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걸 마음껏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다이어트 약이 나왔단다. 10년 전인 2010년 미국 존스홉킨스대 황유상 박사가 발견한 펩타이드(아미노산중합체)가 오랜 임상시험을 마치고 신약 ‘고트블락(GOAT-block)’이란 이름으로 승인을 받은 것이다. 고트블락은 식욕 호르몬인 그렐린을 활성화하는 효소인 고트를 억제해 다이어트 효과를 낸다고 한다.
얼른 병원으로 달려가 처방을 부탁했다. 의사는 미소를 짓더니 먼저 내 게놈 데이터를 보자며 ‘비밀번호’를 누르라고 자판을 내민다. 의사는 모니터를 한참 뚫어져라 보더니 안 됐다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고트블락은 GG형 고트 유전자에만 효과가 있는데 AA형이시군요. AA형에 맞는 약도 곧 나온다고 하니 너무 실망하진 마세요.”하필이면 내 고트 유전자의 SNP(단일염기다형성)가 AA형이라니. 아깝다. 오늘 저녁도 밥 반 공기에 초콜릿 한 조각만 먹어야겠군. 내 명품 몸매를 유지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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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별 맞춤의학 시대 열린다
과학저널 ‘네이처’ 10월 28일자에는 국제공동연구팀인 ‘1000게놈프로젝트컨소시엄’의 첫 연구 결과가 실렸다. 4개 인구집단 179명의 전체게놈을 분석해 개인마다 염기서열이 다른 곳을 밝혀냈는데, 이 가운데는 유전성 질병과 관련이 있는 위치도 여럿 있었다.
한 사람의 게놈을 분석하는 비용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2020년쯤이면 모든 사람이 자신의 게놈정보를 갖게 될 가능성이 크다. 또 1000게놈프로젝트 같은 대형 연구를 통해 각종 질병과 관련된 SNP나 CNV(유전자복제수변이)의 패턴이 상당 부분 밝혀질 전망이다.
그 결과 자신의 유전형에 맞는 약물과 복용량이 결정될 것이고 약효가 뛰어나도 부작용이 커 허가를 받지 못했던 약물들이 구제될 것이다. 약물의 부작용은 특정 유전형에서만 나타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혈전(뭉쳐진 피)이 생기지 않게 하는 약물 ‘와파린’은 경우 CYP2C9라는 효소의 SNP 유형에 따라 약물 분해 효율이 큰 차이가 난다. 분해 효율이 낮은 사람은 정상 복용량에도 출혈이 일어나는 부작용을 보인다. 따라서 복용량을 줄여야 한다.
암 치료법도 크게 달라진다. 암을 고치기 어려운 건 원인이 무척 다양해 딱 맞는 치료법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범위한 게놈 데이터를 이용해 항암제를 개발하면 유형별 맞춤 항암치료시대가 열릴 것이다. 특정한 메커니즘으로 생기는 암을 치료하는 항암제는 이미 나와 있는데 폐암 치료제인 이레사가 대표적인 예다.
차의과학대 암연구소 김성진 소장은 “폐암 가운데 EGFR이란 성장인자수용체의 돌연변이가 원인인 경우는이레사가 잘 듣는다”며 “따라서 암세포의 EGFR 유전자를 검사한 뒤 이레사 투여여부를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10년 뒤에는 이레사처럼 특화된 항암제가 많이 쓰일 것이다.
김 소장은 국내 최초로 개인게놈 분석을 마쳐 화제가 된 인물이다. 김 소장의 게놈을 기존 외국인의 정보와 비교하면 0.06% 정도가 한국인 고유의 유전정보로 나타났다. 맞춤의학이 성공하려면 먼저 손쉽게 자신의 게놈을 해독할 수 있어야 한다. 2003년 인간게놈프로젝트는 한 사람의 게놈 지도를 만드는 데 27억 달러(약 3조 원)라는 천문학적인 돈이 들었지만 김 소장은 2억 5000만 원에 그쳤다.
김 소장은 “게놈 연구자들을 만나보면 5~10년 뒤에는 개인게놈에 기반한 맞춤의학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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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뒤면 100만 원에 게놈분석
“은행직원 앞에서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순간 직원은 고객의 정보를 보면서 서비스를 해 줍니다. 10년 뒤 병원에서도 비슷한 시스템이 도입되지 않을까요?”
게놈분석회사인 테라젠의 이민섭 박사는 100만 원에 개인게놈을 분석하는 시대가 3년 뒤에는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DNA 분자 한 가닥에서 염기서열을 분석할 수 있는 기술이 하버드대 유전학과 조지 처치 교수팀을 비롯한 여러 연구팀에서 개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미국의 ‘23앤드미’ 같은 회사들이 고객 게놈의 극히 일부를 분석해 질병예측을 하는 정도의 실험적인 비즈니스를 하는 단계다. 그러나 전체게놈정보를 갖고 있는 사람이 1만 명, 10만 명으로 늘어나는 5년 쯤 뒤에는 이를 이용한 ‘의료 비즈니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고 10년 뒤에는 자리를 잡을 것이다.
이 박사는 “게놈정보를 바탕으로 의약품을 연구하는 ‘약물게놈학’을 치료에 이용하려면 엄청난 분석력이 있어야 한다”며 “개별 의사가 이런 일을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런 서비스를 하는 DB 시스이 도입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세계 최대 검색업체인 ‘구글’은 이미 이런 헬스케어 비즈니스 모델을 준비하며 파트너를 찾고 있다. 따라서 게놈정보를 분석하는 바이오인포메틱스 분야에서 국내외 업체들 사이의 협력과 경쟁의 복잡한 네트워크가 형성될 것이다.
게놈연구의 다크호스 중국
1980년대 세계 경제를 주름잡던 일본은 1990년대 장기침체를 거쳐 2000년대 IT시대를 맞아 미국에게 완전히 주도권을 뺏겼다. 게놈연구 역시 현재 미국이 앞서가고 있다. 1000게놈프로젝트나 개인게놈프로젝트(PGP)도 미국이 주축이다. 최근에는 중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막대한 투자를 통해 최근 게놈분석능력이 양으로는 미국을 넘어섰다는 평가다.
한국은 서울대 유전체의학연구소가 아시아인의 게놈을 분석하는 국제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테라젠은 게놈데이터를 분석해 맞춤의학 정보를 알려주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다. 최근엔 삼성의료원도 맞춤의학에 시장에 뛰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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