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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KAIST 학생들의 실패라고 더 멋진 건 아니었다

수확을 기뻐하는 계절 가을, KAIST에선 실패를 기념하는 행사가 연이어 개최됐습니다. KAIST는 10월 23일부터 11월 3일까지 2주간을 ‘2023 KAIST 실패주간(이하 실패주간)’으로 지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KAIST 학생들의 실패를 주제로 전시, 코미디쇼, 강연 등 다양한 행사가 열렸죠.

 

가장 이목을 끈 건 단연 ‘KAIST 실패학회: 망한 과제 자랑대회(이하 실패학회)’였습니다. KAIST 학생들이 스탠드업 코미디 형식으로 실패 경험을 공유하는 행사입니다. 주제도 학업 과제부터 연애, 진로까지 다양했습니다.

 

학생들이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웃음으로 승화해보겠다는 행사에 대중의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실패학회가 진행된 11월 1일, 저녁 7시가 되자 KAIST 창의학습관 1층에는 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카메라가 늘어섰죠. 자녀를 데리고 온 일반 시민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진행을 맡은 학생동아리 ICISTS의 회장 김지환 씨(KAIST 새내기과정학부)가 “이번 행사에서 공유한 실패 사례를 통해 여기 계신 모두가 성공의 길로 나아가길 응원하겠습니다”라는 인사말로 행사를 열었습니다. 한 번도 실패한 적 없을 것만 같은 KAIST 학생들의 실패 이야기라니, 분명 대단한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현장에 모인 관객들과 취재진 모두 그런 기대를 했을 겁니다.


 KAIST 학생들의 실패라고  더 멋진 건 아니었다


“제 별명은 3호선입니다. 좋아하는 여자 친구와 함께 서울 지하철 3호선에 탔을 때 일이었어요. 여자 친구가 ‘너 집에 가서 뭐 할 거야?’라고 물어보길래 ‘네 생각할 건데?’라고 답했죠. 분위기가정말 싸해졌어요. 지금까지도 제 친구들은 저를 3호선이라고 부릅니다.”

 

첫 번째 연사로 나선 반서준 씨(KAIST 새내기과정학부)가 자신의 씁쓸한 연애담을 소개했습니다. 앞에서 잠깐 소개한 최종민 씨는 망한 과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과제를 대충 한 것에 대한 사과문 한 줄, 진짜 과제 내용 두 줄 남짓까지 도합 네 줄로 구성된 그의 과제는 전공 학기말 리포트였죠. 중요한 과제임이 틀림없었습니다. 최 씨는 “제가 어쩌다가 이런 과제를 냈고, 제 인생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라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성실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해요. 대학교까지도 성실하게 살았고, 공부도 열심히 했고, 성적도 좋았던 모범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2020년에 팬데믹이 터졌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최 씨는 자취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되며 사람들과 교류가 적어지자, 최 씨는 자기만의 세계에 갇히게 됐죠. 과제도, 현실도 모두 외면하고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않은 상태로 어영부영 2년을 보냈습니다. 그의 네 줄짜리 과제는 이런 무기력의 시간 속에서 나왔습니다.

 

어떻게 무기력에서 벗어났을까. 특별한 계기는 없었습니다. 그는 “그냥 규칙적이고 건강한 삶을 살고, 운동 많이 하고, 현실에 집중하려고 노력하면서 점점 좋아지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비슷한 상황의 친구들에게 다시 힘내자고 응원하고 싶다”는 담담한 말을 남겼죠.

 

KAIST 학생의 실패라고 특별할 건 없었습니다. 이날 연단에 선 열 명의 학생 모두 평범하게 열심히 살다가 일어날 법한 사건을 겪었고,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더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이사 마가리타 펠리자르도 산 후안(KAIST 건설 및 환경공학과 학사과정) 씨는 해외 유학 장학금을 타기 위해 어떻게 노력했고, 실패했는지 소개하며 눈물을 보였습니다. 그러자 객석에서 격려의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영 앤 리치’를 꿈꾸며 주식투자를 시작했다가 돈을 잃었다는 배서연(KAIST 화학과 학사과정) 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쓴 미소를 짓는 사람도 많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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