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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오리온은 발목 삔 아가씨

좀생이별이 뿌옇게 보이는 이유

서양신화 속의 사냥꾼 오리온은 동양에서는 삼수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때로는 물통을 지고 가다 발목이 삔 아가씨의 모습으로, 때로는 노인에게 술따르는 술됫박으로.

눈길을 북쪽하늘로 향하면 1년 내내 볼 수 있는 별들이 보인다. 별들은 하루에 한바퀴 북극성을 중심으로 하늘을 도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것은 지구가 자전을 하기 때문이다. 북극성은 지구의 자전축 방향에 놓여 있는 탓에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사실 북극성도 진짜 북극에서 약간 떨어져 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북극성을 하늘의 임금이라고 여겼다. 북극성은 사실 ‘북극오성’이라는 별자리에 속한 별인데, 북극오성의 각 별들은 왕자와 왕비를 나타낸다. 하늘에서 가장 존귀한 별들이 모여 있는 별자리라고나 할까.

동양의 옛사람들은 북극오성 둘레의 별들을 하늘 임금의 궁궐, 즉 자미원에 사는 시종들, 벼슬아치, 또는 궁궐을 지키는 장군들로 여겼다. 그러나 하늘의 궁궐치고는 화려하지 않은 모습이다. 도시에서라면 우리가 제대로 볼 수 있는 별들이 몇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주 사진을 보면,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씀이 느껴진다. 뭇 별들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돌듯이 덕으로 정치를 하면 자연스럽게 백성들이 따를 것이라는.
 

서양의 오리온은 발목 삔 아가씨


하늘의 궁궐 자미원

동양 별자리는 3백60개나 되므로 아주 복잡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동양 별자리는 크게 3원(垣)과 28수(宿)로 나눌 수 있어서 알아보기 쉽다. 3원이란 북극성 주변의 자미원, 봄철 사자자리 근처의 태미원, 초여름 별자리인 땅꾼자리 근처에 있는 천시원을 말한다.

자미원은 하늘 임금의 궁궐이고, 태미원은 관리들이 나랏일을 보는 관청이며, 천시원은 하늘의 도시로 백성들이 사는 곳이다. 태미원과 천시원에 대해서는 후일 차차 알아보기로 하자.
28수는 달이 머무는 집이란 뜻으로 보면 된다. 즉 달이 매일 별자리 사이를 움직여서 제자리로 다시 돌아오는데, 음력으로 1달, 즉 28일이 걸리기 때문에 매일 달의 위치를 보면 한수(宿)씩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

28수는 오행 개념에 따라 계절별로 일곱개씩 나눠 각각 동방칠사, 남방칠사, 서방칠사, 북방칠사로 묶었다. 각 사(舍)에 있는 일곱 수(宿)들은 각각 사령의 모습을 닮게 만들었다. 사령은 청룡, 백호, 주작, 현무를 말하니 하늘에 계절마다 푸른 용, 흰 호랑이, 붉은 새, 검은 거북이 아로새겨져 있는 셈이다.

봄철 일곱 별자리들은 청룡의 모습을 따라 별자리를 정했고 동방의 하늘 임금 복희가 다스린다고 보았으며, 여름철 일곱 별자리들은 주작의 형상으로 남방의 임금 신농이 다스린다고 보았다. 가을철 일곱 별자리들은 백호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겨울철 일곱 별자리는 현무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상상한 것인데, 이들은 각각 서방의 소호와 북방의 전욱이 다스린다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하늘에도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가 있구나 하고 기억하면 된다.

이상한 마법에 걸린 자매

2월 저녁하늘에는 찬란한 겨울철 별자리들이 떠 있다. 이 가운데 쉽게 찾을 수 있는 별자리가 서양의 오리온자리다. 동양에서는 이 별자리를 ‘삼수’(參宿)라고 했는데, 서방 백호의 몸 앞부분을 이루는 각 별은 장군을 나타낸다. 너무나 뚜렷한 별자리라서 우리 별자리 전설이 있겠거니 생각하겠지만, 실망스럽게도 아직까지는 밝혀진 게 없는 듯하다(이 글을 읽는 독자들께서 주변에 나이든 어른께 여쭈어 보고 만일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면 필자에게 알려주기 바란다. 여러 사람에게 알리고 영어로 번역해 세계에도 널리 알릴 수 있게 말이다).

우치다라는 일본 사람은 이미 1970년대 초에 자기네 나라 별자리 이야기를 수집했다. 그 가운데 삼수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일본에서는 삼수를 장구처럼 생겼다고 해서 장구별이라고 부른다. 일본의 장구는 우리나라 삼국시대에 일본으로 건너갔을 뿐만 아니라 고대 일본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사람들이므로 별자리 전설도 아마 같지 않았을까. 아무튼 일본 전설을 한번 들어보자.

아주 오랜 옛날에 의좋은 자매가 살고 있었다. 어느날 자매는 마을 뒷산에 있는 약수 샘터에서 물을 길어 물통을 짊어지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언니가 앞장을 서고, 동생은 아주 열심히 힘을 내서 언니를 뒤쫓았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이상한 밧줄이 내려오면서 자매는 마법의 주문에 걸리게 됐다. 자매는 주문에 홀려서 제뜻대로 움직일 수 없어 도망가지 못했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비한 마법에 이끌려 그 줄을 붙들고 하늘로 올라갔다. 자매는 주문에서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그러다가 겨우 주문에서 풀려나긴 했다. 하지만 딱하게도 동생은 그 와중에 그만 발목을 삐고 말았다. 결국 정신없이 도망치다가 자매는 서로 헤어졌다.

