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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아쿠아 맨의 삼지창 초속 100m 초공동 어뢰로

 

수중 무기를 개발할 때 일반적으로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소음이다. 육지와 달리 물의 마찰로 저항력이 생기고, 이로 인해 소음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소음은 물속에서 나의 위치를 알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다. 따라서 소음을 얼마나 잘 숨기는가, 또 얼마나 잘 찾아내는가가 수중 무기의 기술 수준을 판가름하는 척도다.

 

그런데 이 공식을 완전히 깨는 예외가 하나 있다. ‘초공동(Supercavitation) 어뢰’라는 새로운 무기다. 초공동 어뢰의 속도는 순항미사일(크루즈미사일)이나 고속철도와 맞먹는 시속 약 370km다. 즉 물속에서 1초에 100m 이상 이동하면서 적의 군함을 1분 안에 궤멸 시킨다. 일반 어뢰보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지만, 알아도 피할 수 없다. 초공동 어뢰는 해상에서 사용되는 무기 가운데 가장 치명적인 무기로 꼽힌다.

 

 

물에서 ‘날아가는’ 비결은 초공동 현상

 

 

빠른 속도의 비결은 초공동 현상이다. 공동 현상은 유체 속에 기포(bubble)가 생기는 현상으로 열 또는 압력, 두 가지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 열에 의한 공동 현상은 우리가 라면 물을 끓일 때 자주 접한다. 뜨거워진 바닥에서 기포가 보글보글 올라오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물이 없는 빈 공간인 기포, 즉 공동이 생긴 것이다.

 

압력은 ‘베르누이의 원리’를 따른다. 선박의 프로펠러가 돌거나 잠수함이 나아가는 등 속도가 빨라지면 유체의 압력이 수증기압에 비해 낮은 곳이 생긴다. 이때 압력이 낮아진 물속에서 기체가 빠져 나온다. 또 다른 공동 현상이다. 발생한 기포가 압력이 높은 지역으로 이동하면 다시 액체로 돌아가려 하는데, 이때 큰 에너지를 방출하면서 소음이나 진동을 발생시킨다. 이는 프로펠러의 효율을 떨어뜨리고 프로펠러의 표면을 침식시킬 수 있기 때문에 선박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연구 주제다.

 

초공동 현상은 이런 공동 현상이 크고 강하게 발달해 기포가 물체를 완전히 뒤덮은 현상을 말한다. 초공동 어뢰는 초공동 현상을 영리하게 이용했다. 유체역학적으로 기포는 물체의 진행을 방해하지만, 기포가 물체를 완전히 덮으면 물체 표면의 마찰저항이 거의 사라진다. 수중물체의 크기, 모양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전체 마찰저항의 최대 80%를 감소시킬 수 있다. 이는 삼지창을 육지에서 던진 것처럼 삼지창의 속도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물체의 속도가 2배로 증가하면 운동에너지는 4배가 된다.

 

 

초공동 잘 생기는 삼지창 디자인은?


공동이 만들어지는 정도는 물체 주위의 압력과 반비례한다. 속도가 빠를수록 압력이 낮아지고 공동도 크게 만들어진다. 따라서 초공동 현상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어뢰를 발사하는 초기에 직진 속도가 초속 70~100m가 될 수 있도록 강하게 발사해야 한다. 그러면 발사 직후 1~2초 만에 투명한 기포가 어뢰 전체를 확 감싼다. 추진 기관은 보통 제트 엔진을 사용한다.

 

또 ‘캐비테이터(Cavitator)’의 면적도 잘 계산해야 한다. 캐비테이터는 초공동 어뢰 가장 앞부분에 달려 있다. 이것은 의도적으로 물의 저항을 높여서 물이 더 많이 흐트러지도록 만들고(유동 박리·flow separation), 결국엔 공동 현상이 잘 일어나도록 돕는다. 물체가 유체 속을 움직일 때 이 움직임에 저항하는 힘인 항력은 유체의 밀도, 속도의 제곱, 운동 방향에 수직한 단면적의 곱에 비례하므로 캐비테이터의 면적이 넓을수록 저항하는 힘은 커진다.

