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20일, 노르웨이 북부 도시 트롬쇠(Tromsø)의 항구 부두에서는 밴드의 연주가 흐르는 가운데 사람들이 초밥을 먹고 작별 인사를 나누는 등 시끌벅적한 시간이 이어졌다. 반면 부두에 정박한 쇄빙선 폴라스턴호에는 이전에 경험해본 적 없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60여 명의 과학자와 40여 명의 승무원으로 구성된 탐험대가 곧 시작할 100여 일의 긴 여정을 앞둔 긴장감이었다.
어쩌면 필자의 흥분감이 자아낸 감정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10년 넘는 계획 끝에 비로소 시작되는 탐험인 만큼 날카로운 긴장감이 도는 것도 당연했다. 과연 쇄빙선이 단단한 북극 해빙을 헤치며 짧게는 수십 일, 길게는 100여 일씩 총 1년 동안 무사히 항해할 수 있을지, 또 여러 개의 측정소를 설치할 수 있을지, 그것이 북극 환경 연구에 도움이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모자이크(MOSAiC·Multidis-ciplinary drifting Observatory for the Study of Arctic Climate)’다. 북극 기후 연구를 위한 탐험이자, 역대 실시된 것 중 가장 큰 규모의 북극 탐험이다.
‘적절한 부빙’을 찾아서
대규모 프로젝트인 만큼 전 세계가 합심했다. 독일의 알프레드베게너연구소를 중심으로 한국 극지연구소를 포함한 20개국의 연구기관이 참가했다.
연구 분야는 대기, 해빙 및 해양 생태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북극 및 전 지구의 기후 모델을 개선하는 것이다. 필자는 독일 브레멘대 소속으로, 이번 프로젝트에서 위성을 통한 원격 탐사 시스템을 조정하는 임무를 맡았다. 탐험은 총 5차례에 걸쳐 이뤄졌는데, 필자는 첫 번째와 마지막 탐험 때 쇄빙선에 탑승했다.
쇄빙선이 항구를 떠난 지 열흘 정도 지난 2019년 10월 4일, 북극 가까이에 있는 랍테프해 북쪽 지역에 정박했다. 사전에 위성 데이터로 파악한 적절한 부빙(여러 크기로 부서져 바다에 떠다니는 해빙)이 있는 곳이었다.
전 세계 어떤 지역보다도 기후 변화가 훨씬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북극은 이미 해빙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지금까지 해빙 면적의 40% 이상이 사라졌고(여름 기준), 두께도 훨씬 얇아졌다. 우리는 그 모습을 현장에서 직접 살펴보고자 이미 많은 변화가 일어난 부빙이 있는 이곳을 탐험 경로로 선택했다.
북극에서 직접 본 부빙의 상태는 더 심각했다. 여름이 막 끝난 뒤긴 했지만 두께가 고작 30cm에 불과했다(편집자 주: 북극 해빙의 평균 두께는 2~3m). 얇아졌을 거라 예측은 했어도 이보단 더 두꺼울 줄 알았다.
연구에도 차질이 생겼다. 그 얇은 부빙 위에 측정소를 설치해야 했기 때문이다. 오두막, 텐트, 기상탑, 그리고 수 km 길이의 케이블을 비롯한 많은 장비를 부빙 위에 놓을 예정이었지만, 이를 감당하기에 부빙의 두께는 충분치 않았다.
당황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찾던 부빙을 발견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전 지구 기후에 엄청나게 중요하고, 사람들이 사는 저위도의 기후 패턴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북극의 악화된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부빙 위에 올라선 우리는 쇄빙선에서 탐사 장비를 꺼내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수평선 위로 지고 있는 태양을 막을 순 없었다. 이윽고 극지의 밤이 시작됐다. 쇄빙선 내 분위기도 좋았고 탐험대원들은 서로 도우며 협동심을 발휘했지만, 격앙된 분위기가 연출될 때도 종종 있었다. 수년 동안 철저히 준비했음에도 첫 탐험이니만큼 현장에서 잘 들어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우리는 현장 상황에 맞게 장비들을 새로 고쳐나갔다. 케이블 지지대로 쓸 막대를 절단하고, 나무로 오두막을 지었다. 그렇게 측정소를 완성했고, 다행히도 무사히 작동했다.
