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우리스 종족이 지구 궤도 근처에 찾아 온 이유는 최강의 생물을 찾기 위해서였다.
“의원님, 복코코 종족의 자료에 따르면 이 행성 최강의 종족은 사람이라는 동물입니다.”
우리우리스의 우주선에 타고 있던 보좌관이 담당 의원에게 말했다. 복코코 종족은 호기심이 왕성한 종족으로 은하계 전체의 생명이 사는 행성을 샅샅이 탐사하고 다닌 것으로 유명했다. 이 종족은 얼마 전 우리우리스 종족의 군대에게 정복당해 멸망했고, 그들이 남긴 모든 자료는 우리우리스 종족의 차지가 됐다. 우리우리스 종족의 보좌관이 살펴보고 있는 지구에 대한 자료도 그때 빼앗은 것이었다.
“좋아. 그러면, 한 마리 생포해서 데려가자고.”
우리우리스 종족의 우주선은 확대 탐사 장비로 지상을 살펴봤다. 저녁 시간이 찾아온 지구의 도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중에 한 남자가 술이 얼근하게 취해 고깃집 앞에 서 있었다. 그의 표정은 뭔가 못마땅해 보였다. 고깃집의 아르바이트생이 그에게 말을 건넸다.
“손님, 출입자 명단에 전화번호 좀 적어 주시라니까요.”
“아, 나도 알아. 나도 안다니까.”
“손님, 아시면 출입자 명단에 전화번호 좀 적어주세요.”
“나도 안다니까 그러네. 야, 이거 전화번호 여기에 적는 게 어렵냐? 내가 그걸 못할 거 같냐고? 나도 그거 하는 거 알아. 그거 하는 거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닌데, 나는 그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는 거야.”
“손님, 저희도 이게 코로나 때문에, 법으로 시켜서 하는 거거든요.”
“아, 별것도 아닌 것들이 짜증나게 하네. 내가 코로나, 법, 그걸 몰라? 야, 내가 뭐하는 사람인 줄 알아? 진짜 아무것도 아닌 거 갖고 그렇게 사람 짜증나게 할래? 내가 전화번호 여기에 적는 게 너무 싫어서 무슨 큰일 나는 것처럼 생각하는 줄 알아? 아, 진짜 생각할수록 열 받게 하네. 네가 뭐야? 네가 뭐냐고?”
그 광경은 우리우리스의 우주선에서도 생생히 포착되고 있었다. 의원과 보좌관은 작년에 멸망시킨 고고고 종족으로부터 가져온 언어 분석기를 이용해서 그 남자의 말을 모두 해독했다.
“의원님, 보십시오. 저 정도면 자신이 행성 최강이라고 자신하는 태도 아닙니까?”
“그렇네. 저 정도면 거의 은하계 최강을 자신하는 태도야. 저 개체를 데려온다!”
의원의 지시에 따라 우리우리스의 우주선은 순간이동 파동을 고기집 앞의 남자에게 발사했다. 아르바이트생이 어이가 없어서 잠시 고개를 숙이고 헛웃음을 웃는 동안, 고깃집 남자는 지상에서 4만 1000km 상공의 우주 공간에 있는 우리우리스 우주선으로 이동해 버렸다. 아르바이트생은 남자가 갑자기 없어진 것을 보고 잠깐 놀라기는 했다. 하지만 1.5초 정도가 흐르자 어찌 됐건 그냥 모두 잊기로 했다.
우주선에서 의원과 보좌관은 남자를 마주했다.
“이게 뭐야? 뭐야? 뭐…예요?”
우리우리스 종족은 원래 키가 굉장히 다양해서 아주 작은 키부터 4m 정도에 이르는 무리도 있었다. 한편 얼굴 생김은 동서양의 마귀들을 반씩 섞은 것 같은 외모를 갖고 있었다. 마침 의원과 보좌관은 4m가 넘는 크기였기에 남자는 그 둘의 모습만 보고도 겁을 잔뜩 먹어 덜덜 떨고 있었다. 그런 남자를 보고 의원이 말했다.
“이런 놈이 이 행성 최강의 생물이란 말인가? 이 행성에 사는 다른 종족인 호랑이보다도 훨씬 약해 보이는데?”
“시험 삼아 호랑이를 붙잡아 와서 이 놈과 싸우게 해 볼까요?”
보좌관은 우선 호랑이 홀로그램을 남자에게 보여줬다. 그러자 남자는 겁에 질려 까무러치려고 했다.
