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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us mirabilis.

경이의 해 혹은 기적의 해를 뜻하는 라틴어다. 1667년 영국의 시인 존 드라이든이 ‘기적의 해’라는 시에서 처음 쓴 말이다.

그는 흑사병과 런던 대화재, 네덜란드와의 전쟁으로 점철된 1666년을 영국 역사에서 경이의 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모두 악몽의 해로 기억했지만 그는 오히려 1666년을 런던의 재건과 미래의 승리를 기약하는 기적의 해로 바꿨다.

1666년은 과학의 역사에서도 기적의 해였다. 흑사병으로 케임브리지대가 휴교한 ‘덕분’에 고향에 내려온 뉴턴이 만유인력 개념을 이끌어내고, 프리즘을 갖고 빛의 본성을 찾아내는 결정적 실험을 했기 때문이다. 물리학의 판도를 결정지은 중요한 개념을 불과 1년 남짓한 기간에 이뤄냈으니 ‘기적’같은 일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20세기에 다시 한번 기적의 해가 있었다. 1905년, 대학을 졸업한 뒤 스위스 특허국에서 일하던 26세의 젊은 아인슈타인이 3월 광양자 가설에 대한 논문을 시작으로 5월 브라운 운동과 6월 특수상대성이론에 관한 논문까지 한 해 동안 총 3편을 한두 달 간격으로 잇달아 발표했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그는 상대성이론으로 무명의 특허국 직원에서 일약 세계적 ‘스타’로 부상했다. 나머지 두 논문 역시 상대성이론에 못지않게 당시 논란이 되던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데 결정적 실마리를 제공했다. 1905년 3월 기적의 해의 막이 오르고 있었다.

광양자로만 설명되는 광전효과

당시 물리학자들의 고민 중 하나는 빛의 본성이었다. 빛은 입자인가, 파동인가. 이 질문은 수천 년 동안 과학자들을 괴롭혔다. 대답은 어느 한쪽이 완승을 거두지 못하고 시대에 따라 엎치락뒤치락했다.

17세기에는 호이겐스의 빛의 파동론이 지지를 받다가 18세기에는 뉴턴을 좇아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빛을 입자로 봤다. 하지만 19세기 초 영국의 토마스 영이 빛의 회절과 간섭현상을 실험적으로 밝혀내자 전세가 역전돼 빛의 파동론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1905년 3월 아인슈타인은 빛의 입자론을 지지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가 ‘물리학 연보’에 제출한 논문은 ‘빛의 창조와 변화에 관한 과학적 관점에 대하여’라는 다소 평범한 제목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 논문에서 빛이 연속적인 파동으로 공간에 퍼지는 것이 아니라 입자, 즉 광자(photon)로서 마치 불연속적인 입자처럼 운동한다고 주장했다. 빛의 입자론과 파동론에 다시 한번 논쟁의 불씨를 던졌던 것이다.


1930년 라디오 연설을 위해 마이크 앞에 선 아인슈타인. 그는 당시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인사가 돼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의 에너지 양자 개념에 주목했다. 1900년 플랑크는 복사에너지가 띄엄띄엄 떨어진 에너지 값을 갖는 덩어리로 존재할 수 있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에너지가 빛의 진동수의 1배, 2배, 3배처럼 정수배로 표시된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에너지는 당연히 연속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플랑크의 주장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플랑크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계산 결과는 계산 결과였고, 이를 해석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그래서 그는 정수배의 의미를 1, 2, 3에서 1.5, 2.5, 3.5처럼 구간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고 덧붙이면서 양자 개념을 발전시키기를 꺼려했다.

