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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까지 결정적인 증거들이 발견되면서 빅뱅우주론은 성공 가도를 달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몇 가지 치명적인 문제점들이 남아 있었다.

먼저 ‘위상학적 결함 문제’라는 것이 있다. 물과 얼음의 상변화를 예로 들어 보자. 물은 3차원 공간에서 어느 방향으로나 대칭성을 띤다. 그러나 온도가 내려가면 특정 방향으로 얼음 결정이 만들어지면서 대칭성이 깨진다. 우주도 마찬가지다. 뜨거웠던 초기 우주가 식으면서 물질들의 대칭성이 깨졌고, ‘위상학적 결함’들이 생겨났다(차원에 따라 이를 자기홀극, 우주 끈, 도메인 벽 등으로 부른다). 문제는, 이론에 따르면 우주 초기부터 이런 위상학적 결함들이 다른 물질보다 더 많이 존재해야 하는데 현재 우주에서 관측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평선 문제’도 있다. 너무 멀리 떨어진 두 곳의 정보가 같은 데서 제기된 문제다. 지구에서 서쪽으로 관측 가능한 최대 거리는 빛이 우주 나이만큼 진행한 거리다. 동쪽도 마찬가지다. 그럼 지구를 기준으로 우주의 양 끝이 서로 상호작용하려면 우주 나이의 2배에 해당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두 지점에서 온 정보(온도)는 다를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데 우주배경복사를 관측했더니 놀랍게도 양쪽에서 온 정보가 서로 동일했다.

마지막으로 ‘편평도 문제’가 있는데, 현재 우주가 ‘존립 가능한 우주인가’ 하는 문제다. 현재 우주의 밀도는 우주를 편평하게 만드는 임계밀도(Ω=1)와 거의 일치하는데, 그러려면 약 138억 년 전(우주 나이)에 우주의 밀도는 임계밀도에 훨씬 더 가까웠어야 한다. 예컨대, 빅뱅 후 1초가 지난 우주의 밀도는 임계밀도 1에서 편차가 10-15 이내였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주는 이미 수축했거나 훨씬 더 큰 크기로 찢어졌을 것이다.



사실 지평선 문제와 편평도 문제는 물리적으로 ‘허블 반지름’을 도입하면 해결된다. 허블 반지름은 우주가 팽창하는 동안 빛이 움직일 수 있는 최대 거리를 뜻한다(광속×팽창에 따른 시간 변화율). 물질은 항상 빛보다 속도가 느리므로, 이 반지름은 물질이 움직일 수 있는 최대 거리이기도 하다. 우주에 우리가 아는 물질만 존재한다면, 허블 반지름은 항상 증가한다.

그런데 만약 특정 기간 동안 어떤 이유에선지 허블 반지름이 감소한다고 해보자. 물질의 이동거리는 제한된다. 반면 우주는 계속 팽창하므로 정보 교환이 가능한 범위(지평선)는 자꾸 넓어진다. 이 경우 지평선 밖에 존재하던 두 입자가 지평선 안쪽으로 들어오면서 상호작용할 수 있게 된다. 우주 진화 과정에서 이런 시기가 존재했다면 우주배경복사 양 끝의 정보가 동일한 현상이 설명된다(지평선 문제 해결). 또, 아인슈타인 방정식에 따르면, (임계밀도)-1=(허블 반지름)2인데, 허블 반지름이 점점 감소하면 임계밀도가 1에 점점 수렴한다(편평도 문제도 해결).

문제는 허블 반지름이 감소하는 구간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가장 쉬운 방법은 빛의 속도가 특정 기간 동안 점점 느려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양자역학과 특수상대성이론(광속 불변의 법칙)에 위배된다. 기존 이론과 일치하는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허블 반지름이 감소하려면 압력이 에너지 밀도의 - 배보다 작은 물질이 존재해야 한다. 즉, 음의 압력(척력)을 갖는 물질이 있어야 한다. 이 경우, 우주는 급격하게 팽창한다.

1980년 앨런 구스는 위 조건을 만족하는 ‘인플라톤’이라는 스칼라 입자(스핀이 0인 보존)를 가정해 인플레이션 이론을 제안했다. 스칼라 입자의 경우, 에너지 밀도는 운동에너지와 위치에너지의 합이고 압력은 운동에너지에서 위치에너지를 뺀 값으로 주어진다. 만약 입자의 운동에너지가 0에 가까워진다고 가정하면, 입자의 에너지 밀도는 위치에너지와 같고 압력은 동일한 값에 부호만 반대가 된다. 즉, 자기자신의 에너지 밀도 크기만큼 음의 압력을 가진 물질이 된다.

