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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4월 1일 질병관리본부는 A형간염 주의보를 내렸다. “최근 A형간염 신고가 크게 늘었고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라며 “예방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 달여 뒤인 5월 15일 질병관리본부는 이번엔 “A형간염 발생이 잇따르고 있긴 하지만 예년 수준일 뿐”이라며 “보건학적으로 위기 상황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보건당국이 같은 현상에 대해 오락가락하는 설명을 내놓은 것이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도대체 주의를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헷갈리지 않을 수 없다.

면역기능 저하냐, 변종 바이러스냐

A형간염에 걸렸다고 해서 모두 심각한 증상이 나타나는 건 아니다. 몸살감기 정도로 앓고 낫는 경우도 많다. 병원은 증상이 심해 입원하는 A형간염 환자가 발생하면 그때 보건당국에 신고한다. 질병관리본부는 이를 근거로 A형간염 환자 수를 집계한다.

올 1~3월 A형간염 신고 건수는 1668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배 늘었다. 특히 2월 이후 빠르게 증가해 5, 6월 절정에 이르렀다가 지금은 약간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A형간염 환자가 전체적으로 늘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이에 대해 질병관리본부는 “최근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신종인플루엔자A에 비하면 A형간염 발생이 예년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뜻이었다”며 “현재 A형간염 유행 여부와 원인 규명을 위한 역학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입원 환자가 많다는 사실은 A형간염 증상이 전보다 심해졌다는 의미다. 간염이 심해지면 간에 연결된 혈액을 통해 다른 장기에까지 나쁜 영향을 미친다.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소화기내과 윤승규 교수는 “최근 A형간염의 합병증으로 뇌와 콩팥, 허파의 기능이 나빠지는 환자가 늘었다”며 “심지어 간 조직이 너무 많이 죽어 이식을 받은 사례도 우리 병원에서만 지난해부터 13건이나 된다”고 밝혔다.

A형간염 증상이 심해진 이유는 크게 2가지로 추정된다. 먼저 인체의 면역체계가 A형간염 바이러스에 견디지 못할 만큼 약해졌을 수 있다. 현대인들은 과로와 수면부족,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이런 삶의 패턴은 면역기능을 약화시키는 주요 원인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너무 깨끗한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논밭에서 뛰어놀며 자란 50대 이상 노인 가운데 대다수는 이미 A형간염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를 갖고 있을 거란 추측이다. 항체가 있으면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와도 방어를 하기 때문에 간염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들에 비해 아파트처럼 깨끗한 환경에서 자란 20~30대 젊은이들은 상대적으로 A형간염 바이러스에 취약할 수 있다. 실제로 보건당국이 집계한 전체 신고 건수의 79%가 20~30대 환자로 나타났다.

A형간염이 심해진 또 다른 이유는 바이러스다. 윤 교수는 “최근 국내에서 발견된 A형간염 바이러스는 한국에 원래 있던 것과 유전자가 다르다”며 “외국의 A형간염 바이러스와 비슷한 변종일 것”이라고 말했다. 변종 바이러스가 기존 바이러스보다 더 심한 증상을 일으켰을지 모른다는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A형간염 바이러스는 음식물을 통해 몸속으로 침입한다. 세균이나 바이러스는 위에 들어오면 강한 산성을 띠는 위액 때문에 대부분 죽는다. 하지만 A형간염 바이러스는 ‘무사히’ 통과한다. 심지어 온도 변화에도 강해 냉장고에 넣어도 살아남는다. 이 바이러스를 죽이려면 90℃ 이상으로 끓여야 한다. 음식은 충분히 익히고 물은 끓여 마시고 손을 자주 씻어야 A형간염을 예방할 수 있다는 얘기다.

A형은 입, B형은 피로 감염

A형간염 바이러스는 특이하게도 6세 이전의 어린아이에겐 맥을 못 춘다. 아이들은 감염돼도 감기처럼 살짝 앓고 지나가는 게 보통이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6세 이전엔 면역체계가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우리 몸의 방어 메커니즘은 크게 두 단계를 거쳐 작동된다. 먼저 면역세포의 하나인 자연살해(NK)세포가 1차로 방어한다. 여기서 부족하면 또 다른 면역세포인 T세포와 B세포가 2차로 합동공격을 편다. 이 같은 면역체계는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비로소 성숙된다.

문제는 이 두 단계를 거치는 동안 면역세포와 바이러스 간의 싸움이 점점 치열해지면서 간세포가 손상을 입는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간염이 점점 심해진다. 면역체계가 아직 갖춰지지 않은 어린아이는 간세포가 덜 손상되기 때문에 심한 간염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적다. 또 어린 만큼 손상된 간이 재생되는 속도도 빠르다.

