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가장 친한 친구(Man’s best friend).”
영미권에서 개를 칭하는 별명이다. 1만 5000여 년간 개는 주택 경비, 수렵 및 목축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인간을 도왔다. 2024년 현재 이 자리를 로봇 개 4족보행 로봇이 노리고 있다. 인공지능(AI)의 도움으로 더 빠르고, 더 유능해진 4족보행 로봇이 공장, 소방현장 등에서 인간의 동료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이런 트렌드의 중심에 있다.
1월 8일, 세계에서 가장 빠른 4족보행 로봇을 만나러 눈길을 헤치며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대전 KAIST였다. 박해원 KAIST 기계공학과 교수팀이 개발한 4족보행 로봇 ‘하운드’가 ‘100m를 가장 빠른 속도로 주파한 4족보행 로봇’이란 기네스 세계 기록을 남겼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100m를 19.87초 만에 주파한 하운드의 달리기 기록은 2023년 10월 26일 KAIST 대운동장 실외 육상 트랙에서 측정됐다. 박 교수 연구실 한 켠에서 그 인증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
“100m 달리기뿐만 아니라 트레드밀 위에서 측정한 실내 주행 속도도 초속 6.5m로 하운드가 비공식 세계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박 교수의 안내에 따라 하운드의 성능 개선 작업이 한창인 연구실로 들어섰다. 하운드의 주행을 시험하는 거대한 트레드밀이 눈을 끌었다. 그 옆에는 조정을 기다리고 있는 하운드가 걸려 있었다. 재료 수급부터 모터 등 부품 제작, 디자인, 조립 등 모든 것이 국내 기술로 개발된 작품이었다. 연구실 여기저기에 놓인 손때 묻은 장비에서 세계에서 가장 빠른 4족보행 로봇 뒤에 숨겨진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로봇개는 시뮬레이션을 산책하는 꿈을 꾸는가
하운드가 빨리 달릴 수 있었던 비결은 강화학습에 있다. 강화학습은 인공지능(AI) 기술의 한 종류로, 주어진 환경 안에서 과제를 가장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을 스스로 찾도록 이끈다. 아기가 걷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도 강화학습으로 설명할 수 있다. 걸음마를 배우는 수개월 동안 아기는 넘어지기를 반복한다. 넘어지면 아프다. 넘어지지 않으면 좋다. 이에 따라 수많은 시도를 반복하며 부정적 피드백은 피하고, 긍정적 피드백을 추구해가며 넘어지지 않을 최적의 전략을 터득한다.
하운드는 이 과정을 컴퓨터 시뮬레이션 상에서 겪었다. 컴퓨터로 가상 환경을 구현해두고, 실제 로봇을 그대로 본뜬 가상 로봇이 그 속에서 달리기를 반복하도록 시뮬레이션했다. 가상 로봇이 강화학습을 통해 어떻게 하면 잘 달리는지, 어떻게 하면 쉽게 넘어지는지 등을 터득하도록 만든 것이다. 박 교수팀은 실제 로봇이 가진 액추에이터(작동장치)의 한계를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 모터가 최대로 낼 수 있는 한계 토크(돌림힘)와 속도 특성을 강화학습에 적용했다.
연구팀은 이렇게 가상 로봇이 달리기를 학습한 결과를 실제 로봇에 업로드했다. 박 교수는 “가상 환경 속에서는 실제보다 시간을 더 빨리 흐르게 조정하거나 로봇 여러 대를 동시에 강화학습 시킬 수 있다”면서 “실제 로봇이 몇 주 동안 학습할 내용을 몇 시간 안에 배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러 대의 가상 로봇이 수주 동안 학습해야 도달할 수 있는 성과를 한 로봇에 손쉽게 전달하는 것이다.
AI가 과학기술 연구 전방향에 혁신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요즘, 로봇 또한 예외가 아니다. 박 교수의 목표는 앞으로 4족보행 로봇에 “지능을 덧붙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사용자가 조종하지 않아도 로봇이 자율적으로 작업을 수행하거나, 비전 센서를 이용해 주변 물건을 인식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AI가 본격적으로 4족보행 로봇에 적용되면 이 분야의 ‘퀀텀점프’가 이뤄질 것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실제로 2023년 중국의 로봇 기업 유니트리 로보틱스는 챗GPT를 적용한 4족보행 로봇을 ‘유니트리 고2(Unitree Go2)’를 내놓았다. 로봇에게 ‘악수를 해달라’고 요청하면 로봇은 챗GPT를 통해 악수할 방법을 검색하고 이를 실제로 동작으로 옮긴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 로봇 ‘스팟(Spot)’은 현대자동차그룹 로보틱스 랩의 AI 모듈을 적용해 이제 ‘자율주행’이 가능하다. 실제로 스팟은 2023년 세종시 관광명소인 ‘이응다리’ 순찰에 투입되기도 했다. AI를 기반으로 다리 주변을 자율주행하며 주취자와 화재 등을 감지한다.