“아무래도 허약한데요.”
“복코코 종족이 이 행성을 탐사한 게 70년 전이니까, 그 사이에 이 행성의 생명체들이 변화했을 가능성도 있겠지. 원래 원시적인 생명체일수록 진화 속도는 빠른 법이니까.”
그 말을 듣고, 보좌관은 무엇인가가 생각났는지 다른 분석 장치를 가동했다.
“의원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 동안 이 행성 사람들은 초고속 디지털 통신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문화가 전혀 다르게 변했습니다.”
“그러면 일이 편해지겠네. 우리 우주선의 컴퓨터로 이 행성 사람들의 디지털 통신망 자료를 전량 분석한다.”
우리우리스 종족 컴퓨터가 인터넷망 전체를 모두 분석하기 위해 가혹하게 접속했기 때문에, 이때 전 세계의 인터넷은 심각한 접속 장애를 겪었다. 그 때문에 약 800조 원 정도의 경제적 피해가 발생했다. 하지만 그에 대해 정확한 원인을 추측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유일하게 그 근처에 딸려 갔던 사람은 그저 구석에 웅크려서 울고 있었다.
“이 행성의 통신망에서 사람들은 강하고 좋은 것을 보면, 거기에 디지털 통신으로 ‘좋아요’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을 매우 중시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그에 따라 조사를 해 보면, 이 행성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의 숭배를 받고 있으며, 가장 많은 좋아요 신호를 받고 있는 생명체는 따로 있습니다.”
“그게 뭐야?”
“70년 전 지구를 지배한 지구 최강의 종족이었던 사람들은 지금은 이 생명체를 모시고 살면서 이 생명체가 편하게 살도록 음식을 바치고 잠자리를 만들어 올리고 있으며 그러한 자신의 숭배 행동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해 널리 공유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런 일을 하면서 사람들은 기뻐합니다. 그렇다면 이 생명체가 사람을 아주 완벽하게 지배하고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 생명체야말로 진정한 이 행성 최강의 종족이 틀림없겠지. 그 생명체 하나를 데려온다.”
그렇게 해서 우리우리스의 우주선은 남자를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고, 대신 별님 아파트 근처를 떠돌아다니며 살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를 데려갔다. 이후로 이 남자는 이 이야기에 다시 등장하지 않지만, 남자는 자신이 보고 온 곳이 지옥이라고 생각했고 그 때문에 세상이 2022년 2월 2일 2시에 종말한다고 믿는 엉뚱한 종교에 빠져 많은 재산을 날렸다고 한다.
고양이를 데려온 의원은 언어 통역 장치를 이용해서 말했다.
“잘 듣거라, 지구 최강의 생물이여! 우리우리스 종족은 항상 싸움을 숭상해 왔고, 무엇보다 생물의 맨몸 싸움을 가장 위대한 게임으로 여겨 왔다. 때문에 우리는 은하계에서 가장 강한 생물들만 골라서 서로 결투를 벌이게 하는 것을 가장 인기 있는 행사로 개최하고 있다. 너는 우리우리스 게임에서 목숨을 걸고 상대방을 이기기 위해 싸워야 한다. 우리우리스 종족은 은하계에서 가장 강한 종족이니, 너는 우리 우리우리스 종족이 가장 중시하는 이 게임에 참가하게 된 것을 은하계의 영광으로 여기거라.”
그 말을 듣고 고양이는 몇 번 야옹거렸다. 아무리 봐도 의원의 말을 알아듣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언어 통역 장치는 최대한 고양이가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의원의 말을 야옹, 갸르릉 하는 소리의 조합으로 변형해서 들려줬지만, 그래도 고양이가 그 말을 이해한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이런 내용을 이해할 만한 지능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은데?”
“의원님, 원래 지능이 낮은 생물이 난폭해서 더 무서울 때가 있지 않습니까? 어쩌면 그런 부류의 맹수인지도 모릅니다.”
의원과 보좌관은 고양이를 노려봤다. 고양이는 옅은 갈색의 줄무늬에 살찐 몸집으로 어디인가 좀 졸린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의원이 노려보거나 말거나 고양이는 우주선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더니 원자력 대포가 있는 쪽으로 갔다. 그리고는 곧 그곳에서 웅크리고 앉아 졸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원자력 대포가 있는 쪽이니 그쪽 철판이 좀 더 따끈했기 때문이다.
“보십시오. 본능적으로 무기가 있는 곳을 알아보지 않습니까?”
