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보그는 기계적 요소가 결합된 생명체를 뜻한다. 넓은 의미로는 손상된 뼈나 관절을 인공 뼈나 인공 관절로 대체한 사람, 치아 임플란트 시술을 받은 사람도 사이보그의 범주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보통은 능동적으로 작동하는 기계장치를 체내에 이식한 경우를 사이보그라고 부른다. 흔히 ‘인공보철’이라고 부르는 이 기계장치들은 전자 의수나 로봇 다리처럼 신체의 일부를 대체하거나 인공심장, 인공망막, 인공와우(달팽이관)처럼 손상된 장기의 기능을 대체한다. 영화의 사이보그도 사고로 인해 잃어버린 신체 부위를 각종 기계장치로 교체한다.
하지만 사이보그는 잃어버린 신체 기능을 최대한 회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신체 능력을 업그레이드시킨다. 이와 유사한 설정은 사이보그가 등장하는 SF(공상과학) 영화인 ‘600만 불의 사나이’ ‘로보캅’ ‘공각기동대’ 등에도 등장한다.
바이오닉 팔, 촉감도 느낀다
사이보그가 장착한 전자 의수는 사이보그의 원래 팔의 일부가 남아 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현재 기술로도 어느 정도는 구현이 가능하다. 남아 있는 팔에서 근육이 만들어내는 근전도(EMG)라는 전기신호를 측정해서 전자 의수를 제어하는 기술이 개발됐기 때문이다.
원리는 간단하다. 우선 남아 있는 팔 부위와 전자 의수가 닿는 부위에 ‘전극(electrode)’ 조각을 여러 개 붙인다. 그러면 전극은 바로 아래 운동신경세포가 만들어내는 근전도 신호를 읽어낼 수 있다. 전자 의수에 내장된 마이크로컴퓨터가 근전도 신호를 실시간으로 분석해서 어떤 신경에서 신호가 발생한 것인지를 파악한 뒤 손목이나 손가락에 부착된 전기모터를 작동시킨다.
이런 기술이 가능한 이유는 손이 잘려 나간 뒤에도 여전히 뇌에서는 잘린 손의 손가락을 움직이는 근육을 향해 ‘동작하라’는 명령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출시되는 전자 의수는 손동작을 20가지 이상 만들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손가락 끝에 압력센서를 부착한 다음 손끝에 가해지는 압력의 크기에 비례해 남아 있는 팔 부위에 전류를 흘려줌으로써 손끝의 감각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하는 기술도 개발됐다. 따라서 사이보그의 팔 끝에 전자 의수처럼 달린 캐논포를 작동시키는 것 자체는 일도 아니다.
남은 숙제는 좀 더 복잡한 손동작을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할 수 있는 전자 의수를 개발하는 것이다. 인간의 손은 29개의 관절, 34개의 근육, 그리고 123개의 인대로 구성돼 있으며, 이들의 조합으로 만들 수 있는 손 동작은 무려 100가지가 넘는다.
바이오닉 다리로 더 빨리 달릴 수 있을까
사이보그의 여러 능력 중에서 가장 현실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기술은 의외로 로봇 다리 기술이다. 우리는 매일 아무런 어려움 없이 걸어 다니기 때문에 걷는 동작이 별 일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지만, 성인 남성의 경우 두 다리로 70~80kg에 이르는 육중한 몸무게를 지탱하며 실시간으로 몸의 균형을 잡는 것은 대퇴부에서 발끝까지 수많은 근육과 관절의 조화로운 협업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로봇이 인간과 유사하게 이족 보행을 하기 위해서는 한쪽 다리만으로도 중심을 잡고 설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한 제어가 가능한 휴머노이드 로봇과 달리 사이보그의 상체는 절반만 로봇이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몸의 무게 균형을 잡아주기가 매우 어렵다. 물론 센서 기술과 컴퓨터공학의 발달에 힘입어 실시간으로 무게 중심의 변화를 알아내는 일은 가능해 졌지만, 쓰러지려는 몸을 바로 일으켜 세우는 기술을 구현하기까지는 20년 이상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관점에서는 로봇과 인간의 몸이 군데군데 결합된 사이보그가 인간보다 더 민첩하게 달리고 심지어 날아다니는 모습은 영화적인 상상력에 가깝다. 로봇공학자들에게 사이보그 설계를 맡겼다면 ‘아이언맨’처럼 육중한 슈트나 외골격 로봇에 인간의 몸이 올라타는 형태를 내놨을 것이다. 로봇 무게가 사람 몸무게에 비해 훨씬 무거우면 균형 잡기가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
뇌에 칩 삽입해 뇌와 컴퓨터 직접 연결
사이보그는 자신의 몸을 컴퓨터 네트워크에 접속해 지식을 무한히 습득할 수 있고 전투 전략이나 악당에 대한 정보를 획득해서 멤버들에게 알려줄 수도 있다. 인간은 주로 시각이나 청각을 이용해 정보를 습득하지만 사이보그는 뇌와 연결된 컴퓨터로부터 직접 정보를 전달받을 수 있다. 이와 유사한 설정은 수많은 SF(공상과학)영화에 등장하는데, ‘매트릭스’ ‘공각기동대’ ‘아바타’ 등이 가장 대표적이다.
이 기술은 뇌-기계 접속(BMI·Brain-Machine Interface) 또는 뇌-컴퓨터 접속(BCI·Brain-Computer Interface)이라고 불리며 실제로 전 세계 많은 뇌공학 연구소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물론 영화에 등장하는 수준의 뇌-컴퓨터 인터페이스가 구현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우선 ‘뇌의 언어’를 이해해야만 한다. 지난 100여 년의 신경과학 연구로부터 특정한 신경세포가 활성화되면 세포 내에서 활동전위의 생성 빈도가 증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마치 모스 부호와도 같은 신경 암호를 해독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전혀 찾지 못하고 있다.
신경세포가 만들어내는 복잡한 뇌의 언어 체계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각종 지식을 암호화해서 뇌에 주입하는 것도 허황된 꿈만은 아니다. 실제로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연구팀은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전환하는 해마 부위에 전기 자극을 가해 기억을 조절하는 ‘해마 칩’을 개발하고 있다.
한편 뇌에서 신경 신호를 읽어 오거나 뇌에 자극을 가하기 위해서는 두개골을 절개해서 전극을 삽입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감염 위험이 큰 수술을 거치지 않고 뇌에 미세한 전극을 집어넣는 방법도 개발돼야 한다. 올해 3월 전기자동차업체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는 ‘뉴럴링크(Neuralink)’라는 이름의 벤처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주사 바늘을 이용해서 두개골 안에 그물망 형태의 전극을 삽입한 뒤, 뇌 표면을 따라 부착하는 방법으로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뉴럴링크의 궁극적인 목표도 역시 머리 밖에서 뇌로 직접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다.
생물학적인 뇌 신경망과 반도체 회로망을 연결하는 것은 간단한 일은 아니다. 우리 뇌는 신경세포의 전기적 활동에 의해 작동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복잡한 뇌의 활동을 전기적인 현상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다양한 호르몬이나 신경전달물질에 영향을 받기도 하고, 최근 밝혀진 바에 따르면 심장 박동도 뇌 활동에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저명한 뇌공학자인 에드워드 보이든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신경세포와 반도체 칩을 연결해 새로운 지능을 만들어 내는 것이 다음 세기 뇌 연구의 주요 목표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사이보그라는 캐릭터에 투영된 인간의 상상력을 현실로 만드는 일은 이 글을 읽는 바로 여러분들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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