마법에서 풀려난 언니는 달님이 돼 하늘의 별들 사이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다가 집으로 들어가 쉬었다 나오곤 했다. 이것은 달이 별자리 사이를 움직여서 땅속에 들어가서 쉬는 모양을 말한다. 하지만 발목이 삔 동생은 언니를 따라가려고 발버둥치지만 제자리를 맴돌 뿐이었다. 그 동생을 바로 삼수라고 한다.

삼수의 가운데 세별은 오리온의 허리띠인데, 이 별들은 동생의 어깨와 물통이다. 또 우리가 흔히 소삼태성이라 부르는 별들을 일본에서는 고미쯔뽀시(소삼성, 小三星)라고 부르는데, 이 별들이 동생의 삔 다리이다. 동생은 다친 다리가 아파서 치마 밖으로 한쪽 다리를 내놓고 있고, 또 가운데 별이 뿌연 이유는 다친 발목이 부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망원경으로 찍은 사진을 보면 이 자리가 피멍이 든 것처럼 붉게 보이는데 바로 오리온대성운이 나타나는 위치인 탓이다.
 

물통을 어깨에 메고 물을 길러 나갔다가 발목 삔 아가씨 삼수 의 모습(오른쪽 별사진의 네모 부분). 오리온의 허리띠가 어 깨와 물통에 해당하고 또다른 세 별이 오른 발을 이룬다. 가운데 별이 붉은데 아가씨의 발목이 다 쳤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술취한 노인의 별

2월 저녁 밤하늘에는 삼수보다 약간 서쪽에 좀생이가 보인다. 좀생이는 겨울철 밤하늘에 뿌연 기운처럼 별들이 모여 있는 모양을 한다. 좀생이에서 동쪽으로 눈길을 옮겨가노라면 황소의 붉은 눈인 알데바란과 오리온의 오른쪽 어깨인 베텔게우스가 차례로 나타나니 참고하기 바란다. 별을 찾는데는 왕도가 없다. 별지도를 보고서 머리 속에 익히고, 하늘에서 별과 별자리를 찾아가면서 자꾸 눈에 익히는 수밖에 없다.

왜 좀생이일까? 별들이 좀스럽게 모여있다고 해서 좀생이 또는 좀생이별이라고 한다. 좀생이는 28수 별자리 가운데 하나로 중국식 이름은 묘수인데, 백호가 거느리고 다니는 새끼 호랑이 가운데 하나다. 좀생이는 플레이아데스라는 산개성단인데, 우리나라나 동양에서도 일찍이 이것이 예사로운 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기(氣)라고 분류하는데, 서양에서도 비슷하게 구름(nebular)이라고 불렀다. 이것이 기운이나 구름이 아니라 별들이 모인 모습이란 사실은 1610년 이탈리아의 천문학자인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인류 최초로 천체망원경을 만들어서 알아냈다. 플레이아데스가 뿌옇게 보이는 까닭은 밝은 별들이 한곳에 모여 있는데다가 그 주변에 가스가 조금 있기 때문이다.

좀생이라는 우리 이름이 있다면 우리 별자리 전설도 있겠거니 생각했겠지만 또 실망을 줄 수밖에 없음이 마음 아프다. 그만큼 우리 것에 대해서 우리 스스로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어느 신문기자는 글쓴이가 쓴 우리 별자리 책을 두고, “우리 별자리에 대한 것을 있는 대로 짜내었다”고 했던가. 이 말도 틀리지는 않지만, 이런 일을 처음 시도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시작은 해놓았으니 누군가 우리 주변에서 재미있는 우리 별자리 이야기를 좀더 발굴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하는 수없이 또 일본 별자리 전설을 들어보자. 일본에서는 좀생이를 ‘수바루’라고 한다. 일본 자동차의 이름이기도 하고, 일본 국립천문대가 하와이 마우나키아에 건설한 구경 8m짜리 망원경 이름이기도 하다. 일본 국립천문대는 수바루란 이름을 공모해서 인터넷 투표를 거쳐 결정했다고 한다. 일본 사람들이 그만큼 하늘에 관심이 많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자동차 이름을 좀생이라고 붙이면 조금 멋스럽지는 않겠다. 수바루에 대한 전설은 다음과 같다.

옛날에 수바루란 노인이 살았는데, 술 마시기를 무척 좋아했다. 이 노인이 어느날 주막에 가서 곤드레만드레가 되도록 술을 마셔대고는, 술집 주인인 사카마스(술됫박이라는 뜻)에게 땡전 한푼 주지 않고 도망갔다. 그러자 사카마스는 수바루를 쫓고 쫓아갔다. 마침내 서쪽하늘가에서 간신히 수바루 노인을 따라잡는데 성공했다.

여기서 수바루는 좀생이별, 즉 플레이아데스성단이다. 또 사카마스는 삼수의 아랫부분을 이루는 별들이 네모난 술됫박처럼 생겼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수바루 노인은 술에 취했기 때문에 뿌옇게 보이는 것이 란다. 또한 삼수가 묘수(좀생이)를 따라잡는 일도 하늘에서 실제로 일어난다. 즉 동쪽에서 떠오를 때는 묘수가 삼수보다 약간 서쪽에 앞서가는데, 서쪽 지평선으로 질 때는 삼수와 묘수가 거의 동시에 진다. 이런 모습을‘따라잡는다’고 표현한 것이다.
 

겨울하늘을 수놓는 동양별자리 삼수와 묘수. 일본전설에 따르면 묘수는 곤드레만드레 취해 도망가는 수바루 노인이고 삼수는 이를 잡으러 쫓아간 술집주인 사카마스(술됫박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2001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안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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