“그렇구만. 이런 무서운 종족을 데려오다니. 우리우리스 게임 위원회에서 좋아하겠어.”
“의원님의 지지율도 분명히 급상승할 것입니다.”
“으하하하, 지구인들은 이런 것을 ‘떡상각’이라고 부른다고 하네.”
“하하하!”
‘떡상각’ 따위의 지구 유행어 하나를 따라 한다고 뭐가 그렇게 웃긴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의원이 그렇게 말하면서 웃으니 보좌관은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 후대의 학자들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일정 수준 이상 발달한 문화를 가진 은하계의 모든 종족들은 의원과 보좌관 사이에 공통적으로 이와 같은 습성을 갖게 된다고 한다. 최근 많은 학자들은 이것을 우주 전체를 설명하는 통일장 이론의 기초가 될 수 있는 실험적 단서라고 추측하고 있다.
우리우리스 게임을 하기 위해 고양이는 우리우리스 제1행성에 설치돼 있는 최고의 경기장으로 운반됐다. 정정당당히 실력을 겨루기 위해 최고의 음식을 먹게 해주는 우리우리스 게임의 규칙에 따라 고양이는 지구에서 구해 온 따뜻한 우유 한 그릇과 참치캔 하나를 먹게 됐다. 혹시라도 게임 중에 음식이 부족할까 봐 경기장 한 켠에는 우유와 참치캔이 들어 있는 상자가 아예 거대한 무더기처럼 쌓여 있었다.
만족스럽게 식사를 즐긴 고양이는 곧 9만 명의 우리우리스족 관중이 모여 있는 거대한 경기장의 가운데로 걸어 가게 됐다.
고양이의 상대는 칼리토포스라고 하는 짐승이었다. 칼리토포스는 토포스 행성에 있는 악마의 계곡이라는 곳에 살았는데 똑바로 일어서면 키가 50m에 달하는 거대한 생물이었다. 다리에 해당하는 것 네 개를 갖고 있고 동시에 몸에 여러 개의 촉수를 갖고 있기도 했다. 날카롭고 커다란 이빨에는 강한 산성 용액이 흐르고 있어서 그 이빨에 스치기만 해도 어지간한 행성의 생물은 강한 고통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우리스 게임에는 아무런 규칙이 없다. 무슨 수로든 상대방을 물리치기만 하면 이기는 것이다!”
우리우리스 종족의 철학을 설명하는 말이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그러자 경기장의 관중들과 게임을 중계방송으로 보고 있는 수십억 우리우리스 종족들은 모두 흥분해 열광했다. 그 열광적인 기운에 휘말려 칼리토포스도 이리저리 날뛰며 소리질렀다. 거대한 몸집의 괴물이 춤을 추는 것처럼 몸을 흔들 때, 경기장 바닥이 쿵쿵 울리는 소리가 객석에까지 전해졌다.
관객들의 시선은 곧 칼리토포스에서 상대방으로 옮아 갔다.
“에계. 저게 지구 대표야? 칼리토포스가 훅 불면 그냥 죽을 것 같은데.”
“그래도 지구에서 온 거잖아. 지구는 이상한 곳이야. 이상한 힘이 있을 지 몰라.”
“지구도 그냥 돌로 된 행성 아니야? 뭐가 그렇게 이상한데?”
“지구인들은 남들이 뭐 먹으면서 쩝쩝거리는 소리를 ASMR이라고 하면서 좋다고 몇만 명씩 찾아 듣는다잖아. 지구 생명체들은 진짜 이상하고 신비롭고 놀랍다니까.”
그렇다고는 해도, 정말로 저 거대한 칼리토포스를 상대로 고양이가 설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관중은 정말 드물었다.
다수의 관중들은 곧 칼리토포스가 신비의 지구 생명체, 고양이를 곧 완벽하게 파괴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우리우리스 종족의 흥행사들은 바로 그런 결과를 예고하며 열렬히 관중들을 선동했다. 관중들의 함성은 더욱 거세 졌다. 그리고 그에 따라 칼리토포스는 몇 배로 더 심하게 날뛰게 됐다.
칼리토포스는 그렇게 날뛰다가 고양이의 먹이를 쌓아 놓은 상자 근처까지 뛰어 가서 그 상자더미를 모두 찢어발겨 놓았다.