쇄빙선과 동행한 러시아 선박에서 더 많은 장비들을 꺼내와 부빙 주변에 측정소를 몇 개 더 설치했다. 10월 중순 러시아 선박이 떠난 뒤 우리는 완전히 어둠 속에 남겨졌다. 우리와 가장 가까이 사는 사람들도 수백 km는 떨어져 있었다. 쇄빙선은 우리의 집이자 가장 안전한 피난처였다. 빙산과 세찬 눈이 만들어내는 기묘한 풍경 속에서 헤드램프와 손전등으로 측정소를 비춰보곤 했다.
우리의 탐험 목표를 요약하면 부빙에 측정소를 설치하고, 측정하고, 1년 뒤에 돌아가는 것이다. 글로는 굉장히 평화롭고 쉬워 보이지만 현장에서는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었다. 부빙에 도착한 지 몇 주 되지 않아 첫 번째 큰 시련이 닥쳤다. 2019년 11월 19일 저녁, 쇄빙선에서 조명으로 배 주변을 비춰보고 있는데, 원격 탐사 장치를 설치한 부빙이 갑자기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부빙은 500m 정도 이동한 뒤 멈춰 섰다. 장비들도 손실되지 않았다. 다만 장비들이 놓인 부빙에는 균열이 나 있었고, 부빙 위에 바닷물이 흘러 들어와 쌓여있던 눈이 마치 소금죽처럼 변했다. 그 후로도 며칠 동안 해빙이 역동적으로 움직였고, 쇄빙선 바로 앞에 얼음 덩어리가 형성됐다. 이 과정에서 들려온 소리들은 탐험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상황이 진정된 후에야 물류팀의 도움으로 장비를 추려 새로운 위치에 측정소를 설치할 수 있었다. 이 같은 일은 계속해서 벌어졌고 그때마다 측정소를 옮기길 반복했다.
12월 중순 첫 번째 탐험을 끝마쳤다. 원격 탐사 장비들을 두 번째 탐험에 나서는 동료들에게 건네줬다. 필자는 마지막 탐험 때 돌아와 쇄빙선에 실린 모든 장비와 데이터를 가져가기로 했다. 첫 번째 탐험을 끝마친 우리는 러시아 쇄빙선을 타고 항구로 돌아왔다. 한겨울에 디젤 구동 쇄빙선이 북극 근처까지 다녀간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난해 1월 초 항구에 도착했을 때 우리를 기다리는 건 환영인파가 아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었다. 공항이 폐쇄됐고, 탐험대원을 실어나를 선박과 연료도 더이상 공급되지 않았다. 폴라스턴호에서 탐험 중이던 대원들은 예정보다 몇 주 또는 몇 달을 북극 바다 위에서 더 머물러야 했다. 프로젝트 전체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여있었다.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 독일 연구용 선박 두 대와 러시아 협력 기관의 도움으로 탐험대원을 실어나를 수 있었다. 폴라스턴호는 이 선박들을 만나기 위해 예정과 달리 한동안 머물렀던 부빙을 떠나야 했지만, 7월에 다시 같은 부빙으로 돌아와 네 번째 탐험을 이어 갔다.
위성은 북극을 잘 찍고 있었을까
2018년과 비교했을 때 2019년 해빙의 이동속도는 매우 빨랐다. 특히 2019년 겨울에는 러시아의 북극에서 노르웨이와 그린란드 사이의 프람해협으로 향하는 해빙의 표류 궤적이 직선 형태로 바뀌었다. 이 때문에 2020년 7월에는 폴라스턴호가 정박해 있던 부빙이 붕괴하기에 이르렀고, 우리는 다른 부빙을 찾아 조금 더 북쪽으로 이동해야만 했다.