간세포가 손상될수록 간 수치 가 올라간다. 정상 간 수치는 40 미만. A형간염에 걸린 어른은 심하면 간 수치가 5000까지 급증하지만, 어린아이는 간염에 걸려도 간 수치가 100 안팎에 머문다.

A형간염은 아직 치료제가 따로 없다. 간세포 손상을 줄이는 영양제나 탈수를 막는 수액을 공급하고, 간에서 만드는 단백질인 알부민이나 혈액응고인자가 부족해지지 않도록 보충해주는 정도다. 그래서 더욱 예방이 중요하다.

현재 A형간염 백신은 필수가 아니라 권장예방접종으로 분류돼 있다. 최근 전문가들 사이에서 A형간염을 필수예방접종으로 지정하자는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필수예방접종은 비용의 약 30%를 국가가 부담하지만 권장예방접종은 전액을 소비자가 내야 한다.

예방접종의 효과를 톡톡히 본 게 바로 B형간염이다. B형간염 백신은 필수예방접종으로 지정돼 있다. 윤 교수는 “1980년대 전에는 전 국민의 약 10%가 B형간염 바이러스 보균자였지만 지금은 약 5%로 떨어졌다”며 “백신 접종 덕분에 세계 최고의 B형간염 감소 효과를 보인 나라가 바로 한국”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국내 영유아 보균자 비율은 0.2% 이하로 떨어졌다”고 덧붙였다.

음식이나 물로 전파되는 A형간염 바이러스와 달리 B형간염 바이러스는 혈액을 통해 감염된다. 국내 B형간염은 대부분 수직감염이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엄마가 임신하면 아이도 감염된 채 태어난다는 뜻이다. 수혈이나 상처도 대표적인 감염 경로다. 식사나 포옹, 악수 같은 일상생활에선 감염 위험이 없다.

A형과 B형간염의 가장 큰 차이는 증상이 지속되는 기간이다. A형간염은 고열이나 구토, 소화장애 등 강한 증상이 나타나지만 비교적 빨리 완치될 수 있다. 그러나 B형간염은 95% 이상이 만성으로 진행돼 심하면 간경화나 간암까지 간다.



불법 성형수술은 C형간염 전파 주범

같은 간염 바이러스지만 A형과 B형은 다른 점이 많다. A형간염 바이러스는 유전물질이 RNA로 이뤄져 있는데 비해 B형간염 바이러스는 DNA로 구성돼 있다. DNA 바이러스는 일반적으로 RNA 바이러스보다 구조가 안정적이다.

A형간염 바이러스는 세포에 감염돼도 세포질에 머물러 있지만 B형간염 바이러스는 유전물질이 들어 있는 핵 속까지 파고들어 간다. 이런 이유 때문에 B형간염 바이러스를 죽이는 게 A형간염 바이러스보다 더 어렵다.

B형간염 바이러스 때문에 생기는 골치 아픈 문제가 하나 더 있다. 바로 D형간염이다. D형간염 바이러스는 희한하게도 B형간염 바이러스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만 감염된다. 학계에서는 D형과 B형 바이러스가 공생하는 관계라고 보고 있다. 다행히 국내에선 아직 D형간염 바이러스가 발견되진 않았다. 주로 그리스나 이탈리아 같은 지중해 주변지역에서 나타난다.



A형간염 환자가 증가하면서 C형과 E형간염에 대한 관심도 늘었다. C형간염은 국내에서도 꾸준히 생기고 있다. 마약 투여나 불법 성형수술 때 사용하는 더러운 주사바늘이 C형간염 전파의 주범이다. 알코올로 소독해도 C형간염 바이러스는 죽지 않는다. 90℃ 이상으로 끓여야 한다.

C형간염은 걸려도 일상생활에 별 지장이 없을 정도로 증상이 미미하다. 일반적인 건강검진에 A형이나 B형간염 항목은 포함돼 있지만 C형간염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감염된 걸 모르는 채 수십 년이 지나면 간경화나 간암으로 발전할 수 있다. 전문가들이 C형간염도 건강검진 항목에 넣어야 한다고 권고하는 게 바로 이 때문이다.

5가지 간염 가운데 유일한 인수공통 전염병이 E형간염이다. 인도와 태국, 파키스탄처럼 위생상태가 좋지 않은 나라에 많은 전형적인 후진국형 질병이다. 임산부가 E형간염에 걸리면 사망률이 20~30%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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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임소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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