부서진 상자더미의 한 조각은 곧 경기장 중앙으로 튀어 날아갔다. 그것은 아주 평범한 사각형의 종이 상자 한 조각이었다. 그렇지만 그 정도면 고양이의 눈길을 사로잡기에는 충분했다.
주변에서 함성과 환호 소리는 여전히 아주 크게 들려 왔다. 그러나 고양이는 원래 별님 아파트에서 살면서 아침마다 주차장의 그 수많은 차들이 한꺼번에 줄지어 나가는 굉장한 소음 속에서 살아왔다. 그 소음 속에서 버티며 살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소음을 무시하며 아침마다 반복되는 혼란의 한 가운데에서 그 모든 것을 그저 바라보며 심드렁해 하는 경지를 추구하는 듯이 살았다. 바로 옆에서 거대한 칼리토포스가 날뛰고 있었다지만, 승합차에서 트럭까지 온갖 차종이 경적을 꽥꽥거리며 오가는 별님 아파트의 고양이에게는 칼리토포스조차도 덩치 큰 차와 같은 느낌이었다.
고양이는 항상 하듯이 눈에 뜨인 종이 상자 쪽으로 다가갔다. 가까이에 가서 그 물체를 잠시 둘러봤다. 그리고 고양이는 그 상자에 들어 가더니 곧 그 안에 주저 앉았다.
상자의 크기는 약간 작았다. 그래서 고양이가 그 안에서 앉으니 상자가 살짝 우그러질 정도였다. 그리고 상자의 높이도 그다지 높지 않았다. 앉은 고양이의 목 위가 가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칼리토포스가 봤다. 칼리토포스가 보기에도 그 상자는 좌우로 비좁아서 몸에 끼이고 아래 위로는 몸을 제대로 가리지 못해 목 위가 그대로 튀어나오는 모양이었다. 고양이는 그 상자 안에 비집고 들어가서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고양이는 무슨 아늑한 집이나 튼튼한 은신처에라도 들어온 것처럼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한편 그 만족스러운 표정의 한 끄트머리에는 이 정도로는 정말 확실한 집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 같고 뭔가 엉성한 것 같다는 약간의 의문도 같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고양이는 그래도 이 상자 바깥으로 나와서 더 아늑한 곳을 찾거나 지금 처한 상황을 해결하기에는 너무 귀찮다는 나태함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부족한 것이 많지만 그냥 지금 종이 상자를 무척 아늑하고 만족스럽다고 치자는 느낌이었다. 여기 앉아서 낮잠이나 자지 뭐. 그러는 와중에도 우겨진 종이 상자의 엉성함에 의문 약간을 표하는 느낌은 고양이의 표정에서 계속 새어 나왔다.
칼리토포스는 그 고양이가 상자 안에 앉아 내뿜는 그 모든 복합적인 감정을 절절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흥분해서 온몸으로 날뛰던 칼리토포스에게 상자 속에서 쉽게 표현하기 힘든 절묘한 균형 속의 즐거움을 누리는 고양이의 삶은 따라하고 싶다는 생각을 불러 일으켰다. 저거다. 편안해 보인다. 좋아 보인다. 그러면서도 매력적인 느낌이다. 호감 가는 느낌이다. 동시에 재미있다. 단지 상자 안에 앉아 있는 것 만으로.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흥분한 칼리토포스는 관중석 한 켠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우리스족 관중들의 2등석과 3등석 자리를 나눠 놓은 구역이 보였다. 나눠 놓은 구역 한 중앙에 다른 곳보다 조금 낮은 곳이 있어 보였다.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거대한 칼리토포스의 눈에는 바로 그 관객석 가운데의 움푹 들어간 곳이 마치 자신을 위한 고양이의 상자처럼 보였다.
칼리토포스는 고양이가 상자 안에 들어간 모습을 따라하고 싶었다. 그래서 단번에 관객석으로 뛰어올라가려 했다. 첫번째 시도에는, 관객석을 보호해는 전자파 방어 회로가 칼리토포스를 막았다. 그러나 열이 오른 칼리토포스를 막기란 어렵다. 칼리토포스가 두 번째 뛰어올랐을 때는 반대 방향으로 뛰어 벽면에 있는 전자파 방어 회로의 제어 장치를 먼저 두들겨 부쉈다. 그리고 세 번째 만에 객석으로 그 거대한 괴물은 뛰어들었다. 객석 한 가운데로 모든 것을 박살내며 뛰어 들어가서 칼리토포스는 고양이가 상자에 들어간 모습을 흉내 내며 몸을 밀어 넣었다.