1년에 걸친 탐험은 현재의 위성 원격 탐사 관측 수준을 평가하고, 새로운 원격 탐사 방식을 개발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다. 이번에 부빙과 선박에 설치한 여러 원격 탐사 장치들은 해빙이 계절에 따라 얼어붙고 녹는 전 과정을 직접 측정하기 위한 첫 번째 시도였다.
원격 탐사 장비는 한국의 아리랑 5호(KOMPSAT-5) 등 인공위성과 통신을 주고받았다. 이를 통해 눈과 해빙이 전자기파와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위성을 통해 측정한 데이터는 극지 기후를 기록한 가장 중요한 기록 중 하나다. 예를 들어 지난 40년간 우주 마이크로파 방사선 측정기를 통해 얻은 전 지구의 해빙 기록을 통해 전례없는 최근의 북극 해빙 감소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15년간 측정한 해빙 두께 데이터는 해빙의 물질수지(특정 계에서 물질이 들어온 양과 나가거나 축적되는 양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개념)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이는 매년 얼마나 많은 얼음이 성장하거나 녹고 있는지, 또 바람이나 해류에 의해 얼마나 북극에서 떠밀려 나오고 있는지 알 수 있도록 해줬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모든 것을 알지 못하며, 측정도 완벽하지 않다. 이번 MOSAiC 프로젝트에서 이뤄진 다양한 원격 탐사 측정들이 위성 관측의 품질을 개선하고, 불확실성을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부빙을 자세히 측정했다. 가령 ‘이중 편광(dual polarization)에 대한 다양한 주파수 대역의 마이크로파 측정’ ‘눈과 얼음에 대한 위성항법시스템(GNSS)의 단일 및 이중 편광 측정’ ‘적외선, 가시광선, 초분광 카메라 작동’ 등의 연구가 수행됐다. 지금까지 바다에서 실시된 가장 큰 규모의 원격 탐사 실험이었다. 이번 연구로 우주에서 해빙을 관찰하는 것이 단순히 사진을 찍는 것과 같이 쉽지 않다는 것 역시 알 수 있었다.
우리의 또 다른 목표는 밤이나 구름에 가려져 있어 볼 수 없는 상황에서도 극지를 관측하는 것이다. 그래서 구름을 투과하고, 햇빛이 존재하지 않을 때도 탐지할 수 있는 마이크로파를 이용한다.
다만 아직은 관측 정확도가 떨어진다.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부빙에 설치된 측정소와 원격 탐사 장비가 관측한 데이터를 비교하고, 이를 통해 해빙과 눈이 마이크로파의 방출, 반사 및 산란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알 수 있었다.
빠르고 취약한 변화 겪는 부빙 위에서의 마지막
마침내 북극의 여름이 도래했다. 여름이 되면 부빙은 더욱 빨리 녹는다. 필자를 포함해 1년의 성과를 수확해 올 다섯 번째 탐험대원들은 독일 브레머하펜의 호텔에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우리는 모두 코로나19 검사를 세 번 받은 뒤에야 러시아 쇄빙선에 탑승했다.
이전 몇 주간 예상했던 대로 부빙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표류하고 있었고, 그린란드 동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린란드 동쪽의 해빙들은 변형이 많이 발생한 상태였고, 7월 31일에 소규모 붕괴도 있었다. 그럼에도 또 한 번의 운이 따랐던 건지, 부빙 위에 설치됐던 모든 주요 장비들은 안전했다.
우리는 다섯 번째 탐험에서 또 한 번의 새로운 시도를 했다. 부빙 위에 있는 연못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여름철에 부빙 위 일부 구역이 녹아 연못이 형성되곤 한다. 주변 얼음에 비해 색이 어두운 ‘융해 연못(melt pond)’이다. 이 연못에 새로이 눈이 내리면 하루 새에도 풍경이 바뀐다. 여러분이 익히 알고 있는 겨울 동화속 모습처럼 연못은 온데간데없고 온 세상을 눈이 소복이 덮고 있다.
