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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창오리의 억울한 죽음

3년 만의 조류인플루엔자 4가지 의문



사태 초기 가장 첨예한 논쟁거리였다. 전북 고창군 씨오리농장에서 고병원성 H5N8형 AI가 처음 발견된 직후, 가까운 동림저수지에서 겨울철새인 가창오리가 집단으로 죽은 채 발견됐다. 죽은 가창오리에서 같은 바이러스를 발견한 농림축산검역본부(아래 검역본부)는 전염원이 철새라고 판단했다. 전국에 ‘철새지명수배’를 내리고 대대적인 방역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철새는 그동안 AI ‘셔틀’ 역할만 했다. 병원체를 몸 안에 가지고 있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증상이 없었다는 말이다. 전문용어로 ‘보균자’라고 한다. 이번처럼 보균자인 철새가 집단으로 죽은 사례는 세계적으로 처음이다. 이것만으로도 이번 사건은 미스터리다. 기자가 사태 초기에 검역본부에 이 점을 지적하자 “우리도 이런 일은 처음이라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다”면서 “현재 정밀 조사 중이니 기다려 달라”고 답해왔다. 며칠 뒤 검역본부에서 발표한 중간 조사결과에는 “이번 AI가 철새도 죽일만큼 고병원성”이라는 뭉뚱그린 해석이 나왔다.

여전히 이상한 점이 보인다. 국제수역사무국에서 발표한 AI의 잠복기는 닭을 기준으로 보통 3~14일, 최대 21일을 넘지 않는다. 게다가 고병원성 AI는 치사율이 75%에 이른다. 시베리아에서 출발한 가창오리가 우리나라에 도착한 시점은 작년 11월 초. 고병원성 AI에 걸린 채 70일 넘게 살아서 바이러스를 퍼뜨린 뒤 1월 중순에서야 죽었다? 얼핏 생각해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환경단체와 동물보호단체는 일제히 “엉뚱한 철새를 범인으로 몰고 있다”며 반박 성명을 발표했다. 유엔환경계획(UNEP)에서 운영하는 ‘조류인플루엔자와 야생조류 과학특별전문위원회’도 전혀다른 가능성을 제기했다. 고병원성 AI가 대부분 가축 조류 농장에서 발생했다는 외국의 사례를 들며 “이번 사건도 닭·오리를 키우는 농장의 공장식 집단사육 시스템에서 바이러스가 진화한 뒤 인근 저수지로 흘러들어 철새를 감염시켰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가축 조류 농장에서 AI가 고병원성으로 변한 전적은 꽤 여러번 있다. 이탈리아(1999)와 칠레(2002), 네덜란드(2003), 캐나다(2004) 등 위생상태가 엉망인 세계 각지의 가축 조류 농장에서 이런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졌다.

저병원성 바이러스는 고밀도의 사육환경에서 6개월 만에 고병원성으로 진화할 수 있다. 둘은 사실 ‘한 끗’ 차이기 때문이다. 같은 H5N8형이라도 헤마글루티닌 단백질의 ‘분절 부위’가 동물이나 사람의 효소에 잘 끊어지면 고병원성, 잘 끊어지지 않으면 저 병원성이다. 분절 부위가 잘 끊어지면 다른 세포의 수용체에 달라붙기 쉬워 그만큼 독성이 높다.



그런데 유력한 용의자인 씨오리농장(최초 발생지점)에는 명백한 알리바이가 있다. 논리상 고병원성 AI가 여기서 처음 나타났으려면, 그 전에 이곳에 저병원성 AI가 존재했어야 한다. 하지만 저병원성 AI를 앓았던 오리는 한 마리도 발견되지 않았다. 역학조사위원회 위원장인 김재홍 서울대 수의과대학 교수는 “씨오리농장과 그 주변을 조사해본 결과 저병원성 H5N8형 AI에 대한 항체를 가지고 있는 오리는 없었다”고 밝혔다. 동림저수지에서 죽은 가창오리도 아니고, 가축 조류 농장도 아니라면 대체 범인은 누굴까. 김 위원장은 제3의 가능성을 제기했다.

“금강 주변에서 살아있는 가창오리 7마리를 잡아 조사해 본 결과 3마리에서 H5N8형 AI에 대한 항체가 검출됐어요. 가창오리중에도 바이러스를 가지고 멀쩡히 날아다니는 개체가 있는 반면, 폐사하는 개체도 있다는 말입니다. 가창오리뿐 아니라 철새 종류마다 면역력과 잠복기가 각각 달라요”

김 위원장은 “동림저수지에서 죽은 가창오리들은 다른 개체로부터 AI가 옮아 죽었을 것”이라면서 “단, 가축 조류가 아니라 주변에 있던 다른 철새들이 전염원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간단히 말해 범인은 철새가 맞지만, 죽은 가창오리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아직 범인이 명확히 밝혀진 상태는 아니지만 당분간 가창오리는 누명을 벗기 어렵게 됐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전남·전북에 이어 경기·충남·충북까지 일시이동중지명령(스탠드 스틸)을 내리며 AI 확산을 막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발 빠른 대응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비판받는 부분도 있다. 방역 초기 범인을 철새로 지목하며 먹이주기를 금지한 점이다. 검역본부는 전국의 모든 철새도래지에 사람들의 접근을 막았고, 경기 안산 시화호 주변에서는 대형헬기까지 띄워 소독약을 뿌렸다. 하지만 이렇게 철새를 고립시키는 것은 자칫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제대로 먹지 못한 철새들의 면역력이 떨어져서 바이러스에 쉽게 노출되고, 먹이를 찾아 이동하면서 바이러스를 더 확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먹이를 주지 않으면 철새가 먹을 게 없을까? 과거에 비해 철새 먹이가 많이 사라진 것은 사실이다. 특히 2000년대 초반부터 농가에서 ‘곤포사일리지’를 도입하면서 철새들의 주요 먹이인 낙곡(수확할 때 떨어진 낟알)이 많이 줄었다. 곤포사일리지는 볏단을 압축한 뒤 비닐로 밀봉해서 만든 가축용 숙성사료를 말한다. 추수가 끝난 논 한가운데는 볏짚 대신 마시멜로처럼 둥그렇고 하얀 포대만 가득하다. 농가에서는 이 곤포사일리지를 500㎏짜리 한 덩어리 당 7만 원에 팔아 수익을 올리고 있다.