우리우리스족에게 그 상황은 재난이었다. 많은 관객들이 덮쳐 오는 칼리토포스를 피해 도망쳤고, 무너지는 구조물을 피하기 위해 몸을 날렸다. 결국 관객석에서 소름 끼치는 포효를 계속하고 있는 칼리토포스를 끌어 내야 했으므로, 강력한 장치를 갖고 있는 우리우리스족의 능숙한 관리팀 사냥꾼들이 대거 몰려와서 한참 일해야 했다.
“제대로 싸운 적이 없으므로, 이번 경기는 지구 생명체와 칼리토포스, 모두 실격패다.”
처음 경기의 공식 결과는 그렇게 발표됐다. 모든 정치, 경제적 상황을 고려한 합리적인 결론이었다. 그러나, 이 경기를 신성시하는 우리우리스족의 문화는 이 결론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곧 결론에 반대하는 의견이 돌기 시작했다.
“우리우리스 게임에는 아무런 규칙이 없다. 비록 우리우리스족 관리팀 사냥꾼들이 와서 칼리토포스를 끌어 냈다고는 하지만, 그것 역시 결국은 고양이가 간접적인 방법으로 칼리토포스를 몰아 냈다고 봐야 한다. 이 경기는 고양이의 승리로 간주해야 함이 마땅하다.”
이런 반대 의견은 점차 인기를 얻었다. 반대 의견이 점차 커져 나가는 것은 우리우리스족 위원회의 계획과는 반대되는 일이었다. 우리우리스족들의 공통된 흥분을 위해 계획되고 개최되던 우리우리스 게임이 오히려 우리우리스족의 생각을 분열시키고 있다니. 이래서야 은하계 최강의 종족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수 없이 우리우리스족 위원회는 반대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고양이와 칼리토포스의 대결에서 승리한 쪽은 고양이라고 발표됐다는 이야기다.
승리의 결과에 따라 고양이는 좀 더 편안한 상자 세 개를 더 선물 받았고 다시 마음껏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고양이는 그 기회를 충분히 활용하며 더 걱정 없이 내키는 대로 살았고 몸무게가 늘면서 온몸은 더욱 토실토실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양이는 우리우리스 게임 2차전에 출전하게 됐다. 이번 상대는 칼리토포스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팔과 다리가 아주 길다란 생명체였다. 이 생명체는 티피피 종족의 대표였다.
2차전은 외딴 행성에서 진행됐다. 1차전 때 생긴 사고에서 교훈을 얻어, 2차전이 벌어지는 경기장에는 우리우리스족 관객이 가서 앉을 수 있는 자리는 마련돼 있지 않았다. 텅 빈 공간만이 있었고, 그 외에는 고양이와 티피피가 싸우는 격렬한 싸움을 중계해 방송할 수 있는 설비들이 있을 뿐이었다.
우리우리스 게임의 기획자들은 1차전에서 엉뚱한 결과를 얻은 이유가 고양이의 상대인 칼리토포스가 너무 지능이 낮고 그에 비해 너무 흉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2차전의 상대는 지적 능력이 굉장히 뛰어난 종족을 내보기로 했다. 티피피는 바로 그런 종족이었다. 지적 능력이 뛰어나다 못해, 다른 종족의 중추 신경, 판단, 제어 체계에 텔레파시처럼 접속하는 재주까지 갖고 있었다.
2차전 경기가 시작되자, 티피피는 바로 고양이의 두뇌 속에 접속해서 그 모든 신경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고, 고양이가 견디지 못하고 사망하도록 만들고자 했다.
“지구의 생명체여, 미안하구나. 그러나 너무 원망은 말거라. 우리우리스 종족은 강력한 무기로 우리 티피피 종족의 군대를 모조리 섬멸하고 우리 종족의 남은 인구를 모두 인질로 잡고 있다. 티피피 종족의 대표인 내가 결투에서 이기지 못하면 우리 종족을 전멸시키겠다고 우리우리스 종족은 협박하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 종족의 생존을 위해서는 내가 너를 해칠 수밖에 없구나.”
티피피는 그 말을 텔레파시로 전달하고 이후 바로 고양이를 공격하려고 했다. 그런데 몇 차례 시도해도 고양이는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상한데? 칼리토포스 같은 괴물을 물리치고 2차전에 진출한 상대라면 분명히 굉장한 지능을 갖추고 있을 텐데? 지구 생명체는 왜 이렇게 지능이 낮은 거지?”