아인슈타인은 플랑크 자신이 연구해놓고도 놓치고 있던 양자 개념을 끄집어냈다. 그는 플랑크의 연구 결과에서 에너지가 흡수됐다가 방출될 때 양자의 형태로만 이뤄진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아인슈타인은 이미 1902년부터 통계역학을 연구했는데, 가열된 물질의 에너지가 빛에너지로 바뀌는 방식을 통계적으로 연구하면서 빛 에너지가 알갱이로 이뤄져있다고 가정해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로부터 아인슈타인은 빛의 양자, 즉 광양자 개념을 끌어냈다. 아인슈타인의 이 논문이 흔히 광양자 가설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의 광양자 가설은 광전효과도 설명할 수 있었다. 광전효과는 금속표면에 빛을 쪼이면 전자가 튀어나오는 현상이다. 전자가 금속표면에서 튀어나오는 것은 전자를 붙잡아두고 있는 사슬을 끊기에 충분한 에너지를 복사로부터 흡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빛을 파동으로 보면 자외선을 쪼이건 적외선을 쪼이건 전자들은 무조건 튀어나와야 했다. 파동론에서는 금속에 전달되는 에너지가 빛의 세기에만 의존하기 때문이었다. 파동의 파장 또는 진동수에 관계없이 진폭에만 의존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실제로 관찰해보면 아무리 강한 적외선을 쪼여도 전자가 튀어나오지 않는 반면 자외선은 아무리 약한 강도로 쪼여도 전자가 튀어나왔다. 빛을 파동으로 보면 광전효과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광전효과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빛을 입자로 봐야했다. 물론 뉴턴식의 질점(물체의 질량이 집결됐다고 가정하는 점) 같은 입자가 아니라 진동수에 비례하는 에너지 입자, 즉 광자라는 새로운 개념이 필요했다.


아인슈타인은 요즘 레이저의 원리가 된 유도방출에 관한 이론을 발표하기도 했다. 여기서도 그는 광양자의 존재를 주장했다.


빛을 광자로 보면 빛의 세기를 결정하는 것은 광자의 개수다. 따라서 전자가 튀어나오는 것이 빛의 세기에 관계없다는 광전효과는 금속표면에 적외선을 쪼이든 자외선을 쪼이든 전자가 한 개의 광자만을 흡수한다고 해석할 수 있었다.

빛의 세기를 결정하는 진동수에 따라 전자가 튀어나온다는 해석은 광전효과를 깔끔하게 설명했다. 적외선은 자외선보다 진동수가 낮고 따라서 에너지가 작기 때문에 전자를 방출시킬 수 없지만 자외선은 적외선보다 진동수가 높아 에너지가 크기 때문에 강도가 약해도 전자를 방출시킬 수 있는 것이다.

빛의 이중성과 양자론 초석 놓아

아인슈타인의 광양자 가설은 당시 과학자들에게 매우 ‘과격한’ 것이었다. 파동론이 설명할 수 없었던 광전효과를 설명할 수는 있었지만 파동론이 설명하는 빛의 회절과 간섭 현상을 설명할 수는 없었다. 광양자 가설의 유일한 약점이었다.

1911년 아인슈타인은 광양자 가설을 부분적으로 유보하고 빛의 파동론적 해석을 일부 받아들이기도 했다. 이후 1916년까지 그는 골칫덩어리였던 양자론을 잠시 잊고 중력 문제에 온 힘을 기울였다.

하지만 1916년 중력 연구로부터 일반상대성이론을 완성한 아인슈타인은 양자론에 대한 논의를 재개했다. 그때부터 그는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하게 광양자 가설을 주장했다. 특히 1917년 그는 요즘 레이저의 원리가 된 유도방출에 대한 이론을 발표했는데, 여기서 어떤 원소의 들뜬 원자가 자극을 받으면 빛을 낼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유도방출 과정이 있음을 이론적으로 보였다. 그리고 결론 부분에 이를 설명하기 위해 광양자의 존재가 필요함을 다시 거론했다.

하지만 1924년부터 이듬해까지 아인슈타인은 덴마크의 물리학자 닐스 보어와 광양자의 존재 여부를 놓고 열띤 논쟁을 벌여야 했다. 보어는 1913년 원자모형을 발표하면서 원자와 분자구조에 양자론을 최초로 적용한 양자론의 ‘대부’였다. 당시 보어는 아인슈타인의 광양자 가설 논문에서 제시된 광양자 개념을 사용했지만 광양자 가설 자체에 대해서는 상당히 회의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22년 아인슈타인은 광양자 가설 논문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여전히 당대의 유수 과학자들이 광양자 가설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와중에도 말이다.

아인슈타인의 기적의 해를 연 광양자 가설 논문은 빛의 입자성에 대한 논의를 부활시켰다.
이로 인해 그의 논문은 이후 빛이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을 갖는다는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초석을 놓았다. 또 광양자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해 20세기 양자론이 발전하는데도 큰 역할을 담당했다.

