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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에듀테인먼트' 개발, 놀며 배운다

교육과 오락, 결코 양립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는 두 요소는 멀티미디어 기술에 의해 하나가 된다. 에듀테인먼트라 불리는 이 개념을 이제 교육의 새로운 개념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으며, 교육혁명의 한 축을 이를 것으로 보인다.

올해 국민학교에 입학한 헌주(8)는 학교에서 돌아오기 무섭게 컴퓨터 앞으로 달려간다. 입학선물로 받은 '로드니의 신나는 놀이화면'중 영어단어 맞추기 게임에 푹 빠져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화면 가운데 나타난 그림의 영어 알파벳 첫자를 맞추는 이 게임은 달걀처럼 생긴 인형이 다양한 그림의 이름을 영어로 읽어준 뒤 화면 아래 다섯개 알파벳중 하나를 마우스로 누르면 된다. 만약 글자를 잘못 선택하면 인형은 'WRONG ONE'이라고 말하며 다시 선택할 기회를 주고, 맞추면 'RIGHT'라며 한 걸음 앞으로 걸어간다.

다섯개의 그림을 맞추면 인형은 왼쪽에 쌓여있는 사탕을 먹거나 여자 친구에게 뽀뽀를 하거나, 아니면 침대에서 잠을 잔다. 코를 드르렁거리며. 유치원에서도 영어를 배운 적이 있지만 주위가 다소 산만한 성격의 헌주는 종이에 그려진 그림을 보며 배우는 영어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로드니의 신나는 놀이화면'은 그림책보다 화려한 움직이는 화면에 신나는 음악까지 곁들여져 그를 신나게 하고 있다.

게임은 주로 혼자 하지만 가끔은 놀러온 친구와 함께 누가 먼저 맞추나 시합을 하기도 한다. 또 유치원에 다니는 동생이 즐기는 로드니의 신나는 놀이화면에 들어 있는 괴물 숫자 맞추기에는 기상천외하게 생긴 괴물이 등장해 곁에서 보기만 해도 즐겁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헌주를 기쁘게 한 것은 엄마가 더 이상 컴퓨터를 한다고 야단을 치지 않는다는 것. 그동안 컴퓨터 게임을 하느라 학원도 빼먹고, 밥도 잘 먹지 않자 하루에 한 시간만 게임을 하기로 엄마와 약속까지 했다. 이제는 엄마 눈치를 살피며 컴퓨터를 하지 않아도 돼 마음이 편안하다. 영어 단어 맞추기 게임을 하면서 영어 실력이 쑥쑥 늘자 더이상 게임하는 것을 말리지 않게 된 것이다.

학습 방해자에서 최고의 선생님으로
 

엄마 이게 뭐야


컴퓨터가 대중화되면서 학생이 있는 가정에는 대부분 컴퓨터가 놓여져 있다. 컴퓨터 구입 동기를 살펴보면 아버지의 회사 업무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대개는 아이들의 학습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구입한 날부터 컴퓨터는 부모와 아이들 간의 갈등 원인이 된다. 게임을 하는 아이들과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부모들이 실랑이를 벌이다가 최악의 경우에는 아예 컴퓨터를 다락에 가둬놓는 집도 있다.

부모의 입장에서 컴퓨터는 일종의 '학습 방해자'였던 셈이다.

그러나 최근 컴퓨터를 이용한 교육이 활성화되면서 이런 모습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오락을 즐기며 공부하는 소프트웨어가 대거 출현했기 때문이다. 곁에서 가만히 지켜보면 공부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게임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컴퓨터 화면은 현란한 모습에 소리마저 쿵쾅거린다. 아이들 또한 게임을 하듯 매우 신난다.

지난 90년 미국에서 일어난 에듀테인먼트 바람이 국내에도 뒤늦게 찾아왔다. 에듀테인먼트란 에듀케이션(교육, Education)과 엔터테인먼트(오락, Entertainment)를 결합 시킨 말로서, 오락을 하며 학습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새로운 교육형태다.

교육용 소프트웨어에 오락성을 가미한 '에듀테인먼트 소프트웨어'는 과거처럼 교육용 소프트웨어를 다소 재미있게 꾸미기 위해 퍼즐 등 게임 요소를 일부 가미한 것과 달리 프로그램 자체가 완전한 게임이다. 따라서 일부 소프트웨어는 게임인지, 교육용 프로그램인지 분간할 수도 없다. 마치 기성세대가 헤드폰을 끼고 공부하는 요즘 학생들을 보고 음악을 듣는 것인지, 공부를 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럼 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교육과 오락을 합쳐 소프트웨어를 만들었을까. 그건 간단한다. 기존의 교육방식은 반복되는 훈련과 연습이다. 전자게임 역시 게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수한 반복이 필요하다. 게임에는 정복할 수준, 찾아내야 할 보물, 잡아야 할 악당이 존재한다. 그러니 교육 수준과 그에 맞는 목표마다 게임을 집어넣으면 아이들이 재미있게 학습할 수 있게 된다.

