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기다렸다. 2000년, 세계 최초의 2족보행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아시모’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뒤로 24년이 흘렀다. 그 사이 휴머노이드 로봇 상용화는 오래된 미래로만 여겨졌다. 이 경향이 최근 1~2년 새 뒤바뀌었다. 미국, 중국, 유럽 등지에서 아시모보다 더 ‘사람다운’ 휴머노이드 로봇이 속속 나오는 추세다. 그 가운데 선 테슬라는 인공지능(AI)을 무기로 휴머노이드 로봇을 5년 내 상용화하겠다고 나섰다. 가능할까.
“우리의 목표는 최대한 빨리 상용화 가능한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우리 로봇은 이전 휴머노이드 로봇과 달리 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테슬라 차를 만드는 인프라를 활용해 대량생산도 가능하죠. 3~5년 내엔 2만 달러(약 2600만원) 수준으로 출시 가능할 거라고 봅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2022년 10월 1일(현지시간) 개최된 테슬라 AI 데이 행사에서 이 같이 선언했다. 이날 공개된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Optimus)’는 사실 머스크의 말처럼 대단하진 않았다. 내부 부품이 그대로 노출된 모습으로 아슬아슬하게 걸으며 간단한 손동작을 조금 한 다음 2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단상 뒤로 사라졌다.
그로부터 1년이 조금 더 지난 2023년 12월 14일(현지시간) 테슬라는 그 다음 세대 모델인 ‘옵티머스 젠2(Gen2)’의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 속 옵티머스 젠2는 확실히 옵티머스보다 더 진보돼 보였다.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팔과 손가락을 움직이며 스쿼트 동작을 하거나 계란을 옮기고 춤까지 추는 모습을 보며, 대중은 테슬라가 1년 만에 보인 진보에 놀랐다.
머스크의 말처럼 생활에서 사용 가능할 정도의 성능을 갖춘 휴머노이드 로봇이 2600만원 선에 출시된다면, 이는 휴머노이드의 상용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됨을 뜻한다. 트렌드는 이미 명확하다. 2023년 3월, 오픈AI(챗GPT를 출시한 그 회사 맞다)가 노르웨이의 휴머노이드 로봇 스타트업 ‘1X’에 2350만 달러(약 309억 250만 원)를 투자했다.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은 2024년 1월 10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 가전 전시회(CES) 2024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이 5~10년 뒤 전자 부품의 메인 시장이 될 것”이라며 “인공지능(AI)을 접목한 휴머노이드가 일상 생활과 산업에 적용되는 시대가 빠르게 도래할 전망”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기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액추에이터(작동장치), 전원공급 시스템 등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다 잘하거나 혹은 신기한 볼거리에 그치거나
1월 10일, 서울에 위치한 한국과학기술연구원 AI로봇연구소를 찾았다. 이곳에서 만난 이이수 지능로봇연구단 선임연구원은 “최근 2년 새 휴머노이드 로봇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휴머노이드를 연구하면 취업할 데가 없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2년 전부터는 이 기세가 역전됐습니다. 이제는 휴머노이드를 연구한 사람이 미국에서 취업을 못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입니다.”
최근 2년 새 정반대로 뒤바뀐 휴머노이드 로봇의 판세 뒤에는 기업이 있다는 것이 이 선임연구원의 설명이다. 2022년부터 테슬라를 비롯해 앞서 소개한 1X, 중국의 로봇 기업 유니트리 로보틱스(Unitree Robotics), 미국의 피규어(Figure) AI 등이 앞다퉈 자신의 휴머노이드 로봇을 공개했다. 물밑에서 조용히 이뤄지던 이들 기업의 기술 개발이 이제 대중에 보일 정도로 무르익었던 것이다.
사실 ‘대중에 보일 수 있을 정도’와 ‘실제 상용화가 가능할 정도’ 사이에는 거대한 벽이 있다. 현재 공개된 휴머노이드 로봇은 안정적으로 걷고, 사과부터 박스까지 다양한 형태의 물건을 옮기는 정도의 기능을 갖췄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는 2017년 공중제비를 도는 모습을 선보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휴머노이드 로봇이 시장에 출시돼 실제로 활용되려면 이 정도로는 모자라다. 이 선임연구원은 “휴머노이드가 상용화되려면 정말로 모든 걸 다 사람처럼 잘 하는 수준으로 올라와야 한다”고 했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모든 걸 잘 할 경지에 올라야 상용화를 넘볼 수 있는 이유는 이 로봇이 범용 로봇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생성 AI가 모든 일을, 인간만큼 잘 하게 되자 폭발적인 속도로 상용화되기 시작한 것처럼. 우리에게 친숙한 로봇 상용화 사례를 떠올려보자. 음식점의 서빙 로봇은 서빙만 한다. 바리스타 로봇은 커피만 만든다. 공장 조립 라인에 있는 산업용 로봇은 조립만 잘한다. 서빙 로봇을 공장에 보내 제품 조립을 맡길 순 없다. 하지만 사람은 그럴 수 있다. 사람은 커피를 만들 수도 있고, 서빙을 할 수도 있고, 제품을 조립할 수도 있다. 이렇게 사람처럼 다양한 환경에서 두루 활약하는 로봇을 범용 로봇이라고 부른다.