단순히 눈이 많이 왔기 때문만은 아니다. 연못 위로 내리는 눈은 단열효과가 뛰어나다. 그래서 연못 주변의 공기는 비교적 따뜻한 바닷물에 영향을 받지 않고 차갑게 유지될 수 있다. 그 결과 연못은 빠르게 얼어붙고 그 위로 눈이 쌓인 것이다. 이렇게 쌓인 눈은 연못물보다 훨씬 색이 밝기 때문에 더 많은 에너지를 반사해서, 그 구역의 에너지 균형 역시 짧은 시간에 극적으로 변하게 된다. 우리는 연못의 이런 변화 과정과 이에 대한 극지 생태계의 변화를 알아보고자 했다. 부빙 위 청록색의 연못은 아름답게 보이긴 했지만, 얼마나 변화가 쉽고 크게 일어나는지도 깨달을 수 있었다.
쇄빙선에는 수많은 측정 장비들 외에도 헬리콥터가 두 대 있다. 헬리콥터는 연구에 굉장히 유용하다. 해빙의 지형과 수면 위에 드러난 높이를 관측할 수 있는 항공 레이저 스캐너, 해빙의 표면 온도 분포와 균열 형성을 관찰하는 적외선 카메라가 실려 있어서, 낮에는 전자기유도 및 초분광 카메라로 해빙의 전체 두께도 측정할 수 있다.
이처럼 헬리콥터는 쇄빙선을 둘러싼 해빙과 눈의 지역적 특성을 더 잘 이해하고, 현장 측정 범위를 위성이 보는 면적만큼으로 확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다섯 번째 탐사는 여름에 이뤄진 덕분에 겨울철 탐사보다 수월했다. 아무렴 영하 25°C보다는 0°C에서 측정 장비가 잘 작동했다. 또 겨울에 케이블을 연결하기 위해 장갑을 벗는 일은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었다.
가을이 시작되던 9월, 우리는 북극을 떠나야 했다. 감정이 북받치는 일이었다. 우리 모두 마지막 측정을 하고 장비를 정리하는 데 바빴지만, 그래도 떠나기 전 부빙 위에서 작은 파티를 열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조차도 쉽지 않았다. 북극곰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1년 간의 탐험 중 북극곰은 약 60번이나 나타났다. 그래서 부빙 위로 나설 땐 항상 우리를 지켜줄 북극곰 경비병과 함께 했다. 인간보다 더 우아하게 부빙 위를 횡단하는 이 아름다운 동물을 조심해야만 했다.
그래도 마지막 날만큼은 완전히 쇄빙선으로 도망가지 않았다. 쇄빙선 옆 얼음 위에서 작별 파티를 하기로 결정했다. 저물어가는 태양은 화려한 빛에 얼음을 머금었고, 멀리 떨어진 북극곰은 부빙 가장자리를 따라 배회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황홀하고, 마법과 같은 순간이었다.
이렇게 탐사는 끝이 났다. 하지만 MOSAiC 프로젝트는 끝나지 않았다. 이제 고생 끝에 수집한 데이터가 우리 손에 쥐어졌다. 수집된 모든 측정 데이터는 현재의 기술을 향상시키고, 새로운 위성 관측 임무에 기여할 것이며, 지구 기후 변화를 더 잘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통찰력을 제공할 것이다(편집자 주: 방대한 양의 데이터는 현재 활용 방안을 논의 중이며, 앞으로 10년에 걸쳐 연구결과가 잇따라 나올 예정이다).
※필자소개.
군나르 스프린 . 독일 브레맨대 극지원격탐사그룹장. 독일 함부르크대에서 물리학과 해양학 박사 학위를 각각 취득했으며, 미국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JPL)에서 기후, 해양 및 고체지구과학 부문 박사후연구원, 노르웨이 극지연구소에서 해빙원격탐사 연구원을 지냈다. 극지 기후를 이해하기 위한 해빙원격탐사가 주 연구 분야다. gunnar.spreen@uni-bremen.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