티피피는 의아함을 느꼈다. 그래서 곧 고양이의 두뇌 전반을 모두 조사했다. 그 과정에서 티피피는 이 고양이가 최근에 겪은 삶의 과정에 대해 알게 될 수 밖에 없었다.
고양이는 얼마 전 퀘이사러 기술이라는 회사의 김 부장이라는 사람에게 붙들려 간 적이 있었다. 김 부장은 20대 사원들이 좋아한다는 행위를 자신이 따라 하면 자신도 굉장히 젊어 보일 수 있고 또 어린 다른 사원들도 자신을 존경하면서도 좋아할 거라는 허상에 허우적거리며 세월을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김 부장은 20대 사원들이 고양이를 좋아하는 특징이 있다고 파악했고, 그것이 20대 사원들의 유행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김 부장은 자기가 사는 아파트 근처로 잠깐 사냥하러 나와 있는 별님 아파트의 고양이를 붙잡아 자기 집 안으로 데려 갔다. 그리고 다음날 회사 직원들과 마주칠 때 마다, 자기가 “고양이 한 마리를 구조했다”고 떠들었다. 김 부장은 소방관이나 응급구조사 같은 전문가들이 쓰는 단어인 구조라는 단어를 자신이 하는 행동을 묘사하기 위해 발음하고 있다는 사실에 신이 났다. 그래서 일부러 구조라는 단어를 더욱 많이 사용했다. “내가 어제 고양이 한 마리를 구조했는데 말이지. 구조하기 위해 덫을 놓았거든. 그런데 내가 구조한 생명이니 내가 책임을 져야겠지? 그렇게 책임을 져야만 진짜 구조라고 할 수 있겠지. 다른 고양이를 또 구조할 수는 없겠지만 이번에 구조한 이 고양이는 정말 구조한 것답게 구조를 완성해 나가야지. 구조, 구조, 구조, 구조.”
김 부장은 자기 집 안에 고양이를 계속 가둬 놓았다. 그리고 자신이 가두어 놓은 그 고양이가 하는 모든 행동이 대단히 영리한 행동이고 다른 보통 고양이들은 할 수 없는 매우 독특한 행동이라고 자랑하기를 좋아했다. 예를 들어, 김 부장은 회식 자리에 가면 젊은 직원들이 좋아할 거라고 짐작하면서 자기 고양이 이야기를 길게 들려주는 것을 좋아했다. 맥주에 소주를 타 돌려 놓고 얼른 마시라고 다그치면서, 자기 고양이의 모든 행동이 얼마나 특이한지 한 시간 동안 설명했고, 그게 끝나면 그 고양이의 행동이 얼마나 사람 같은지 한 시간 동안 설명했으며, 그게 끝나면 그렇게 사람 같은 행동을 하려고 하지만 지능이 부족해서 그것을 완벽하게 하지 못하는 모습이 얼마나 웃긴지 한 시간 동안 설명했다. 김 부장이 일하는 부서의 20대 직원들은 코로나 시대에 걸맞게 3인 1조로 돌아가며 김 부장과 회식을 가졌는데 그때마다 3시간 이상에 걸쳐 김 부장이 자기 고양이라고 주장하는 고양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머, 진짜 귀엽다.” “이야, 정말 사람 같네요.” “어쩜, 너무 웃겨요.” 같은 말을 2000번씩 늘어 놔야 했다.
그러다 한 번, 김 부장은 술기운에 흥이 올라서 자기 고양이는 이 집을 정말 고향처럼 여기고 있고 자신은 고양이가 집주인인 집에 세 들어 살고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김 부장이 스스로 돈을 주고 융자를 내어 산 집인데 그 집의 주인 행세를 하는 것은 고양이라니. 김 부장은 그 말을 하고 너무 재치 있고 웃긴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해서 세 번 반복하면서 각각 5초 씩 웃었다. 그렇게까지 이야기하고 났더니, 김 부장은 자기 집 문을 열어 둬도 고양이가 바깥을 즐겁게 산책하고 나서 정말 집주인처럼 자기 집으로 다시 걸어 들어 오곤 한다고 자랑하고 싶어졌다.
김 부장은 그래서 집 문을 열어 놓고 고양이에게 “잘 놀다 들어 와”라고 말했다. 고양이는 그 길로 그 집을 탈출해서, 다시 별님 아파트의 주차장과 화단 덤불 사이로 뛰어들었다. 김 부장은 곧 고양이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고양이를 잃어버렸다고 말하면 다음 번에 직원들을 불러다 놓고 술을 마실 때에는 민망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또 다른 “고양이를 구조”하겠답시고 이리저리 고양이들이 자주 보이는 거리를 돌아다니는 형편이었다.
