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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특수상대성이론을 만들기까지

아인슈타인의 가상회고록

나는 생전에 특수상대성이론을 생각해내게 된 과정을 여러 차례 이야기했었지만, 그런 이야기 마다 이가 듬성듬성 빠져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저승 와서도 이승의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쓴 이야기들을 볼 수 있었다.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들도 많았지만 내가 빠뜨린 것을 찾아낸 것도 여럿 있었다. 저승에서도 기억은 가물가물해지는지라 더 늦기 전에 내가 특수상대성이론을 찾아낸 과정을 다시 이야기해야겠다.

아라우
모순을 찾아내다


그 과정은 1895년 10월말부터 1896년 9월까지 머물렀던 스위스 아라우시 아가우 칸톤 고등학교에서 시작됐다. 아라우에 간 것은 내가 취리히의 스위스 연방공대에 낙방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장도 없는 채로 남들보다 1년 일찍 특례입학하려다가 실패했다.

자퇴와 낙방 때문에 내가 사회 부적응자였던 것처럼 말하는 이야기들이 있는데, 그것은 뭘 모르는 이야기다. 김나지움 시절 내 성적은 언제나 상위권이었다. 내가 흥미를 못 느끼는 과목은 상대적으로 성적이 나빴지만, 그런 과목도 언제나 평균 수준 이상은 유지했다. 다만 교실 뒤쪽에 앉아 국가제도에 대한 존경, 충성, 복종, 규율을 주입하려는 김나지움 교사들을 냉소했을 뿐이었다. 오죽 나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으면 공대학장과 물리학과의 베버 교수가 아가우 칸톤 고등학교 특례입학을 주선하고, 다음해에 꼭 다시 시험 치라고 당부했을까.

아라우에서 내가 연방공대 입학시험을 위해 공부했던 책 중에는 프랑스 물리학자 비오레가 1882년에 쓴 역학 교과서의 독일어 번역본이 있었다. 프랑스의 영향이 강한 스위스에 있었기에 망정이지 계속 뮌헨에 있었다면 이 책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1892년에야 독일어로 번역됐기 때문이다. 그 책은 갈릴레오 상대성을 이용해 뉴턴의 운동 제1법칙 F=ma를 유도했다. 갈릴레오 상대성이야말로 물리학의 근본이라는 것이 이 책의 요지였다. 요즘은 상대성이라고 하면 내가 만든 특수상대성이나 일반상대성을 떠올리지만, 당시만 해도 물리에서 상대성이라고 하면 ‘상대운동의 원리’라고도 부르는 갈릴레오 상대성을 뜻했다. 그전부터 기발한 문제풀이방법보다 원리만을 이용한 문제해결을 좋아했던 나는 그 책에 무척 감명 받았다.

상대운동의 원리를 간단히 설명하면 이런 것이다. 얼음판 위에 돌멩이 하나가 있고 내가 미끄러져 가는 것이나, 내가 서있고 그 돌멩이가 미끄러져 오는 것이나 물리적으로 같은 현상이라는 뜻이다(물론 나와 돌멩이 사이의 관계만 따질 때 그렇다는 뜻이다). 이 중요한 원리를 처음 말한 사람이 그 유명한 갈릴레오라서 이를 갈릴레오 상대성이라고 부른다. 자, 여기서 퀴즈를 풀어보자. 비오레의 책을 읽은 내가 상대운동의 원리를 어디에 적용해봤을까? 당연히 나는 상대운동의 원리를 맥스웰 전자기 이론에 적용시켜봤다. 한번 파산했던 소규모 전기설비업자 집안인 우리집 내력으로 보나 당시 물리학계의 상황으로 보나 전기장과 자기장의 관계, 즉 전류와 자석의 관계를 설명하는 기본 이론인 맥스웰 전자기 이론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이론이었다.
 

블랙홀 연구로 유명한 스티븐 호킹의 연구실에 놓인 아인슈타인의 사진. 오른쪽 아래에는 아인슈타인만큼이나 유명한 뉴턴과 사과 그림이 보인다.


