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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간 크고 작은 규모로 이뤄진 국내 욕 사용 실태조사들을 종합하면, 단 한 번도 욕을 해보지 않은 중학생은 5%도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60~70%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 욕을 배웠다고 답했다. 사용 빈도수에는 차이가 있지만, 욕을 모른다고 대답한 경우는 없었다. 


2019년 교육부가 발표한 ‘2019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전국 초등학교 4학년~고등학교 3학년 응답자 약 372만 명 가운데 전체 피해 응답률은 1.6%였다.  피해 유형별로는 언어폭력이 35.6%로 가장 높았다. 


욕. 사전적 정의로는 ‘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모욕적인 말, 또는 남을 저주하는 말’을 뜻한다. 본래는 상대방이 모멸감과 수치심이 들도록 자극하고 공격하는 언어인 것이다. 그런데 화가 나지 않은 상황에서도 욕이 종종 사용된다. 친구와 만나 반가울 때도, 어려운 목표를 달성해 짜릿한 성취감을 느꼈을 때도, 심지어 일상적인 대화에도 욕이 섞인다. 왜 이런 상황에서까지 욕을 하는 걸까.

 

아플 때 욕 하면 덜 아프다?

 


연구자들은 욕을 용도에 따라 여러 갈래로 분류한다. 강기수 동아대 교육학과 교수팀은 2011년에 발표한 ‘욕(辱)의 교육인간학적 기능’이라는 논문에서 용도에 따라 저주와 악담의 ‘쌍욕’, 비아냥거림과 조소의 ‘방귀욕’, 애칭과 유희의 ‘익살욕’, 꾸지람과 차별의 ‘채찍욕’ 등 욕을 네 가지로 분류했다.


해외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분류한 사례가 있다. 호주 언어학자 세 명은 2009년 출간한 ‘호주와 뉴질랜드 영어에 대한 비교연구: 문법 외(Comparative Studies in Australian and New Zealand English: Grammar and Beyond)’라는 책에서 호주와 뉴질랜드 사람들이 사용하는 욕을 ‘악의가 전혀 없는 사회적 욕’, ‘짜증에서 비롯하는 욕’, ‘모욕적인 욕’, ‘말을 좀 더 맛깔스럽게 하려고 사용하는 멋내기 욕’ 등 네 가지로 분류했다.


이처럼 욕은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친밀감을 높이거나 자신이 속한 집단을 설득하는 등 다양한 용도로도 사용된다. 실제로 설득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2006년 코리 셰어 당시 미국 노던일리노이대 심리학과 연구팀(현재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수)은 실험 참가자 88명에게 ‘등록금 인하(lowering tuition)’를 주제로 하는 세 개의 동영상을 보여 줬다. 세 개의 동영상 중 하나는 욕설이 포함돼 있지 않고, 나머지 둘은 각각 시작 부분과 끝 부분에 욕설이 포함된 것이었다.


그 결과, 욕설이 섞인 영상이 더 강하게 뇌리에 남았을 뿐만 아니라 설득력도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욕을 섞었다고 연설자의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전제 조건이 있었다. 동영상을 본 사람들이 모두 등록금 인하에 찬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셰어 교수는 “욕설이 섞인 메시지는 이미 비슷한 생각을 나누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확신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며 “하지만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고 분석했다. doi: 10.1080/15534510600747597


욕은 의외의 효과(?)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문에 손을 찧었거나, 길에서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을 때처럼 순간적으로 큰 고통을 느끼는 상황에서 욕을 하면 통증을 덜 느끼기도 한다.


리처드 스티븐스 영국 킬대 심리학과 교수팀은 이에 대한 실험 결과를 국제학술지 ‘심리학 프런티어’ 2020년 4월 30일자에 발표했다. 스티븐스 교수는 2009년부터 통증, 운동 기능 등에 욕이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왔다. doi: 10.3389/fpsyg.2020.00723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 92명을 대상으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얼음물에 손을 담그고 있도록 했다. 그리고 네 단어 중 하나를 3초에 한 번씩 외치게 했다. 네 단어 중 하나는 욕이었고, 다른 하나는 감정이 담기지 않은 일상어(중립 단어), 나머지 둘은 욕과 비슷한 소리가 나는 단어였다.


그 결과, 욕을 외친 참가자들이 일상어를 사용한 참가자들에 비해 통증을 느끼기까지의 시간이 32% 길었으며, 통증을 느낀 뒤 참는 정도도 33% 더 긴 것으로 나타났다.


스티븐슨 교수는 “단순히 말을 하거나 욕과 비슷한 소리를 내는 것으로는 통증을 덜 느끼진 않았다”며 “어릴 때 학습된 욕이 감정을 자극해 이런 효과가 나타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욕은 뇌 구조 바꾸는 혐오 자극


욕은 어떤 용도로 사용되든 자신의 감정을 강한 어조로 표현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욕은 언어이긴 하지만 뇌에서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와 관련이 깊다.


이 같은 사실은 말을 못하는 실어증 환자의 몇몇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실어증 환자는 대부분 왼쪽 귀 바로 위에 위치한 좌측 대뇌피질이 손상돼 있다. 그래서 이 영역이 언어 구사 능력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일부 실어증 환자들 중 일반적인 언어 구사에 장애를 갖고 있음에도 욕은 유창하게 하는 환자들도 있다. 뇌에서 언어능력을 관장하는 핵심 영역이 손상된 사람들이 욕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일반 언어와 욕을 처리하는 뇌 부위가 서로 다르다는 점을 시사한다.


투렛 증후군 환자들의 사례에서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투렛 증후군은 스스로 조절하기 힘든 무의식적 반복 행동으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투렛 증후군 환자 중 10%는 욕을 불쑥불쑥 내뱉는 강박적 외설증을 앓고 있다. 


이들의 뇌를 자기공명영상(MRI)으로 촬영한 결과 정상인과 비교해 대뇌피질 부분은 비활성화된 반면 변연계가 과도하게 활성화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논리적인 언어생활은 힘들지만, 과거에 들었던 욕설 한두 개를 무의식적으로 내뱉는다. doi: 10.1016/S0272-7358(98)00059-2 


이처럼 감정의 산물로 나온 욕은 상대방의 감정에 닿는다. 그 감정이 때론 친밀감을 높일 수도 있겠지만, 상대방을 공격하는 감정이라면 폭력이 되며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2010년 마틴 타이커 미국 하버드대 의대 교수팀은 어린 시절 언어폭력을 겪은 성인의 뇌가 어떤 특성이 있는지 분석했다. 타이커 교수는 부모의 신체적, 언어적 학대 없이 자랐으나, 또래에게 언어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는 63명의 성인(18~25세)을 대상으로 과거 언어폭력 경험에 대한 설문과 함께 뇌 영상을 촬영했다.


그 결과, 이들은 뇌들보(뇌량)가 손상돼 있었다. 뇌들보는 좌뇌와 우뇌를 연결해 주는 다리로, 손상되면 양쪽 뇌의 정보 교류가 원활하지 못해 언어능력이나 사회성에 문제가 생긴다. 해마는 감정과 기억을 담당하는 부위로, 문제가 생길 경우 쉽게 불안해지고 우울증을 앓을 확률이 높아진다. 타이커 교수는 “욕은 뇌 구조를 변화시킬 만큼 혐오적인 자극”이라고 강조했다. doi: 10.1176/appi.ajp.2010.1001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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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서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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