강명희 교수(이화여대 교육공학과)는 에듀테인먼트의 개념을 "교육이 학습자의 주의를 획득하지 못하고, 흥미롭지 못하며 지루해 학습자의 관심영역 밖으로 밀려나가고 있는 문제점의 한 가지 해결 방안으로 제시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실례로 최근 웅진미디어가 내놓은 '웅진소프트마을'은 '한자성의 비밀' '2133 타임워' '탐험 영어나라' '도깨비 소동'등으로 구성돼 있어 얼핏 제목만 보면 게임인지 교육용 소프트웨어인지 구분이 안간다.

뭔가 신비스러운 비밀을 안고 있는 듯한 제목인'한자성의 비밀'은 한자성에 잠입해 마왕을 물리치고 샛별공주를 구해내는 일종의 어드벤처 게임이다. 하지만 공주를 구하기 위해 마왕과 일곱번의 한자실력을 겨루는 동안 사용자는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한자학습을 하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도깨비 소동'은 수학능력 시험에 대비한 국어공부, '탐험 영어나라'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영어공부, '2133 타임워'는 세계사 공부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학습유도, 성취감 만족시켜
 

국산 교육용 프로그램들이 대체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서 유아용 교육프로그램만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세계적으로 에듀테인먼트 시장을 급속도로 성장시키고 있는 원동력은 '멀티미디어'다. 오락에 필수적인 멀티미디어 요소(그래픽, 애니메이션, 음향효과 등)가 발전하지 않고서는 사용자들의 시선을 붙잡을 수가 없다. 특히 비디오 세대로 알려진 요즘 세대에게 영상이나 음악은 그들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자아 표현인 동시에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특성을 가진 신세대 아이들에게 과거처럼 감각적인 자극이 전혀없는 교육방법으로 접근한다면 학습효과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국내에서 교육용 프로그램만큼 역사가 오래된 분야도 없다. 80년대 중반 정부가 정책적으로 국내에 PC를 보급하면서 학교에 5천대의 PC를 제공할 때 교육용 프로그램도 함께 공급됐다. 하지만 참고서를 그대로 컴퓨터 화면에 옮겨놓은 듯한 교육용 프로그램은 단지 종이매체가 아닌 컴퓨터로 공부를 한다는 의미밖에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이는 1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전체 소프트웨어 패키지 시장의 10%를 넘지 못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교육용 분야에 오락성을 가미하고 멀티미디어 요소를 갖춘 에듀테인먼트 프로그램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데는 CD-롬 드라이브의 보급이 큰 역할을 차지했다. 그래픽, 음향효과 등을 구현하려면 대용량 매체가 필수적인데, CD-롬은 이에 제격이다.

에듀테인먼트 소프트웨어는 내용 또한 단순히 교과서를 컴퓨터에 옮겨놓은 것이 아니라 만화영화나 게임 형식을 띠고 있다. 아이들이 싫어하는 읽기 쓰기 산수 암기 등을 게임을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학습하도록 유도한다. 물론 싫증을 느끼지 않도록 적절하게 난이도를 조정, 아이들로 하여금 성취감을 갖게 하는 데 인색하지 않는다.

환경보전의 소중함을 가르치고 있는 '아기공룡 골디'(금성소프트웨어)는 등장인물이 모두 입체화상으로 묘사되며 5백30MB의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환경오염에 찌든 행성을 떠나 우주를 여행하다가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들이 환경을 파괴하려는데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러나 이 게임은 외계인과 전쟁을 벌여 지구를 지킨다는 흔한 우주게임과 달리 아기공룡 골디 등 '지구인'들이 순박한 외계인들을 잘 타일러 환경을 지킨다는 줄거리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바닷가 동물원 도로 주차장 약수터 등 일상생활 속에서 무엇이 환경에 나쁘고 어떻게 해야 환경에 이로운지를 흥미롭고 실감나게 꾸몄다.

이 타이틀은 무엇보다 갖가지 공룡 캐릭터들의 깜찍한 모습과 만화영화처럼 부드러운 3차원 동화상이 눈길을 끈다. 또 대화형으로 내용을 끌어가도록 해 사용자가 스스로 참여하면서 환경실천을 배울 수 있다. 예컨대 주차장에서 자동차 꽁무니를 화단쪽으로 들이대면 어떻게 되는지를 직접 선택해서 알아볼 수 있다.