첨단 로봇기술을 모두 모아야 인간다워진다
인간다운 범용 로봇을 만들기 위해선 첨단 로봇기술이 모두 모여야 한다. 우선 하드웨어다. 가벼우면서도 튼튼한 재료로 뼈대를 만들어야 하니 재료공학적으로 뛰어난 소재를 활용해야 한다. 한 번의 충전으로 장기간 작동해야 하니 배터리 경량화도 필수다. 섬세한 손가락의 움직임과 강력한 다리 힘 등은 액추에이터와 모터, 관절 구조에서 온다. 기계공학의 영역이다.
로봇의 몸을 다 만들었다고 끝이 아니다. 이제 이 로봇이 부드럽게 작동하도록 제어해야 한다. 앉은 자리에서 책상 저 편 멀찍이 떨어진 컵을 잡는 동작을 생각해보자. 그냥 팔만 뻗어서는 닿지 않을 곳에 물체가 있다면 인간은 자연스레 허리를 함께 구부린다. 동작 하나를 할 때 전신을 한꺼번에 제어해야 하는 것이다. 이때 관여하는 관절을 파악하고 여기에 적합한 명령을 내려야 한다. 컴퓨터공학 지식이 필요한 지점이다.
조금 더 자세히 들어가보자. 전신제어를 하기에 앞서 현재 몸의 위치를 파악해야 한다. 팔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팔짱을 끼고 있는가? 자연스럽게 늘어뜨리고 있는가? 이 위치를 알아야 관절을 얼마나 어떻게 구부릴지 판단할 수 있다. 내가 팔을 뻗을 때 그 사이에 책상이나 가방 등 장애물이 있다면 그 장애물을 피해 3차원 공간 속에서 손의 궤적도 조정해야 한다. 인간은 아무렇지 않게 하는 이 행동을 로봇으로 구현하려면 수많은 계산과 프로그래밍이 필수다.
AI를 통해 보고, 생각하고 움직인다
다행인 건 계산과 프로그래밍을 손쉽게 해줄 강력한 도우미가 생겼다는 점이다. 바로 AI다. 앞서 테슬라와 삼성전기를 이끄는 이들이 휴머노이드 개발에 대해 말할 때 ‘뇌’ 또는 ‘AI’란 키워드를 함께 언급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현재 과학기술계의 가장 큰 화두인 AI는 로봇에서도 어김없이 큰 파도를 일으키고 있다.
한국기계연구원이 2024년 1월 발간한 기계기술정책보고서 ‘지능형 로봇 및 생성형 AI 동향 분석과 시사점’에서는 첨단로봇에 활용되는 AI 기술을 인식, 판단, 동작, HRI(인간-로봇 상호작용Human-Robot Interacion) 네 분야로 구분한다. 우선 로봇 주변 환경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수집된 정보를 인식하는 분야인 ‘인식’이다. 이어 이렇게 인식한 정보를 해석해 주변 상황을 파악하고, 상황에 맞는 행동을 계획하는 ‘판단’ 분야가 있다. 컵을 집는 로봇의 예시처럼 계획된 행위에 따라 로봇이 효과적으로 동작할 수 있도록 제어하는 분야가 ‘동작’이다. 마지막으로 ‘HRI’는 로봇이 사용자의 의도를 판단하고 적합한 반응과 행동을 수행해 인간과 의사소통하고, 상호협력하는 분야다. 인식, 판단, 동작 세 가지가 함께 이뤄진다.
이 선임연구원은 “변수가 너무 많아 수학 계산을 통해서는 쉽게 구현할 수 없는 사람의 움직임도 강화학습 등 AI 기술을 활용해 더 손쉽게 구현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동작 뿐만 아니라 인식, 판단 등 분야의 성과도 눈부시다. 이 선임연구원은 구글 딥마인드와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이 2024년 1월 4일 논문 사전공개 사이트 ‘아카이브(arXiv)’에 공개한 ‘모바일 알로하(Mobile ALOHA)’의 영상을 꼭 보길 권했다. doi: 10.48550/arXiv.2401.02117
영상 속 모바일 알로하는 인간의 작업 방식을 모방하는 ‘이미테이션 러닝’ 기술을 이용해 사람이 시범 보인 작업을 배우고, 원격으로 명령을 내리면 해당 작업을 알아서 척척 수행한다. 모바일 알로하가 할 수 있는 일은 새우 요리하기, 와인 흘린 것 닦기, 사람과 하이파이브하기 등 다양하다.
