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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 방사능벨트가 지구 보호한다고?

새롭게 밝혀진 반 앨런대의 비밀


반 앨런대가 인류를 태운 채 우주 공간에 떠 있는 ‘지구 호’를 보호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영화 ‘스타트랙’에 나오는 함선 엔터프라이즈호의 투명 보호막처럼 말이다. 반 앨런대는 지구를 둘러싼 강력한 방사능 벨트인, 지금까지 인공위성을 망가뜨리는 주범으로 여겨져 왔다. 과연 진짜 얼굴은 무엇일까.
 
1959년, 과학자로는 매우 드물게 타임지의 표지를 장식한 미국의 물리학자가 있습니다. 바로 제임스 반 앨런(1914~2006년)입니다. 그는 1958년 지구 대기권 바깥의 특정 지역에서 고에너지 하전 입자가 검출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당시 우주에 쏘아 올린 미국 로켓 익스플로러 I, II가 하전 입자의 개수를 세는 가이거 카운터(Geiger counter)를 싣고 있었던 덕이지요. 고에너지 하전 입자들이 지구 자기장에 붙잡혀 도넛 모양으로 분포해 있는 ‘반 앨런 벨트(반 앨런대)’는 이렇게 인류에게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자기장의 비대칭 때문에 입자가 갇힌다
 
반 앨런대는 지구를 두 겹으로 둘러싸고 있습니다. 방사능이라는 말을 핵폭탄이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을 통해 접한 사람들은 반 앨런대가 ‘죽음의 방사능이 가득한 지옥 같은 곳’이라 오해하곤 합니다. 특히 “인류의 달 착륙은 미국의 음모”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런 오해를 신봉하다시피 하지요. 방사능으로 가득한 무시무시한 반 앨런대를 어떻게 우주인이 통과했느냐는 겁니다.
 
반 앨런대는 도넛 모양의 내대(안쪽 벨트)와 외대(바깥쪽 벨트)로 구분합니다. 지표에서 1000~5000km 높이에 있는 내대는, 태양계 밖에서 온 높은 에너지의 우주선(cosmic ray)이 지구 대기의 분자나 원자와 충돌할 때 생기는 양성자와 전자(바로 하전 입자)로 구성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주로 양성자로 이뤄져 있는 내대는 우주선이나 우주인에게 해로운 방사선으로 가득 차있습니다(우주선에 방사선 차폐 시설을 갖추는 이유이지요). 지표면에서 1만9200~2만5600km 떨어져 있는 외대는 주로 메가볼트(MeV) 급의 고에너지 전자로 이뤄져 있는데, 이를 상대론적 전자 또는 킬러 전자라고 부릅니다. 킬러전자라 부르는 이유는 고에너지 전자들이 인공위성 부품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내대와 외대 사이에는 하전 입자가 거의 없는 빈 공간인 슬롯 영역이 있습니다.

입자들이 지구 주변에 갇혀 움직이지 못하는 건 지구 자기장이 비대칭이기 때문입니다. 지구 자기장의 남북극을 잇는 가상의 직선은 지구의 자전축과 11.3°쯤 기울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지구 중심에서 약 342km 빗겨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자기장 분포는 위도에 따라 대칭적이지 않고 특정 지역에서 약하지요. 특히 브라질 남쪽 지역은 자기장이 약해 우주의 고에너지 입자가 지표면 근처까지 내려와 있습니다. 이를 ‘남대서양특이현상(SAA)’이라고 부릅니다.

반 앨런대를 최초로 발견한 이후 미국은 야심 차게 반 앨런대 전용 탐사 위성을 기획했습니다. 바로 크레스(CRRES) 위성입니다. 크레스 위성은 우주물리학자들의 부푼 꿈을 안고 1990년 7월 25일 우주 공간으로 나갔습니다. 3년간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었지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크레스는 단 9개월밖에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반 앨런대의 가혹한 방사능 환경을 견딜 수 없었던 겁니다. 반 앨런대를 탐사하려면 위성 부품 하나하나가 모두 방사능에 잘 견딜 수 있도록 완벽한 보호 장치를 갖춰야 합니다. 이후로도 최근까지 반 앨런대 탐사를 시도조차 하기 어려웠던 이유이지요.
“반 앨런대에는 지구 보호막이 있다”
 