새로운 황금어장, 투자가 따라야
 

심시티


문화평론가 이유남씨는 "에듀테인먼트만큼 애매모호한 말도 없다"며 "교육과 오락이 결합하는데 있어서 주체는 교육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교육의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 과거 '가르친다'는 발상에서 '스스로 배우게 한다'로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고도의 사고와 지식을 요구하는 '심' '카멘 샌디에이고' 시리즈는 재미에다 교육 기능까지 겸한 최첨단 에듀테인먼트 소프트웨어의 대표작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용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이 소프트웨어는 게임으로 분류되고 있지만 게임을 하면서 역사 지리 우주 생물 환경 등 교과서적인 내용은 물론 행정력까지 기를 수 있어 에듀테인먼트의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미국 브로드번드 소프트웨어사가 국민학생용으로 개발한 카멘샌디에고 시리즈는 사용자가 전세계 및 우주를 누비는 신출귀몰한 도둑인 카멘 일당을 잡는 과정을 담았다. 다만 도둑을 잡기 위해서는 컴퓨터가 묻는 세계지리 및 행성 문제에 답해야 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게임과 다르다.

수준높은 게임을 좋아하는 대학생, 직장인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심시티2000'은 도시행정 시뮬레이션 게임. 사용자가 시장이 돼 황량한 벌판에 가장 이상적인 미래도시를 건설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시장이 각종 편의시설을 건설하고 적절한 세금을 부과해 살기 좋은 도시가 만들어졌을 경우엔 인구가 늘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도시가 피폐된다. 따라서 경제 교통 건설 환경 등 다방면에 걸친 사용자의 지식과 조직력이 요구된다. 예컨대 사용자는 게임을 하며 소방서 위치가 주택지역과 너무 멀리 떨어질 경우 입게 되는 피해와 각종 자연재해에서 효율적으로 도시를 관리하는 방법을 배운다. 또 세금을 많이 걷으면 각종 개발사업을 마음껏 펼칠 수 있지만 다음 시장 선거에서 낙선하는 쓰라림도 알게 된다.

심 시리즈에는 심시티 이외에도 개미의 복잡한 행동양식을 배울 수 있는 심앤트,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로 보는 가이아가설을 기초로 지구진화를 다룬 심어스, 동식물을 변형시키고 생태계를 조절할 수 있는 심라이프도 있다.

현재 국내에서 이른바 '잘나가는 프로그램'이라고 하면 거의 외국산이다. 특히 93년 빌트인 CD나 시스텍 등을 비롯해 CD-롬 타이틀을 전문으로 유통하는 업체가 생겨나면서 인기있는 외국산 타이틀이 대거 선보였다. 외국업체들의 경우 분야별로 40-50명의 고급 전문 인력에다 매년 수십억원의 연구 개발비를 투자, 수십건의 첨단게임을 만들어내고 있다. 매달 국내에 소개되는 외국 게임만 해도 20-30건에 이른다.

국내에서 게임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는 업체로는 미래내 만트라 소프트액션 트윈 등 10여곳. 이 업체들은 대개 7-8명의 직원에 겨우 몇억원대의 투자비로 1년에 1-2편의 게임 소프트웨어를 개발해내고 있다. 또한 최근 교육용 소프트웨어의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대교컴퓨터 웅진미디어 동아출판사 등 출판업체들이 뛰어들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외국 제품만큼 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
특히 에듀테인먼트로 넘어오면서 국내 실정은 더욱 열악하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용어조차 낯선 국내 환경에서 탄탄한 기획력과 엄청난 인적, 물적 자원으로 만들어진 외국 제품에 대항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 격이었다.
하지만 국내에도 교육용 소프트웨어 제작에 관한 기존의 사고방식을 벗어던지고 참신한 기획력으로 제작된 프로그램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해 사용자들의 눈길을 모으고 있다.

'시간이 빨리갔네요' '나의 천국'(푸른 하늘을 여는 사람들) '두기의 하루'(동아출판사) '어린왕자와 신나는 우주여행'(세피앙 미디아트) '세모와 네모'(세광데이터테크) '즐거운 놀이방'(솔빛조선미디어) '공룡나라' '인어공주'(AIC) '엄마 이게 뭐야'(대교컴퓨터)등이 그것들이다.

바둑이 두기가 하루동안 겪는 일을 10개의 장면으로 구성한 '두기의 하루'는 재미있는 대목을 어린이 스스로 찾아 마우스로 누르면 갖가지 관련된 현상이 모니터에 동화상으로 나타나며 혼자 자연 산수 공부를 할 수 있다.

'어린왕자와 신나는 우주여행'은 지구와 태양계 행성들에 대한 풍부한 자료와 뛰어난 그래픽 애니메이션을 제공하고 있는 우주과학 프로그램이다. '나의 천국'은 점 선 면 3차원 물체들을 이용한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체계적인 공간 지각력과 색채감각, 인지력을 길러주며, '시간이 빨리갔네요'는 시간 개념을 가르쳐준다. '공룡나라'에서는 공룡 화석 맞추기 게임과 백과사전을 통해 공룡 생태를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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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이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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