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색이 ‘스탠딩 코미디’인데, 두고두고 기억날 만한 ‘썰’도 있어야 하겠죠. 이찬민(KAIST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학사과정) 씨는 지난 7월, 첫 해외 음악 페스티벌 참가의 꿈을 안고 말레이시아에 갔다가, ‘최애’ 밴드가 말레이시아 정부를 비판하는 발언을 해 공연 도중 끌려 나가고(!) 페스티벌이 취소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는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나?’ 생각했다”면서 “하지만 이게 인생이 아닐까? 세상이 또 저를 괴롭혀도 그냥 살아보려고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박정수(KAIST 기계공학과 석사과정) 씨의 이야기는 한 편의 영화 같습니다. 고장 난 중고차를 직접 수리해 유라시아를 횡단할 계획을 세웠던 그는 여행 전, 이 차를 운전하다가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유라시아 횡단 계획은 취소됐죠.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왼손을 다치는 바람에 오른손만 쓸 수 있었음에도 그는 자동차 수리 대회에 나가 수상을 하고, 창업을 하는 등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실패한 경험을 통해 이제는 실패를 빠르게 극복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습니다.
“저는 인생의 과제, 건강관리에 실패했습니다.”
마지막 연사인 문진우(KAIST 생명과학과 박사과정) 씨의 이야기는 조금 무거운 분위기에서 시작됐습니다. 문 씨의 말투에 웃음기가 묻어났지만 쉽게 웃을 수 없었던 이유는 이 이야기의 주제가 그가 어떻게 악성 뇌종양을 앓게 됐는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족 중 암 환자가 많아 자연스레 암 연구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그는, 2018년 폐암의 뇌 전이 연구를 하던 도중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우뇌에 직경 1cm의 혈관종이 생겼기 때문이었죠.
다행히 수술이 잘 끝나 생사의 기로에서 벗어나게 됐지만, 그의 두개골 우측에는 직경 5cm의 구멍이 남았습니다. “앞으로 뭐 해먹고 살지?”란 고민도 함께 남았죠. 만 24세에 뇌질환 환자가 된 그는 고민 끝에 암 연구를 이어가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교수님 저 연구 계속하겠습니다”란 그의 말에 지도교수는 “까짓거, 한번 해보죠”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끝에 문 씨는 성공을 거뒀습니다. 올해 3월 췌장암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고 지금은 박사 졸업을 앞두고 있다는 그는 “살아만 있다면 어떻게든 된다”는 묵직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이야기를 즐겁게 들어도 될지 모르겠다는 기자의 질문엔 웃으며 이렇게 답했죠.
“타인의 실패담에 대해 어떻게 의미를 부여할지는 개인 취향이죠. 용기를 얻으면 좋고요, 위로를 받았어도 좋죠. 그냥 재밌게 들었대도 그걸로 됐습니다. 요즘 제 이야기를 여러 사람에게 전하고 있어요. 아들이 저와 같은 병을 앓고 있다는 한 어머니가 제 이야기를 듣고는 크게 위로 받았다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뜻하지 않은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돼 기뻤습니다. 이런 (실패)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다들 비슷한 실패, 비슷한 고민으로 고통받는다는 사실을 통해 위로받을 수 있는 장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