그러던 2012년 9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반 앨런 프로브’라는 쌍둥이 위성을 쏘아 올렸습니다. 현재까지 쓸 수 있는 모든 방사선 차폐 기술을 적용해 만든 최첨단 위성이었지요. 수명은 2년으로 설계됐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지난해 9월 설계 수명을 넘긴 뒤, 놀랍게도 지금까지 안정적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반 앨런대에서 직접 관측한 데이터 자체가 매우 희귀해 어려움을 많이 겪었던 과학자들이 이제 풍요로운 데이터에 파묻혀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반 앨런 프로브 위성 덕분에 인류는 다채로운 과학적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국제논문(SCI)만 147편에 달하지요. 가장 대표적인 성과로 2013년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된 ‘세 번째 방사능 벨트 발견’을 꼽을 수 있습니다. 당시까지 방사능 외대는 하나로 알려져 있었는데, 에너지가 매우 높은 전자 영역(4MeV이 넘는 초상대론적 전자 영역)에서 새로운 벨트가 관측된 겁니다. 즉 방사능 내대, 슬롯영역, 방사능 외대의 기존 3중 구조가 틀렸다는 얘기였습니다. 반 앨런대는 방사능 내대, 슬롯1영역, 방사능 외대1, 슬롯2영역, 방사능 외대2 등 5중 구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또 바뀔지도 모르지만요.
 
최근에도 학술지 ‘네이처’에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실렸습니다. 미국 콜로라도대 대기 및 우주물리연구소(LASP) 다니엘 베이커 교수팀은 지구 상공 1만 1000km 인근에서 고에너지 킬러 전자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보호막을 발견했다고 밝혔습니다. 인공위성을 고장 내는 주범이라고만 생각했던 반 앨런대가 사실은 영화 ‘스타트랙’에 나오는 함선 엔터프라이즈호의 보호막처럼 인간을 태운 채 우주를 항해하는 지구를 위험한 고에너지 입자로부터 보호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연구팀은 고속의 전자가 지구 주위를 돌다가 상층대기와 만난 뒤, 지구 내부로 서서히 들어오면서 소멸되는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그런데 반 앨런 프로브 위성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고에너지 전자가 뚜렷한 경계선을 기준으로 안쪽에는 전혀 없었습니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얇고 단단한 보호막이 있었던 겁니다. 연구팀은 지구 상공에 위치한 ‘플라스마권’과 반 앨런대의 상호작용으로 이 같은 보호막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경계선의 입자들이 산란되면서 고에너지 전자의 확산을 막는다는 얘기입니다. 이 보호막의 정확한 정체를 알려면 추가 연구가 필요하지만, 매우 중요한 발견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내대가 주로 양성자로 이뤄져 있지만 전자도 어느 정도 존재할 것이라고 추정해 왔는데, 이번 성과를 통해 내대에는 에너지가 매우 높은 전자가 존재할 확률이 없다는 게 입증됐기 때문입니다.
 
정지궤도위성 위협하는 반 앨런대
 
반 앨런대의 생성과 소멸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은 우주날씨와 연관해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인공위성에 미치는 고에너지 입자의 영향은 현대와 같은 우주 시대에 반드시 알아내야 합니다. 평소 반 앨런대 외대는 지구 반지름의 3~4배 정도 되는 높이에 존재하는데, 태양폭발 등 우주환경이 변하면 7~8배까지 확장되기도 합니다. 이는 인공위성의 정지궤도를 넘어서기 때문에 방송, 통신, 기상 위성에 매우 위협적입니다. 일본 항공우주국과 나고야대는 반 앨런대 전용 인공위성인 ‘지오스페이스탐사위성(ERG)’을 준비 중이며, 캐나다와 EU도 반 앨런대 탐사 전용 위성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한국천문연구원이 NASA와 협력해 반 앨런 프로브 위성의 데이터를 지상에서 실시간으로 받을 수 있는 위성 안테나를 운영 중입니다. 필자는 과학위성 1호의 고에너지 입자 검출 탑재체를 직접 제작한 경험이 있는 우주과학자로서, 언젠가는 우리나라도 반 앨런대를 탐사할 최첨단 인공위성을 우주로 쏘아 올리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그 때가 되면, 반 앨런대도 자신의 실체를 인류에게 보다 또렷하게 보여주겠지요.

2015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우아영 기자
  • 황정아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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