그래서 대신 사람들이 직접 철새에게 먹이를 주기 시작했다. 2002년부터 생물다양성협약에 따라 전국 철새도래지 인근 지자체에서 철새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하지만 이번 AI 사태로 먹이 지급이 뚝 끊기면서 올해 우리나라를 찾은 철새들은 그 어느 때보다 배고픈 겨울을 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H5N8형은 사람에게 전염된 사례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아직은 안심해도 된다는 뜻이다. 다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른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돌연변이 확률이 DNA보다 10만 배 이상 높은 RNA로 이뤄져 있어 변이가 잘 일어나기 때문이다.

참고로 H5N8형과 헤마글루티닌 단백질이 같은 H5N1형은 2003년 첫 인간 감염 사례가 보고된 뒤 최근까지 동남아시아와 북아프리카에서 648명의 감염사례가 보고됐다. 이 가운데 348명이 사망해 무려 59%의 치사율을 보였다. 계절성 독감의 사망률이 보통 0.1% 미만인 걸 생각하면 엄청난 고병원성이다.

H5N1형 AI는 이미 우리나라에 네 차례나 들른 적이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H5N1형 인체감염 사례가 있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면서 불안감이 커지자 보건당국에서 인체감염이 아니었다고 급히 진화한 일이 있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감염’이라는 말과 보건학에서 쓰는 ‘감염’의 정의가 다르기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이다.

세계보건기구는 AI에 노출된 후 급성호흡기증상을 보이는 환자 중 ①바이러스 검출 ②유전자검사 양성 ③기준 항체보다 4배이상의 항체생성 중 한 가지 이상을 만족하면 인체감염자로 분류한다. 우리나라의 H5N1형 발견 사례는 3가지 기준 모두 해당되지 않았기 때문에 감염이라고 할 수 없다. 한발 더 나아가 이번 H5N8형은 세계적으로도 아직 인체 감염 사례가 없으므로 미리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혹시 감염된 닭이나 오리를 먹어서 감염되는 경우는 없을까. 현재 사람 감염이 자주 일어나고 있는 베트남이나 태국, 홍콩에서도 닭이나 오리고기, 계란을 먹어서 감염된 사례는 없다. 위에서 분비되는 위산이 바이러스를 무력화시키기 때문이다. AI는 열에도 약해서 70℃에서 30분, 75℃에서 5분만 익히면 안전하다. 야식으로 치킨이나 오리고기를 마음 놓고 시켜도 된다는 뜻이다.




매년 구제역과 AI가 돌 때마다 어김없이 나오는 문제다. 올해 살처분 된 400만 마리를 포함해 지금까지 닭·오리 2900만 마리를 땅에 묻었다. 문제는 감염되지도 않았는데 죽어가는 가축의 비중이 너무 높다는 점이다. 지난 2003년부터 살처분이 이뤄진 농장의 수는 모두 2793곳인데, 이 중 AI가 실제 발생한 곳은 129곳에 불과하다. 95% 이상이 예방적 살처분 농장이란 말이다. 조류 입장에서는 억울한 죽음이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는 AI가 발생했을 때 해당 농가의 조류만을 살처분하고, 3km 범위 안에 있는 가축 조류에 대해서는 방역을 강화하고 이동을 제한시킬 것을 권고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AI가 발생했을 때 해당 농가와 500m 범위 안에서만 선택적으로 살처분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AI 발생 지역 반경 3km 안에서 대부분 예방적살처분을 진행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의 조치가 너무 가혹하다는 의견이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동물보호연합은 “반경3km 내의 예방적 살처분은 외국에서는 사례가 없는 비과학적이고 잔인한 동물살상 행위”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가축 수출에 유리한 ‘AI 청정국’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살처분을 강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살처분을 할 때도 원래는 이산화탄소로 안락사를 시킨 뒤 매장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워낙 수가 많다보니 숨이 붙어있는 채로 생매장하는 경우가 많다.

근본적으로 전염병에 취약한 공장식 축산시스템을 개선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영국의 가금연구소는 암탉이 편안히 쉴 때 필요한 물리적 면적을 637cm2라고 보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닭 한 마리에 배당된 면적은 225cm2로 A4용지 반에도 못 미친다. 이런 좁은 환경에서 닭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면역력이 떨어지고 질병에 취약해진다.

우리나라는 베트남, 태국, 방글라데시, 루마니아, 인도네시아 등에 이어 세계 11위 AI 발생국이다. AI가 한 번 돌 때마다 보상금 등으로 수천 억 원의 정부 예산이 투입된다. 공장식 축산시스템이 정말 경제적이고 효율적인지 한번 따져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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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변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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