 

그러나 캐비테이터의 면적을 무한정 늘릴 수는 없다. 초기 직진 속도가 떨어지면서 초공동화 현상이 발생하는 데 어려움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1970년대 말 세계 최초로 러시아가 개발한 초공동 어뢰 ‘쉬크발(VA-111 Shkval)’은 어뢰 전체의 길이가 8.2m, 지름이 53.3cm로 이때 캐비테이터의 지름은 약 20cm로 설계됐다. 이 비율로 수중에서 장거리로 던지는 삼지창을 설계한다면, 창의 길이가 2m라고 가정했을 때 캐비테이터의 지름은 5cm 정도가 적당하다.

 

문제는 삼지창은 포크처럼 창살이 여러 개로 갈라져 있어 초공동 현상이 유지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각각의 창살에 초공동 현상이 생기더라도 이것들을 가로로 잇는 가로방향 봉 때문에 초공동이 길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창살 간의 거리를 최대한 좁히거나, 당초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더 넓은 캐비테이터를 선단에 부착해야 한다.

 

캐비테이터의 모양은 원판형이 유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캐비테이터는 나라마다 모양이 다르고, 이것이 곧 그 나라의 제작 노하우다. 러시아는 쉬크발의 캐비테이터를 원판형으로 제작했다. 추진 에너지가 많이 들더라도 초공동이 크게 생기는 디자인을 택한 것이다. 반면 독일은 원뿔형 캐비테이터를 사용해 아주 얇은 초공동 현상을 유도한다. 발생 방식이 조금 더 까다롭지만, 추진 에너지와 속도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디자인이다. 아쿠아맨은 ‘삼지’창을 던져야 하므로 조금 힘이 들더라도 러시아의 전략이 적합하다.

 

 

힘은 절반으로, 속도는 배로


독일은 현재 초공동 어뢰의 속도를 기존의 2배인 시속 800km로 높이는 연구를 하고 있다. 핵심 아이디어는 ‘환기법(Ventilation)’이다. 초공동 어뢰는 일반 어뢰에 비해 추진 에너지가 훨씬 많이 필요하다. 때문에 초공동 어뢰의 상당 부분은 연료가 차지하고, 이것이 어뢰의 무게를 증가시켜 추진 효율을 떨어뜨린다.

 

 

대전에 위치한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KRISO)가 운영 중인 고속 공동 수조의 일부분(왼쪽). 수조 속에서 물을 빠른 속도로 흘려보내 수중체의 초공동 현상을 연구한다(오른쪽).

 

 

과학자들은 어뢰를 발사할 때 나오는 배기가스를 버리지 않고 모아 캐비테이터 후방에서 다시 분사하는 환기법을 고안해냈다. 이 방법은 두 가지 장점을 가진다. 첫째는 초공동이 생성되기 전까지 물체에 작용하는 불균일한 유체력을 감소시켜 안정적인 주행을 가능케 한다. 또 공동 내의 가스 압력을 높여서 공동 현상이 더 잘 일어나게 한다. 실제로 환기법을 사용하면 수중 물체의 초기 속도가 초속 5~10m만 돼도 초공동이 발달한다.

 

일반적인 초공동 어뢰는 초기 속도가 초속 70~100m로 빠르기 때문에 해류 같은 장애물을 만나면 진행 경로가 급변하는 문제도 심각하다. 도로의 속도 방지턱을 넘을 때 빠르게 넘으면 느리게 넘을 때보다 더 심하게 덜컹거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환기법을 적용하면 초반에 어뢰의 자세를 제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아쿠아맨은 저스티스리그 히어로들 중에서 가장 인지도가 낮다. 심지어 DC의 경쟁사인 마블은 아쿠아맨 같은 수중 히어로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 세계는 반대다. 러시아, 독일, 이란, 미국 등 강대국들은 향후 초공동 어뢰가 군사력에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우리나라도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KRISO)가 올해 3월 초공동 현상을 구현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고속 공동 수조(High-Speed Cavitation Tunnel)를 준공하고 본격적인 실험에 돌입했다. 길이가 16.5m, 폭이 2.4m, 높이가 9.5m인 고속 공동 수조는 물체의 주변 수압을 수증기압보다 낮추고 빠른 속도로 물을 흘려보내 초공동 현상을 발생시킨다. 연구팀은 수조를 이용해 유속, 캐비테이터 모양 등 조건에 따라 초공동 현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연구하고 있다. 이는 거대한 해양 운송체나 새로운 수중 무기를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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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영혜 기자
  • 도움

    백부근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미래선박연구부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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