뉴턴과 그 후계자들의 시대만 하더라도 물체의 운동을 다루는 역학, 전기 현상을 다루는 전기학, 자석과 관계된 자기학, 빛을 다루는 광학, 열을 다루는 열역학 등 갖가지 분야가 서로 관계가 없다는 생각이 대세였다. 하지만 내가 뮌헨 시절에 우리 집에 머물던 의학도였던 탈미 형과 함께 이런 저런 책을 읽고 토론할 무렵에는 이런 분야들이 물체의 운동을 다루는 역학을 중심으로 통합됐다. 남은 것은 전자기와 광학 두 분야였는데, 전자기 현상을 일으키는 전자기 에테르나 빛을 만드는 빛 에테르 모두 역학법칙을 따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맥스웰이 예언한 전파를 내가 9살 때 헤르츠가 발견해 전자기 에테르와 빛 에테르가 사실은 하나임이 알려졌다. 에테르들은 역학 법칙을 따라 움직이므로 잘만 하면 모든 물리현상을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어렴풋이 이런 생각을 품었지만, 나는 아직 복잡한 맥스웰 방정식 풀이는 손대지 못했다. 대신 빛에 대해 구체적인 상황을 상상하면서 생각해봤다. 빛은 진동하면서 퍼져나가는 전자기파다. 만일 내가 빛과 같은 속도로 빛을 따라가면서 빛을 본다면 나는 빛을 일정한 크기의 전기장과 자기장이 변하지 않고 동시에 같이 있는 전자기장으로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맥스웰 이론에 따르면 전기장과 자기장의 세기가 변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함께 있는 전자기장은 존재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전자기장을 관찰한 실험결과도 알려진 것이 없었다. 뭐가 잘못된 걸까? 나는 상대운동의 원리와 맥스웰 이론 사이에 뭔가 근본적인 모순이 있다고 느꼈다. 아직 물리 지식이 깊지 않았던 나는 중요한 발견을 할 수 있는 힌트를 찾은 것에 만족했다.


영국의 물리학자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1873년 전자기학 연구를 집대성한‘전자기론’에서 전자기파가 존재하며 그 전파 속도는 빛의 속도와 같음을 보였다.


취리히
빛의 속도가 일정할 것이라고 짐작하다

 

1896년 스위스 아가우 칸톤 고등학교 시절의 아인슈타인. 앞줄 맨 왼쪽에 앉아 있는 학생이 아인슈타인이다.


1896년 가을 연방공대에 입학한 후에도 복잡한 수식 보다 물리적 현상의 본성을 중시하는 내 버릇은 바뀌질 않았다. 수학 및 물리학과의 유명한 민코프스키 교수의 강의도 후반부에는 아예 들어가지 않았다. 수학은 어느 문제에 어떤 분야가 쓸모있는지 가늠할 정도로만 공부했다. 대신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물리실험실에서 보냈다.

복잡한 기계 공작실 같은 실험실에서 물리현상을 직접 접하고 관찰하는 일은 나를 매혹시켰다. 날 좋게 보았던 베버 교수가 실험물리학 담당이었던 덕분에 나는 실험실에 맘껏 박혀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베버 교수는 전자기학과 역학의 관계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자연히 나는 갖가지 전자기학 책을 구해서 독학하다시피 공부했다. 전자기학의 대가인 로렌츠 교수의 논저도 구해 읽었고, 좀 구식이지만 역학을 중시하는 볼츠만 교수의 전자기학 책도 공부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들보다도 마하 교수의 역학 책과 푀플 교수의 전자기학 책이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마하 교수는 여러 가지 과학 개념에 독특하고 웅장한 주장을 한 사람이다. 그런데 내 관심을 끈 것은 그런 주장이 아니라 오로지 경험만을 물리학의 기본 개념과 법칙들의 근거로 따져보려는 태도였다. 덕분에 나는 기본 개념의 경험적 근거를 끝까지 따져 봐야 한다는 내 생각이 옳다고 확신하게 됐다. 그런 확신은 푀플 교수의 책을 공부하면서 빛을 봤다. 그 책은 공대생을 위해서 맥스웰 이론의 핵심을 간명하게 설명한 책이었다. 실은 맥스웰이나 로렌츠의 논저가 너무 복잡해서 참고서 삼아 본 것이었다.

