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도전할 수 있습니다. KAIST 실패연구소의 궁극적인 목표죠. 안 교수는 “한 학생에게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KAIST에 입학했다면, 그 사람은 입시 과정에서 거의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는 의미’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습니다. 그렇기에 KAIST 학생들은 앞으로도 실패하지 않고 계속 성공의 길을 걷고 싶어 한다는 게 안 교수의 설명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죠.
그런데 이런 경향성이 도전을 방해합니다. 실패 확률이 있는 길을 선택하지 않는 겁니다. 학교가 학생들에게 넘버원(Number 1)이 아니라 온리원(Only 1)이 되라고 해도 학생들은 쉽게 그런 길을 가지 못합니다. 성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입니다. 길게 보면 삶에는 변수가 많습니다. 실패를 거듭하는 게 당연한 것이지만, 아직 어린 학생들에게는 그런 시련 하나하나가 무척 거대할 수밖에 없죠.
안 교수는 성공하지 못한다는 걸 두려워하는 학생들에게 ‘아프니까 청춘이다’ 식의 말을 해주는 건 무책임하다고 말합니다. “도전할 역량이 있는 이들에게 슬럼프가 찾아올 때 막연히 쉬라고 하는 건 아니죠. 그 슬럼프를 잘 극복할 수 있도록 지원할 때 그들이 성취를 할 수 있는 거거든요. 학생들이 성공에 대한 불안 때문에 쉽게 도전하지 못한다는 걸 직면하는 것부터 시작입니다. 이런 감정은 자연스러운 감정이기도 하고, 일부분은 사회가 주는 압박 때문에 오기도 해요. 감정의 근원을 구분해 보면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는 겁니다.”
물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더라도 실패가 뼈아프긴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건 이 실패를 어떻게 양분으로 삼느냐겠죠. 실패주간의 마지막 날인 11월 3일, KAIST 학술문화관에선 ‘실패세미나: 실패를 성공적으로 다루는 방법’이란 주제로 세미나가 진행됐습니다. 리사 손 미국 컬럼비아대 버나드 컬리지 심리학과 교수와 김수안 성균관대 심리학과 교수가 강연을 맡았죠. 150석 남짓한 강의실에 KAIST 구성원이 빼곡히 앉았습니다.
김 교수는 실패를 겪은 이후 오히려 더 성장한 야구선수들을 분석한 연구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야구 레전드들이 실패에 매몰되지 않은 이유가 ‘직면’에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피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나를 들여다보는 것. 야구선수들은 그런 직면을 했다는 겁니다.
김 교수는 그러면서 만화 ‘블루 피리어드’의 대사를 인용했습니다. 주인공이 한 말인데요, “현실을 받아들이고 전략을 세우는 쪽이 나와 어울려. 자신의 단점을 받아들이고 시작한 부분부터 80%는 한 거라고 생각해”.
재미있는 후일담을 하나 들려드리며 글을 마무리 지으려고 합니다. 실패에 직면하길 두려워하지 않는 학생들의 이야기입니다. 실패학회는 KAIST 실패연구소와 KAIST 학생동아리 ICISTS 학생들이 함께 준비한 행사입니다. 특히 ICISTS 학생들은 매년 크고 작은 행사를 스스로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죠. 이 중에는 세계 각국의 학생들이 모이는 국제 컨퍼런스도 포함돼 있습니다.
실패학회가 끝난 11월 3일, 이 학생들을 만나 “망한 과제 자랑대회가 망해버렸다면 어떤 기분이 들었을지” 물었습니다. 행사 총괄을 맡은 김태현(KAIST 기술경영학부 학사과정) 씨의 대답이 멋집니다.
“실패한다면 슬펐겠죠? 그런데 좋은 비료가 되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해요. 저희는 매번 행사가 끝나자마자 바로 강의실에 모여 행사를 분석하거든요. 이걸 ‘KPT(Keep-Problem-Try)’분석이라고 부릅니다. 실패는 실패한 대로, 성공은 성공한 대로 분석해서 자료를 만들죠. 뒤풀이 가기도 전에요. 이렇게 쌓인 자료가 무척 좋은 경험이 됩니다. 만약 행사가 망했더라도, 다음 기수의 동아리 부원들은 꼭 성공하길 바란다는 마음을 가지며 열심히 자료를 분석했을 것 같습니다.”
혹시 당신이 지금 실패의 아픔을 느끼고 있다면. ‘아프니까 청춘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란 말이 그저 속 편한 소리로만 들린다면. 다시 일어나고 싶다면. 이들처럼 해보는 건 어떨까요? 여러분의 실패와 극복을 과학동아도 함께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