짠! 이제 인플라톤의 존재로 허블 반지름이 감소하는 급팽창 구간이 신설됐다. 급팽창 기간 동안 입자들은 확장되는 지평선 안쪽으로 들어오면서 상호작용을 시작한다. 그리고 급팽창이 끝나면 다시 정보 교환이 불가능한 지평선 바깥으로 나간다. 또, 급팽창 과정에서 우주의 부피가 급격히 커지며 위상학적 결함들의 에너지밀도가 매우 작아진다. 즉, 존재의 영향이 미미해진다. 이로써 빅뱅우주론의 3대 문제가 해결됐다.
 

 

인플레이션 이론은 현대표준우주모형을 완성할 수 있는 거의 유일무이한 방법이다. 그러나 입자물리적 관점에서는 여기에도 풀어야 할 문제들이 산재해 있다. 가장 큰 미제는 인플라톤의 정체다. 지금까지 관측된 스칼라 입자는 힉스 입자가 유일하다.

인플라톤 입자가 갖춰야 할 조건을 따져보자. 언급했듯, 급팽창을 일으키려면 인플라톤 입자의 운동에너지가 (이유는 모르지만) 어느 순간 매우 작아져야 한다. 이를 ‘천천히 구르는 조건’이라고 한다. 그런데 스칼라 입자가 이렇게 천천히 구르려면 입자의 질량이 플랑크 질량에 비해 매우 작아야 한다. 힉스 입자가 이렇게 작은 질량을 가지려면 힉스 입자와 중력과의 결합계수가 약 10-11정도로 매우 작아야하는데, 이는 현대입자이론의 관점에서 매우 부자연스럽다(결합계수는 1에 가까워야 자연스럽다고 본다). 즉, 힉스 입자는 인플라톤이 아니다! 지금까지 매우 다양한 급팽창 모형이 나왔지만, 어느 것도 인플라톤의 특성을 성공적으로 기술하지 못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플레이션 이후 우주는 빛과 중성미자가 대부분을 차지했던 기간과, 이후 일반물질과 암흑물질이 대부분을 차지했던 기간을 거쳐, 암흑에너지가 대부분인 현재까지 진화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우주가 실제로 이렇게 진화했다면, 일정 기간 인플라톤이 모두 붕괴해 빛을 만들어냈어야 한다(재연소 기간). 그러나 현대 입자이론으로는 아직 재연소 메커니즘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여러 대안 이론이 나왔다. ‘빅 바운스’는 현재로부터 시간을 거꾸로 돌렸을 때, 우주가 수축하다가 다시 커진다는 모형이다. 특이점 문제를 해결하려고 제안됐다. 상대성이론에서 약간의 대칭성을 깨서 중력이 인력뿐만 아니라 척력도 작용하도록 만든 게 핵심이다(아인슈타인-카탄-시아마-키블 중력법칙). 인플라톤 입자를 도입하지 않고도 지평선과 편평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우주로 진화시켰을 때 닫힌 우주라는 결론이 나온다는 문제가 있다(우리 우주는 편평하다).


초끈 이론의 입자 가운데에서 인플라톤 입자를 찾으려는 시도도 있다(스트링 가스 모형). 그러나 아직까지 편평도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해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순환우주 모형은 빅뱅과 빅 크런치(대수축)를 반복하는 우주다. 빅뱅 이전에 우주가 팽창하므로 지평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이후 수축하는 동안 밀도 요동이 만들어져 거대구조의 씨앗이 된다고 설명한다. 그럴듯 하지만, 검증이 불가능하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급팽창 이론의 문제는, 아마도 우리가 우주초기의 양자론적 중력을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비롯됐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중력에 대한 이론으로, 자연계에 존재하는 나머지 세 가지힘(강력, 약력, 전자기력)을 기술하는 양자이론과 충돌한다. 그러므로 일반상대성이론은 양자역학의 효과가 미치지 않는 플랑크 시간 이후에만 유효하다. 다시 말해, 상대성이론에서 나온 팽창우주론은 애초에 플랑크시간 이전의 우주를 기술할 수 없다.

앞으로 급팽창의 직접적인 증거들이 관측되면 이론을 좀 더 구체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 앞서 언급한 대안이론을 검증할만큼 관측 기술이 발전한다면 현재 표준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우주론을 대치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끝끝내 관측이 되지 않는다면? 또 다른 혁신적인 이론으로 돌파하길 기대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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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석천 학술연구교수
  • 박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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