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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원더우먼 굴복의 팔찌, 천의 얼굴 플라스마로

 

원더우먼이 손목에 무장한 ‘굴복의 팔찌’는 그리스의 신 제우스가 그의 딸 아테나에게 준 이지스(aegis) 방패로 제작된다. 신의 방패답게 팔찌는 총알은 물론 슈퍼맨의 두 눈에서 발사되는 ‘히트 비전’도 막아낸다. 또 얼굴 앞에서 굴복의 팔찌를 십자형으로 모으면 엄청난 에너지 펄스가 발사된다. 공격과 방어가 둘 다 가능하다는 점에서 경쟁사 마블의 히어로인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보다 한 수 위라고 하겠다.

 

이론적으로는 굴복의 팔찌를 플라스마 기술로 만들 수 있다. 플라스마는 기체에 높은 온도를 가했을 때, 기체 분자를 이루는 원자들이 원자핵과 전자로 분리된 상태를 말한다. 이때 플라스마는 다양한 특성을 갖는다. 양이온과 전자가 분리돼 있기 때문에 전기 전도도가 무한대에 가깝다. 전기장과 자기장을 걸어주면 양이온과 전자가 가속되거나 자기장 주위를 회전하면서 빛을 내기도 한다. 진동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외부에서 가열할 수 있고, 화학적인 반응성도 뛰어나다.

 

 

‘플라스마 창’으로 보호막 만들어


플라스마는 강력한 보호막 기능도 할 수 있다. 실제로 항공우주 겸 군수 업체인 미국 보잉은 플라스마를 사용해 광선과 충격파를 막아주는 ‘플라스마 장(plasma field)’을 개발하고 2015년 3월 미국 특허청으로부터 기술 특허를 받았다.

 

포탄은 피한다고 전부가 아니다. 포탄을 직접 맞지 않아도, 포탄에서 날아오는 2차 피해가 있다. 포탄이 폭발할 때 생긴 엄청난 에너지가 만드는 충격파다. 이 충격파는 인근의 사람과 장비에 막대한 영향을 준다. 탱크는 멀쩡해도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이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얘기다.

 

 

플라스마 보호막은 이런 충격파를 완화시킨다. 원리는 간단하다. 고에너지 레이저로 폭발 지점과 보호 대상 사이의 공기를 방전시켜 플라스마를 생성한다. 이 플라스마는 주변 공기의 온도, 밀도, 조성을 변화시킨다. 이런 공기를 충격파가 지나면 반사, 굴절, 흡수되면서 충격파의 에너지 밀도가 낮아진다. 이 방법은 공기를 순간적으로 이온화시켜서 플라스마 보호막을 만들어내므로, 폭발을 빠르게 감지하는 센서가 수반돼야 한다. 원더우먼이 적의 공격이 왔을 때 재빨리 팔을 들어 방어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편 일정 기간 투명하게 유지되는 보호막도 플라스마로 구현할 수 있다. 1995년 미국 브룩헤이븐국립연구소(BNL)의 물리학자 어디 허쉬코비치가 첫 가능성을 열었다. 그는 진공 챔버 안으로 외부 공기가 들어오는 것을 막는 용도로 플라스마를 사용했다.

 

이론물리학자이자 미래학자인 미치오 카쿠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는 이것을 좀 더 발전시켜 ‘플라스마 창(plasma window)’을 제안했다. 플라스마를 전기장과 자기장으로 가둬 하나의 막을 만들고, 그 안쪽에 고에너지 레이저를 사용해 또 하나의 커튼을 만든다. 레이저 막 안쪽에는 다시 탄소나노튜브로 그물을 만들어 적이 쏘는 광선이나 포탄을 삼중으로 막는 보호막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플라스마를 높은 밀도에서 오랫동안 가둬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좁은 공간에 감금된 플라스마는 주변으로 확산하려는 성질을 띠기 때문이다. 한 예로 핵융합 연구 분야에서는 플라스마 감금이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다. 핵융합, 즉 원자핵 두 개를 충돌시켜 새로운 원자핵을 만드는 반응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섭씨 1억 도가 넘는 초고온의 플라스마를 장시간 운전해야 한다. 이를 위해 토카막 장치와 같은 강력한 자기장을 내는 특수 설비가 필요하다.