기자가 특히 놀란 영상은 흘린 와인을 닦는 동작과 하이파이브다. 씽크대에 가서 행주를 집어든다. 다른 손으로는 와인잔을 든다. 그리고 행주로 와인을 닦는데, 와인잔 아래까지 놓치지 않고 닦는 모습이 웬만한 사람만큼 야무지다. 하이파이브의 경우, 다양한 장소, 다양한 옷, 다양한 키를 가진 사람들의 조건에 맞춰 하이파이브를 한다. 하이파이브란 동작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어려운 작업이다.
모바일 알로하에게는 여전히 단점이 많다. 작업을 가르치기 위해선 아직 각 작업당 50번은(!) 시범을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이 로봇의 형태는 바퀴 위에 양팔을 연결한 정도라 아직 ‘휴머노이드’라 칭하기엔 조잡하다. 이 선임연구원은 “모바일 알로하처럼 모바일(이동형) 로봇에 양팔을 다는 식으로 AI 기술을 먼저 고도화한 다음, 휴머노이드 로봇에 점차 적용하는 양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그러므로 휴머노이드를 꿈꾼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자. AI의 도움으로 개발 속도가 가속되면 정말 5년 뒤엔 휴머노이드 로봇을 상용화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기자는 대학, 기업 등의 로봇 전문가들에게 의견을 들었다.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5년은 택도 없다’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전망이 마냥 어둡지만은 않다.
이성욱 고스트로보틱스 테크놀로지 로봇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테슬라가 공개한 옵티머스 젠2 영상을 보면 자연스럽잖아요?”라며 “로봇 기술은 많이 올라온 상태고, 실생활에서 사람처럼 다니려면 배터리 기술이 올라와야 할 것 같은데, 그러려면 20년은 넘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의외로 4족보행 로봇보다 휴머노이드 로봇과 같은 2족보행 로봇이 전력을 더 많이 소모한다. 두 다리로 균형을 잡는 데 배터리 소모가 크기 때문이다. 현재 대부분 4족보행 로봇이 배터리를 한 번 충전하면 3시간 가량 활동할 수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의 경우 이보다 더 짧은 시간동안 활용할 수 있을테니 상용화에 큰 벽이 되리란 예측이다.
“확실한 건 5년 안에는 안된다는 겁니다. 작년에 혹시 넘어진 적 있으세요?”
박해원 KAIST 기계공학과 교수의 질문에 기자는 고개를 저었다. 생각해보면 2023년 내내 한 번도 넘어진 적이 없었다. 박 교수는 “그 숫자가 얼마건 휴머노이드 로봇은 더 자주 넘어질 것”이라며 “안정성이 떨어져 자주 넘어지면 쉽게 고장이 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2족보행 안정성을 확보하고, 정밀하게 손을 움직이는 등 기술적 걸림돌은 시간이 있으면 해결될 거라는 게 박 교수의 예측이다. 더 중요한 것은 시장이 열리는 것. 박 교수는 “자동차나 핸드폰의 경우 여기에 사용하는 부품을 개발하는 시장이 충분히 성장해 있는데, 로봇은 아직 그 단계가 아니다”라며 시장이 성숙하기까지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꼭 필요할지 의문을 품는 시선도 있다. 정효빈 레인보우로보틱스 기업부설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휴머노이드 로봇은 사람을 대체하는 범용성이 상용화의 중요한 포인트”라며 “수지타산을 엄격하게 맞추는 산업현장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을 이용하기엔 아직 시기상조”라고 했다.
휴머노이드 로봇의 대척점에는 협동로봇이 있다. 인간과 함께 일하는 로봇으로 치킨을 튀기거나, 볼트와 너트를 조이는 등 특정 작업을 수행하는 로봇이다. 치킨집에서 치킨을 튀기는 협동로봇, 계산을 해주는 협동로봇, 서빙을 하는 협동로봇을 각각 구매해 사용하는 게 휴머노이드 로봇 하나를 쓰는 것보다 저렴하다면 굳이 휴머노이드 로봇을 구매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휴머노이드 로봇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예측 자체에 반대하는 전문가는 없었다. 박 교수는 “미국, 중국 등 다른 나라들은 이제 4족보행 로봇보다 휴머노이드 로봇의 연구개발에 더 주목하는 추세”라고 했다.
“4족보행 로봇은 이제 산업의 영역이죠. 한국도 어서 휴머노이드 로봇 연구를 해야 합니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현재 상용화될 구석이 적다고 공격받고 있는데, 10년 전 똑같은 논리로 공격받던 게 바로 4족보행 로봇이었습니다. 바퀴 달린 로봇으로 뭐든 할 수 있다는 논리였죠. 하지만 지금 4족보행 로봇은 바퀴 달린 로봇으로는 진입할 수 없는 곳에서 활약합니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상용화되면 사람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 겁니다. 그 가능성을 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