그거 안 돼.” “네?”
“계속 밤낮 교대하면서 하는 일이라 수면 모드로 돌려놓으면 다시 동기화되는 데 30분이나 걸려. 30분 동안 못 걷는다고.” 컴퓨터가 이러면 일단 싹 밀어버린 다음에 본체를 새로 깔면 되는데,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지? 생체칩을 꺼야 하나? 비활성화가 안되는데, 생체칩을 어떻게 멈추지? 이 손님 머리를 때려서 기절시키는 수밖에 없나?
“아저씨, 아저씨 다리 모델명 뭐에요?” “발바닥에 새겨져 있어.”
케이는 발바닥에 새긴 모델명을 카탈로그에서 찾아냈다. 시간을 있는대로 끌었는데도 10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이 남자의 다리는 카탈로그에 있는 그 비오-아우토가 아니었다. 완전히 다른 모양이었다.
“내가 예전에 동기화 가속기하고 수면 모드를 완전히 비활성화하는 튜닝을 받았거든? 일단 그것부터 제거해봐.”
“동기화 가속기……. 수면 모드 비활성화…….” 남자 말대로 수면 모드 비활성화 튜닝을 제거해야 그 다음 순서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케이는 카탈로그와 남자의 비오-아우토를 비교하며 겨우 수면 모드 비활성화 튜닝을 찾아냈다.
“늦어서 미안! 차가 너무 막혀서…….” 장바구니를 든 사장이 돌아왔다. 그때 케이는 시간 끌기에 실패하고, 남자의 위협을 못 이겨 수면 모드 비활성화 기기를 막 떼어낸 참이었다.
“아, 악!” 다리에서 빠지직 소리가 들렸다. 남자가 쇼크에 기절했다.
“아이고……. 일단 이리 와봐. 별일 아니야, 괜찮아.” 케이는 벌받는 기분으로 사장 옆에 앉았다.
“부품은 잘 빼냈어. 방법이나 순서가 잘못된 게 아니라, 비오-아우토가 원래 이런 기계여서 벌어진 일이야.”
“몰랐어요. 죄송해요.” “지금은 설명을 들어.” 사장은 차분하게 설명하면서 비오-아우토 연결부를 몇 번 두드렸다. 손님의 다리가 편하게 늘어졌다.
“비오-아우토에 튜닝을 하든, 원래대로 돌리든 가장 먼저 해야할 작업은 생체칩 비활성화야.”
“죄송해요……. 하면 안 되는 거 아는데, 못 한다고 말해도 빨리 하라고만 하셔서…….” 유리 사장은 케이의 말을 듣더니 폐쇄회로 영상을 확인했다.
“버텼으면 더 위험해질 뻔했어. 네 잘못 아니야.” “생체칩을 꺼야 하는 것도 알았는데, 아저씨가 튜닝을 너무 많이 해서 꺼지지도 않고요. 전기가 흐르는 채로 어떻게 빼내긴 했는데, 죄송해요…….”
“케이가 쓰는 생체칩도 개인이 만든거니?” “네…….”
“비오-아우토의 생체칩은 기계화 의체를 착용자의 실제 몸으로 여기게 해. 그래서 튜닝이나 조율 전엔 반드시 생체칩을 비활성화하는 거고.” 사장은 케이가 떼어낸 부품을 보았다.
“손재주가 꽤 좋구나. 신경계에 직접 연결되는 튜닝이 한두 개가 아니라 조금만 틀어졌어도 난리 났을 텐데.”
“죄송해요.” “혼내는 거 아니야. 내가 가르쳐주고 싶을 정도야.”
“……정말요?” 울면서도 눈을 반짝이는 케이를 보고 유리 사장도 웃었다.
“일단 오늘은 돌아가서 쉬어. 알리오 올리오는 내일 먹자.” 가게 밖은 여전히 시끌벅적하다. 새 튜닝 부품 광고가 눈을 어지럽힌다. 흘러가는 대화에서는 비오-아우토 튜닝을 새로 해야겠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당신들은 튜닝이 자신을 해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알고 있다면, 어째서 그렇게까지 튜닝하는 거야?
세계가 불현듯 케이를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