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미국 존스홉킨스대 애덤 리스 교수가 새로운 연구 결과를 ‘천체물리학저널’에 발표했다(그는 박사과정 시절 초신성 관측으로 우주가 가속팽창한다는 사실을 처음 밝혀 2011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수상했다). 연구팀은 가까운 외부 은하 19개에 속한 약 2400개의 세페이드 변광성과, 그보다 더 먼 곳에 있는 Ia형 초신성 300여 개를 관측해 허블 상수가 약 74(km/sec)/Mpc라고 주장했다. 1Mpc(메가파섹·빛이 326만 년 가는 거리) 떨어진 두 은하가 1초에 74km씩 멀어진다는 뜻이다. 기존에 플랑크 위성이 관측한 우주배경복사에서 도출된 값은 67.80(km/sec)/Mpc이었다.
사실 허블 상수가 바뀐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런데 매번 화제가 되는 이유는, 허블 상수가 현대표준우주모형과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허블 상수는 먼 은하의 후퇴 속도를 은하까지의 거리로 나눈 값으로, 우주의 팽창 속도를 의미한다. 따라서 허블 상수가 바뀌면 우주의 나이도 달라진다. 실제로 1990년대 미국 카네기천문대 소속의 앨런 샌디지와 웬디 프리드먼은 ‘허블 상수 전쟁’을 벌였다. 당시 샌디지 박사팀은 허블 상수가 훨씬 작아서 우주 나이가 200억 년이나 된다고 주장했고, 프리드먼 박사팀은 허블 상수가 훨씬 커서 우주 나이가 100억 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샌디지 박사가 2010년 타계하기 전에는 우주의 나이가 약 140억 년이라고 의견을 좁혔다).
만약 애덤 리스 교수팀의 새 연구 결과가 맞다면 우주는 이전 예측보다 약 8% 더 빨리 팽창하는 셈이다. 우주 나이는 현재 추정하는 138억 년보다 어려지게 된다.
물론 리스 교수팀의 결과가 틀렸을 수도 있다. 허블 상수를 얻는 방법은 두 가지다. 은하의 후퇴 속도와 거리를 측정해 직접 구하거나, 빅뱅 후 38만 년 뒤 방출된 우주배경복사를 분석해 간접적으로 구한다. 샌디지와 프리드먼 박사, 그리고 애덤 리스 교수팀은 전자를 이용했다.
은하의 후퇴 속도는 적색편이를 이용해 비교적 쉽게 알 수 있다. 거리는 더 복잡하다. 보통 세페이드 변광성이나 Ia형 초신성을 이용한다. 세페이드 변광성은 밝기가 변하는 주기를 측정하면 절대밝기를 알 수 있다. Ia형 초신성은 절대밝기가 알려져 있다. 이를 겉보기 밝기와 비교하면 거리를 계산할 수 있다. 프리드먼 박사팀은 세페이드 변광성을, 샌디지 박사팀은 초신성을 이용했다. 애덤 리스 교수는 둘 모두를 이용했다.
그런데 이 방법들에는 불확실성이 많다. 이석천 경상대 기초과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는 “Ia형 초신성은 폭발 후 며칠 뒤에 최대로 밝게 빛났다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어두워진다”며 “이 주기 중 일부분을 관측해 얻은 밝기 변화 그래프를 보정해서 절대밝기를 추정하는데, 그 방법이 연구 그룹마다 다르다”고 말했다.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해진다. 지금까지 먼 은하의 거리를 측정하는 데 모두 이 방법을 썼기 때문이다. 우주가 가속팽창하는 것을 밝히는 데에도 초신성 데이터가 이용됐는데, 만약 오차가 생각보다 훨씬 크다면 가속팽창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마저 제기된다(물론 아직까지는 많은 관측 증거가 가속팽창 우주모형을 뒷받침한다).
리스 교수팀의 결과가 맞고 플랑크 위성의 허블 상수가 틀렸다면 어떨까. 이 경우엔 표준우주모형을 수정해야 한다. 엄밀하게 말해 우주배경복사에서 허블 상수를 직접 구할 수 없다.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를 가정한 뒤, 복잡한 적분 계산을 해야 한다. 흔히 ‘평평한 람다 CDM 모델’이라고 부르는 현대표준우주모형은 암흑물질로 액시온이나 윔프 같은 차가운 암흑물질(CDM)을, 암흑에너지로 진공에너지를 가정한다. 아르만 샤필루 한국천문연구원 우주론연구그룹 연구원은 e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구한 값이 틀렸다면) 표준우주모형이 실제 우주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뜻”이라며 “모형의 일부분을 수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두 허블 상수가 모두 맞다면, 우주모형을 훨씬 대대적으로 수정해야 할 수도 있다. 애덤 리스 교수팀은 최근 계산한 허블 상수와 플랑크 위성의 허블 상수가 다른 이유에 대해 “우주의 가속팽창을 이끄는 암흑에너지의 세기가 우주 나이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해석을 제시했다. 연구팀은 현재의 은하를 관측한 반면, 플랑크 위성은 137억 년 전에 나온 빛을 관측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우주의 팽창 속도도 고무줄처럼 변할 수 있다. 과거 ‘허블 상수 전쟁’의 주인공이었던 미국 시카고대 웬디 프리드만 교수는 e메일 인터뷰에서 “두 허블 상수가 모두 옳다면, 현재의 표준우주론을 넘어 ‘뭔가가 더 있을’ 가능성이 열린다”라며 “매우 흥미진진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빅뱅이론의 잃어버린 조각들
Intro. 빅뱅마불게임
Part 1. 허블 상수 논쟁 끝내기
Part 2. 암흑에너지 없이 가속팽창 설명하기
Part 3. 중력 수정해 가속팽창 설명하기
Part 4. 암흑물질, 버리거나 취하거나?
Part 5. 인플레이션 끌어안기
Part 6. 특이점 없애기
Epilogue. 미래 인류가 그릴 우주는 어떤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