그런데 푀플 교수는 나름대로 간명하게 설명한답시고 상대운동의 원리를 부정하고 ‘절대운동’ 개념을 도입했다. 그리고는 “절대운동이란 그 물체에 무관하게 멀리 있는 에테르에 대해 물체가 행하는 운동으로 이해돼야한다”고 주장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람? 경험증거가 없는 절대운동 따위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푀플 교수의 논리는 일관성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당시에 에테르의 운동은 물체의 운동에 영향을 미치지만 에테르 자체는 절대로 직접 관찰되지 않는 것이라고들 설명하고 있었다. 에테르가 있다는 직접 경험증거가 없다! 그렇다면 굳이 에테르 개념을 집어넣지 않고서도 전자기 이론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대표적인 전자기파인 빛에 대한 중요 관찰 사실들부터 점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1899년 빌헬름 빈 교수가 전자기파의 속도 변화를 검출하려는 13가지 실험을 정리한 논문을 발표했는데, 그 논문에 따르면 13가지 실험은 모두 다 실패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빛의 속도는 언제나 똑같은 속도로만 측정되는 것이 아닐까? 사람이 생각해낸 에테르 이론에 따라 빛의 속도가 변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실험결과대로 빛의 속도는 불변임을 받아들인 후에, 거기에 맞는 전자기 이론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1900년부터 나는 시련을 겪었다.

베른
빛의 속도가 문제다


1900년 8월의 졸업시험은 작은 시련이었다. 같은 과 동기였던 그로스만이 노트를 빌려줘 몇 달 동안만의 공부로도 졸업시험은 합격했다. 입학동기 11명 중 수학 전공으로 3명, 물리학 전공으로는 나만 합격했다. 하지만 베버 교수와 사이가 나빠질 대로 나빠져 있었다. 그는 나에게 “너는 똑똑한 녀석이야, 아인슈타인, 정말 똑똑하지. 하지만 큰 문제가 있어. 너는 어떤 충고도 받아들이질 않아”라며 조교자리를 주지 않았다. 베버 교수 밑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취직자리도 마땅치 않아 이곳저곳에서 임시교사 생활을 했다. 1901년에는 전자기 이론 문제를 연구할 실험방법이 떠올랐지만 결국 아이디어에 그쳤다. 하는 수 없이 서둘러 박사학위를 받으려고 연방공대가 아닌 취리히대 물리학과에 볼츠만 기체이론에 대한 논문 초고를 써서 제출했지만 너무 과격하다고 해서 자진철회 했다. 다행히 1902년 들어 상황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친구 베소와 함께 베른의 연방 특허국에 임시 3등 특허심사관으로 취직했다. 기계 도면을 보면서 작동원리를 찾아내는 일은 내 적성에 잘 맞았다.

1903년에는 결혼도 하고 베른의 지방학회에 가입할 정도로 여유를 찾았다. 베소를 비롯한 몇몇 친구들과 ‘올림피아 아카데미’라는 모임을 만들어 과학과 철학에 대해 밤새워 토론도 했다. 그 해 가을에는 베른 지방학회에서 전자기 이론에 대해 발표까지 했다. 1904년 9월에는 정규직으로 승진했다. 여유를 되찾아서인지 1904년에서 1905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에 나에게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움직이는 관찰자가 봐도, 정지해 있는 관찰자가 봐도 빛이 항상 일정한 속도로 보이도록 빛이 처음부터 제각기 다른 속도로 나온다면? 이 아이디어는 언뜻 생각하기엔 그럴듯했다. 하지만 막상 이론을 만들려고 하니까 이 아이디어대로라면 관찰자마다 전자기파를 서술하는 수식이 제각기 조금씩 달라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리현상은 하나인데 그 현상을 서술하는 수식이 여러 개라는 것은 말도 안됐다. 속도. 거리/시간에 불과한 속도. 속도가 골칫거리였다.


1902년 아인슈타인은 스위스 베른의 특허국에 취직했다. 특허국에서 시계 관련 특허를 심사한 것은 특수상대성이론의 아이디어를 얻는 계기가 됐다. 사진은 베른의 시계탑.