우리우리스족의 경기장에서 티피피는 고양이의 이 모든 사연을 정신 대 정신으로 이해하게 됐다. 그리고 그 생각은 티피피의 마음 속에서 자신의 자유에 대한 깊고 무거운 갈망을 불러 일으켜 깨웠다. 길 밖으로 뛰어나가 더 이상 김 부장과 같이 살 필요가 없는 삶을 찾기 위해 조금의 주저함도 없는 고양이의 그 모든 감정을 티피피는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자유, 우리 종족 모두의 자유, 더 이상 지배 받고 삶을 구걸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가장 소중하다! 우리우리스 종족의 재미를 위해 벌이는 이따위 게임의 선수로 구경거리가 되면서 대신 우리 목숨을 살려 달라고 비는 것에는 자유가 없지 않은가?”
티피피 종족의 대표였던 그는 온통 마음 밖으로 넘실거리는 것 같은 그 감격을 더 이상 억누를 수 없었다. 그는 게임을 포기하고 정신 집중의 표적을 바꾸었다. 대표다운 강력한 텔레파시의 힘으로 다른 티피피 종족들에게 바로 자유를 위해 다시 힘을 합해 모두 같이 싸우자는 자신의 생각을 절절히 전달했다. 그 절절함을 다른 티피피 종족들도 그대로 느끼면서 감동은 이어져 나갔다. 그리고, 그 티피피 대표는 최대한 자신의 힘을 발휘해서 자신 근처에 있는 우리우리스 종족부터 먼저 텔레파시로 공격했고 그곳에서 탈출했다. 이것이 훗날 역사에 기록으로 남은 티피피 독립 전쟁의 시작이었다.
자유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진 티피피 독립 전쟁은 전투에 뛰어난 우리우리스 종족으로서도 진압하기 어려웠다. 결국 우리우리스 종족은 티피피 종족의 행성 두 곳을 내주고 후퇴해야 했고, 티피피 종족의 독립과 자치를 어느 정도 인정해 줄 수 밖에 없었다.
일이 이렇게 돼버리니, 우리우리스 종족 위원회에서는 전쟁의 책임을 물어 고양이를 패배한 것으로 처리하고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었다.
“저 고양이 때문에 티피피 종족이 반란을 일으킬 마음을 품게 되었다. 그러니 저 고양이를 반역죄로 처벌해야 한다.”
그러나, 1차전, 2차전에서 강력한 상대를 물리친 고양이는 우리우리스 종족 사이에서도 이미 인기가 상당했다. 위원회의 고양이 처벌론에 대한 반대 의견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였다. 특히 고양이를 지지하는 우리우리스 종족은 가히 열성적이었다.
“우리우리스 게임은 이기기만 하면 될 뿐 아무 규칙이 없다. 고양이는 분명 티피피가 경기를 포기하게 만들었지 않은가? 그러면 고양이가 승리한 것이다. 고양이의 승리다.”
“더군다나 반란을 일으킨 것은 티피피 아닌가? 형식상 고양이는 티피피의 적수였으니, 고양이를 반역죄로 처벌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고양이는 승리했다, 승리한 생물을 승리자로 대접하라!”
“우리우리스 게임은 누구도 더럽힐 수 없다. 고양이가 이겼다!”
일이 이렇게 돌아가자 우리우리스 위원회는 어떻게든 마지막 3차전에서는 무조건 고양이를 패배하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고양이가 비참하게 패배해서 망한 모습을 보여줘야만 했다. 그래야 괜히 고양이를 응원하게 된 이상한 성격의 우리우리스 종족 일부를 다시 되돌려 하나의 단결된 상태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우리스 위원회는 3차전에서는 우리우리스 종족 중 최고로 유능한 전사가 직접 자신의 몸을 생물학적으로 개조해서 출전하도록 준비했다. 우리우리스 종족의 대표 선수인 결투 최적화형 개조 장사가 1 대 1로 고양이와 그대로 맞붙어서 고양이를 우주의 먼지가 되도록 완전히 산산히 분해해 버리는 모습을 보여 줄 예정이었다. 그 철저한 승리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모든 우리우리스 종족이 우리우리스 종족 스스로의 우월함을 깊게 신봉하면서 다시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칠 수 있을 것이다.
