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가을밤엔 밝은 별이 그리 많지 않아 잔잔해 보이지만 다양한 사연을 지닌 별자리가 펼쳐진다. 하늘의 커다란 창문 페가수스자리 사각형을 길잡이 삼아 2백20만광년 떨어진 은하에서 불가사의한 별 미라까지 가을밤의 주인공을 만나보자.
파란 하늘에 조각 구름 하나. 하얀 돛단배처럼 둥실 떠다닌다. 여름이 지나며 차가워진 가을하늘은 깨끗하다. 해진 후 상큼한 바람을 따라 실려오는 별빛마저 투명해보인다. 가을밤 북쪽하늘에는 카시오페이아자리가 W자 모양을 한 채 하늘로 오르고, 남쪽지평선 위로는 남쪽물고기자리의 포말하우트가 홀로 빛나고 있다. 포말하우트는 가을 별자리 가운데 하나뿐인 1등성이다.
그 사이에 밤하늘을 달리는 말 한마리가 가을 별자리를 이끌고 나타난다. 네개의 2등성이 만드는 사각형이 천마 페가수스의 몸을 나타내고 오른쪽 두 별에서 길게 늘어선 별이 앞다리와 머리를 이뤄 전체가 그럴듯한 말의 모습이다. 사각형의 세 별은 페가수스자리 별이고, 나머지 하나는 안드로메다자리 별이다. 밤하늘의 커다란 창문 같이 느껴지는 네 별을 페가수스 사각형이라 부르며, 쉽게 찾을 수 있어서 가을 별자리를 알려주는 길잡이다.
맨눈으로 보는 가장 먼 천체
페가수스 사각형의 왼쪽 모서리별 알페라츠를 따라 안드로메다자리를 그려볼 수 있다. 여기서 꼭 들러야 할 곳은 안드로메다은하다. 안드로메다 공주의 오른쪽 무릎에 해당하는 뉴(ν)별 근처에 있는데, 맨눈으로 보면 희뿌연 구름 같지만 2천억개가 넘는 별이 모인 거대한 은하다. 밤하늘에 떠있는 어느 별보다 멀리 있는 천체로 2백20만광년쯤 떨어져 있다.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먼 천체인 셈이다. 안드로메다은하의 뿌연 빛다발은 지구에 인류의 조상이 나타났던 먼 옛날에 이 은하를 떠나 2백만년이 넘는 긴 우주여행을 마치고 우리 눈에 도착한 빛이다.
안드로메다자리의 머리에서 다리로 이어지는 별을 따라 좀더 가면 페르세우스자리의 알파(α)별 미르파크에 다다른다. 미르파크에서 은하수 건너편 쪽으로 베타(β)별 알골이 빛나고 있다. 미르파크 주위의 별을 아래위로 이어 선을 긋고 미르파크에서 알골로 선을 이으면 사람 인(人)자 모양이 된다. 미르파크 부근엔 오밀조밀 별이 모여 작은 성단을 이룬다. 메로테 20이라 부르는 산개성단으로 쌍안경으로는 열개 이상의 푸른 별을 헤아릴 수 있다.
베타(β)별이 가진 이름. 알골은 악마를 뜻하는데, 페르세우스가 잡고 있는 메두사의 머리를 나타내므로 어울리는 이름이다. 그러나 악마로 알려진 또다른 이유가 있다. 2일 21시간마다 2등급에서 3등급으로 밝기가 뚝 떨어져 사람들을 놀라게 하곤 했던 것이다. 알골은 두 별이 서로를 가려 밝기가 변하는 식변광성으로 빠르게 변하는 변광성에 속한다.
미르파크에서 카시오페이아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이중성단을 만날 수 있다. 맨눈으로도 희뿌옇게 보일 정도로 밝고 큰데, 쌍안경으로 볼만한 가장 흥미진진한 밤하늘의 보석으로 손꼽힌다. 각각 보름달만큼 하늘을 차지하는데도 같은 시야에서 다정히 자리잡은 두 성단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점이 이채롭다.
물고기로 변한 아프로디테
페가수스 사각형의 오른쪽 위별을 왼쪽 아래별과 이어 동남쪽으로 비스듬히 내려가면 물고기와 고래자리가 희미하게 나타난다. 별이 없는 듯한 공간에서 그나마 눈에 띄는 4등급의 물고기자리 알파(α)별이 눈에 띈다. 물고기자리는 여기에서 두 갈래로 위쪽과 오른쪽으로 나뉜다. 전체적으로는 페가수스 사각형을 감싸쥐는 모습으로 하늘의 넓은 영역을 차지한다. 신화에서 물고기자리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아들 에로스가 변신한 것으로 나타난다. 어느 날 모자(母子)가 한가로이 유프라테스강의 정취를 즐길 때 갑자기 괴물 티폰이 나타난다. 머리가 여럿 달린 이 괴물을 피하려고 둘은 곧장 물고기로 변해 강물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고래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은 알파(α)별이 아닌 베타(β)별로 2등급이다. 베타별을 찾은 다음 왼쪽 위에서 알파별을 찾아 그 주위의 별로 오각형을 그려보면 고래의 머리가 된다. 알파별과 베타별 사이의 나머지 별을 이어서 그럴듯한 고래의 모습을 꾸며보자.