특허국
기차역 시계 맞추기


다른 논문들을 마무리한 1905년 5월 초, 이 문제를 다시 고심하던 나는 근무가 끝난 뒤 베쏘를 찾아가 “요즘 골치 아픈 문제를 생각하고 있어. 오늘 자네랑 그 문제 좀 따져 보려고 왔지”라며 이야기를 꺼냈다. 문제가 풀린 것은 그날 밤이었다. 다음 날 나는 사무실에서 베소를 보자마자 “고마워. 그 문제 완전히 다 풀렸어!”라고 외쳤다. 그 때부터 5주 동안 정신없이 논문을 써버린 탓에 베쏘와 어디까지 이야기했는지는 정확히 생각나질 않는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우리가 특허국에서 자주 다루던 문제에 생각이 미친 것은 분명하다.

당시 특허국에는 멀리 떨어진 기차역 시계들을 똑같이 맞추는 방법에 관한 특허가 자주 출원됐고, 나나 베쏘는 그런 특허를 심사했었다. 가령 베른역의 시계가 1시를 가리키는 바로 그 순간에 취리히역의 시계도 1시를 가리키는지 베른역에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이를 확인하려면 베른역의 시계가 1시를 가리키는 순간 취리히역으로 빛 신호를 보내고, 잠시 후에 신호를 받은 취리히역에서 신호를 받은 순간 취리히역의 시계가 가리키는 시각을 베른역에 보내는 방법을 쓰면 된다. 예를 들어 베른역의 신호가 취리히역 시계로 1시 1초에 취리히역에 도착하고, 취리히역에서 1시 1초에 신호를 받았다는 답신이 1시 2초에 베른역에 도착하면, 베른역에서 취리히역으로 신호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이나 취리히역에서 베른역으로 신호가 오는 시간이 같을 테니까 베른역과 취리히역의 시계가 동시에 1시를 가리켰다고 할 수 있다(물론 실제로는 1초씩이나 걸리지 않는다). 출원된 특허들은 전부 이 원리를 응용한 것들이었다.

베른역에서 취리히역으로 달리는 기차 위에서 기차 앞뒤에 놓인 시계를 맞춘다면? 달리는 기차 위에서는 기차역 사이에서 쓰는 방법 그대로 기차의 끝에서 빛으로 신호를 보내서 기차 앞에서 반사시켜 보내면 된다. 달리는 기차 위에서 그런 방식으로 시계 맞추는 것을 베른역에서 관찰한다면? 베른역에서 볼 때는 기차 끝에서 앞으로 보내는 빛 신호는 빛 신호가 기차 끝에서 앞으로 가는 시간 동안 기차가 앞으로 달려간 거리만큼 더 가고, 돌아올 때는 대략 그 거리만큼 덜 온다. 빛의 속도는 언제나 일정하고, 빛 신호가 오고 간 거리가 다르므로 베른역에서 볼 때는 시계를 제대로 맞춘 것이 아니다. 즉 관찰자가 기차를 따라 움직이느냐 아니면 역에 서있느냐에 따라 시계를 맞추는 방법이 다르다. 시간은 시계로 측정하므로, 이는 기차를 따라 움직이느냐 아니면 역에 서있느냐에 따라 시간이 달리 흐른다는 뜻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두 시간 사이의 관계를 수식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런 수식을 얻는 방법의 원리는 간단하다. 한국 고교 수학 교과서에 나와 있는 방법만으로도 필요한 수식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얻은 관계식을 맥스웰 방정식에 집어넣어 고치니 모든 문제가 말끔하게 풀리기 시작했다. 물론 특수상대성이론을 ‘쉽게’ 설명하겠다는 책들이 많이 있지만 살아생전이나 저승에 온 이후에도 내가 쓴 논문보다 더 쉽게 설명한 것은 못 봤다. 왼쪽의 내 설명을 보면 이해가 더 잘 될 것이다. 이렇게 상대성의 원리(이 말은 ‘상대운동의 원리’를 줄인 말이다)와 광속 불변의 원리만 이용해 시계를 맞추고 거리를 측정하는 방법을 고안하고 그에 기초한 새로운 전자기 이론을 담은 것이 요즘 사람들이 ‘특수상대성이론 논문’이라고 부르는 내 1905년 6월 논문, ‘움직이는 물체의 전기 역학에 대하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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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이관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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