3차전을 준비하면서 우리우리스 위원회는 혹시 모를 싸움의 여파가 외부에 영향을 최대한 미치지 않도록 경기장을 초공간 지대에 두도록 했다. 특수 우주선을 통해서 접근하지 않으면 아무도 올 수도, 갈 수도 없는 그곳에서 지구의 고양이와 우리우리스 종족의 가장 강력한 장사가 서로 결투를 벌였다.
우리우리스 종족의 장사는 양쪽 손이 핵융합 폭발을 일으킬 수 있도록 개조돼 있었고 몸의 중앙 부위에서는 응축 블랙홀을 내뿜어 공격할 수 있게 돼 있었다. 입을 열면 입 속에서 감마선 대폭발을 일으킬 수 있었고, 눈빛으로 암흑 에너지 역전 파동을 발산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우리스 종족의 장사는 우주 저편에 보내둬도 혼자서 행성을 짓밟고 다닐 수 있었고, 작정하고 은하계 끝을 공격하기 시작하면 별들을 녹여서 들이 마실 수 있는 위력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 무서운 위력을 갖춘 우리우리스 장사는 거대한 은하계의 맹수들로부터 재빨리 몸을 숨기는 재주마저도 갖출 수 있도록 몸 길이가 10cm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작은 모습 덕택에 우리우리스 장사의 겉모습은 공교롭게도 지구의 포유류 동물 중 포유류 등장 초기에 그 원형이 나타나서 아직까지도 그 후손이 널리 번성하고 있는 흔한 생물의 모습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경기가 시작 되자, 눈 앞 멀지 않은 곳에 별님 아파트 외곽에서 가끔 발견되던 쥐와 비슷한 형상이 고양이의 눈에 들어 왔다. 가만히 앉아서 참치캔이나 핥는 것 이외에는 별 할 줄 아는 것이 없어 보이던 이 나태한 동물은 변덕스럽게도 그 순간 육식동물의 본능이 온몸에서 깨어나는 것을 느꼈다. 우리우리스 종족의 장사가 핵폭발을 일으켜 고양이를 공격하려고 잠깐 준비하고 있을 때, 고양이는 단숨에 장사의 몸 앞으로 뛰어 가서는 앞발로 급소를 치고 바로 그 몸을 반토막 내듯 씹어버렸다.
“최고다! 저 지구 생명체가 우리의 챔피언을 무너뜨렸다!”
우리우리스 종족은 굉장한 충격에 휩싸였다. 종족에게 패배의 수치를 안겨 준 고양이를 향해 조직적인 공격을 가해서 제거해야만 한다는 의견이 인기를 얻는가 하면, 우리우리스 게임의 원칙을 지키고 그 원칙 아래 유지되는 종족의 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고양이를 은하계 최고의 생물로 떠받드는 것이 맞다는 의견도 한 편에서 인기를 얻었다.
결국 우리우리스 종족은 견디다 못해 문제의 고양이를 그냥 원래 지구의 있던 곳으로 돌려 주고 오게 됐다. 그러나 그 사이에 우리우리스 종족이 지배하던 은하계 구역은 둘로 나뉘어 분열됐고, 그 틈에 우리우리스 종족의 지배를 받던 수많은 다른 종족들이 독립 운동에 나서며 은하계는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게 됐다. 이것이 바로, 은하계 역사의 전근대와 근대를 가르는 중요한 기점으로 자리 잡은 우리우리스 대분열이다.
지금 별님 아파트로 돌아온 고양이는 사람 손이 닿기 어려운 축대 높은 곳에 올라가서 자기가 마치 이 아파트 전체의 주인이라도 되는 양 한없이 거만하고 평화로운 태도로 앉아 별 움직임 없이 주위를 내려다 보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그 모습은 너무 거만해 보여서, 지나가는 사람 중에 30% 정도가 “사람들이 길고양이 밥 주는 것만 얻어먹고 살다 보니 너무 게을러져서 아주 온 세상이 자기 건 줄 알아”라고 괜히 투덜거릴 정도다.
그러나, 가끔 아무 인적도 없는 깊은 밤, 우주 저편에서 온 탐사 우주선들은 다시 평화가 찾아온 지구를 지나가다 이곳 근처를 지날 때마다 이 은하계 최강의 생명체를 향해 저마다의 방법으로 신실한 경의를 표하고 있다.
-2021년, 시민의 숲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