고래의 심장에 있는 오미크론(ο)별은 불가사의하기로 유명하다. 대략 11개월 사이에 3등급에서 9등급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3등급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이 별 부근을 바라보고 있으면 3등급의 밝은 별을 볼 수 있다가 몇달 후엔 맨눈으로 볼 수 없는 밝기가 돼 아예 별이 없어진 것처럼 보인다. 독일의 헤벨리우스가 오미크론별에 불가사의하다는 뜻의 라틴어인 미라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이렇게 밝기가 변하는 사실을 처음 알아낸 사람은 독일의 파브리치우스다. 1596년의 일이었다. 미라의 밝기가 변하는 이유는 별 자체가 부풀었다 줄었다 하는 맥동변광성이기 때문이다. 11개월에 한번씩 뛰는 심장처럼 생각해봐도 재미있다.
짝별이 모인 염소자리
페가수스 사각형 오른쪽 아래로 내려가면 희미한 별 네개가 작은 Y자 모양인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을 물병이라고 생각하고 오른쪽의 별들을 미소년 가니메데, 아래의 별들을 물줄기라 하면 물병자리의 전체 모습을 그릴 수 있다. 아래로 떨어지는 물줄기는 포말하우트에 이르러 남쪽물고기자리와 만난다. 마치 남쪽물고기가 입을 벌린 채 물을 다 받아 마시고 있는 것 같다.
물병의 오른쪽 아래에서 염소자리가 기다린다. 알파(α)별 알게디는 짝별이다. 쌍안경으로 잘 볼 수 있지만 눈이 아주 좋은 사람이라면 두 별로 구분할 수 있다. 알게디가 짝별로 보이느냐가 그날 밤하늘이 어느 정도 맑고 안정한지를 재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1백10광년 거리에 있는 3.6등성 옆에서 4.2등성이 다정히 빛나는데, 실제로 두 별은 같은 방향에만 있을 뿐 멀리 떨어져 있다. 단지 우리가 보기에 짝별처럼 보인다.
알게디 바로 아래의 베타(β)별 다비도 짝별로 3등성과 이보다 훨씬 어두운 6등성이 나란히 있다. 쌍안경으로 알게디와 함께 한 시야에 넣으면 아주 멋진 짝별의 잔치를 볼 수 있다.
가을밤의 잔잔한 별자리
ㅣ남쪽물고기자리 PISCIS AUSTRINUS(PsA)ㅣ
가을 남쪽하늘을 낮게 나는 별자리이다. 물고기의 입에 해당하는 알파(α)별을 맨왼쪽에 두고 오른쪽의 희미한 별들을 길게 늘어진 고리 모양으로 이으면 물고기의 모습이 저절로 떠오른다. 가장 밝은 알파별의 이름은 포말하우트로 청백색의 별이지만 지평선에 가까이 떠있어 약간 불그스름하게 보인다. 주위에 밝기를 겨룰만한 별이 없어서 가을밤의 고독한 사색가처럼 보인다. 5천년 전 페르시아인은 하늘을 다스리는 왕의 별로 보았다. 포말하우트는 아라비아어로 물고기의 입이라는 뜻이다.
ㅣ도마뱀자리 LACERTA(Lac)ㅣ
어두운 별이 하늘에 지그재그로 박혀 있어서 깜깜한 밤이면 쉽게 보인다. 백조자리와 카시오페이아자리를 지나는 가을 은하수에 머리를 적시고 꼬리는 페가수스자리 쪽으로 향하고 있다. 모양과 이름이 잘 어울려서 그런지 보고 있으면 흐뭇해지는 별자리다.
ㅣ삼각형자리 TRIANGULUM(Tri)ㅣ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있었던 전통있는 별자리로 그리스문자인 델타(Δ)와 닮아서 델타자리라고도 불렸다. 나일강 하구의 삼각지형인 델타를 떠올리거나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섬과 비슷하다고 여긴 사람도 있었다. 간단한 모양의 별자리지만 M33이 있어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깨끗하고 어두운 밤을 골라 쌍안경으로 보면 바람개비의 희미한 빛조각을 건질 수도 있다.
ㅣ양자리 ARIES(Ari)ㅣ
황도에 걸친 열두 별자리 가운데 첫 별자리이지만 크기는 작다. 안드로메다자리의 발끝에서 아래로 내려와 삼각형자리를 지나면 알파(α)별 하말을 만난다. 하말은 가을밤을 비추는 몇 안되는 밝은 별로 쉽게 찾을 수 있다. 여기서 오른쪽 두 별을 이어 꺾어진 나무젓가락 모양의 뿔을 만들어보자. 몇개의 별로 그럴듯한 양의 모습을 그려보는 일은 쉽지 않은데도 고대 바빌로니아, 이집트, 페르시아, 그리스 사람들은 모두 이 별무리를 양으로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