상용화 문턱에서 ‘기술 안보’를 고민하다
4족보행 로봇이 AI를 이용해 학습하고, 행동하고, 주행한다는 것은 이 로봇이 활약할 구석이 더 많아질 것임을 뜻한다. 4족보행 로봇 시장이 막 태동하는 가운데, 새로운 시장을 대할 고민이 필요하다. 기자가 가장 먼저 찾은 건 보스턴 다이내믹스와 함께 4족보행 로봇 기업의 ‘양대산맥’으로 꼽히는 고스트로보틱스였다.
고스트로보틱스는 2015년 미국 필라델피아에 설립된 미국 기업이다. 한국 방산업체인 LIG넥스원이 지난 2023년 12월 고스트로보틱스를 인수하겠다고 발표하면서 투자자들의 시선이 쏠렸다. LIG넥스원은 “고스트로보틱스 인수로 미래성장 플랫폼을 확보하고 미국 방산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라며 공시를 통해 밝혔다. 현대자동차가 2021년 6월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한 데에 이어 LIG넥스원이 고스트로보틱스 인수에 성공하면 한국은 세계 4족보행 로봇 시장의 중심에 나서게 된다.
한국에서는 고스트로보틱스 테크놀로지라는 한국 법인이 고스트로보틱스 로봇의 국내 생산, 공급, 판매 등을 맡고 있다. 1월 5일 오전, 서울 강남에 위치한 고스트로보틱스 테크놀로지 사옥에 들어서자, 복도를 자연스럽게 걸어다니는 4족보행 로봇 ‘비전 60’이 기자를 맞이했다. 기자가 몸통을 밀어도 자연스레 균형을 잡고, 잡아당겨도 열살 어린아이 정도의 힘으로 저항하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조재훈 고스트로보틱스 테크놀로지 기획관리팀 과장은 “오늘날의 4족보행 로봇들은 큰 틀에서 형태와 기능이 대부분 같다”면서 “저희 로봇은 경쟁사 제품에 비해 야외 활동에 특화됐다”고 설명했다. 이성욱 고스트로보틱스 테크놀로지 로봇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방수, 방진 등급이 높아 폭우나 물웅덩이, 심지어 수중에서도 운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시장에 출시된 4족보행 로봇은 대부분 깊이를 파악하는 뎁스 카메라를 이용해 장애물을 알아본다. 이 경우, 수풀이나 눈이 쌓인 곳처럼 눈으로 봤을 때는 장애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냥 스쳐 지나가도 되는 구조들도 모두 장애물로 인식하게 된다. 고스트로보틱스 테크놀로지의 4족보행 로봇에는 이런 뎁스 카메라를 끄고 주행하는 ‘블라인드 모드’가 있다. 로봇이 실제로 발을 디뎌가며 땅에 반응해 구부러지는 관절, 즉 모터의 각도를 파악해 현재 자세와 주변 장애물을 파악하는 모드다. 이 책임연구원은 비전 60이 계단을 걸어 올라가도록 시연하며 “사실상 눈을 감고 계단을 올라가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야외 활동에 특화된 고스트로보틱스 로봇의 활약무대 중 하나는 전장이 될 전망이다. 조 과장은 “앞으로 현대전에 로봇이 많이 쓰일 것”이라면서 “국내 기술력을 통해 4족보행 로봇을 만드려는 노력은 안보 차원에서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기술 유출을 우려해 산업 현장에서 중국 등 해외 4족보행 로봇을 사용하기보다 한국에서 생산된 로봇을 사용하려고 하는 시장의 니즈도 있습니다. 고스트로보틱스의 경우 한국에서 재료 수급을 해서 4족보행 로봇을 직접 만들 수 있는 공장을 2023년 10월 경북 구미시에 지었습니다. 수요가 생기면 바로 양산 가능한 셈이니 1~2년 내에는 국내 시장에도 로봇이 들어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