원자의 존재 수식으로 증명

기적의 해를 장식한 두 번째 논문은 광양자 가설 논문을 발표하고 두 달이 지난 1905년 5월에 발표됐다. 이번에는 원자의 존재가 화두였다.
원자론 역시 빛의 본성만큼이나 오랫동안 과학자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문제였다. 아무도 원자를 직접 관찰하거나 검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논란은 끝이 없었다. 나노미터(nm) 단위의 원자를 직접 볼 수 있는 기구는 당연히 없었고, 원자론을 지지하는 증거들은 모두 간접적인 것들이었다.

1803년 영국의 화학자 돌턴이 정비례의 법칙, 배수비례의 법칙, 상호비례의 법칙 등 실험을 통해 근대적 원자론을 제창했다. 그리고 1860년대 영국의 물리학자 맥스웰은 기체가 원자와 분자로 구성된다고 보고 이들이 일정하게 운동한다는 전제 아래 기체의 운동을 수학적으로 나타냈다. 학문적으로 원자의 존재는 차츰 자리잡아가는 듯 했다.

하지만 여전히 원자가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논란거리였다. 독일의 화학자 오스트발트는 아예 원자론 대신 에너지론을 주장하면서 작은 당구공 모양 같은 원자가 머릿속에 상상하는 것처럼 실제로 거기에 꼭 존재한다고 믿어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기체의 운동 이론을 포함해 통계역학의 체계를 완성한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볼츠만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는데, 이는 당시 그의 통계역학이 최소 단위인 원자의 존재를 가정하고 있다는 이유로 끈질기게 비판한 에른스트 마흐와 그의 추종자들 때문이라는 설이 있을 정도였다.
원자의 존재에 대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 것은 화학자나 물리학자가 아닌 식물학자였다.

1827년 스코틀랜드의 로버트 브라운은 현미경으로 물에 떠 있는 꽃가루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는 꽃가루가 처음에는 한 방향으로 움직이다가 점차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이동하는 것을 관찰했다. 그는 꽃가루의 운동이 물의 흐름이나 증발 때문은 아닐 것이라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브라운은 다른 종류의 꽃가루도 관찰했다. 그 결과 모든 꽃가루들이 이런 방법으로 운동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 때문에 처음에 그는 꽃가루에 생명력이 있어 이런 운동을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00년이 지난 식물표본집의 꽃가루를 비롯해 유리, 금속 같은 무생물도 똑같이 운동했다. 꽃가루의 생명력이 불규칙한 운동의 원인이 아닐 수도 있었다. 결국 브라운은 꽃가루의 불규칙한 움직임이 일어나는 이유를 알아내지 못했다.

이후 액체나 기체 안에 떠서 움직이는 미세한 입자의 불규칙한 운동에 ‘브라운 운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만약 브라운 운동의 비밀을 푼다면 원자를 직접 보지 못하더라도 원자의 충돌 효과를 보고 원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05년 아인슈타인이 바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브라운 운동을 수학적으로 깔끔하게 풀었다. 그는 작은 입자들의 충돌에 맥스웰의 기체분자이론을 적용했고, 그 입자들이 브라운이 꽃가루에서 관찰한 것과 똑같이 움직일 것이라는 것을 수식으로 보였다.

이로부터 아인슈타인은 입자의 크기를 예측하고, 입자에 부딪치는 물 분자의 크기에 따라 물 높이가 변할 때 각 높이마다 입자의 수가 몇 개나 존재할지 설명했다.

아인슈타인은 브라운 운동을 수학적으로 정립했지만 이것만으로 그간의 원자론 논쟁을 끝내지는 못했다. 그의 설명이 실제로 실험한 것이 아니라 이론적인 결과였기 때문이다. 대신 아인슈타인은 이 논문을 통해 원자론 논쟁을 끝낼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줬다.

아인슈타인이 브라운 운동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지 3년 후 프랑스 물리학자 장 페렝은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실험으로 검증했다.

페렝은 당시 새로 개발된 암시야현미경을 이용해 물 분자의 움직임을 관찰했고, 수면의 높이 별로 입자 수를 헤아린 결과가 아인슈타인의 계산과 정확히 맞아떨어짐을 알았다. 아인슈타인의 예측이 옳았던 것이다.

이로부터 페렝은 최초로 물 분자의 크기와 물 분자를 구성하는 원자의 크기를 계산했고, 결국 원자는 실재한다는 것을 밝혀 원자론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페렝은 이 연구로 1926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는데, 선정 발표문에도 그의 연구가 아인슈타인의 브라운 운동에 관한 이론을 실험으로 검증하는 과정에서 나왔음이 밝혀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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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이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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