 

 

초속 4km 충격파 쏘기도


원더우먼은 두 팔찌를 교차해 강한 에너지를 방출하기도 한다. 허무맹랑하게 보이지만 실제로 플라스마를 활용한 공격용 무기가 있다. 1990년대 러시아는 50km고도에 있는 목표물을 파괴할 수 있는 플라스마 무기를 개발했다. 미국과 공동으로 플라스마를 이용해 태평양에서 날아오는 미사일을 격추하는 실험도 진행했다. 러시아는 올해 1월에도 플라스마 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자세한 원리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플라스마 무기는 충격파를 발생시켜 쏘는 것으로 추정된다. 레이저로 국소 부위에 높은 에너지를 조사하면 플라스마가 발생한다. 생성된 플라스마는 레이저 빔의 에너지를 흡수해 고온 고압 상태다. 여기까지는 앞서 소개한 플라스마 보호막을 만드는 방법과 동일하다.

 

그런데 레이저를 추가로 쏘거나 하는 방법으로 플라스마의 온도와 압력을 높이면 이것이 주변의 공기와 상호작용을 일으켜 충격파를 발생시킨다. 충격파는 플라스마와 분리돼 초속 4km가 넘는 극초음속으로 전파된다. 전파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빠르게 움직이는 대상도 정확하게 요격할 수 있다.

 

영국의 최대 방산 업체인 BAE시스템스는 공기 중에 플라스마 렌즈를 만들어 이것을 보호막 겸 거울처럼 사용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지상으로부터 레이저 공격을 받았을 때 전투기 바로 아래쪽에 플라스마 렌즈를 생성하면 공격을 막고, 또 반사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상대방의 공격을 흡수한 뒤, 이를 역이용해 뿜어내는 굴복의 팔찌처럼 말이다.

 

 

플라스마는 고체도 액체도 기체도 아닌 제4의 상태다. 유리구에 기체를 희박하게 채우고 중심에 주파수가 높은 고압의 교류 전압을 걸어주면 기체 분자가 원자, 원자핵, 전자로 분리되면서 플라스마 상태가 된다. 플라스마는 전기적, 자기적, 화학적 물성이 독특해 다방면에 활용된다.

 

 

 

진실의 올가미는 고분자전해질로


원더우먼의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무기가 진실의 올가미다. 1941년 원더우먼 캐릭터를 처음 만들어낸 DC코믹스의 편집자문위원이었던 윌리엄 몰튼 마스턴은 실제로 혈압을 측정해 거짓말을 탐지하는 기기를 발명한 심리학자다. 영화 속 진실의 올가미는 묶인 상대를 무력화할 뿐 아니라, 상대가 환각이나 기억상실 상태일 때 치유하는 효과도 있다. 대장장이 신 헤파이토스가 대지의 신 가이아의 황금 벨트를 소재로 만들었다는 설정인 만큼, 절대로 끊어지지 않고 원하는 대로 늘릴 수 있다.

 

현실에서 진실의 올가미를 만든다면 인공 근육의 소재로 각광받는 고분자전해질이 적합할 것이다. 고분자 전해질은 부피가 최대 600%까지 늘어날 수 있다. 그리고 고분자전해질 표면에 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 분의 1m) 크기의 작은 패턴을 새기면 표면의 부피가 증가하면서 물체를 단단히 잡는 효과도 낼 수 있다. 이는 문어 빨판과 유사한 원리다. 물체에 대고 눌렀다가 떼면 빨판과 물체 사이 공간이 진공 상태가 돼 흡입력이 발생한다. 습기가 많은 곳에서도 한 번 잡으면 놓치지 않는다.

 

고분자전해질은 전류를 흐르게 하는 성질도 있다. 즉 슬픔, 기쁨 등의 감정을 느낄 때 특정 시냅스에 흐르는 전류(이온의 흐름)를 감지할 수 있다. 거짓말을 할 때 나오는 특정 뇌파가 있다면 이것을 알아내고, 진실을 말할 때까지 전기로 고문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뇌에서 흐르는 전류를 분석해 사람의 감정을 파악하고 이것을 로봇의 표정으로 변환하는 연구는 실제로도 이뤄지고 있다.

 

원작자인 마스턴은 원더우먼이라는 캐릭터를 제안하면서 ‘위대한 힘을 가졌지만, 사랑이 넘치는 히어로’를 강조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원더우먼의 무기는 창으로 쓰일 때도 있지만 방패가 되기도 하고, 때론 누군가를 치유하기도 한다. 무기는 사람을 해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지키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담긴 게 아닐까. 플라스마로 강력한 미래 무기를 만드는 사람들이 잊지 않아야 할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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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영혜 기자
  • 도움

    석희용 광주과학기술원(GIST) 물리·광과학과 교수, 박문정 포스텍 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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